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화섬 노동자들이 경한정밀 옥상을 점거, 손배가압류 철회 등을 요구하고 있다. |
▲ '희망한국21'은 '일을 통한 빈곤 탈출' 기조를 유지, 사회적 빈곤 해결은커녕 양극화를 고착시킬 위험한 내용을 담고 있다. |
민주노총 경기본부에서 상근활동을 하는 김은천 조직부장을 경기본부 근처 식당에서 만났다. 대뜸 "대중조직 활동이 재미없다"며 말문을 열었다. "불필요한데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겨 에네르기가 소진된다"고 했다. 그래서 기회가 닿으면 현장정치활동을 제대로 해보고 싶다고 하더니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지역본부에서 조직 직책을 맡고 있는 활동가가 또 다른 현장활동을 꿈꾸고 있다는 것은 전혀 뜻밖이었다.
지금 민주노조운동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뭔지를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김은천 조직부장은 "대공장 정규직노조의 조합주의와 간부의 관료화"라고 간명하게 답했다. "대공장 정규직 위주의 운동은 정말 심각한데 경기지역도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지역만 보더라도 주요 대공장들은 자기 밥그릇 챙기기만 하지 비정규직에 아무런 관심이 없고, 그래서 노조들이 아무런 역할을 안 한다"는 것, 김은천 조직부장은 민주노조운동을 하는 상근 간부들의 관료화 경향이 도를 넘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간부들이 관료화되는 원인에 대해 김은천 조직부장은 "현장 통제를 받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나름대로 참신한 의욕 가지고 상근 간부 채용되는데 이들이 몇 년 지나면 정보를 모으고 활용하는 능력이 생기게 되고, 그러다보니 선출된 대의원들보다 더 큰 권력을 갖게 되고, 그만큼 대접받으려는 경향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어떤 대접인지 묻자 "자기 운동했다 이거지, 직접 선출된 지도부에 저항하고, 노동운동 짠밥 이야기하고, 나름대로 했다고 잰다. 못 볼 꼴이 한둘이 아니다"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 강승규 전 수석부위원장의 비리 사건은 관료주의의 극치를 보여주었고, 이수호 지도부의 하반기 투쟁후 사퇴 조치는 현장 조합원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
현장활동가들의 고민이 어떠냐는 질문에는 "자기 현장의 문제, 구조조정, 고용에 대해서는 싸운다. 그런데 정치적 의제, 사회적 의제에는 고민이 없다. 아무도 그런 운동의 시야를 열어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조합의 울타리를 넘어 거리로 나오고 정치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은 많지만 그 길을 일러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는 이야기다.
현장활동가들이 정치적, 사회적 관심을 갖는다면 민주노동당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김은천 조직부장은 "좌파 활동가들의 고민은 아직은 그렇게까지 가지는 않는데 현장 분위기는 분명히 가고 있다"고 말하고 "좌파 활동가도 자신할 수 없고 국회 일정 기대는 경향이 나타난다. 좌파는 어떤 세력도 비젼을 못 주는 게 현실 아니냐"며 말을 줄였다.
기회가 되면 현장정치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김은천 조직부장은 마지막 삶을 떳떳이 정리하고 픈 생각이다. 그런 나이가 되었다고 했다. 많은 활동가가 그렇듯이 김은천 조직부장 역시 전노협 때부터 현장활동을 해온 40이 훌쩍 넘은 현장활동가이다.
9월 27일 오후 4시. 화성
화성을 향했다.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 한 조합원이 공장 안으로 안내했다. 한 달 전 8월 26일, 기아차비정규직지회는 주야 동일 6시간 첫 독자 파업으로 공장을 완전히 멈춰 세웠다. 김영성 지회장은 당시 참세상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정규직과 다르지 않는 생산의 주체이며 기아차에 돈을 벌어주는 1등 공신임을 확인시켰다"고 말하고 "사측이 어떤 탄압을 해와도 간부와 선봉대들이 앞장서서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 기아자동차화성공장 식당, 요구사항을 적은 찌라시가 천정에 붙어 있다. 한 켠에서 선봉대원 회의가 열렸다. |
"라인을 한 번 세우고 나니까 하청사장단이 교섭 자리에 나오더라. 물론 교섭은 원청에서 다 코치하고..." 단결하고 물리력을 가지니까 하청사장단들도 얕보지 않더라고 했다. 27일 오후 식당에서 만난 선봉대원들은 다분히 '결의에 찬' 모습이었다. 내일(28일) 예정된 파업에서 용역깡패 투입이 예상돼 어떻게 공장을 지킬 것인지를 두고 선봉대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김하정(가명) 선봉대원은 "지난 9월 15일 추석 전 대체인력 용역깡패 동원 파업 침탈도 원청에서 진두지휘했다. 사용자가 아니라면서 그날 파업에 원청이 직접 물리력을 동원했다"며 원청이 배후라는 사실, 즉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문제가 관건임을 상기시켰다. 특수고용직노동자나 사내하청노동자나 할 것 없이 오늘날 한국 사회 대다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차별과 노동기본권 유린의 현장에서 '주인 모르는 노예'의 삶을 강요당하고 있다.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상근무를 하면 한 달에 108만 원을 받는다. 정규직 임금 대비 56% 수준이다. 파업 하면 900여 명의 조합원들이 대부분 다 나온다고 한다. 비조합원이 일부 외곽을 돌리는 걸 제외하면 비정규직의 힘으로 화성공장의 생산라인을 다 세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28일 '성실교섭과 손해배상 및 가압류 조치 철회' 등을 요구하며 6시간 부분 파업에 돌입할 예정이었다. 선봉대 회의를 막 끝낸 김하정 선봉대원과 두어 시간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었다. 비정규직의 선두에서 투쟁하며 느끼는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나 대공장노조 문제가 어떠한 지를 물었다. 김하정 선봉대원은 "정규직 활동가도 그렇고 좌파든 우파든 조합원 정서에 묻혀 있다"고 했다.
역시 실리적인 임금인상과 조합주의 경향이 팽배하다는 지적이다. "조합원 정서에 기대는 측면이 강하고 대공장이어서 그런지 관성화되어 있다. 말로는 여러 주장을 펼치고 유인물은 자주 나오지만 행동으로 조직되지 않는다"며 정규직 활동가의 실천을 비판적으로 표현했다. 구호로는 '노동자는 하나다' 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무관심하거나 외면하기 일쑤고, 비정규직에 마치 뭔가를 베푸는 시혜적인 태도를 갖는 등 동등한 노동자로서의 동지적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김하정 선봉대원은 이 점에 대해서는 좌나 우나 구별이 잘 안 된다고 한다. "실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유인물도 그렇고 실천도 그렇고 뭐가 좌파고 뭐가 우파고 구별 정립되지 않는다. 현장에서는 사실상 죽은 거 같다. 전혀 움직임도 없다시피 하다"라고 말했다. 최근 좌파현장활동가조직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있다고 하자 한마디로 "관심 없다"고 일축했다. "상층에서 정파 몇이 모여 뭔가를 한다지만 당장 직면해 있는 비정규직투쟁과 아무런 연관고리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 기아자동차 화성 공장 전경.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 만의 힘으로도 라인이 정지된다. |
대공장 정규직노조 중심의 조합주의가 문제라고 한다면, 비정규직 투쟁이 상대적으로 민주노총 혁신하는 기제로 작동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비정규직 투쟁의 연대를 조직하는 과정이 기업의 벽을 뛰어넘는 과정이고 투쟁하는 산별 건설 과정"이라는 주장인데, 그러나 이야기 말미에 "막연하다"라는 솔직한 의견을 감추지 않았다.
9월 27일 오후 10시. 조치원
긴 공장 담벼락을 빠져나왔다. 대전으로 갔다. 성세경 금속노조 산안부장을 밤늦게 만났다. 다음 달 4일 엔텍 서울 본사 상경 투쟁을 준비중이라고 했다. 때마침 취재 요청을 하려던 참이었다고 반가워했다.
성세경 산안부장은 대전에서의 활동이 어떠냐고 묻자 선거 이야기부터 꺼냈다. 한 사업장의 경우 우파가 런닝메이트를 잡지 못하자 어용과 손을 잡고 나왔다고 한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대전충남지역 노동조합의 선거 시기 활동을 보면 좌파와 우파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선거에 매몰되는 경향을 지적한 이야기인데, 다만 일상 활동에 있어 좌파가 투쟁이나 조합을 책임진다는 점에서 약간의 변별점은 있다고 했다.
왜 그런지 원인을 캐묻자 "활동가들이 대중으로부터 활동을 검증받는 것을 폐기해서 그렇다"고 잘라 말했다. 김은천 조직부장이 "현장 통제를 받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말한 것과 똑같다. "쓰레기통에 처박혔지. 노조 안을 살펴보면 연배와 인맥 따라 움직이는 게 룰처럼 되어 있고 선거 결과도 거기에 좌지우지된다"고 했다.
다시 노동조합운동의 상태에 대해 물었다. "이곳은 1000명 이하 사업장이 많으니까 크게 안 드러나지만 큰 규모 사업장 보면 다른 대기업노조와 비슷한 경향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연대투쟁에 소극적이고 비정규직 투쟁은 아예 관심이 없다. 조합원들이 노조를 보험 들어가는 식으로 생각하기도 한다"고 짚었다.
▲ 엔텍지회의 본사 점거 투쟁,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이 성세경 산안부장 |
자연스럽게 조합주의를 넘는 대안적 정치활동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일부 정파들은 체제를 인정하는 가운데 일정한 대안을 내놓고 움직이는데, 그게 아닌 새로운 사회를 모색하는 주체가 어떤 활동을 해야 하나. 성세경 산안부장은 노동조합 활동에 깊숙이 개입하면서도 조합주의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정치조직으로서의 노동자의힘에 대한 이야기에 이르자 "조직을 책에서 찾는 게 아니고 경험 속에서 녹여내야 하는데, 그걸 노동자의힘이라고 봤는데 노동단체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노동자의힘은 96,97년 총파업투쟁 이후 민주노동당과는 결을 달리하는 정치조직의 길을 걸어왔지만 여느 조직과 마찬가지로 내외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밤이 늦어 자리를 정리할 즈음, 성세경 산안부장은 엔텍 투쟁 취재를 거듭 부탁해왔다. 근속 15년에 월 65만 원이라는 지독한 저임금, 관리자들의 욕설과 비인간적 처우에 반발하며 지난 4월 5일 노동조합을 설립한 엔텍지회는 5월 11일 단체행동에 돌입한지 6일째 되는 날 사측이 직장을 폐쇄해버렸다. 김종욱 엔텍지회 조직부장은 "작업시간엔 화장실도 못 가게 하고, 손가락은 휘어지는데 위험수당은 없고요. 우리가 후드를 만드는데 정작 작업장에는 후드가 안 돌아간다"며 현장을 고발한 바 있다. 성세경 산안부장은 그 왜곡된 현장 한 가운데 서 있었다. 새로운 사회와 그걸 만드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지만, 어찌 보면 그건 이성으로서 깨닫는 문제가 아니라 어느날 문득 감성으로 느끼게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9월 28일 오전 11시. 울산플랜트노조 사무실
76일간의 파업, 울산플랜트노조 조합원의 투쟁은 계급투쟁의 역동성을 보여준 경천동지한 사건이었다. 울산건설플랜트 노동자의 요구는 간단했다. 화장실, 식당, 샤워실, 휴게실 설치, 산업안정장구 지급과 안전 시설 설치, 불법다단계 하도급 근절, 노동3권 보장, 단체협약 체결 요구가 전부다. 여기서 핵심은 단협 체결 문제. 불법다단계로 이중 삼중의 착취구조를 유지해온 자본에 있어 사용자성 인정은 한 걸음도 물러설 수 없는 문제다. 울산플랜트노조 조합원은 이 거대한 자본의 구도에 맞서 76일이나 되는 기간동안 파업 투쟁을 벌였다.
▲ 76일간 파업을 벌였던 울산플랜트노조 조합원들의 모습 [출처: 울산노동뉴스] |
파업을 끝내고 조합원들과 함께 현장으로 복귀한 김경태 사무국장을 노조 사무실에서 만났다. 현장 복귀 이후 복지시설 따위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5단계에 이르는 다단계 현실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고 했다. "원청-전문건설업체-하도급-반장-다이어리따먹기,인치따먹기로 이어지는 다단계 도급이 작동되고, 아시바 메야 될 공간에서 아시바도 안 메고 그냥 작업 하다보면 헛발 딛게 되고... 손 날라가고..." 다단계에 대해 시, 근로복지회관, 노동부에 수없이 요구했는데 지켜지지 않는다고 했다.
김경태 사무국장은 정부가 왜 강경하게 나온 것 같은가를 묻는 질문에 "여수, 광양, 포항은 정착이 되었는데 울산이 원청이나 전문건설업체나 인구도 가장 많다보니 단일노조로 가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 것 같다"고 답했다. 2만 명이 넘는 건설플랜트가 단일노조로 가고 4개 지역 단일노조로 발전할 경우 건설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유연화 시스템에 지대한 타격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 김경태 울산플랜트노조 사무국장, 노조가 있어 힘을 낼 수 있고 파업투쟁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
그렇지만 김경태 사무국장은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이 있기에, 우리 노조가 욕을 안 먹는다는 신념을 갖고 있기에 현장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 복귀 이후 구속과 벌금, 손배가압류, 블랙리스트 적용 등 탄압이 계속되었지만 노동조합으로 단결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9월 28일 오후 1시. 울산 북구청
김성민 울산노동뉴스 기자를 만났다. 김성민 기자는 울산플랜트노조 조합원의 투쟁에 대해 '새로운 주체의 확장'이라고 말했다. 2001년 INP중공업사내하청노조의 투쟁, 2002년 위경희 현차비정규직 노동자 의 투쟁과 SK인사이드코리아 노동자의 투쟁, 2003년 현차비정규노조의 결성과 현대미포조선 용인기업 투쟁, 2004년 현대중공업 박일수 열사 투쟁과 현차비정규 노동자의 투쟁, 2005년 현차비정규직 최남선 노동자의 분신투쟁과 건설플랜트노조의 파업투쟁으로 이어진 비정규직 투쟁에서 '새로운 주체'를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 자치단체비정규직노조가 천막을 치며 북구청 직원들과 실갱이를 벌이는 장면. 자리잡은 민주노조운동의 지도자 출신과 그곳에 고용된 노동자와 부딪히는 일이 이제는 조금도 낯설지 않다. [출처: 울산노동뉴스] |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현장조직이 독자적으로 지역연대투쟁을 벌이고 단위 사업장 안에서도 활발한 투쟁을 벌였다"라며 현장조직운동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이러한 현장조직운동이 침체의 길로 빠져든 결정적인 계기가 현대중공업노조의 비리 사건이었다며 말을 이었다. 이윽고 현차를 중심으로 한 현장조직운동도 "단사 내에서 대의원선거과 임원선거를 중심으로 권력장악을 위한 조합주의적 활동으로 급속히 전락하게 되었다"는 것. 그러하다보니 이제는 현장조직이 지역차원에서 유의미한 활동을 전혀 벌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단사 내에서도 독자적인 활동력을 급속히 상실하면서 노동조합 활동의 보조적 조직이거나 노동조합 권력장악을 위한 선거조직 이상의 활동을 벌이지 못한다고 했다.
김성민 기자는 "과거에는 현장조직이 노조 집행부를 잡더라도 집행부와 현장조직 간에 다소의 긴장이 유지되었고, 따라서 대공장 관료주의와 조합주의를 견제하는 힘이 되었으나 지금은 이 긴장력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며 현차노조 현 집행부와 민투위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짚었다.
▲ 현대자동차노조 사무실이 있는 건물 정면. 한-일FTA 분쇄 조형물이 눈에 띤다. |
김성민 기자는 현차노조가 류기혁열사 투쟁을 제대로 벌이지 못한 이유도 조합주의 경향에서 찾았다. 열사냐 아니냐 논쟁 여부도 그러하거니와, 긴박한 9월 5일 하루를 어떤 대중적 지침이나 선전도 없이 보내버리고, 9월 6일 새벽에 철탑 농성자들이 내려오고, 류기혁 열사의 장례가 치러지면서, 투쟁은 사실상 중단되고 협상 국면으로 넘어가, 9월 8일 잠정합의안이 나오기에 이르렀다는 설명이다. 김성민 기자는 "열사냐 아니냐가 핵심이 아니라 정규직노조가 당시 상황에서 벌어진 투쟁을 최소한이라도 받아 안지 않은 채 급속히 투쟁을 통제하려 하는 노골적 행태를 보였다"는 점에 주목했다.
김성민 기자는 지역과 현장 상황이 암울하다며 근심어린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활동가들은 노동조합 중심의 활동으로 경도되고, 노동조합은 조직력을 상실하거나 부패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산별노조운동이나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화도 한계가 명확해진다는 진단이다.
▲ 현대자동차 노조원들이 공장 안으로 출근하는 장면 |
"현장활동가들이 다시 목적의식적으로 연대성에 기반해 노동조합을 넘어서서 만나야 하고, 그런 속에서 계급적 투쟁과제를 중심으로 현장투쟁을 조직해야 한다"는 인식을 분명히 한 김성민 기자, "지역과 현장에서 그런 활동을 복원하는 흐름을 만들고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정치조직의 전망을 확보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며 조합주의를 넘는 정치조직의 출현을 강하게 주문하는 모습이었다.
9월 28일 오후 3시. 현대자동차
현대세신 노동자들은 단식 22일 째를 맞고 있었다. 3공장 앞, 따가운 햇살, 덩그러니 놓인 텐트 한 동, 한기선, 황덕숙, 김형기 조직쟁의팀장 등이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다. 김형기 조직쟁의팀장을 만났다. INP중공업하청노조위원장을 지내고 지금은 현대세신의 3차 하청노동자로 끈질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류기혁 열사의 죽음 소식이 알려지자 나서서 철탑을 향했다. "올라와보니 지붕도 파랗고, 강도 파랗고, 산도 파랗고, 세상이 온통 파랗게 보인다. 그런데 우리 마음도 시퍼렇게 멍들었다. 누가 류기혁 동지를 죽였나? 함께 파업투쟁을 만들어서 우리 요구를 쟁취하자"며 투쟁을 호소했다. .
▲ 김형기 현차비정규직노조 조직쟁의팀장 |
류기혁 열사의 죽음에 대해 "죽음 자체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열악한 처지를 알린 것이고, 비정규직 노조 사무실의 건물 옥상에서 돌아가셨는데 열사로 처우 받지 못한 것은 어이없다"며 말문을 열었다. 죽음으로 항거했는데 투쟁이 안 된 것에 대해서는 "당사자인 비정규노조가 힘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노동자의 죽음을 정규직 노동자가 받아들이는 것과 비정규직 노동자가 받아들이는 것에서도 '차이'가 있음을 느끼게 한 말이었다.
"2001-2년에는 대부분 정규직 활동가들은 도급 관계가 자동차 직원이 아니므로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김형기 조직쟁의팀장은 2,3차 하청업체 노동자의 처지를 이야기했다. 하청노동자가 차별 속에서 권리를 찾기 위해 벌인 지난 투쟁 과정을 하나하나 되돌아보았다. 작년부터 새벽 쉬는 시간에 빵과 우유가 나온다고 했다. 2003년까지만 해도 다 나오는 빵과 우유가 2,3차 하청노동자에게는 안 나왔다고 했다. 그래서 '빵을 달라'는 파업을 했다. 한 공장 안에서 똑같은 자동차를 만들면서 똑같은 노동자가 먹는 빵을 못 먹고 군침 흘리는 기가 막힌 시간을 보내야 했다.
2003년 7월 3일 임금처우 개선 요구하며 교섭 결렬되어 파업을 벌이고, 노조 결성되고, 2004년 3개업체 임금성과급 일부 개선된 이야기로 이어졌다. 올해 1차와의 시급 차이도 좁히고 성과금도 동일하게 적용받자는 생각 가지고 내부 조합원들의 의견 모아 6월에 대규모 노조 가입을 하였다. 2000명 규모의 비정규직이 노조에 가입하면서 대의원 숫자만도 재작년 5명, 작년 10명, 올해 40명으로 늘었고, 3공장에서만 15명 정도가 나왔다. 2,3차 비정규직도 서서히 조직력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것.
김형기 조직쟁의팀장은 투쟁 경험도 쌓이고, 원하청연대회의 불법파견 투쟁도 있고 해서 올해 임단투 시기에 승부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규직노동자의 임단협이 결정난 후에 요구하는 게 아니라 먼저 요구하고 따내야 한다. 그래야 차별을 없앨 수 있지 않나. 차별 자체를 없애는 것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1차와 똑같이 만드는 것을 목표로 정규직 임단투 전에 싸움을 하자"고 결의를 모았다고 했다.
지난 8월 4차례 진행한 교섭이 결렬되면서 쟁의 조정 신청에 들어가고 투쟁하는 중에 사측이 여성조합원에 대한 성폭력을 저지르는 충격적인 사건도 있었다. 류기혁 열사의 죽음과 고공농성이 마무리된 7일 현대세신은 해고 6명, 정직 5명, 감봉 8명이라는 징계를 조합원 개별에게 통보했다. 현대세신은 징계자에 대한 현장 출입 봉쇄 등 탄압을 가했고,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강영애, 황덕숙 조합원이 9월 8일부터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 3공장 앞, 텐트를 치고 단식농성을 벌이는 장면. 김성민 기자가 텐트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현대세신 조합원들은 35일간의 단식 투쟁 끝에 부당해고를 철회시켜냈다. |
비정규직 사업을 위해 50억 기금 모금을 한다는 것도 상급 총연맹이나 연맹 차원에서는 필요할지 몰라도 현장에서는 도움이 안 된다는 것. 연맹이나 민주노총으로 올라갈수록 기자회견이나 성명서에 머무르고 법적, 제도적인 대응에 머무르는데 현장에서 요구하는 연대는 그런 게 중심이 아니라는 주문이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이러저러한 투쟁과 결합되지 않으면 지는 싸움이다. 가령 불법파견 철폐 요구, 2,3차 하청 내부의 차별 문제, 비정규직 처우 정규직과 동일 요구 내거는 것 등을 다 놓고 임단투 시기 맞추고 해야 11월 총력투쟁라 하든 총파업이라 하든 성과가 있지 않겠느냐"라는 주장이었다.
김형기 조직쟁의팀장은 김성민 기자의 말처럼 '새로운 주체'로서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비정규직노동자의 투쟁에 대해 "2002년 초반기처럼 비정규직노조가 만들어지자마자 깨지는 것도 아니고 한 번 만들어지면 탄압에도 불구하고 유지하고 싸워가고 있다"고 말하고 "양적으로도 많이 커졌고 하나의 궤도에 올랐다"고 했다. 그 결정적 계기가 대공장에서 비정규직노조가 결성되고 대공장 비정규직 투쟁이 본격화되는 단계를 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형기 조직쟁의팀장은 "대공장에서의 비정규직 투쟁을 이기는 싸움으로 만드는 게 앞으로 비정규직 투쟁의 방향을 결정짓는 것"이라고 말했다.
9월 28일 오후 8시. 울산 시청
시청에서는 저녁 7시부터 민주노총 권역별 전국동시다발 집회인 '고 류기혁, 김동윤 열사 추모, 특수고용 노동3권 쟁취, 불법파견 철폐를 위한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근처 식당에서 강성신 민투위 의장을 만났다. 지금 현장조직이 어디 서 있는지에 대해 현장조직에 몸담고 있는 주체로부터 직접 들어볼 참이었다.
▲ 9월 5일 오전 5시20분 현대차비정규직노조 조합원 손현상, 김형기, 김태윤, 최병승 등은 울산공장 3공장 분수대 옆에 위치한 A엔진공장 송전탑에 올랐다. [출처: 현차비정규직노조] |
강성신 의장에게 노동조합운동의 위기 문제를 던져보았다. "대중들이 지도부들이 결의하고 투쟁을 결정하고 실천하면 대중들은 다시 그 실천을 받아 안는다. 그런데 우리가(지도부가) 그러지 못하고 있다. 미리 대중을 신뢰하지 못하고 그런다. 비정규직 투쟁 역시 마찬가지다. 비정규 투쟁이란 것이 비정규직만 해도 안 되고 정규직만 해도 안 되고 함께 해야 하는데, 정규직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라는 소신을 밝혔다. 강성신 의장은 결의한 걸 실천하지 못하는 지도부와 대중간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위기의 주된 원인을 찾고 있었다.
지금 현장조직이 서 있는 위치에 대해 질문하자 강성신 의장은 조합주의를 순순히 시인했다. "우리 스스로도 그러한 것에서 극복하지 못한 한계가 드러났다. 류기혁 동지 죽음을 노동조합 전체로 확산시키고 발전시키고 투쟁으로 만들지 못한 것은 잠재된 흐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잠재된 흐름', 어느 한 순간에 단정지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임단투 기간 동안 손놓고 간 게 있다. 정규직노조 임단협이 류기혁 동지 자결 후 조금 더 버티고 투쟁을 확산시키지 못하고 추석 전 타결에 매몰된 것, 임단협 잠정합의안이 총회 70% 통과된 것은 결국 현장조직의 한계이기도 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 2004년 11월 열린 전국현장활동가대회 장면. 민투위를 비롯 현장조직 대부분이 참여했다. |
민투위의 이러한 상황이 어느 날 갑자기 닥친 것은 아니리라. 강성신 의장은 "일부 동지들이 사회주의적 전망을 고민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현장조직 안의 현안 문제에 매몰된다"고 시인했다. 전망의 부재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묻자 '교육과 훈련'을 들었다. 그러나 "정치적 수준이 떨어지는 데다 전망도 관성화 되는 경향이 있어 논쟁하고 공부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논쟁할 만한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 기아자동차 화성 공장, 29일 밤 사측은 용역을 투입, 조합원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다. |
"사회통합과 지속성장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복지투자를 인적자본투자, 사회적 투자로 인식하는 사회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사회안전망의 개혁과 근로연계복지 투자확대를 통해 소비 확대 및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복지투자로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새로운 접근입니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설명하는 희망한국21 선언 발표 배경이다.
9월 29일 오후 2시. 온양
서울 올라오는 길, 온양에 들렀다. 이경수 민주노총 충남본부장을 만났다. 민주노총 조직혁신 이야기를 건네봤다. 민주노총이 하반기 핵심사업으로 추진중인 그 조직혁신안 이야기. 이경수 본부장은 "조직혁신 자체만 놓고 보면 자본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지켜내는 것, 질서있는 퇴각이라 하듯이 우리 운동 내부를 새롭게 하는 문제와 관련 소홀히 하는 측면"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현재 총연맹이 제시하는 조직현신안에 대해서는 비판적 입장이었다. "혁신이라는 미명 아래 실 내용 없이 민주노조운동의 형식적 체제를 강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지적이었다.
지역본부 소속 조합원은 25,000명 규모, 이경수 본부장은 하반기에 지역본부 사업에 30% 이상 참가율을 끌어낸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특히 삼성이 탕정기업도시를 추진하는 데 각별한 대응을 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현장은 타협 지점이 없다. 구조조정에 고용불안에 몰린 조합원과 비정규직 한테 타협꺼리 흥정꺼리가 없다"라고 말하고 "지역 운동 하는 동지들이 계급적 관점 지켜내려는 흐름이 유효하게 남아있고, 어렵지만 지역 투쟁을 유지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 이경수 전 민주노총 충남본부장. 인터뷰가 있은 지 얼마 안 지나 옷을 벗고 말았다. 가까운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
'선진부대'라는 단어에 다소 어색한 느낌을 받았지만 수용하고 다시 물었다. 선진부대가 무슨 이유로 노력을 안 하는지... 이경수 본부장은 "대중의 상태, 실력의 부족, 또는 정책 전망 같은 것, 사회주의 국가 몰락 이후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향의 상을 명확히 하지 못한 측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사회공공성을 똑같이 내세우더라도 좌파적 개념이냐, 체제를 공고히 하자는 것이냐 이런 차이를 명확히 해나가야 한다는 요청이다. 단지 학술적인 것만은 아닌, 노동운동의 내용을 채우는 것이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이경수 본부장은 좌파현장활동가조직을 만드는 활동에 공들이는 중이라고 했다. 좌파현장활동가조직에 대해 "운동의 위기 위기 하는데 운동의 위기는 자본의 공격을 제대로 반격하지 못하는 게 핵심"으로 "자본 공격은 상시적인데 지금은 신자유주의라는 가장 강력한 공격을 해오는 것이고, 그 공격을 예견하고 준비하지 못하는 내부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므로 "사람과 세력을 많이 모은다는 데서가 아니라 자본의 공세에 반격하기 위한 전략을 고민하는 데서 출발하자"고 주장했다.
이경수 본부장은 좌파현장활동가조직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소망을 갖고 있었다. 잘 될 것 같으냐고 물었다. "정세를 살펴보면 머뭇거릴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 어려운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가는 것을 위안으로 삼는데, 이것저것 걸리기는 하지만 대부분 가는 게 맞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 같다"며 신중하면서도 낙관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리고 지역에서 활동가를 조직하는 데 힘을 보태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였다.
▲ 2005년 한국의 노동자, 패배를 말하는 것은 불온한 세력의 음모일 뿐이다. 정체와 소강 국면을 거치며 새로운 정치운동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다. |
저들이 근거없이 '희망한국21'을 떠들며 노동자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동안, 나는 절망의 현장에서 살아 일어서는 '한국의 노동자'를 만났다. 내일(9월 30일)은 500인 단식이 있는 날이다. 근로복지공단 방용석 이사장 퇴진을 위한 500인 동조단식...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들렸다. 장대비가 오더라도 투쟁을 막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하며 서둘러 서울로 향했다. '한국의 노동자'를 가슴에 품는다.
10월 29일. 한 달이 지나고
김은천 조직부장과 통화했다. 여전히 현장을 누비고 있다고 한다.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 투쟁을 지원하기 위한 지역대책위 활동에 결합하고, 28일 경기비정규직 하루파업 일정에도 결합했다고 한다. 김은천 조직부장이 지금 하는 '대중사업'과 앞으로 꿈꾸는 '현장정치활동'에 어떤 차이가 있는 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지금보다 더 나은 정치활동을 고민하고 있고, 그 꿈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김하정 선봉대원과도 통화했다. 지금도 용역 침탈 위협 속에서 현장을 사수하고 있다. 10월 25일부터 27일까지 파업에 돌입, 다시 1,2라인 가동을 중단시켰다. 그날도 용역 200여 명이 침탈, 격렬한 몸싸움이 있었다고 했다. 신성 업체 계약 해지를 유보하며, 업체계약 해지에 맞서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김하정 선봉대원의 희망대로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이 현장투쟁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진실이 하루 속히 대중적으로 확인되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성세경 산안부장은 지금 서울에 있다. 10월 4일날 예정대로 엔텍 본사 진입에 성공했고, 10월 29일 현재 26일차를 맞고 있다. 10월 27일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서는 선전물도 배포하고, 김영자 조합원이 힘찬 투쟁사를 했다고 한다. 투쟁의 한 가운데에서 '새로운 사회를 모색하는 사람'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모습을 그려본다.
김경태 사무국장은 지난 10월 11일 시청 앞에서 열린 플랜트노조 촛불집회에서 "무엇보다도 업체들에게 노조로 인정받은 부분이 가장 큰 성과"라고 말하고 "노조의 조직력과 투쟁으로 현장에서 합의사항이 지켜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최종합의서 내용을 조합원들에게 소개했다고 한다. 지난 5월 27일 중간합의를 이끌어낸 다자간 협상틀인 공동협의회가 10월 4일 대표자회의를 열고 최종합의서를 작성한 데 이어 열린 집회 자리였다.
김성민 기자는 울산노동뉴스 페이지에서 매일 만난다. 한 달 전 북구청에서 자치단체비정규직노조를 취재하던 그때처럼 울산의 현장 곳곳을 하루도 쉬지 않고 누비고 다닌다. 기자라는 이름에 앞서 새로운 정치운동의 출현을 기대하는 활동가 김성민 님의 마음에 이심전심임을 전한다.
김형기 조직쟁의팀장은 단식투쟁 35일 만인 10월 12일 해고 철회를 쟁취했다. 단식투쟁 30일에 접어들면서는 상복을 입고 출근하는 '죽음을 불사한 투쟁'을 벌였다. 그의 말대로 "양적으로 많이 늘었고 일정하게 궤도에 오르고 있음"을 다시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건강을 완전히 되찾기를 바란다.
강성신 의장은 지난 15일 민주노총 1층에서 열린 '비상시국토론회'에서 다시 만났다. 그날 토론회에서 한 활동가가 현차노조가 열사 투쟁을 잘못한 걸 지적하자 "잘못을 인정한다. 더 열심히 투쟁하겠다"고 발언했다. 마땅히 그러해야 할 것이며, 모든 현장조직이 겪는 어려움을 지혜롭게 풀어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 하이텍알씨디코리아, 경찰청고용직, 한원CC, 엔텍... 여성노동자의 불안정노동이 심화되는 만큼 저항도 확산되고 있다. 기륭전자 여성 조합원들의 촛불문화제 장면 |
[기획취재지원] - 한국언론재단
특별기획 '2005년 한국의 노동자' 순서
1회차(8월 22일) 시장화! 유연화!
2회차(8월 23일) 양극화와 사회통합
3회차(8월 25일) 고령화의 진실
4회차(8월 30일) 세상을 바꾸는 이수호 집행부
5회차(9월 1일) 노사대립과 노사정위원회
6회차(9월 6일) 노동운동 위기 논쟁의 촉발
7회차(9월 8일) 위기, 그후
8회차(9월13일) 대공장 노동운동의 현주소
9회차(9월15일) 산별은 정말 대안인가
10회차(9월20일) 정규-비정규직 차별, 해답은 없나
11회차(9월22일) 해외 공장 이전(1)
12회차(9월27일) 해외 공장 이전(2)
13회차(9월29일) 노동운동을 움직이는 사람들
14회차(10월4일) 절망의 현장, 일어서는 노동자(1)
15회차(10월4일) 절망의 현장, 일어서는 노동자(2)
특별기획취재팀
- 유영주 편집국장
- 최하은 기자
- 문형구 기자
- 최인희 기자
- 라은영 기자
- 이꽃맘 기자
- 참세상 영상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