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으로 오세요”
그곳에 늘 그렇게 있었다는 듯 김소연 분회장은 소탈하게 천막으로 자리를 마련했다. 최근 그 천막을 더 자주 드나들었던 ‘기자’로서는 되려 ‘천막에서 봅시다’ 할 판이었다.
‘천막’, 기륭전자 꽉 닫긴 정문 옆으로 소담히 들어선 천막은 기륭전자 사측이 고용한 경비업체 직원들로부터 몇 차례 뜯겨져 나가기도 했지만 여전히 구로공단의 명물이자 기륭투쟁의 산 증거로 그 파아란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해를 넘기면서 장기투쟁사업장으로 한발 다가선 기륭분회로서는 천막은 일종의 노조 사무실인 셈.
오후 3시가 넘어가면서 추위는 한풀 꺾였다. 오랜만에 기륭 나들이에 나선 기자가 ‘천막’ 앞에서 2005년 기륭 투쟁을 회고하며 상념에 젖어 있는데 이를 수상쩍게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기륭전자에서 고용한 경비업체 직원이다. 요상도 할 터였다. 조합원들이 중국대사관으로 연대투쟁을 나간 통에 간만에 조용하게 오후를 보내고 있는데 낯설은 이가 등장해 기웃거리니 적잖이 심사가 뒤틀릴 만도 했다. 늘 하던 대로 아주 착한 얼굴을 지어주고 애써 따가운 눈초리를 외면하면서 천막 한 켠을 부시럭 거렸다. 노크였다. 천막 안쪽에서도 반응을 보였다.
투쟁으로 화답하자!
밝았다. 밝은 얼굴로 인사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까칠하게 잠겨 있었다. ‘어이쿠, 오늘 인터뷰 다 했다’ 싶어 건강상태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건강은 아주 좋아요. 그러나 출감 바로 그날로 목소리가 잠겼어요. 오랜만에 성대를 써서 무리했는지..(웃음)”
외관상으로도 건강에는 큰 이상이 없어보였다. 원래 사람의 건강은 내부적 원인에서 오는 것. 이번에는 컨셉(?)을 바꿔 적적하지는 않았는지 물었다.
정확히 1.75평 공간, 그녀는 그곳에서 2평 남짓 천막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근 두 달을 분회장 없이 투쟁해온 50여명의 조합원들이 그녀를 맞았다. 김소연 분회장은 “분회장이 출감하는 꿈까지 꾸었다며 분회장 출감을 확신했다”는 조합원들에게 “꿈은 현실이 된다”며 화답했다. “분회장까지 나왔으니 이제 뭔가 해결되지 않겠느냐”는 조합원들의 기대심리에 대하여 2006년 투쟁으로 해답을 얻겠다는 다짐을 보였다.
“아무래도 그동안 분회장이 없어서 교섭도 안되고 회사에서 얘기도 안 들어준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예요. 그런 이유로 분회장이 돌아왔으니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는 희망 섞인 이야기들을 많이 듣습니다. 일종의 기대심리가, 그래서인지 요즘 출근투쟁이고 집회고 표정들이 밝다는 얘기들을 많이 들어요. 새해를 맞아 출발이 좋다는 느낌들을 받는 모양이예요”
우먼파워! 기륭
2005년 ‘기륭’이라는 여성활동가들을 대거 발굴했다. 최은미, 윤황록, 오성숙 등 값진 성과다. 자리를 비웠던 김소연 분회장에게 조합원들이 그간 보여준 활동들에 대해 일일이 언급했다. 이미 조합원들을 통해 들었을 터, 율동패며 노래패며 100일기념 문화제에서 보여준 ‘우먼파워’에 대해 기자가 침 튀기며 얘기하는 것을 알면서도 묵묵히 듣고 있던 그녀는 삐져나오는 흐뭇함을 온 몸으로 참았다.
“시작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노조 설립되자마자 구속되는 등 시기에서 다소 아쉬움이 있지만 싸울 수밖에 없었던 조건이었죠. 율동패를 만들고 상황에 맞춰 잘 싸웠습니다. 조합원들이 노조 설립되면 금새 해결될 줄 알았던 모양이예요. 이제는 더욱 강도 높게 싸우자는 얘기들이 들립니다”
김소연 분회장은 “이제 더욱 강도 높게 투쟁하자”는 그녀들의 다짐을 굳이 흘린다. 비정규직 하면 여성이라는 그놈의 지긋지긋한 고리를 끊어 내고, 유독 여성 조합원을 만나기 어려운 노동운동에서 여성과 노동운동은 이어내야 하는 몫은 여전히 그녀들에게 주어졌다. 노조 설립이 해답은 아닐지라도 노조 설립이라는 첫 단추를 거하게 끼운 2005년, 노조 설립까지의 노하우(?)를 듣자는 우문을 던졌다. “그 얘기는 목소리 나으면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것을 보니 할 얘기, 하고 싶은 얘기가 참 많은 모양이다.
분노, 확신 그리고 이를 이어주는 것은 역시 ‘사람’이다.
“제가 아마 가장 길게 일했을 거예요. 기륭에서 일한지 3년 됐거든요. 그리고 짧긴 했지만 라인관리 하는 일도 잠시 했었지요. 그러면서 조합원들과 교류가 있었습니다. 기륭전자 300명의 노동자 중 조합원이 180명이라면 상당히 많은 수이지요”
기륭분회에서 특이할 점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파견직 등이 한데 섞여 노동조합을 꾸렸다는 점이다. 이렇게 구성된 노조의 유불리를 떠나 난재는 겹겹이 산이다.
“사측은 사용자성 운운하며 교섭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를 해오는데 2006년 이러한 사측의 논리에 대응해가면서 싸워나가야 하는 고민이 있어요”
2006년..
김소연 분회장의 재판결과는 올해 3월이나 되어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6개월 만땅 채울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사측의 추가 증인 신청이 계속되는 가운데, 분회장의 업무집행방해 등 분쟁이 될 건도 상당하다.
기륭전자는 불법파견이라는 판정을 받은 후 다른 기업들이 하던 방식대로 ‘완전도급’을 시도하고 있다. 김소연 분회장이 돌아온 이후 조합원들 사이에서 교섭이 진행될지 모른다는 기대가 날로 커지는 상황에서 김소연 분회장은 오히려 연구하고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차분히 말을 받았다. 김소연 분회장은 현재 시기를 기륭분회에 있어서 “재도약의 시기”라고 말했다.
“조합원들 구속을 기점으로 교섭이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여태까지 싸워왔고, 믿지는 않지만 사측에서도 교섭의 움직임이 있습니다. 이럴 때 더 밀어 붙여야죠. 더욱 압박을 넣어서 노조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토록 해야 합니다”
쏟아지는 조합원들의 기대에 오히려 차분해지는 김소연 분회장도 그러나 이 말에만은 들떴다. “꿈은 현실이 된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구치소 생활은 적적하고 춥고 등등 어려움은 없었나?
10월 17일날 구속되어, 1월 7일까지 근 두 달을 있었다. 동지들의 잦은 면회와 투쟁 소식들로 적적하지 않게 지나간 두 달이었다. 편하게 있었던 편이었다. 오히려 너무 시끄러워서 문제였다(웃음) 2평 남짓한 구치소에 12명 정도가 수감되어 있었으니 얼마나 벅적거렸겠는가! 요즘 구치소에 잡혀온 사람이 많더라(웃음)
출감 후 조합원들의 반응은?
이제 해결됐다는 이야기 많이 듣는다. 아무래도 그동안 분회장이 없어서 교섭도 안되고 회사에서 얘기도 안 들어준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 이유로 분회장이 돌아왔으니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는 희망 섞인 이야기들을 많이 듣는다. 일종의 기대심리가, 그래서인지 요즘 출근투쟁이고 집회고 표정들이 밝다는 얘기들을 많이 듣는다. 새해를 맞아 출발이 좋다는 느낌들을 받는 모양이다.
새해 각오 같은 것 서로 나누었는가?
절도 다녀오시고, 동해바다도 보고 오시고 하는 것 같더라(웃음) 새해 소망들 각자 빌고 오는 것 같다. 기륭분회는 뭐 따로 있겠느냐, 무조건 열심히 해서 투쟁 승리하자. 이런 내용이 전부다.
재판 어느 정도 진전되었고, 얼마나 남았나?
6개월 채울 것 같다. 그러니까 올 3월이나 되어야 재판 결과 나올 듯하다. 사측에서 추가 증언 듣기 위해 증인 신청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업무방해다 뭐다 해서 분쟁될 건들이 많다. 그래서 6개월 동안 잡아둘 수 없어 보석신청을 받아들인 것.
나 나오는 날 꿈까지 꿨다는 얘기들을 한다.(웃음) 조합원 다섯명이 분회장 나올 줄 알았다는 둥, 분회장 나오는 꿈을 꿨다는 둥 얘기들을 한다. 그래서 “꿈이 현실이 됐다”고 화답했단다.
2005년 노동계 전반적으로는 기륭분회 같은 우먼파워를 보여주는 여성활동가들을 발굴하는 성과가 있었다. 2005년 회고해본다면?
시작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노조 설립되자마자 구속되는 등 시기에서 다소 아쉬움이 있지만 싸울 수밖에 없었다. 상황에 맞춰 잘 싸웠다. 조합원들이 노조 설립되면 금새 해결될 줄 알았던 모양이다. 이제는 더욱 강도 높게 싸우자는 얘기들이 들린다.
2006년은?
아세아를 집중해서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은 도급문제를 중심으로 노동부를 타격할 생각이다. 현재 사측은 완전도급이라는 주장을 계속해오고 있다. 핵심 기술이 없고 단순조립 업무이기 때문에 도급이 가능하다는 것. 현재 우리는 그에 대응하기 위해 연구하고 고민하고 있다. 또한 기륭분회의 특이점이 바로 정규직, 파견직, 비정규직 등이 모두 포함된 노동조합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측은 사용자성 운운하며 교섭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를 해오는데 2006년 이러한 사측의 논리에 대응해가면서 싸워나가야 한다.
비정규직하면 여성 비정규직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비정규직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기륭분회처럼 여성이 주축이 된 노조를 보기가 참 힘들다.
기륭전자는 이름처럼 전기전자부분이고 이러한 분야에 여성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다. 이런 공장들은 남성들이 많은 대공장에 비해 소규모이고, 근속이 짧아서 노조설립 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2005년 기륭분회에게는 노조가 설립되고, 투쟁들이 이슈가 되는 등 첫 단추를 거하게 끼웠다. 기륭분회도 노조 설립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을 듯하다. 기륭분회 어떻게 설립되었는지 그 노하우(?)를 듣고 싶다.
이 얘기는 목 나으면 해야 할 것 같다(웃음) 우선 간략하게 하자면 분노가 많았다. 그런 것들이 결집되어 설립되었다. 나는 오래 근속했다. 아마도 내가 제일 오래된 사람일 텐데, 3년이나 기륭전자에 있었다. 그리고 짧긴 했지만 라인관리 하는 일도 잠시 했었다. 그러면서 조합원들과 교류가 있었다. 기륭전자 300명의 노동자 중 조합원이 180명이라면 많은 수다.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시작했다. 어려움도 있었다. 조합원을 중심으로 회사 해고가 시작된 것이다. 또한 조합원들 계약기간이 대부분 1년 미만이라서 노조 활동이 불안정했다. 지금 조합원들 중 근로 기간보도 노조 활동 기간이 더 긴 조합원도 상당수다.
기륭 투쟁 아직도 남았다. 과거와 미래를 통틀어 현재, 이 시기는 기륭투쟁에 있어 어떤 시기인가?
재도약의 시기다. 구속을 기점으로 교섭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여태까지 싸워왔고, 믿지는 않지만 사측에서도 교섭의 움직임이 있다. 이럴 때 더 밀어 붙여야 한다. 더욱 압박을 넣어서 노조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토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