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번호 도용, 리니지만의 문제 아니다

요구한다. 내 주민등록번호를 바꿔도~~~


리니지 명의도용 사건이 알려진 이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리지니 사이트를 방문하여 확인을 해 보았다. 이럴 수가! 이미 내 주민등록번호로 생성된 계정이 있지 않은가? 나와 같이 주민등록번호를 도용 당한 사람이 내 주변에 꽤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를 보니 14일까지 3천여명이던 피해자가 15일에는 만3천여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 한국이라는 나라에 살면서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되지 않았다면 그게 이상한 거지. 사실 이번 사건과 같은 주민등록번호 도용 사건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마침 이 사건이 나기 며칠 전인 지난 2월 6일에 한국정보보호진흥원과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만8천206건의 개인정보 침해신고 중 54%가 주민등록번호 도용 등 타인정보의 훼손, 침해, 도용에 관련되었다고 한다. 비율도 비율이지만, 신고된 것만 1만건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 명의도용의 규모가 대규모적이라는 점, 중국 등 나라 밖에서 조직적으로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 등 다른 뉴스거리가 있기는 하지만, 주민등록번호의 도용 자체는 예견된 것이었고, 이미 발생하고 있는 문제였던 것이다.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한 신원확인의 유효성에 대해 인터넷 기업 관계자들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모두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얻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회사에서는 직원들과 고객의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고 있고, 계약서에는 계약 상대방의 주민등록번호가 적혀있고, 각종 증명 서류에는 가족의 주민등록번호까지 증명되어 있으며, 인터넷에서는 주민등록번호가 줄줄이 검색할 수 있지 않은가. 어차피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로 실명 인증을 하는 방법으로는 악의적인 이용자들을 막을 수 없지 않은가. 인터넷 기업들도 이러한 문제점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그들은 실명 확인이라는 과정을 통해 선의의 이용자들을 좀 더 쉽게 관리하는데 이용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단지 리니지만의 문제는 아니다. 리니지만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리니지 제작 업체인 엔시소프트의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한 실명 인증만의 문제도 아니다. 주민등록번호 실명 인증이 악용될 수 있던 것은 그만큼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기 용이한 환경 때문이다. 그래서 근본적인 원인을 따지고 들어가자면, 민간 영역에서 주민등록번호를 마음대로 수집할 수 있도록 방치한 정부(특히 행정자치부)에 그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더 어이가 없는 것은 이 사건에 이상하게 해석되고 있다는 것이다. 엉뚱하게 정보통신부와 문화관광부가 나서고 있다. 정보통신부는 주민등록번호 실명 인증이 아니라, (자신들이 제안한) 대체 인증이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등록번호 실명 인증은 당연히 폐기되어야 하지만, 실명 인증을 할 필요가 없음에도 인증을 요구하는 관행이 더 큰 문제다. 또한, 이 문제는 단지 인터넷에서의 주민등록번호 도용 문제로 축소되어서는 안된다. 문화관광부는 게임 아이템 현금거래 등의 문제를 걸고 나섰다. 게임 아이템 현금 거래가 신원 도용을 부추겼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어쨌든 정작 문제 해결의 당사자인 행정자치부는 아직까지 조용하다. 오히려 며칠 전에는 전자주민카드를 다시 도입하겠다고 난리를 치더니, 이 문제는 아예 자신의 소관으로 보지도 않는 것인가?

국회도 이 문제에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국민식별자의 수집을 제한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개인정보보호법이 이미 재작년에 발의되었다. 개인정보보호법이 3개나 발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논의는 진척되지 못한 채 1년이 넘게 상임위 서랍 안에서 잠자고 있다. 작년 초 연예인 X-파일 사건이 터졌을 때는 개인정보보호법 제정이 시급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던 그들이다. 이번에도 개인정보 보호해야한다고 잠깐 반짝하고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넘어가는 게 아닐지 걱정된다.

현행 주민등록번호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개선 방안까지 이미 오래 전부터 제안되어 왔다. 주민등록번호를 민간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해야 한다는 것, 공공 영역에서도 본래의 목적 외의 용도로는 사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 주민등록번호 체계를 일련 번호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 평생 불변하는 고유 번호가 아니라 변경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국가가 중앙에서 관리하는 번호가 아니라,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별도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 등등이다. 그러나, 정부는 어느 것 하나 진지하게 검토한 바가 없다. 오히려 업체들 배만 불려줄 전자주민카드 도입에만 관심이 가 있을 뿐이다.

나는 불안하다. 내 주민등록번호가 리니지에서 뿐만 아니라, 지금 어디서 또 이용되고 있을지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리니지 사이트에서 내 계정을 삭제하고, 주민등록번호 실명 인증이 없어진다고, 이미 유출된 나의 주민등록번호가 앞으로 도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어찌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렇게 요구할 수밖에 없다.

내 주민등록번호를 바꿔도~~~
덧붙이는 말

오병일 님은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태그

개인정보 , 주민등록번호 , 리니지 , 엔씨소프트 , 명의도용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