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우당, 목숨을 던져 ‘동성애자 해방’을 외치다
3년 전 4월 26일. 시조시인이 되기를 원했고,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에 저항했던 한 동성애자가 자신이 몸담고 있던 동성애자 인권단체 사무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까지 본명을 드러내지 못한다. 보통 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지며, 이 사회의 모순에 저항했던 이들을 운동진영에서는 열사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는 열사는 고사하고, 죽어서도 자신의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동성애자였다. 그런 그를 지인들은 육우당(六友堂)이라고 부른다. 녹차와 파운데이션, 술, 담배, 묵주, 수면제를 자신의 여섯 친구로 여겼던 육우당.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유서에서 “몰지각한 편견으로 이 사회는 수많은 성적소수자를 낭떠러지로 내몰고 있다”며 “내 한 목숨 죽어서 동성애사이트가 유해매체에서 삭제되고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준다며 그것으로 족하다”고 적고 있다.
육우당이 세상을 떠난 해인 2003년은 동성애 왜곡과 동성애자들을 차별하는 청소년보호법상 동성애 조항을 삭제하라는 운동이 거센 때였다. 그러나 당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 보수적 기독교 단체들은 동성애에 대해 ‘소돔과 고모라’를 운운하는 등의 ‘망언’을 서슴치 않았다.
그즈음 육우당은 세상을 떠났고, 그로부터 1년 후인 2004년 4월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심의기준에서 ‘동성애’ 조항은 삭제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죽음 이후 청소년 성적소수자 문제는 인권운동진영의 화두로 떠올랐다.
"그가 살고자했던 자유로운 세상을 위하여“
지난 21일 고려대 생활도서관에서는 사회적 차별과 편견에 목숨을 바쳐 저항한 고 육우당을 기리는 3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이날 추모제에는 성적소수자단체, 인권단체, 그리고 청년 기독교인들도 자리를 함께해 ‘동성애자 해방’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고 육우당의 죽음의 의미를 기렸다.
연대사를 한 선우유리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활동가는 “여전히 성적소수자들은 내 안의 일부분을 죽이고 살고 있고,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고 살아간다”며 “그러나 육우당의 죽음이후 작지만 변화가 있어왔고,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는 성적소수자들에 대한 모든 차별과 폭력에 더욱 힘차게 저항해야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경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는 육우당의 죽음과 관련해 “동성애자 해방을 위해 함께 싸울 수 있는 동지 한명을 잃었다는 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며 “모든 성적소수자들의 인권과 행복한 삶을 위해 죽어간, 그리고 그로 인해 큰 사회적 파장을 미쳤던 육우당의 삶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추모제가 열린 이날 시조시인이 꿈이었던 육우당이 직접 쓴 시들과 일기들이 ‘내 혼은 꽃비 되어’라는 제목의 한권의 책으로 엮여 출간되었다. 추모집 편집을 맡아 진행했던 해와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는 간행사를 통해 “추모집의 글들은 표면적으로는 스스로 죽음을 택한 한 동성애자의 고백이지만, 그 이면에는 그로 하여금 안타까운 죽음을 선택하도록 만든 사회의 억압과 차별이 자리하고 있다”며 “다시금 떠난 이에 대한 그리움과 남은 자의 죄스러움을 천국에 있을 고인에게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육우당은 떠났지만, 이날 추모제에 참석한 그의 ‘동지’들은 다시 한번 ‘희망’을 이야기했다. 고승우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는 “이 자리는 단지 슬픔을 드러내는 자리가 아니라, 그가 살고자했던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의지를 다지는 자리”라고 강조했다. 장병권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국장 역시 “육우당의 실명을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그날, 또 성적소수자들이 원하는 세상에 한발 짝 더 다가가길 바라면서 다시 한번 희망을 품고자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