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국민의 ‘고용’은 이주노동자의 ‘기본권’보다 중요하다?

민주노동당·민주노총, 노동허가제 관련 법안 공청회 열어


최근 민주노동당이 노동허가제 도입과 미등록이주노동자 합법화를 골자로 하는 이주노동자 관련 법안 발의를 준비 중에 있어 주목된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10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 대회의실에서 ‘외국인노동자고용및기본권보장에관한법률’(외국인노동자기본권보장법) 제정 공청회를 개최하고, 본격적인 여론 수렴 작업에 들어갔다.

이날 법안 설명을 맡은 홍원표 민주노동당 정책위원은 우선 현재 시행되고 있는 외국인력 도입제도인 산업연수생 제도와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한편, 이번 법안의 제안이유와 주요내용을 설명했다. 지난 해 8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현행 고용허가제는 시행 전부터 이주노동자 당사자를 비롯해 노동계의 강한 반발을 사왔다. 또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미등록이주노동자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여전히 이주노동자들은 노동3권은 물론이고, 극심한 인권침해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고용허가제, 미등록체류 문제 해결 못해”

  홍원표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
홍원표 정책위원은 “지난 해 8월 고용허가제가 새로운 외국인력 도입제도로 시행되었으나 미등록 체류 문제에 대해 대안적인 해결책으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여전히 강제단속과 추방에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05년 8월 기준으로 국내에는 33만 2천여 명의 이주노동자가 체류하고 있고, 이중 57%에 달하는 18만 9천여 명이 미등록이주노동자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또 고용허가제 시행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는 산업연수생 제도의 경우 미등록이주노동자 발생률이 56.4%에 달하고 있으며, 전체 미등록이주노동자 중 4만 1천 명이 이에 해당되고 있다.

현행 고용허가제가 정하고 있는 체류기간과 관련해 홍원표 정책위원은 “3년 단기 순환 정책은 국적 취득 요건인 5년 이상의 계속 체류를 제도적으로 원천 봉쇄함으로써 이주노동자의 정주화에 따른 교육, 의료, 주거 등의 사회 비용을 지출하지 않고 노동력만을 유연하게 사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며 “이주노동자들의 절반이상이 4년 이상 체류를 희망하고 있어, 3년의 체류 기간 이후 정주화를 원하거나 혹은 취업을 위한 체류 연장을 원할 경우 부득이하게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정주 방지를 위한 단기순환을 기본 골간으로 하여 체류기간을 3년으로 제한하고 있고, 재취업을 원할 경우 출국 후 6개월이 경과해야 한다.

이어 현행 고용허가제가 사업장 이동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홍원표 정책위원은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이동 권리를 박탈하게 될 경우 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3권의 행사는 사실상 불가능하며, 사용자는 이러한 제도적 한계를 이용해 임금 등 노동조건을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회 노동기본권 연구모임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주노동자의 68.8%가 사업장 이동 제한이 노동조건을 악화시킨다고 응답한 바 있다.

‘노동허가제’ 도입과 미등록이주노동자 합법화 담아

이에 따라 이번에 마련된 법안은 제한된 업종의 사업 중 일정한 조건을 갖춘 사업장에서 자유롭게 취업할 수 있는 허가를 노동자에게 부여하는 노동허가제를 골자로 하고 있다. 법안의 주요내용을 보면, 미등록이주노동자 문제와 관련해 법의 공포 이전에 입국하여 국내에서 취업의사가 있는 사람에게 한해 노동비자를 발급하도록 했다. 이는 사실상 미등록이주노동자를 전면 합법화하는 내용이다.

또 사업장 이동의 자유와 관련해 등록된 사업장에 한해 사업장 이동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단, 업종 변경 시 노동부 장관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신규 입국자의 경우 입국 후 1년간 업종 변경을 제한했다.

체류기간과 관련해 이번 법안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노동허가를 일반노동허가(5년)와 특별노동허가(5년)로 분리하고 있다. 일반노동허가의 경우 최초 허가를 3년으로 정하고, 1년씩 2회에 한하여 갱신하는 것으로 했다. 또 일반노동허가를 받아 5년 동안 합법적으로 취업한 후에는 업종의 제한이 없는 ‘특별노동허가’를 신청할 수 있는 것으로 하고, 노동부장관이 국민경제 상황을 고려하여 특별허가를 할 수 있는 것으로 정했다.

홍원표 정책위원은 이번 법안에 대해 “국민경제 전반의 사정을 고려하여 취업가능 업종을 정하여 일정한 범위 내에서 노동허가를 부여하여 일단 국내 노동시장에 편입되면, 정해진 업종의 범위 내에서 일정한 조건을 갖추어 노동부에 등록한 사업장에 자유롭게 취업할 수 있는 것으로 하여,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할 수 있는 사업장’이라는 독점적 지위가 아니라 시장의 원리에 따라 이주노동자에 대한 근로조건이 결정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홍우표 정책위원의 발제가 끝난 후 이어진 토론에서 참석자들은 이번 법안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내놨다. 특히 참석자들은 이번 법안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사업장 이동권 보장’과 ‘일반노동허가제와 특별노동허가제’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샤킬 이주노조 위원장, “고용허가제 실시 이후 달라진 것 무엇인가?”

  샤킬 서울경인이주노동조합 위원장 직무대행
첫 토론자로 나선 샤킬 서울경인이주노동조합 위원장 직무대행은 우선 현행 고용허가제를 강하게 비판했다. 샤킬 직무대행은 “한국 정부는 고용허가제를 시행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이 한국노동자들과의 차별 없이 노동할 수 있다고 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한국인 노동자 평균임금에 대한 이주노동자 평균임금 비율은 2002년 48.9%에서 2005년 41.5%로 줄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정부가 그렇게 광고해대던 고용허가제 실시에도 불구하고 임금체불은 47.5%로 예전에 비해 달라진 것이 없으며, 이주노동자의 80%가 상여금을 받지도 못하고, 연장노동, 휴일노동에 대한 수당도 받지 못하고 있다”며 고용허가제 시행 이후에도 여전히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해있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짚었다.

이어 샤킬 직무대행은 “열악한 노동조건을 극복하고, 미등록이주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도록 하고 있는 현행법에 대해 “사업주에게 절대 권한을 주어 강제노동을 강요하고 있고, 이주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어 노동3권의 보장 또한 무시하고 있다”며 이번 민주노동당의 법안이 채택하고 있는 노동허가제 도입에 적극 찬성의사를 밝혔다.

박경서 외노협 대표, "특별허가제 범위와 조건 구체적으로 만들어야"


박경서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상임대표는 사업장 이동권을 보장하는 조항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뒤 특별노동허가에 대해 “외국인 인력을 로테이션하기 위해서는 특별노동허가를 허용하는 범위와 조건을 구체적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경서 대표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5년 이상 장기체류를 원할 것이고, 특별노동허가를 내주는 조건을 분명하게 해두지 않으면, 원활한 인력 순환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 “특별노동허가, 이민시장 전면 개방과 다름 아니다”

  설동훈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이어 토론자로 나선 설동훈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특별노동허가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일반노동허가와 특별노동허가를 포함해 10년의 체류기간을 인정하는 이번 법안이 이주노동자 정책을 근본적으로 파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설동훈 교수는 “이번 법안의 제 9조 ‘특별노동허가’에 따르면 한국에서 5년간 일한 외국인노동자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본인이 원하기만 하면 추가로 5년간 합법적으로 취업할 수 있게 된다”며 “이는 곧 모든 이주노동자들을 이민자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고, 이민 시장과 노동시장 전면 개방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설동훈 교수는 이어 “이민 시장을 개방할 경우 예견되는 가장 큰 문제점은 국내 노동시장에서 내국인 노동자의 취업기회 잠식이 현실화될 것”이라며 “특히 국내 저소득층 근로자와 비정규 노동자들의 취업기회 잠식과 노동조건/임금수준 저하가 초래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번 법안이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향상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는 진보적이지만, 한국인 사업주의 이해관계를 높이면서 일부 한국인노동자의 삶의 질을 저하시킬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는 반동적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정훈 변호사, “단기순환정책, 불법체류 유인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어”

반면, 정정훈 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는 일반노동허가에 대해 “정주화 방지정책으로서의 3년간의 단기순환정책은 장기체류 이주노동자를 사회적 비용으로만 인식하는 차별적 시각에 기반하고 있으며, 불법체류를 유인하는 요소로서 사회적 비용을 가중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최대 5년간의 일반노동허가 부여는 이주노동자, 산업계의 현실적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며, 불법체류 유발요인을 제거하여 효과적인 외국인력정책의 수립, 집행이 가능한 전제 조건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정훈 변호사는 특별노동허가제에 대해서도 “긍정적 다문화공동체사회의 계기들을 실천적으로 지향하는 사회통합정책으로서의 도전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를 내놓았다.


노동부, “이주노동자의 직업선택 자유보다 내국인 일자리 보호가 우선”

  홍정우 노동부 외국인력정책과 사무관
한편, 이날 노동부를 대표해 참석한 홍정우 외국인인력정책과 사무관은 미등록이주노동자 합법화,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노동허가제 도입 등 이번 법안의 주요 내용 대부분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우선 홍정우 사무관은 미등록이주노동자 합법화와 관련해 “미등록이주노동자를 전면합법화한 이후, 신규로 국내에 유입되는 밀입국을 어떻게 막을까하는 문제가 고려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 홍정우 사무관은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권 보장과 관련해 “현재 외국인들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내국인의 일자리 보호가 충돌하고 있는데, 이때 국민국가 체계에서 한국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내국인 일자리 보호가 일차적인 고려사항”이라며 ‘국내노동시장 보호’ 논리를 들어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권 보장에 대해 반대의사를 밝혔다. 또 홍정우 사무관은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 자유가 보장되면 국내 3D 업종의 인력난이 가중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또 홍정우 사무관은 현행법에서 1년 마다 계약 갱신을 하도록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이주노동자의 주장과 전혀 다른 입장을 내놓았다. 그는 “현행 고용허가제에서 1년 마다 재계약을 하게 한 것은 사업주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보호하기 위해서 마련한 것”이라며 “사업주들은 오히려 장기계약을 원하지만, 1년 마다 재계약을 함으로써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향상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법무부, "국가 이익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조치들이 있다“

이어 자리에 나온 이규홍 법무부 입국심사과 사무관 역시 민주노동당 법안에 대한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우선 이규홍 사무관은 “노동허가제도가 도입되어 5년을 국내에 체류하게 되면 중대한 사회통합문제가 발생하게 될 것”이라며 “국내 비정규직노동자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데 이들에 대한 복지보장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어 이규홍 사무관 역시 이주노동자 기본권 문제에 대해 “국민국가 틀 거리 내에서는 국가 이익을 위해서어쩔 수 없는 조치들이 있다”는 말로 에둘러 갔다.

이날 공청회의 주제가 된 법안의 이름은 ‘외국인노동자고용및기본권보장에관한법률’이었다. 그러나 이날 몇몇 참석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토론자들은 이주노동자의 ‘기본권’에 대해서 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노동부와 법무부에서 나온 관계자들을 비롯해 참석자들은 오로지 ‘고용’, 그것도 한국 노동자들의 고용문제를 주로 걱정했다. 언제부터 정부관계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보장을 그토록 걱정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들의 ‘사려깊음’으로 법안 제정은 고사하고, 발의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를 일이다. 샤킬 직무대행은 이날 공청회가 끝나갈 즈음 “이주노동자는 한번 쓰고 버리는 1회용 물건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언제쯤 이 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1회용 물건 취급을 받지 않고 살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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