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은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된 지 딱 1년이 되는 날이다. 성매매방지법은 '국제조직범죄방지협약을보충하는인신특히여성과아동의매매예방및억제를위한의정서'와 스웨덴의 '성구매방지법'을 모델로 삼아 지난 2001년 11월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청원한 법에 기초해 만들어졌으며, 특별법 형태로 '성매매알선등행위의처벌에관한법률'과 '성매매방지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 두 개의 법안으로 구성되어있다. 성매매방지법은 2002년 9월 86명의 국회의원이 발의하고 법안 의결에 참석한 국회의원 만장일치로 통과되어 2004년 9월 23일부터 시행되었다.
성매매 행위의 처벌 규정은 1961년 '윤락행위등방지법'으로 시행되고 있었으나 실효성에 대해 끊임없는 제기가 있었고 좀더 강력한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여성단체들의 요구가 이어졌으며 이에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윤락행위등방지법'과 성매매방지법의 차이는 △성매매 알선자 처벌 강화(법정형이 하한 5년에서 상한 10년으로) △경제적 제재 조항 신설 △성매매자 피해자 규정 신설 등이다. 이에 여성부와 경찰은 "왜곡된 성의식을 바로 잡는 계기가 될 것이다"며 성매매 집결지를 중심으로 한 달 간의 집중단속에 들어간다. 여성운동진영도 성매매방지법을 여성의 인권을 증진시키기 위한 성과로 평가하면서 정부와 경찰의 강력한 법 집행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편, 성매매 집결지 여성들의 집회도 이어졌다. 시행 다음 날인 24일 미아리 집결지에서의 집회를 시작으로 국회 앞에서의 집회와 천막농성이 이어졌다.
'9.23 혁명'이라 불리며 제정된 성매매방지법 시행 1년을 맞이해 각 계의 평가와 이후 방향에 대한 다양한 제안들이 이어지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22일, "성매매방지법이 성매매 문제를 개방된 담론의 장으로 이끌어 내는 계기를 제공하였으며, 성매매가 여성에 대한 폭력이자 인권문제라는 점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며 밝히고, "공공연한 성매매 알선 현장인 집결지가 대폭 줄어들고, 성매매 유경험자의 86.7%가 법시행 이후 성구매 빈도가 줄었다고 응답하는 등 성산업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며 성매매방지법의 성과를 평가했다. 여성단체들도 21일 공동성명서를 통해 "성매매방지법은 국민들로 하여금 성매매는 더 이상 '사회적 필요악'이 아니며, '여성에 대한 폭력이자 성적 착취'라는 여성인권에 대한 우리사회 가치기준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가는 과정이었다"며 성매매방지법의 긍정적 효과를 평가했다.
집결지 중심의 단속, 성매매 음성화 불러오기도
한편, 성매매방지법이 성매매를 폐절하는데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은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집결지를 중심으로 한 집중 단속 결과 집결지의 업소는 상당부분 줄어들었으나 실제 성매매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는 통계가 나오고 있어 성매매방지법을 둘러싼 논쟁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가 22일 공개한 최근 보호시설에 입소한 성매매 여성 1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면담조사에 따르면 전체의 63.2%가 성매매방지법이 성매매 행태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10.4%는 성매매가 오히려 증가했다고 말했다. 윤락방지법이 그러했듯이 반짝 단속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여성단체들은 성매매방지법 시행 1주년 공동성명에서 "성매매의 유형이 다양화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무엇보다도 법 시행 이후 새롭게 발생한 현상은 더욱 아니다. 불법적인 이익을 내고자 하는 지하경제 일수록 교묘하게 자신의 생존을 영위하고자 하는 것은 통상적인 현상이며 성매매 산업 또한 이러한 현상에서 예외가 아님에도 더욱더 다양화되고 음성화 되는 성매매 알선범죄를 법의 시행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올바른 대응이라 할 수 없다"고 밝히고 "수사팀의 전문화와 이를 통한 철저하고 지속적인 단속과 처벌의지가 사법당국을 통해 천명되는 것만이 성매매 알선범죄를 점차적으로 축소시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금지주의적 정책이 성매매를 근본적으로 폐절할 수 있는가에 대해 호성희 사회진보연대 여성국장은 "역사적으로 금지주의는 성매매를 철폐시키지도 감소시키지 못했으며 오히려 성매매는 더욱 음성화 되었다. 이는 단지 성매매가 눈에 보이지 않게 되어 더욱 문란해졌다는 것이 아니라, 법의 테두리 밖에서 성매매를 양산하는 범죄 조직의 등장, 그와 결탁한 경찰의 존재 등의 구조가 양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필요한 것은 성매매방지법의 강력한 시행이 아니라 성매매의 원인인 자본주의, 가부장제, 성의 상품화 등 사회 구조적인 원인들을 제거하는 투쟁을 통해 가능하며, 여성들이 성적 자기 결정권, 노동권 등을 인식하는 운동의 과정 속에서 그 한 형태인 성매매 또한 폐절 될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
자활정책도 필요하지만 구조적 원인 분석 중요
또한 성매매방지법이 이전 윤락방지법과 가장 큰 차이를 가졌던 성매매 피해여성에 대한 형사처벌 제외조항에 대해서도 엇갈린 의견이 존재한다. 성매매방지법에서는 성매매 여성이 피해자가 되려면 그녀가 속한 공간에서 강제적으로 성매매되었음을 입증하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출해야 한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해 여성단체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성매매 여성에 대한 보호, 지원대책의 확대가 필요함을 주장한다. 여성단체들은 성매매방지법 1주년 공동성명을 통해 "여성들이 성매매가 아닌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제대로된 지원을 지속적으로 보장해야 하며, 성매매 여성들이 처벌되지 않고 보호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고정갑희 한신대 교수는 "성매매 여성들을 피해자로 규정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그녀들 스스로를 주체로 세워내는 데 있어서 어떤 효과를 가지는지 고려해야 한다"며 "피해를 받은 여성들이 그 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자활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은 성매매 여성들이 그 속에 있을 수 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을 바꿀 수는 없다. 빈곤의 중심에 있는 여성들의 구조적 조건에 대한 인식이 더욱 강력히 요구된다"고 자활정책의 한계를 지적했다.
한편, 21일에 열린 성매매방지법 시행 1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에서 정미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시민모임 대표는 "법집행과정에 대한 문제와 성매매여성에 대한 보호, 지원대책의 확대 및 성매매방지법의 강력한 집행력확보 및 의식개혁 등과 함께 유예기간 요구나 '성노동자'를 주장하는 성매매 여성들의 문제에 접근하여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 것들이 당면한 과제이다"고 밝히기도 했다.
늑대가 낫다?
▲ '화이트타이' 지하철 캠페인 [출처: 여성가족부] |
이렇게 성매매방지법의 실효성과 탈성매매에 대한 다양한 입장이 존재하고 있는 가운데 여성가족부는 성매매방지를 위한 향후대책으로 △온라인 상담 신고 접수·홍보활동 강화 △민관합동 불법·유해정보 신고 핫라인 운영 △접대실명화 강화·클린카드제 도입 확대 △임대주택 입소 등 탈성매매 여성의 자활지원 강화 등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여성가족부의 성매매 방지 정책이 일부일처제 중심의 '정상가족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1일, 성매매방지법 시행 1주년을 맞아 성문화 개선 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화이트타이' 캠페인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화이트타이' 캠페인은 여성가족부에서 성매매 방지 대책 중 핵심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정책 중 하나이다. '앞선 남자의 근사한 생각'이라는 모토로 일부일처제를 하는 늑대를 내세우며 "늑대 만큼만 하자"는 것이 바로 '화이트타이' 캠페인이다. 이에 대해 고정갑희 한신대 교수는 "이런 여성가족부의 정책은 그동안 다양한 가족형태에 대한 여성단체들의 끊임없는 문제제기를 뒤로 돌려놓고 있는 것이며, 동시에 성매매를 결혼, 가족과 연관시키면서 부부의 성 만을 정상적인 성으로 인식하게 하는 정상가족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는 효과를 내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