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겠다 공언하는 정부와 여당에게 정작 어떤 식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달해야할지 막막한 기로에서 전국의 비정규직노조 대표자들은, 노동자를 대변한다는 유일한 정부기관인 노동부에 '우리의 목소리를 언제 어떤 식으로 누가 들을 것인지 확답을 받아달라'는 요구로 기습 농성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들은 불과 다섯 시간 만에 경찰에 의해 서울지방노동청에서 끌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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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보장된 특수고용직의 노동권마저 박탈하려는가
이 날 노동청 농성에는 특수고용직 노조 대표자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다. 레미콘, 덤프, 화물운송, 학습지, 골프장, 에니메이션, 보험모집... 자신도 모른 채 혹은 생계를 위해 명목뿐인 사업주 등록증을 가졌다는 이유로 '사장'이 되어있는 그들.
"99년 12월 재능교사노조 필증이 나온 것을 시작으로 이미 6년 동안 특수고용직노동자들은 노조법상의 노동자성을 인정받아 왔다. 그럼에도 사법부는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자성은 인정할 수 없다는 이해할 수 없는 이중 잣대를 들이 대왔고,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완전한 노동자성 쟁취를 위해 정말 피나는 투쟁을 해왔다. 그런데 정부는 이제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을 유사노동자로 규정하고 경제법으로 보호하자는 억장 무너지는 소리를 하고 있다"
"2003년 화물연대 파업 당시 '특수고용직 노동기본권 보장방안 논의'를 골자로 한 '5.15 노-정합의'가 있었지만, 노동부는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특수고용직이라는 이유로 교섭을 거부하는 사용자에 맞선 레미콘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키려다 대체인력이 모는 25톤 레미콘차량 바퀴에 머리가 깔려 처참하게 죽어간 고 김태환 한국노총 충주지부장. 특수고용직노조 대표자들은 "정부와 사용자들이 '특수고용직'이라는 말로 노동3권을 계속 인정하지 않는다면 김태환 열사 같은 죽음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절규했다.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하청은 백날 노예"
70일간 눈물겨운 파업을 진행했던 울산플랜트노조, 200여일 파업을 벌이고 있는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6개월여 복직 투쟁을 벌이고 있는 서울지역통신비정규노조...
이들의 투쟁이 교섭다운 교섭 한번 해보지 못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데는 공통되게 '원청이 직접 사용자가 아니므로 교섭 당사자가 아니'라는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작업장 출입부터 시작해 업무 지시, 임금 합의 수준, 해고 문제까지 실제 원청이 모든 것을 관장하고 있음에도 SK와 하이닉스-매그나칩, 한국통신 등의 원청은 일체의 대화에 불응하고 있는 것이다.
설령 원청에 불법파견 판정이 내려진다 해도 이들은 원청의 직접고용 정규직화가 아닌 합법적인 도급을 통해 더 철저히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부정하려하고 있다.
"우리가 무슨 힘이 있냐, 제발 좀 봐 달라"를 외치는 하청 '바지사장'들을 상대해서는 이들의 노동조건 개선이나 노조 인정 문제는 언제까지고 요원한 구호일 뿐이라는 것을 현장의 하청 노동자들은 뼈저린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줄기차게 '원청 사용자성 인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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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환 장관은 물러나라"
전국의 비정규직노조 대표자들은 김대환 노동부 장관은 장관으로서의 어떠한 자질도 없다고 명백히 못을 박았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한 김태환 열사의 처참한 죽음 앞에 조문은커녕 ‘자기들끼리 싸우다 벌어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망발을 서슴없이 내뱉는 자가 노동부 장관이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
노동부는 현대자동차, 한국마사회에 불법파견 판정을 내놓았지만, 이후 검찰로 공을 넘긴 후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원-하청노조가 공동으로 불법파견 해소를 위한 교섭요청에 사용자가 거부하고 있지만 사용자에 대한 어떤 처벌도 하지 않고 있다.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위한 파업 돌입 다음 날로 사측이 요구한 불법파업 판정을 내리는 신속성을 보이면서 정작 자신들이 대변해야 할 노동자들의 요구에는 시간만을 해태하고 있는 것이 노동부", "노동부는 명백한 사용자부"라는 것이 비정규직노조 대표자들이 느끼는 현실이다.
더욱이 근로복지공단, 산업인력관리공단 등 정부 출연 기관에서 발생하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도 노동부는 이렇다 할 해결 자세를 보이고 있지 않다.
"김대환 장관은 '노동부'를 떠나 그렇게 좋아하는 사용자를 따라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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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은 노무현 정권에 있다 "
전국의 비정규직노조 대표자들은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해온 노무현 대통령은 비정규직이 진정 원하는 파견 철폐, 기간제 제한, 특수고용직 노동 3권 보장, 원청 사용자성 인정 등은 안중에도 없다. 이 알맹이는 쏙 뺀 채 파견확대와 기간제사용 전면자유화로 비정규직을 확산하겠다는 법안을 '보호'랍시고 들고 나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장기화되고 있는 비정규투쟁사업장 문제부터, 진정한 비정규권리입법쟁취까지 비정규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책임있는 답변을 내놓아야만 하고,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더 이상 이런 식으로 (면담 요구)할 일 없을 거다. 우리가 면담과 대화를 구걸하는 사람들 아니다. 더 이상 개악안 저지로는 안 된다. 권리보장입법쟁취로 가려면 결국 비정규직 스스로 다시 한 번 나설 수밖에 없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얼마가 걸리더라도 우리가 나설 몫이고, 우리가 어떻게 싸우는지 보게 될 거다”
지난 달 27일 이목희 열린우리당 의원의 면담 거절로 국회를 나오면 비정규대표자들이 남긴 말이었다.
그 다짐대로 이들은 비정규직들이 원하는 비정규권리입법의 실질적 내용을 몸으로 들고 가 노동부의 면전에 던졌고, 이들은 아마도 다시 비정규권리입법쟁취, 비정규철폐를 향한 또 다른 투쟁을 몸으로 준비할 것이다.
그들은 "더 기다릴 것도, 내몰릴 곳도 없는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