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인들이 병원에서 겪게 되는 진료거부 실태를 비롯해 노동권, 프라이버시권 침해 현실을 세 차례에 걸쳐 진단하고, 기획연재의 마지막 기사는 한국의 에이즈정책의 근본적인 문제점들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감염인들의 에이즈인권운동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모색해보는 좌담을 전할 예정이다. - [편집자 주]
“남들이 그러던데 그 병은 나쁜 짓 해야만 생긴다고 하더라. 나는 너를 믿는다. 너는 그런 짓 안 했지?”
얼마전 한 HIV감염인(아래 감염인)단체의 게시판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언론의 아웃팅으로, 연로한 어머니가 자식의 병명을 알게 됐고 주위 사람들에게 에이즈에 대한 말을 듣고 전화를 한 것이다. 자식 걱정에 밥도 제대로 넘기지 못하신다는 어머니 소식에 눈물을 쏟아내고 만 그 감염인은 “하지만 용기를 잃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건강하고 멋있게 사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최대의 효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글을 맺었다.
‘아픔’을 이야기하되 들어오지는 마
매년 12월 1일 에이즈의 날이면 에이즈 관련 기사가 쏟아져나온다. 많은 화면들은 모자이크 처리와 음성 변조를 이용해 감염인의 모습을 담아낸다. 감염인들이 생활에서 겪는 차별과 어려움들을 보여주며 비감염인들의 뿌리깊은 편견을 안타까운 목소리로 전한다. 비감염인들은 ‘가슴아픈’ 이야기들을 접하며 감염인들에게 세상이 얼마나 두려울까 짐작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감염인들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는 언론들은 하루를 제외하고는 ‘걸어다니는 시한폭탄’, ‘어느새 에이즈도 불법체류’, ‘익명검사... 추적 구멍’과 같은 기사제목들을 남발한다. 그리고 TV를 보며 안타까움을 나누었다고 자부하던 비감염인들은 “당신의 자녀가 감염인과 같은 학교에 다니도록 허용하시겠습니까?”라는 설문에 50%가 그렇지 않다는 대답을 하고 “감염인은 다른 사람과 격리시켜야 합니까?”라고 물으면 50%가 그렇다고 대답한다. 언제든지 당신들의 ‘아픔’을 이야기하라며 손내미는 듯하지만 사회는 국경을 넘어, 교문을 넘어, 자신의 경계 안으로 감염인들이 들어올까 늘 노심초사한다.
언론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에이즈정책은 감염 사실이 확인된 사람의 신상을 샅샅이 확보한 후 주소지에 그대로 살고 있는지 3개월마다 확인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비감염인들은 이런 정책을 보며 모든 감염인들의 개인정보를 국가가 관리하는 것이 당연하고 한 명이라도 놓치면 ‘시한폭탄’이 터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된다. 편견을 없애기 위한 교육과 홍보가 중요하다는 정부가 앞장서서 편견을 조장하고 있다.
두려워하는 것은 누구인가
지난 11월말 한국감염인연대는 회원들과 함께 인권교육을 진행했다. 그 자리에 참석한 회원들은 사회 곳곳에서 마주치는 인권침해에 맞서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토론했다. HIV/AIDS에 대한 정확한 정보, 사회적 발언, 편견을 조장하는 정부의 정책 변화 등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커밍아웃을 강요하지만 않는다면 그들은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렇다면 사회는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가.
한국감염인연대의 이성진(가명) 회원은 “에이즈의 날에 언론이 보여주려는 것은 ‘불쌍한’ 감염인일 뿐”이라며 “이런 기사는 딱 하루 자기들 언론을 빛내기 위한 것이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사회적 인식과 편견이 없어지기는커녕 아웃팅으로 위험에 처한 사례가 오히려 많다는 지적이다. 그는 “우리는 불쌍한 것이 아니라 질병을 이겨내는 과정에 있을 뿐”이며 “너한테 도움이 되어주겠다는 식의 동정은 싫다”고 덧붙였다.
하루동안 일어난 동정심은 구조적으로 강화되는 편견과 차별에 노출된 감염인들을 오히려 더욱 좁은 울타리 안으로 가두고 만다. 감염인들은 세상이 두려워 도움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보고 싶은 모습만 보려들고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으려는, 감염인들을 두려워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대를 요청하고 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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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류 활동가는 인권운동사랑방과 나누리+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