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이건희 학위수여식에 들썩이는 삼성공화국

청와대 유감 표명, 진대제 '무노조 뭐가 문제냐?' 망발

대한민국이 들썩이고 있다. '존경'받아야 하는 이건희 회장의 학위수여식이 좀 구겨졌다고 청와대와 장관이 유감을 표하고, 교수진이 총사퇴하고 언론이 호들갑떠는 나라. 역시 삼성공화국이다.

고려대는 2일 학내 인촌기념관에서 이 회장에게 명예철학박사학위를 수여할 예정이었는데, 고대 학생 50여명이 삼성의 무노조경영을 비난하는 시위를 벌이는 탓에 수여식은 1시간 가량 지연됐고 결국 약식으로 진행됐다. 한 마디로 이건희 회장의 스타일이 구겨진 것.

난리가 났다. 고려대는 3일 긴급처장단회의를 가진 후 "(시위)사태에 책임을 지고 안문석 교무부총장 이하 9명의 처장단이 사퇴하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한 술 더 떠, 고려대를 세계 최고의 대학을 만들겠다던 육순(六順)의 어윤대 총장은, 3일 사과에 사과를 거듭하며 앞으로는 '바른교육'을 하겠다고 용서를 빌었다. "고려대학교 구성원의 절대다수는 평소 이건희 회장님의 한국사회와 경제에 대한공로를 아주 높게 평가하고 있으며, 세계가 존경하는 리더이며 우리 대학에 대한 큰 공헌들에 매우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

  3일 어윤대 총장이 발표한 삼성에 대한 사과문

어 총장의 말대로, 삼성은 4백 18억원을 들여 고려대 캠퍼스 내에 만든 백주년 기념 '삼성관'을 오는 5일 개관할 예정이며 고액의 기부금·장학금도 지원하고 있다.

고려대라는 '지성의 상아탑'은 스스로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 앞엔 자존심이고 지성의 상아탑이고 다 소용없는 일"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제자들에 대한 애착도, '지성의 상아탑'에 대한 자존심도 없는 교수들이라면 물러나는 게 낫다고 말하면 차라리 속이 시원할까?


정통부 장관 '무노조 뭐가 문제냐?' 망발


대한민국땅에서 어디 고려대 뿐이겠는가. 삼성 출신의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은 3일 공공기관 CEO혁신 토론회가 열리기 전, 제 발로 기자들을 찾아와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냈다.

그는 "이건희 회장이 국가 경제에 이바지 한 것도 있고 그렇게 예우하는 게 아닌 것 같다" "이렇게 되면 기업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어진다"고 말한 뒤, 장관으로서의 직분을 잊은 듯 "노조가 없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라는 망발까지 늘어놓았다.

진대제 장관 옆에 있던 김영주 청와대 경제정책수석도 "기업가 정신의 긍정적인 면을 인정해야 한다"며 "(학생들의 시위가)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고 거들고 나섰다.

참으로 수치스럽고 분노할 일이다. 제자들을 '비민주적' '폭력적'이라고 매도한 고려대학교 총장이 문제가 아니다. 한 기업인에 대한 학위수여식이 차질을 빚었다는 이유로 장관과 청와대 수석이 나서서 기업인을 '예우'하라고, 안 그러면 '기업할 의지가 없어진다'고 국민들에게 반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 총장의 말처럼 고려대 학생들은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인 걸까. 국내 부동의 1위라는 재력을 차지하고도 무노조 경영을 고수하고, 노조 한번 만들려면 미행·감금·폭행·위치추적·매수 시비가 끊이지 않는 기업. 장관이고 청와대고 버젓이 무노조 경영이 뭐가 문제냐고 묻는 정치권력. 무노조는 문제가 아니고 무노조를 비난하는 것은 문제가 되는 이 나라.


이것이야말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선을 넘어선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인 행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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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목록
  • 교하사람

    이거니

  • 경기도민

    1. 주인이 하찮은 대학으로부터 욕을 당해서.
    2. 대학은 산업이고 학생들은 산업연수생인데 이것들이 주제를 몰라서.
    3. 수술한 쌍꺼풀이 맘에 안 들어서.

  • 옳은 글입니다. 삼성이 아무리 경제에 기여한다고 하지만, 잘못한 점은 고쳐나가게 해야 하죠... 게다가 이건희 개인에게 어필할 수있는 기회도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