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론과 보건의료제도 사이의 상관관계에 주로 관심을 두고 있는 나로서는, 물적토대가 어느 정도 갖추어진 선진국들이 아닌 조금 덜 부유한 나라들에서 복지국가의 형성 가능성과 그 경로에 항상 궁금증이 있었고, 따라서 베네수엘라의 상황은 내게 꽤나 흥미로웠던 것이다.
기대수명은 브라질이나 인도의 기타 지역보다 한국 쪽에 더 가깝다. 출생률은 낮고 특히 여성 문맹률도 매우 낮은 편이다.(1) 이 곳의 보건 및 복지 서비스는 국가를 중심으로 조직돼 있고, GDP의 많은 부분이 보건서비스를 위해 지출된다. 정부가 식료품점에 지원을 해주는 덕에 싼값에 음식재료를 구입할 수 있다. 모든 국민학생들과 조산원에 있는 모든 어머니와 갓난아기들에게는 점심이 공짜로 제공된다. 국가는 모든 교육기관과 도로, 우체국과 같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책임이 있다.(2)
케랄라도 쿠바도,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이런 공공서비스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주의적 혁명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고 장악된 권력을 이용하여 공공서비스의 기반을 형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로의 민주적 길’로 상징되는 서유럽 모델과는 사뭇 다른 경로와모습이지만, 복지국가적 형태와 서비스는 존재한다. 그렇다면 반주변부 국가들은 어떤가? 이 물음에 대한 쉬운 답은 없을 것 같다. 계급적 역관계가 다르고 경제적 조건이 다르다. 일반화하여 논의하긴 힘들겠지만, 이런 맥락에서 베네수엘라의 사례는 꽤나 흥미로운 것이다.
미션 바리오 아덴트로(3)는 전체 인구의 70%에 달하는 1천8백만 명에게 무상의료를 제공하기 위해 디자인된 프로그램이다. 이들 대부분은 그 전에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1999년에 만들어진 볼리바리안 헌법 제84조에 따라 이 프로그램은 해당 지역 구성원들의 직접 참여에 의해 경영되며, 외래진료기관의 증가(이미 300개 이상이 지어졌으며 5000개 건설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공동체 내에 거주하는 의사들 (12,500명 당 의사 1인)을 포함한다.
이 프로그램은 쿠바와 베네수엘라 정부 간의 협력 협정 덕분에 가능해졌다. 교육제도의 불평등성 때문에 주로 부유층 자제들이 의대에 입학하게 되고, 따라서 베네수엘라 의사들은 가난하고 위험한 마을에서 진료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카라카스의 시장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비젼에 기반해서, 2003년 3월과 12월 사이에 일차의료를 수행하기 위해 10,000명 이상의 쿠바 의사들이 베네수엘라의 마을로 이주했다. 이 의사들은 졸업 후 최소 10년 이상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며, (건강을 주거, 교육, 체육, 환경, 그리고 식량 안정성의 일부로 보는) 통합 의료(integral medicine)에서 2년의 경력을 갖고 있다.
이들은 다양한 예방적 활동에 더하여, 매일 아침 20-40회의 진료를 보고, 오후에는 왕진을 한다. 이에 따라, 별개의 보건 서비스 시스템으로서 바리오 아덴트로의 의사들은 23개 주 전체에 걸쳐 8천만 회에 가까운 진료를 행했는데, 같은 시기 기존의 시스템에서는 23개 주를 모두 포괄하지도 못했고, 진료도 2천만 회 밖에 하지 못했다. 아래 그래프에서 푸른 선은 기존의 의료시스템, 붉은 막대는 바리오 아덴트로 시스템의 진료횟수를 나타낸다.
이에 더하여, 볼리바리안 헌법의 제84조에 따라, 바리오 아덴트로는 참여 민주주의의 원칙 하에서 운영된다. 거주민에 의해 직접적으로 선출되는 지방 위원회 (Comites de Salud)는 그들의 공동체를 위한 새로운 혹은 향상된 서비스를 요구하기 위해 지방 혹은 연방 정부와 직접적으로 접촉할 권리를 갖는다.
예를 들어, 진료 과정에서 쿠바인 의사들과 지역민들은 글읽기 수업이나 치과진료, 환경적 위험요인의 제거 등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수 있고, 따라서 정부의 적합한 부서와 접촉하여 이러한 서비스를 얻어낼 수 있다.
이 칼럼은 주로 베네수엘라의 바리오 아덴트로에 대해 쓰여질 것이다. 다음 회에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소개와 바리오 아덴트로가 만들어지게 된 정치적-사회적 배경에 대해 개괄하고, 바리오 아덴트로의 구체적 사항들에 대해 이야기해볼 참이다.
▲ 네오스크럼 님이 '바리오 아덴트로' 에 의해 운영되는 '꼰술또리오'에 들러 치료를 받고, 진단서 작성하는 모습을 찍었다. 발가락이 깨진데 대해 '잘 씻고, 밴드 붙이면 된다'는 내용이 담긴 진단서 [출처: http://blog.jinbo.net/neoscrum] |
이후에는 주로 바리오 아덴트로 건설에 직접 참여한 관료들과, 바리오 내에서 진료하고 있는 의사들, 그리고 지역 주민들과의 인터뷰를 번역하여 9회 정도에 걸쳐 연재하려고 한다. 많이 부족하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무상의료에 대한 논의가 사회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즈음에, 작으나마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바람이다
(1) Sen, A. Development as Freedom. New York: Anchor Books; 2000.
(2) Evans, P. Embedded Autonomy - States and Industrial Transformation.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5
(3) 영어로는 inside the neighborhood인데, 우리말로는 번역하기가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