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시나무는 이름조차 제대로 불려지지 못하고 있다. '아까시나무'는 잘 몰라도 '아카시아'라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아카시아는 아프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 자라는 다른 나무 이름이다. 아까시나무와 같은 콩과식물에 속하지만 속(屬)이 서로 다른 나무이다. 아까시나무 학명이 '수도-아카시아(Pseudo-acacia)'인데 이 뜻은 '가짜아카시아'란 뜻이다. 아마도 아카시아처럼 가시가 있고 또 작은 잎이 여러 장 모여서 달리는 게 닮아서 그렇게 이름 붙여진 것 같다. 그런데 가짜 아카시아가 이 땅에 건너와서 그냥 진짜 아카시아로 불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까시나무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한 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나무이기도 하다. 아까시나무 원산지는 북아메리카다. 개항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고 일제 시대 때 공출로 베어진 헐벗은 산을 녹화하려고 심어지기 시작해서, 해방 이후 전쟁으로 황폐해진 산을 푸르게 하려고 또 널리 심어졌다.
아까시나무는 빠르게 자랄 뿐 아니라 질소를 고정시키는 뿌리혹이 있어서 헐벗은 땅에서도 잘 자란다. 불과 반세기 전 나무 한 그루 없던 민둥산을 푸르게 만드는 데 아까시나무는 톡톡히 한 몫을 했다. 그러나 숲이 어느 정도 모양을 갖추자 아까시나무는 어느덧 쓸모 없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해 버렸다. 독성을 내어 다른 식물을 자라지 못하게 하고 잘라내면 더 악착같이 옆으로 옆으로 뿌리를 뻗고 뿌리에서 가시투성이 줄기를 내어 숲을 가시덤불로 만드는 깡패로 낙인 찍혀 버린 것이다. 산업 역군이라 불리며 밤낮 없이 일하다 이젠 필요 없게 되었다고 퇴출당하는 이 시대 노동자 처지처럼 말이다.
아까시나무에 대한 진실 두 가지.
첫째, 아까시나무는 꽃과 잎, 열매, 목재까지 하나도 버릴 게 없는 쓰임새 많은 나무다. 꽃과 잎도 무쳐먹고 볶아먹고 튀겨먹고 나물로 샐러드로 언제든지 훌륭한 음식으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말린 잎과 꽃은 좋은 차가 될 수도 있다. 또 아까시나무 꽃과 잎, 열매, 뿌리는 그 약효만 제대로 알아도 명의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있을 만큼 좋은 약이기도 하다. 꽃에서는 꿀을 딸 수 있고 잎은 사료로 쓰이며 목재 또한 단단하고 무늬가 아름다워서 고급 목재로 쓰인다.
둘째, 아까시나무는 자꾸 베어내면 점점 더 성질이 사나워져서 가시만 무성해지는 가시덤불이 되고 만다. 목재로도 사용할 수 없고 숲도 망치게 된다. 아까시나무를 없애는 방법은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다. 아까시나무는 자람이 무척 빠른데 뿌리를 깊게 내리지 않는다. 50년쯤 자라면 제 무게를 견지지 못해 비바람에 뿌리째 뽑혀 쉬이 쓰러진 버린다. 이렇게 아까시나무는 스스로 생명을 다하고 지금 숲의 주인인 참나무한테 자리를 내어주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