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폭설을 뚫고 새벽길을 달려 서울에 왔을까?
왜, 진눈개비 내리는데 온 몸을 적시며 오보일배를 했을까?
▲ 얼음물이 뚝뚝 |
▲ 눈 바닥에 엎드린 노동자 |
2월 7일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노조원 74명은 순천에서 새벽 4시 40분에 출발하였다. 강남 논현 지하철역 앞에 도착하여도 눈은 그치지 않는다. 붉은색 ‘단결투쟁’ 머리띠를 묶고, 노란색 ‘확약서 이행’ 구호를 가슴에 단다.
노조원과 함께 가족들도 올라왔다. 김재섭 씨의 딸 다은(3살)이도 유모차를 타고 아빠의 싸움에 함께 했다. “아빠 힘내세요”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든 조합원이 아내들도 함께 했다.
눈길에 몸을 숙인 까닭
12시 30분 논현역 앞 거리로 조합원을 비롯한 사회단체 회원 300명이 오보일배의 자기희생의 걸음을 내딛는다. “확. 약. 서. 이. 행.” 다섯 걸음을 걸은 뒤, 두 손을 질척이는 아스팔트에 대고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낮추고 머리를 땅에 조아리며 일배를 한다.
▲ 우산을 쓴 시민들이 바라본다 |
▲ 조합원 가족들도 나섰다 |
▲ 다은이도 아빠와 함께 투쟁 |
그들이 걷는 현대하이스코 본사까지 2.5Km의 강남거리는 차들의 소음도, 시민들의 발걸음도 멈추게 한다. 지나가는 아주머니 한 분은 “이 추운데 행진만 하지 왜 절까지하며 고생을 해요.”하며 안타까워 한다.
작년 10월에는 20m 고공크레인에 올라가 목숨을 걸고 싸웠다. 가족들이 보내주는 음식물도 봉쇄되었다. 강제진압의 위협이 계속되었다. 이들은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지역의 각 단체들이 나서 대화를 촉구하였다. 그리고 순천시장, 현대하이스코 공장장, 금속노조 대표와 함께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냈다. 그게 지금 문제가 된 ‘확약서’다. 11월 3일 열하루의 크레인 농성을 끝냈다. 이들을 기다리 건 가족이 아니라 경찰서였다.
확약서 내용을 살펴보자. △사내하청업체 폐업 등으로 인한 실직자들이 우선 취업 될 수 있도록 한다 △현대하이스코는 이를 적극 지원한다 △현대하이스코는 노동조합활동을 보장한다 △금번 사태로 인한 민, 형사상의 문제가 최소화되도록 한다.
▲ 춥지도 않은지 찬물을 벌컥 |
▲ 머리도 눈썹도 진눈개비에 젖었다 |
그리고 석 달이 지난 지금 이들은 왜 서울로 올라왔을까? 김종안 수석부지회장은 말한다. 모두 거짓말이라고. 지역사회와 약속한 확약서를 쓰레기 취급을 했다고.
쓰레기통에 버려진 확약서
“해고자를 먼저 채용한다고요? 아직 한 명도 채용하지 않았어요. 2월 1일 7명을 채용했어요. 7명 모두 비조합원들입니다. 노조와는 한마디 상의도 없었죠. 또한 도급업체 두 군데를 계약해지 하고 노동자들을 쫓아냈습니다. 신규업체는 고용을 계승하지 않았어요. 조합원은 한 명도 고용하지 않았지요.”
확약서의 우선 취업 약속과 현대하이스코가 적극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보기좋게 구겨 쓰레기통에 던진 거다. 도급계약을 해지하고 신규업체를 받아들이면서 조합원들에 대한 해고 행위를 노골적으로 하고 있다. 이는 노조활동 보장이라는 약속마저 헌신짝 버리 듯 내팽개친 거다.
“민, 형사상의 문제를 최소화 한다는 말도 거짓이죠. 현대하이스코가 직접 사인한 확약서의 잉크가 채 마르지도 않았는데, 조합원 66명에게 72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거예요. 지역사회와 함께 한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반대로 가는 거죠.”
▲ 옷도 젖고 마음은 얼고 |
▲ 간다 고행의 길이지만, 승리를 향해 |
이는 노동조합을 인정할 의지가 하나도 없다는 반증이다. 인정은커녕 없애겠다는 의지라고 볼 수 있다. 적극 지원하겠다던 현대하이스코는 지난 3일 협상대표단이 사전 면담 신청을 하고 이날 찾아갔지만, 경찰과 직원을 동원해 출입문을 꽁꽁 가로막고 문 앞에서 쫓아냈다.
절을 하며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갈수록 머리도 손도 무릎도 신발도, 온몸이 젖어간다. 추운 날인데도 잠깐 쉴 적에는 냉수를 마신다. 이들에겐 추위를 느낄 겨를도 없는 것이다.
해고가 되고 조합원 가운데에는 이혼한 가정도 있다. 저축한 돈이 바닥난 지는 오래고, 아이 우유값도 떨어지고, 달세가 밀려 공장만이 아니라 잠잘 방에서조차 거리로 쫓겨날 형편이다. 오보일배에 함께한 해고자 조합원의 아내는 “조합원을 두 번 죽인 거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가족까지 두 번 죽인 자본
“작년 11월에 확약서가 나왔을 때만 해도 이제 살았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 꿈은 금방 깨지고 말았지요. 채용은커녕 72억원이라는 손해배상까지 청구하다니. 노동자를 두 번 죽이는 살인 행위랑 마찬가지잖아요.”
먹고 사는 문제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남편이 이렇게 해고가 되다보니 다른 곳에 취직하는 것도 힘들다고 한다. 아내들이 일을 하러 나가는 집이 많지만, 생활비도 되지 않는다.
“우리 신랑은 구속되었다가 나왔어요. 어디 구속된 사람을 채용해 줄 공장이 있을까요. 하루빨리 원청사에서 약속을 지켜 채용해 줘야죠. 애가 어린 집들은 부인들이 일을 나가기도 힘들잖아요. 월세도 내지 못하고, 우유값도 없어 눈물을 삼켜야 해요. 먹고 살기가 힘드니 부부싸움도 잦아질 수 밖에 없어요. 이해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생계가 해결되지 않고, 시간이 오래 지나니 싸울 수 밖에 없죠.”
지금보다도 어려웠던 시절(크레인 농성, 구속)도 견뎠는데, 끝까지 싸워 이겨야 한다고 남편을 격려한다. 딸이 둘 있는데, 중학교 다니는 큰딸은 “아버지가 나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남들을 위해 희생하는 건데, 아프지 말고 꼭 회사에 복직하였으면 좋겠다”고 한다. 아버지가 구속 되었을 때는 밤마다 큰딸이 참 많이 울었다고 한다.
두 시간에 걸친 오보일배는 현대하이스코 건물 앞에서 멈췄다. 정광훈 민중연대 상임대표등 협상대표단이 미리 요청했던 면담을 하기위해 건물로 갔다. 무장한 경찰들이 빌딩 주위를 에워싸고, 현관 출입문은 직원들로 꽁꽁 가로막혔다.
▲ 출입문을 가로막고 있는 직원들 |
현대하이스코는 인재개발팀 차장을 내보내 하청회사의 문제니 그곳을 찾아가라고 대표단과 면담을 거부한다. 대표단이 현대하이스코가 확약서에 사인을 한 거 아니냐고 따지자, 순천공장에서 최선의 노력을 하는 거로 알고 있다고 한다. 72억 손해배상청구한 게 최선의 노력이냐고 따지자, 지금 사장님이 해외 출장 중이라고 다시 거리로 내몬다.
지역사회의 합의마저 이렇게 무참히 짓밟는 거대 자본 현대가 무섭다. 오보일배를 마친 조합원들의 손에 낀 장갑에선 얼음물이 뚝뚝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