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이제 취업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2학기가 되자 취업에 도움이 된다며 ‘현장실습’을 가야한다고 했다. 그녀는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 있는 취업 지도실을 방문했다. 그 곳에는 많은 회사에서 온 소개문들이 있었다. 그녀는 그 중에 한 곳을 선택해 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현장실습을 가는 첫 날 “짐 싸들고 학교 앞으로 모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이른 아침 학교 정문 앞에 기다리고 있었던 회사 차를 타고 경기도에 있는 한 회사로 갔다. 하지만 그녀가 애초에 신청했던 회사랑은 전혀 다른 회사였다. 그녀는 그곳에서 계약서 같은 것을 썼다. 처음 써보는 것이라 “이거 어떻게 쓰는 거예요?”라고 물어보니까 회사에 있는 간부는 “시간 없으니까 그냥 불러주는 거 받아 써”라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계약서 내용도 읽어보지 못하고 불러주는 대로 급하게 적고 사인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계약서 내용에는 “실수로 기물을 파손시키면 본인이 책임지고 본인 부주의로 다치게 되면 산재보험 처리 못 받는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녀는 내가 열심히 해야 학교 이미지도 좋아지고 나중에 취업도 잘될 것 같아서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자리가 안 나서 계속 기다리는 친구들도 있는데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회사는 처음에 자신들을 소개하며 점심시간이 1~2시간 된다고 하고, 주 5일제가 적용된다고도 하고, 아파트형 기숙사도 마련되어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녀가 경험한 회사 생활은 소개와는 너무 달랐다
첫 날 공장라인에 투입이 되었다. 그 라인에는 각각 다른 회사에서 온 현장 실습생으로 가득 찼다. 드디어 점심시간, 처음 해보는 일이라 배도 많이 고프고 너무 힘들었다. “점심시간에 친구들이랑 수다도 떨어야지”라는 그녀의 상상은 무참히 깨졌다. 점심시간 10분, 그녀는 밥을 씹어 먹는 것이 아니라 국에 말아 삼키고 있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쉬지 못했다. 화장실도 친구들과 교대로 다녀와야 했다. 6시, 퇴근시간이 되었지만 일은 아직 산더미처럼 남아있다. 그녀는 야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밤 8시까지 야근을 하고 기숙사로 왔다. 아파트형 기숙사라고 얘기했던 곳은 두 명이 누우면 꽉 차는 작은 지하방이었고 텔레비전 하나와 옷장 하나가 놓여 있었다. 회사의 남자 직원은 방 열쇠를 복사해놓고 “너네 똑바로 하나 안하나 감시한다”고 했다. 한번은 그녀가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그 남자 직원이었다. 이런 일은 큰 일도 아니었다. 그녀의 친구는 술 취한 남자 직원들에게 불려 다니기 일수였고, 회식 자리에서 뒤에서 안고 입술 만지고.....
너무 화가 나서 학교에 연락했더니 “졸업할 때까지 돈이나 벌어라. 돌아오면 몽둥이가 기다리고 있다”라고 선생님이 말했다. 그녀는 학교에도 이야기 할 수가 없었다. 일주일 째 되는 날 회사에서는 그녀를 해고했다. 그녀는 이유를 듣지도 못했다. 월급도 못 받았다. 그녀는 회사 사장에게 월급에서 작업복 값이랑 가숙사비 등등 포함해서 30% 제하고 준다는 얘기만 들었다. 그녀의 친구는 너무 힘들어서 학교 몰래 회사를 그만 두었다가 발각되어서 퇴학조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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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아닌 노동착취 현장실습
위의 이야기는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지난 10월부터 12월까지 36명의 실업계 고등학교 현장실습생들을 대상으로 한 면접조사에서 나온 증언들을 재구성한 것이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실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시행되고 있는 ‘현장실습’에서 다수의 현장실습생들은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 12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 위험노동과 성희롱 등을 감내하고 있었고, 간접고용으로 인해 실습장소와 실습조건도 모른 채 학교와 집을 떠나 이중, 삼중의 취약성 속에 내몰리고 있다.
또한 현재 많은 노동자들이 시달리고 있는 불법파견의 도구로 전락해있다. 간접고용 현장실습은 직업교육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중간업체와 사용업체간의 공모를 통한 ‘학생 장사’와 ‘책임 떠넘기기’의 결합에 불과한 상황이다. 이로 인해 많은 학생들은 첫 사회생활을 뼈아픈 경험으로 가져가고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해당 학교는 파견업체의 개념과 문제점에 대해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최소한의 노동조건을 규정하는 ‘실습협약서’를 작성할 때도 “그냥 사인만 하라”고 하거나 아예 작성하지 않는 사례도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실업계 고등학교 81%가 간접고용 형태로 현장실습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2004년 2월부터 2005년 8월까지 67개 학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런 81%가 간접고용 형태로 현장실습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간접고용 형태로 현장실습을 진행하는 학교에서는 최대 50%에 가까운 학생을 보내고 있다. 최순영 의원실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삼척전자공업고등학교의 경우 케스프, 신풍개발, (주)세진 등 3개의 업체에 실습학생의 48.7%에 달하는 학생을 보냈으며 이들은 모두 삼성전기에 학생들을 파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교육부와 노동부는 서로 떠넘기기에 급급하고 있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 교육부에 인력파견업체 등을 통한 현장실습 현황에 대해 조사할 것을 요구했으나 “노동조건에 대한 것은 교육부 소관이 아니라”고 답하고 있으며, 노동부의 경우는 “실습생은 학생에 불과하기 때문에 소관 사항이 아니라”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상황이다.
“교육이 아닌 현장실습 당장 중단”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는 이미 교육의 의미를 잃어버린 현장실습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는 성명서를 통해 “이 모든 문제는 현재의 현장실습 제도가 아무런 가이드라인도 없이, 기업체에게 어떠한 의무도 부과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법과 제도의 부실함 이전에 실습생 인권 보호에 대해 아무런 관심과 의지를 가지지 않았던 정부 당국의 무책임이 보다 중요한 원인이다”고 지적하고,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간접고용 현장실습을 즉각 중단시키고, 무권리에 놓여있는 ‘실습생’들에게 노동기본권을 돌려주어야 한다”며 “정부는 책임 있는 자세로 현장실습생 인권보호를 위한 입장과 계획을 발표하고 즉각 실천할 것”을 요구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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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는 다산인권센터, 민주노동당, 인권운동사랑방, 전교조실업교육위원회,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함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