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찰은 검찰과 ‘수사권’을 두고 다툼을 벌이고 있다. 경찰은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르고 있는 현 상황에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구현하기 위해서라도 경찰에게도 수사권이 부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검찰은 ‘일제와 독재 경찰의 잔재를 씻지 못한 경찰에게 수사권 부여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하여튼 수사권을 사이에 두고 검찰과 경찰은 서로 ‘인권수사의 적임자’임을 내세우며 경쟁하고 있다. 이러한 검경의 경쟁에 대해 ‘똑 같은 놈들이 벌이는 이전투구’라는 비야냥과 ‘이런 식으로라도 경쟁하면 아마 나아 질 것’이라는 긍정적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이제 경찰에 관한 4가지 장면을 소개한다.
#장면 1. 2월 25일 경찰청
![]() |
▲ 2월 25일 아무 성과없이 면담을 마치고 나오는 경찰청고용직노조 간부들 |
고용직노조는 지속적으로 책임있는 고위간부의 면담을 요구했으나 경찰청은 모르쇠로 일관했고 2월 17일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고야 면담 날짜가 잡힌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면담에 앞서 경찰청은 ‘우리는 이들을 노조로 인정하지 않고 있고 상급단체를 함께 만날 경우 노조를 인정하는 셈’이라며 공공연맹 간부의 동석을 거부했고 면담장에서는 고용직공무원노조라는 명칭 대신에 ‘고용직해고자 모임’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면담 이후 고용직노조원들은 홍영기 경무기획국장의 발언을 전했다. 홍영기 경무기획국장은 “법과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경찰조직이기 때문에 요구안을 들어줄 수 없다”며 “사기업에 취업알선을 해줄 수는 있고 기능직 공무원 시험을 봐서 다시 들어오던가 아니면 일용직 취업은 적극 도와주겠으니 가고 싶은 경찰서 이름을 적어서 제출하라”라고 발언했다고 한다. 또한 “지금까지는 경찰가족이라는 정리를 봐서 봐주기도 했지만 앞으로 불법집회를 벌이면 엄정하게 대처할 것”이라 덧붙이기도 했단다.
#장면 2. 7월 17일 경찰청
![]() |
[출처: 경찰청 뉴스레터] |
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일어난 남영동 보안분실에 상주하던 보안3과를 홍제동 분실로 옮기고 이 자리에 인권보호센터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를 입주시켜 ‘인권기념관’을 만들겠다고 홍영기 경무기획국장은 설명했다.
또한 "리모델링 작업을 진행한 후 오는 2006년 6월까지 기념관 내 모든 시설을 갖추고 정식 개관할 예정"이고 "앞으로 일반 시민들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종합적인 인권 상징시설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구체적 계획을 밝혔다.
“과거 경찰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 인권경찰로 새출발한다는 결연한 의지’로 “경찰청에 ‘인권보호센터’와 자문·조정기구인 ‘인권수호위원회’를 설치하고 인권보호 종합추진계획인 'Project 1004'를 시행하는 등 인권 최우선의 직무풍토 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경찰청의 설명에 각계의 찬사가 이어졌다.
#장면 3. 7월 20일 경찰청 13층 ‘대청마루’
![]() |
▲ '경찰인권기념관'토론회 [출처: 경찰청 홈페이지] |
허준영 경찰청장은 “경찰 창설 60주년을 맞아 과거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인권수호를 위한 경찰의 결연한 의지를 상징하는 경찰인권기념관을 남영동 보안분실 자리에 건립하게 되었다”는 인사말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민간 참석자들은 이번 기념관 설립이 과거를 반성하고 성찰할 수 있는 진실한 계기로 이어져야 한다고 화답했고 경찰 참석자들과 민간 참석자들은 인권기념관 건립이 경찰의 진정한 의식개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데 뜻을 모았다고 한다. 앞으로 민간 위원회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겠다고 허준영 청장의 답변과 함께 토론회는 종결됐다.
#장면 4. 7월 20일 경찰청 입구
![]() |
▲ 진압당하는 경찰청고용직노조원 |
경찰청고용직노조 조합원들은 경찰청장 면담을 요구했고 경찰은 이를 일축하며 집회 대오를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연대투쟁에 나선 경마진흥노조 정구영 위원장이 전경 헬멧에 손을 대자 다른 전경이 그대로 곤봉으로 내리쳐 정구영 위원장의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손가락이 잘렸다”는 아우성이 터져 나왔으나 경찰은 절단된 손가락을 재빨리 찾아주기는커녕 머뭇거렸고, 잘린 손가락이 낀 헬멧을 집회 참석자들이 가져가자 되려 헬멧을 빨리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 시간이 지체된 나머지 정구영 위원장은 ‘접합’수술이 아니라 ‘봉합’수술을 받았다.
경찰청고용직노조의 ‘청일점’인 유금영 조합원은 이에 격분, 온몸에 신나를 붓고 분신을 기도했으나 다행히 주위의 만류로 실제 분신에 이르지는 못했다.
에필로그
기자는 단지 4가지의 상징적 장면만 소개했지만 사실 아까운 장면이 더 많다. 특히 얼마 전 평택 미군기지 앞에서 서울경찰청 기동단장 이모 경무관이 “훈련받은 대로 상체를 공격해”라며 무자비한 진압을 독려한 장면이 빠진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그건 그렇고 남영동 대공분실이 인권기념관으로 전환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 틀림없다. 그런데 경찰청 13층에서는 인권기념관 만들겠다며 ‘인권경찰로 새출발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과시하고 같은 시간, 경찰청 건물 앞에서는 일자리를 되찾겠다고 217일 동안이나 ‘직권면직 철회, 기능직 전환’을 외치는 고용직조합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연대투쟁에 나선 노동자의 손가락을 잘라버리는 경찰. 그 경찰이 세우는 인권기념관이 도대체 누구의 ‘인권’을 위한 것인지 알 수 가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