성폭력과 2차 성폭력

권력을 가진 남성인 가해자는 ‘제자리’에 와있다. 그리고 그것이 2차 성폭력의 조건이 됐다.

지난달 29일, ‘서강대 K교수’에 의한 2차 성폭력이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성폭력 사건 가해자인 K교수는 형사재판에서 강제추행과 명예훼손으로 7백만원의 벌금형과 학교 측으로부터 안식년 중 3개월 정직처분을 받은 바 있다. 안식년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온 K교수는 교수라는 위치를 거리낌없이 누리면서 피해자에게 압박을 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그의 동료 교수가 피해자에게 수차례에 걸쳐 사건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라고 강요했고, 가해자와 화해하라는 요구하는 등의 2차 성폭력을 저질렀다고 한다.

서강대 총학생회는 이번 2차 성폭력 사건의 원인이 2001년의 사건 징계가 부적절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피해자는 학교 측이 대안을 마련해주지 않는 한 다시 ‘지도교수’로 가해자를 만나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한다. 형사재판의 결과와 관계없이, 안식년 중의 정직처분으로 성폭력 교수에 대한 처분을 마무리한 학교 측의 처사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다시 교수와 학생으로 만나게 했다. 이 상황에서 2차 성폭력 사건이 일어난 것은 불행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는 성폭력 사건의 ‘완전한 해결’-피해자가 성폭력 피해를 완전히 극복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를 논외로 하더라도-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보여주는 한편, 2차 성폭력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한다. 답은 말할 것도 없이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다면 명확한 ‘처리’를 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달 11일 있었던 ‘사회당 5차 당대회 축사 사건’은 이후 성폭력은 무엇인가라는 논쟁부터 ‘진보진영 성폭력 사건 해결을 위한 100인 위원회’(백인위)에 대한 논란을 재연했다. 이른바 ‘축사사건’은 노동운동가 이일재씨가 축사를 한 것이다. 사건 당일 사회당 홈페이지에 이일재씨는 백인위가 2000년에 발표한 진보진영 성폭력 사건 가해자라는 것과 그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 그 상태에서 이일재씨를 당의 공식석상에 세운 당대회 준비위원회는 2차 성폭력을 저지른 것이라는 문제제기가 올라왔다. 당대회 준비위원장은 그것이 ‘직무상의 오류’였다는 요지의 해명을 했고 이후 중앙위에서 준비위원장을 징계했다. 그러나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애초에 제기된 ‘2차 성폭력’에 대해서는 해명되지 않았고, ‘2차 성폭력 아니다’, ‘이일재씨 사건이 성폭력인지부터 봐야한다’는 논란이 일었던 것이다.

‘성폭력 사건에 대한 문제제기’는 ‘낙인찍기’의 혐의를 받게 되었고, 백인위의 ‘정당성’이 다시 세간의 잣대에 올랐다.

사실 한국사회의 성폭력에 대한 인식은 ‘성폭력=강간’이라는 등식을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성폭력 사건은 사건 처리보다는 ‘그 사건이 성폭력이냐 아니냐’에 방점이 찍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다.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를 기본으로 한 성폭력 개념을 받아들일 때 성폭력의 범위는 너무도 넓고, 그만큼 성폭력은 일상적이어서 성폭력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이다. 가장 빈번하면서도 가벼운 예는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시 ‘이것도 성폭력이냐’, ‘나도 가해자로 고발해라’라는 식의 비아냥거림과 ‘잘난 꼴페미니스트’라는 식의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이에 대한 공격들이다. 여기서 배제된 것은 ‘이것도 성폭력이냐’라는 발언이 비아냥거림이 아닌 진지한 질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성폭력 사건의 발견과 해결에 있어서 첫째단계는 바로 ‘이것이 성폭력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93년 세간에 논란을 일으킨 서울대 심교수 성폭력 사건(통칭 우조교 사건)은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감내해왔던 ‘성희롱’들이 ‘성폭력’이라는 것을 깨우쳐 준 전기였던 것이다.

백인위는 2000년 당시 명단 발표 때도 수없는 공격을 받았다. 어떤 가해자에게는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그들이 한 일은 진보진영 내 ‘조직 보위’ 논리 등으로 숨겨져 온 성폭력 사건의 진상을 공개한 것뿐이다. 긍정적인 결말은 진보진영 내 성폭력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시켰다는 것이고 현실적으로 운동단체 내 반성폭력 자치규약 제정 등에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결말은 그렇게 공개된 사건들이 채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여전히 피해자는 성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일재씨 사건도 그런 경우인데, 이일재씨는 자신의 성폭력 행위를 인정하는 한편 ‘사과했으니 이제 됐지’라며 일방적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후에도 노동운동의 선배로 여러 연단에 오르며 흔들림없는 위치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이일재씨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혹자가 의혹을 제기한 것과는 다르게 이일재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는 자신의 가해사실을 인정했다. 이것을 환기하는 이유는 낙인을 찍으려함이 아니고 그럼에도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아이러니 때문이다. 서강대 K교수 사건에서도 보듯 권력을 가진 남성인 가해자는 ‘제자리’에 와있다. 그리고 그것이 2차 성폭력의 조건이 됐다.

사회당 게시판을 통해 논란이 진행되가던 중 두명의 당원이 공식적으로 ‘성폭력 사건’을 신고했다. 당대회 준비위원장을 성폭력 가해자로 신고한 한편 게시판 논쟁 도중 이일재씨 사건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성폭력 피해자를 왜곡한 다른 당원을 성폭력 가해자로 신고한 것이다. 한편, 여성해방연대(준)은 사회당 게시판에서의 성폭력 논쟁이 ‘사이버 성폭력’이라는 신고가 들어왔음을 밝히며 사회당에 이에 대한 대책을 촉구하기도 했다.

해결되지 않은 성폭력, 성폭력에 대한 담론의 결과들이 ‘성폭력’으로 나타나는 양상은 참담하다. 확장되어가는 논란의 여파는 어떻게 추슬러질지 쉬 예상이 안된다. 그럼에도 성폭력에 반대한다면, 성폭력 개념의 확장과 재구성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대학생신문 원주 기자 hoho@stuzin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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