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만한 세계화와 민중의 역동적 투쟁

[2005참세상이슈](10) - 반세계화 투쟁 기록

세계화에 대한 의제, 그리고 이에 대한 실천 투쟁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활발히 조직된 해가 있을까 싶을 만큼 2005년 내내 반세계화 투쟁은 줄을 이었다. 규모의 조직화나 단위를 뛰어넘지 못한 '사안별 투쟁'으로 한정된 아쉬움은 남지만 최소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어떻게 민중의 삶을 파탄내는가에 대한 쟁점들을 선전했고, 여론을 환기 시키며 구체적인 투쟁을 조직해 낸 한 해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분기점이 됐던 서비스협상 저지 투쟁, 물-에너지 국제 토론회를 통한 사유화의 문제 의제화, 결절점이 된 부산 아펙 반대 투쟁, 그리고 홍콩 시민사회를 격정적으로 뒤흔들었던 반WTO 투쟁 까지. 숨가쁘게 내달려온 2005년을 되돌아 본다. 그리고 아직 홍콩에 남은 11인의 구속자들에 대한 기억도.

커가는 WSF, 대안 세상을 만들어가는 노력

  브라질 현지에서 한국참가단이 행진하고 있는 모습.

올해 세계사회포럼(WSF)은 그 탄생지였던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에서 1월 26일-31일 까지 진행됐다. 국내 150명의 활동가들 뿐만 아니라, 룰라, 차베츠 대통령을 비롯해 전세계 16만 명이 넘는 반세계화 활동가들이 참석해 다양한 포럼과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WSF는 1회 15,000여 명, 2회 50,000여 명, 3회 10만 명이 참여했고, 4회 인도에는 132개국 2,000여개 단체 12만 명이 뭄바이에 결집하는 등 참석자들의 숫자 뿐만 아니라 수백 개의 포럼까지 대회 규모 면으로도 급성장했다. 그리고 5회 포럼 참가자 수는 사상 최대 규모로 포럼 전체 참가자는 155,000명으로 개막행진 참가자는 20만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성장하는 몸집과 규모에 비해 일회성 모임에 한정된, '행동과 실천이 결여됐다'는 측면의 부정적 평가도 제기됐다. '세계사회포럼이, 국제활동가 회의가 개최됐다'는 것에 대한 의의와 공간 생성의 의미를 넘어, 이론적·실천적 분석과 투쟁, 새로운 의제 발굴, 전략에 대한 토론, 향후 투쟁의 전략적 계획을 통한 반자본세계화 공동실천 투쟁을 위한 고민들이 제출됐다.

세계사회운동네트워크(Social Movements International Network)에서는 '사회운동 총회'를 통해 홍콩 WTO반대투쟁, 320 국제반전행동 등 당해 연도 주요 의제를 선정했고, 공동투쟁을 결의하는 투쟁 호소문을 제출했다.

WSF는 매해 주기적인 행사의 의미를 넘어 세계사회운동 네트워크의 중심지로써 구체적인 실천들을 소통하고, 반자본세계화 운동의 전략기지로써 성장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2006년에는 지역, 대륙별 세계사회포럼이 개최될 예정이다. 지난해 6월 스리랑카에서 진행된 '아시아 지역 간담회'에서는 아시아 사회포럼의 1차 개최지로 파키스탄 카라치를 정하고, 이후 동남/동아시아 사회포럼을 2006년 5월 이후 8월 이전에 개최할 것을 결정, 개최지는 향후 소대륙별 회의에서 결정하기로 했다.

시들지 않는 반전운동, '평화세상 향한 국제 행동'

  벤쿠버에서 진행된 3.20 반전집회 모습.

미국의 이라크 침공 2주기를 맞은 320 국제반전공동행동이 올해도 진행됐다. WSF의 논의를 바탕으로 세계 반전운동 단위들은 공동의 웹사이트(www.march19th)를 개설하여 각국에서 조직하는 3월 20일 집회 현황을 총화하고 이를 확산시켰다.

3월 20일 미국 반전연합단체 A.N.S.W.E.R는 미국 보스톤에서 2,000여명, 시카고에서는 6,000명, 샌프란시스코에서는 25,000명이, 로스엔젤레스는 20,000명 등 미국 곳곳에서 대규모 반전집회가 진행됐다고 소식을 전했다. 또한 이런 미국내 반전 운동은 신디시핸과 같은 '평화를 위한 전사자 가족모임(Gold Star Family for Peace)' 등이 조직되기 시작하면서 반전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맞았고 2005년 하반기 대규모 반전운동의 흐름을 만들어 냈다.

한국에서도 '이라크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을 주축으로 3.20 평화 주간, '이라크전쟁과 세계, 한국사회' 토론회, 평화박물관 운영, 반전영화제, 여성평화행동, 평화를 위한 난장등을 진행했다. 또한 6월에는 터키 이스탄 토카피 궁에서 이라크국제전범재판(WTI)이 진행됐다.

또한 고 김선일씨 1주기를 맞은 대규모 집회가 진행됐고, 다함께는 '반전 토론회'를, 사회당은 한국전쟁 발발 55주년 맞이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시민 평화의 학 접기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

반대가 당연한, 서비스협상 2차 양허안 제출 저지 투쟁
  외교통상부 앞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WTO DDA 서비스 협상 2차 양허안 제출일이 지난 5월 30일이었다. 한국 정부는 여지 없이 2차 양허안을 정해진 시일에 맞춰 제출했다. 당시 양대노총과 민주노동당을 비롯, 전국민중연대, 공공연대, 자유무역협정WTO반대국민행동, 범국민교육연대 등 주요 노동 정당, 사회단체들은 'WTO DDA 서비스협상 대응 공동투쟁기획단'을 구성하고 5월 공동투쟁을 결의하며 토론회를 시작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연일 외교통상부 앞 및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집회를 진행했다.

이들은 '2차 양허안 제출'과 서비스 시장 개방의 문제는 단순 해당 산업 노동자들에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라, 공공 서비스 축소와 상업화와 사유화 확산이라는 민중의 삶의 파탄내는 전사회적인 문제가 양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 WTO 상징, 농민 투쟁

  국회 앞에서 진행된 쌀협상 국회비준을 반대하는 기자회견 장면.

UR(우루과이라운드)부터 이어진 농민들의 투쟁이 2005년 그 빛을 발했다. 결국 제대로 된 대책도 없이 이면합의로 얼룩진 쌀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농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정부를 원망하며 농약을 마시고 자살하는 죽음의 행렬이 계속됐고 심지어 집회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고 전용철, 홍덕표 농민이 사망하는 사태는 하반기 '열사정국' 투쟁으로 이어졌다. 이경해 열사 2주기 추모 집회, 국회 진입 투쟁, 농민총파업, 쌀 적재 투쟁, 홍콩 원정 투쟁 등 농민들은 '반 WTO' 투쟁의 상징이 됐다.

또한 9월 대법원 3부는 '학교급식 조례, WTO 협정에 위배된다'고 확정 판결했다. 이는 학교급식 문제가 단순히 농산물 유통과 판매와 지역사회의 조례 규정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WTO라는 세계무역체제에서 발생한 문제라는 것을 일깨워 주며 WTO의 위험성을 보여준 사례로 남았다. 바로 농민들이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농업 구조조정의 문제, 농업과 관련한 모든 것을 상품화 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문제, 그리고 WTO에 대한 위험의 경고가 바로 한국 대법원 판결을 통해 입증 됐던 것이다.

쾌거, 문화다양성 협약 채택

지난 10월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는 '문화콘텐츠와예술적표현의다양성보호협약(문화다양성협약)'을 압도적 표차로 채택했다. 154개국 대표가 참석한 총회에서 참가국들은 찬성 148, 반대 2, 기권 4로 문화다양성 협약을 '국제협약'으로 채택했다. 마지막까지 반대를 했던 미국은 국제 회의에서 역사상 유례없는 '왕따'를 당했다.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 협약은 단순히 '문구의 채택'이 아니다. 양기환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사무처장은 협약채택에 대해 "WTO가 문화의 영역을 시장화, 사유화 하려는 것을 저지 시킨 것으로 더 이상 WTO, FTA 등 국제 협상에서 '문화를 일반 상품과 똑같이 취급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 쾌거"라 평가했다.

또한 다양성 협약 채택으로 인해 WTO 서비스 협정에 포함된 물, 에너지, 교육, 보건, 의료 등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될 공공 영역들에서 '예외의 파열구를 낼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WTO의 첨병, 아펙을 반대한다.

  반아펙 집회가 진행된 수영대교 앞 모습.

반(反)아펙 투쟁은 4월 부터 그 준비가 있었다. 노동사회단체들은 4월 '빈곤, 전쟁과 차별을 부르는 아펙회의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의 첫 토론회를 열어 'WTO 홍콩 각료회의 저지 투쟁의 징검다리가 될 아펙투쟁'의 의의를 잡고, '부산투쟁을 전국 투쟁으로, 남한 민중투쟁의 총집결을 요하는 투쟁'의 상을 결정했다.

전쟁과 빈곤을 확대하는 아펙반대 국민행동(준)이 6월 1일 공식 출범했고 이어 6월 제주 컨벤션센터 앞에서 통상장관 회의를 규탄하는 집회를 비롯해, 부산에서 '아펙 반대 토론회' 개최, 경주에서 '고위관리회의 규탄' 기자회견을 개최 하는 등 전국적인 투쟁 흐름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또한 부산시민행동은 부산은 거점으로 다양한 대중 선전전을 그리고 자발적 참가자들로 구성된 문화 마당을 꾸준히 진행했다. 전국행진 이후 이어진 일주일간의 부산 집중 투쟁이 진행됐다. 군-경찰이 시내 곳곳에 배치된 준 계엄상태의 부산에서 '아펙반대' 집회에 참가한 참가자들은 집회를 개최하고, 콘테이너를 밧줄로 끌어 넘기며 항변의 투쟁을 전개했다.

홍콩 반(反)WTO 투쟁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홍콩 현지에서 삼보일배를 하는 한국민중투쟁단의 모습. 거리에 홍콩시민들이 가득하다.

12월, 한국이 황우석 사태로 뒤흔들렸다면 홍콩은 한국민중투쟁단에 열광하며 열병을 앓았다. 5월 한국을 방문한 홍콩민중동맹 활동가들과 논의를 바탕으로 8월 신자유주의세계화반대민중행동을 구심으로 12월 홍콩 투쟁이 준비됐다.

일주일간 한국민중투쟁단의 1500여명을 만난 홍콩 현지 시민들은 폭도로의 모습이 아닌 한국민중투쟁단의 절실한 투쟁에 동의하며 점점 동화됐다. 삼보 일배 이후 홍콩 시민들의 태도는 '바라보기'가 아닌 '직접 참여'로 급반전 되며 'WTO에 반대한다', '한국민중투쟁단을 지지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만여 명이 참가한 폐막 집회에서는 한국투쟁단을 지지하는 홍콩 시민들의 피켓이 넘쳐 났고, 선물이며, 물이며, 한 교민이 절편 떡을 만들어 농민 숙소까지 배달해 주기도 했다. 또 다른 교민은 한국식 도시락을 특별 주문해 김치가 가득 담긴 도시락을 상황실에 배달해 주기도 했다. 쿤퉁 법원 앞에서 노숙 농성을 진행하며 구속된 14인에 대한 조속한 석병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국민중투쟁단이 보여준 홍콩에서의 투쟁으로, 잠들어 있던 홍콩시민들의 역동적 투쟁들이 깨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홍콩에서의 반WTO 투쟁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양경규 민주노총 참가단장을 비롯해 불구속상태로 귀국하지 못하고 있는 10인의 한국인 구속자들이 아직 홍콩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해를 넘긴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이들의 무죄 석방을 바래본다.

그리고...

그외 많은 투쟁과 내용을 채우는 토론회들이 개최됐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6월 '물과 에너지는 인권'이라는 기치로 아시아지역의 노동·사회운동이 만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이 자리에서 각국의 물과 에너지 사유화 사례를 공유하고 '공동선언'을 발표하며 이후 연대를 모색하기 위한 약속을 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 30일 본회의를 통해 제주특별자치도 관련 3개 법률안 중 제주도 행정체제 등에 관한 특별법안과 지방자치법 개정 법률안만 처리됐고,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조성을 위한 특별법안은 다음 회기에 처리키로 했다. 이 제주특별자치도법 무산을 위한 공청회 저지 투쟁 및 토론회 등도 제주도와 서울 등 지역을 초월해 진행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