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를 부탁한다
윤>에이즈인권모임 나누리+ 대표이고, HIV/AIDS 감염인을 위한 모임 ‘세울터’에서 홍보를 담당하고 있고,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나누리+ 활동을 시작한 계기는
윤>작년 12월 에이즈의 날에 아시아 보건문제 토론회가 있었다. 그 토론회에 참석해 감염인이란 사실을 공개했고, 그때 민의련과 보건의료단체에서 함께 연대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내 스스로 감염인의 인권문제를 알리고, 일을 해야겠다는 찰나에 민의련 등에서도 제안이 들어와 12월부터 준비가 되었다. 12월부터 준비모임을 꾸리고, 논의를 해오다가 연대해서 대중운동을 이끌어내는 활동을 하자는 취지에서 올 3월 시작하게 되었다.
감염 사실은 언제 확인했나
윤>2000년 3월 감염 사실을 확인했다.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로 인해 감염되었다. 이미 동성애자로 성 정체성을 확보한 상태에서 알게되어 충격이 다른 이들에 비해 크지는 않았다. 오히려 반성이 많이 되었다. “내가 부주의 했구나,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를 했구나”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반성이나 이후 대책을 생각했지, 충격 때문에 “왜 하필 나”라는 식으로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다른 감염인들이 받아들이는 첫 반응과는 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윤>그렇다. 동성애자 감염인들의 경우는 이성애자 감염인들과 좀 차이가 있다. 충격은 오히려 이성애자들이 더 많이 받고, 충격으로 인한 자살 등의 확률도 이성애자 감염인들이 더 높다. 동성애자들 같은 경우는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를 하게 되면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을 이성애자들 보다 더 잘 안다. 자신들이 더 위험하다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가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는 위험성을 더 잘 알고 있다.
감염 사실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윤>00년 5월 부터 치료를 하면서 모든 인간관계를 끊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나’, ‘내 인생이 어떻게 되는건가’라는 불안감으로 약 7개월을 고민했었다. 그러다가 이렇게 나혼자 벽장 속에 살다가는 스스로 세상과 격리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두려웠다. 스스로 모든 인간관계에서 비밀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다가 가장 친한 동성애자 친구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많이 힘들었겠다’, ‘몸은 괜찮냐’며 위로를 해주었다. 그 때 세상에 태어나 가장 따뜻한 위로와 포옹을 처음 느꼈다. 그게 결정적 계기였다. '내가 밝혔을 때 날 믿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구나'라고 생각을 했고, ‘내가 커밍아웃을 하고 내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런 사람들이 더 늘어나겠구나’라는 용기도 생겼다. 그때부터 조금씩 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감염 사실 확인 이전의 건강상태는 어땠는지
윤>내 경우는 감염을 확인하기 이전부터 많이 아팠다. 00년 3월 최종 확인 이전부터 면역력이 이미 많이 파괴되고, 기회질환 등이 온 상태였다. 원인 모르게 많이 아팠고, 감기증상이 오래 가는 등 99년 겨울부터 많이 아팠다. 처음에는 독감으로 알고 치료를 받았다. 기침도 끝없이 하고, 증상이 심해져서 1·2차 병원에서 폐 사진을 찍어보고, 결핵이 의심스럽다고 해 보건소 가서 결핵검사 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감염인들이 워낙 결핵에 많이 걸리니까 의심스러운 환자들은 HIV검사를 하게되어있다. 그때 당시만 해도 HIV에 감염되면 죽는 줄로만 알았으니까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5월이 되서야 큰 병원에 갔다. 그때 당시 이미 혼자서 걷기도 힘든 상황이었고, 폐렴균이 폐의 절반 이상 퍼진 상태였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숨이 찼다.
현재 건강 상태는 어떤가
윤>지금까지 큰 고비를 몇 차례 넘겼다. 지금은 약을 오래 먹다보니 내성이 생겼고, 부작용이 많다. 내 경우는 너무 늦께 발견하다 보니, 그 당시 면역력이 바닥이었다. 면역기준(CD-4세포) 800-1000이 정상인데, 10밖에 안 되었다. 그런 상태에서 약을 시작하니 효과를 많이 보지 못했다. 원래 이런 환자들은 효과를 많이 못 본다. 적정수준의 면역력에서 약물치료를 시작해야지 그 배로 면역력이 증가되던지 바이러스가 없어지던지 효과를 보는데 늦께 발견한 사람은 내성과 부작용이 심하게 생긴다.
현재는 어떤 치료를 받고 있나
윤>현재 국내에는 효과가 있는 약이 대략 열 가지 정도다. 난 열 가지의 약들을 전부 먹었다. 그중 두 가지는 부작용 때문에 못 먹고, 다른 약들은 내성이 생겼다.
내 경우는 HIV 감염인들이 많이 걸리는 거대세포망막염이라는 병에 걸려 10개월 동안 앓았고, 폐렴에도 걸렸었고, 나아질만 하니 내성이 생겨 02년에 폐결핵에 다시 걸렸다. 그 당시에는 의사가 가망 없다는 얘기까지 했다. 다행히 그 시기에 새로운 약이 들어왔다. 그 약을 6개월 정도 먹었는데, 정신적인 부작용을 일으켰다. 아무나 붙잡고 “나 에이즈 걸렸다”며 하소연을 하고, 이상한 반항심이 생겨 지하철 안에서 담배를 피고, 평소에는 생각지도 않은 행동들을 하게 되었다. 이후 병원에 가서 MRI 찍고, 검사해보니 담당의사가 약이 뇌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해서 약을 잠시 끊었다. 그때 당시 그게 마지막 단계의 약이었다.
그래서 고민하던 중 올 초에 백혈병을 앓던 친구가 글리벡을 직접 수입해 먹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와 관련된 약들을 알아봤는데, 외국에는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약값이 너무 비쌌다. 통상적으로 세 가지의 약을 먹어야 하는데, 약 한 가지에 한 달분이 70만원, 일년에 약값만 840만 원이었다. 테노포비르(tenofovir)란 약이다. 한 가지에 70만원이니 세 가지 다 수입해서 먹으면 한 달에 약값만 150만 원 이상이다. 02년에 나온 신약이라 제네릭(카피약)도 없었고, 만들 수도 없는 약이었다.
HIV/AIDS 관련 약들은 국가에서 지원을 해주지 않는가
윤>그게 문제다.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게 9-10가지 정도의 약이다. 보험등제 되어있는 것만 지원해주는데, 내가 먹어야 되는 약은 그것에서 제외된다. 그래서 당연히 전액 환자부담이다. 돈이 없어서 계속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쉼터 수녀님이 사정을 알고 후원인을 찾아주었다. 약값을 후원받았다. 그래서 어렵게 그 약을 구해서 먹었고, 현재도 그 약을 먹고 있다.
문제는 이 약을 다 먹고 난 이후에는 어떻게 될 지가 걱정이다. 약이라는게 개발되는 즉시 수입되어 들어오는게 아니다. 시장성이 있어야 하는데, 국내 HIV감염인이 현재 2100여 명이지만 에이즈환자는 500명 정도다. 즉 약을 먹는 사람은 500명 밖에 안 된다. 제약사들은 시장성이 안 되면 절대 약 안 판다.
내년에 다른 약을 먹어야 되는데, 어떻게 될 지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새로운 약이 수입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문제는 그 약과 함께 먹어야 할 약이 없다. 내성이 있던 약이랑 먹으면 효과가 없고, 약에 대한 교차내성이 더 빠르게 생긴다. 새로운 약 한 가지 먹으면, 다른 새로운 약에 맞춰 먹어야 하는데, 현재는 확보가 안 된 상태다. 일단 내년 4월까지 먹을 약은 있지만 그 안에 어떻게 될 지가 걱정이다.
후원인 조차 구할 수 없는 다른 감염인들의 상황은
윤>친구 한 명은 돈이 없어서 포기하고 있는 상태다. 이런 경우가 많다. 당장 약이 있지만 수입이 안 되거나, 비싸서 먹을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에이즈가 무서운 병이 아니라, 빈곤이 무서운 병이다.
사람들이 감염인들에게 미국 농구선수 매직존슨 이야기를 많이 한다. 아직도 건강하게 살고 있는 그 사람을 보면서 희망을 가지라는 이야기다. 웃기는 이야기다. 우리한테는 그 사람보다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에서 약을 못 먹어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눈에 밟히지, 어떻게 매직존슨을 보면서 위안을 삼을 수 있겠는가? 약을 못 먹어 죽어나가는 그들의 문제, 그들 빈곤의 문제가 곧 우리들의 문제다.
HIV/AIDS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무지에 대해 짚는다면
윤>단적인 실례를 하나 들겠다. 동성애자 감염인 친구 한 명이 어느 날 게이바에서 술을 마셨다. 그런데 이 친구가 술을 마시고 나간 후 사장이 그 친구가 감염인 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그 사장이 그 친구가 마셨던 술잔을 다 버리고, 그 친구가 앉아있던 자리와 주변을 락스로 닦었다고 한다. 단적인 예로 이런 정도다. 동성애자 커뮤니티 안에서도 이러한 편견과 무지가 존재하니, 이성애자들은 어떻겠는가?
또 하나는, 에이즈 환자들은 ‘반성하며 금욕하고 살아라’라는 논리이다. 감염인들은 ‘섹스하지 말고 살아라’는 이야기를 의사들도 한다. 감염인과 한번의 성관계로 HIV가 전파될 확률은 0.1%-1% 미만이다. 통상적으로 1%미만이라고 이야기 한다. 또 에이즈 환자들이 약을 먹고 면역력을 증강시켜서 바이러스를 억제하면 그 확률도 더 낮출 수 있다. 오히려 에이즈 환자로 노출된 사람들이 전파시키는 것 보다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감염되는 확률이 더 높다. 그런데도 에이즈로 밝혀진 사람들만의 문제라고 몰고 가는 것은 무지와 편견에 더해 공포심까지 합쳐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논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HIV와 AIDS란
윤>HIV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의 약자이고, AIDS는 후천성면역결핍증의 약자이다. 즉 HIV가 있어도 병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HIV감염인이고, HIV가 면역력을 파괴해서 기회질환이 오게되어 질병에 걸리면 AIDS 환자가 되는 것. 그러니까 HIV 환자는 틀린 말이고, AIDS 감염인도 틀린 말이다.
현재도 보건소 등에 지속적 관리를 받고 있나
윤>6개월에 한 번씩 면역검사를 이유로 전화가 오고, CD-4 상태를 확인받아야 한다. 정기적으로 면역검사 한다며 연락을 하고, 전화가 안되면 직접 찾아오기도 한다.
감염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인권침해는 없었나
윤>물론 있었다. 양성 반응을 통보받는 자리에서 보건소 담당자에게 내가 먼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자 그 담당자가 성관계를 가진 사람의 숫자, 그리고 성관계를 한 사람들의 연락처를 작성하라고 강요했다. 이런 것이 인권침해가 아니고 무엇인가? 감염인 뿐만 아니라, 감염인 주변인들의 인권까지 짓밟는 행위다.
올해 태국 에이즈회의에도 참석한 걸로 알고 있다. 약이 있어도 먹지 못하는 현실은 특허권, 자유무역협정 등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을 것 같다. 다른 단체들과의 연대의 계획은
윤>FTA가 가장 큰 문제다. 태국회의에서도 전 세계에서 온 시민사회, 보건의료단체, 그리고 환자들과 토론을 했다. 민의련 등 보건의료단체에서 강제실시와 특허권 등과 관련된 활동을 주도적으로 하고 있고, 그들과 함께 연대할 생각이다.
감염인이나 환자들도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 할 것 같은데
윤>그렇다. 지금은 환자가 얼마 안 되서 그나마 기본적인 약값은 지원이 된다. 그러다 보니 환자들도 침묵하고, 그 침묵을 보호받기를 원한다. 어떤 분들은 '죽을 때 까지 내 감염 사실을 어느 누구도 모르고, 철저히 보호받고 사는 게 소원'이라고 까지 이야기한다. 이런 경우를 보듯이 이 사회가 그 만큼 HIV와 AIDS에 대한 편견이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그 순간도 여러 가지 공포스럽다거나 그랬을 텐데
윤>그것이 바로 문제다. 중요한 건 검사만 해준다고 다가 아니라, 검사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개인이 혼자 겪어야 할 고민들, 공포심, 포비아적인 시각을 극복할 수 있는 상담이 필요하다. 외국에서는 그런 상담을 검사와 함께 진행한다. 양성이 나왔을 경우에 감염인들이 겪는 심리적 부담과 절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상담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그런 체계가 전무한 실정이다. 그러니 누가 자진해서 검사를 받으려고 하겠나? 그래 놓고 검사를 철저히 하자는 말만 되풀이한다.
좀 다른 얘긴데, 지금 애인은 있는가
윤>현재는 없다. 나는 감염인들이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나도 그런 꿈을 꾼다. 보통 사람들과 똑같은 꿈 말이다. 그런데, 이토록 감염인에 대한 편견과 공포가 심한 사회에서 나와 사귀겠다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회의도 들지만, 그래도 사람 일이란 모르지 않는가....
친구들 중에 감염인과 비감염인 커플이 있다. 콘돔만 써서는 안 되고, 상처가 안 나는 성관계를 하면 된다. 보통 외국에서는 에이즈 환자와의 섹스가 가장 안전한 섹스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모르는 상태에서 격렬하게 섹스를 하지, 알고 난 후에는 그렇게 격렬하게 섹스를 못한다. 다양한 체위를 하는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거지 알고 난 후에는 그렇게 못한다. 알기 때문에 서로 조심하면 되는 거고, 그러면 문제없이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염인들과 환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는
윤>간혹 다른 감염인들이 생각하는 인권에 대한 수준과 괴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침묵은 곧 죽음이다’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이들은 침묵을 보호받고 싶어한다. 어떻게 그 간극을 좁혀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다.
가끔 강연회 때 그런 이야기를 한다.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에이즈는 질병일 뿐이다. 약만 잘 먹으면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 감염인으로서 내 미래가 중요한 것이고,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이제 그것을 고민해야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할 일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침묵하거나 음지로 숨지만 말고 이제 목소리를 낼 때라고 생각한다. 에이즈 검사에서 양성반응 통보를 받았다는 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영어로 양성반응은 포지티브로 표시된다. 그것은 감염인으로서 긍정적으로 살아야 하고,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감염인들도 긍정적으로 살기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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