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일정을 맞춘 것처럼 10일(수) 여의도를 거점으로 흥미로운 공청회와 토론회가 열렸다. 공청회는 한국금융연구원이 주최한 ‘자본시장관련법 통합에 따른 금융법 통합의 기본 방향과 주요 과제(자본시장통합법)’. 그리고 정책토론회는 재단법인 열린정책연구원이 개최한 ‘한국형 금융허브 어떻게 모색할 것인가(금융허브)’이다. 이런 회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려면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참가자들의 면면이 거북스럽기 그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의지와 계획을 알기에는 더 없이 유익한 자리였다.
이 두 회의 공통점은 향후 한국의 금융시장의 대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는 것 또한 이런 지각변동은 제조업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전반에도 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 다양한 정책을 통한 사전 정비 작업의 과정 이라는 점과 한미FTA와도 별개가 아니라는 점 등이다.
이미 정부가 2007년 입법화 할 것을 예고한 ‘자본시장 통합법(가안)’ 공청회는 3번 연속 자료집 매진과 공청회 자리 부족 사태를 일으킬 만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법안에 대한 시장의 반응을 공무원 동원으로 자리채우기가 아닌 자발적 참가자들이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관련해 국회에서 개최된 금융허브 토론회는 참가한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눈부시다. 이찬근 인천대 교수의 사회로, 리처드 로버츠 영국 서섹스대학 교수의 발제로, 송영길 열린우리당 의원, 이원식 재경부 금융허브 기획 과장, 제임스 루디 마켓포스 대표, 윤태순 자산운용협회 회장, 구안옹 한국투자공사 CIO, 에반 헤일 피델리티 코리아 사장, 오규택 한국 채권 연구원 원장, 박기순 산업은행 동북아연구센터 센터장 등. 단순히 학자들의 토론회 참가가 아니라 실제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선수들이 참가했다.
자본시장통합법이 국내 금융시장 정비와 제도 장치 마련이라면 금융허브는 ‘이제 자본시장통합법’도 정비됐으니 ‘허브로 나갑시다’를 결의하는 장이었다. 그리고 이는 국민연금, 퇴직연금제 시행, 사모펀드법, 간접자산운용업법, 투자공사설립 등 일련의 금융시장 정비를 위한 국내법/제도 정리의 완결판을 위한 테이프를 끊었으니 달리기만 하면 되는 형세다. 금융 허브 토론회 내내 외국인 사장들이 ‘허브 현실 가능성’에 대한 ‘믿음’과 한국인의 저력에 대한 ‘믿음’을 그렇게도 높여 외쳤던 것이 거북스러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금융정책연구원은 ‘자본시장 통합법’ 공청회를 통해 아래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
-. 자본시장통합법은 규제완화를 통한 자본시장의 혁신과 구조적 변화를 촉진함과 동시에 통합금융법 제정을 위한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 자본시장통합법을 통한 규제완화에 따른 금융투자회사의 자율성 확대와 병행하여 금융투자회사의 투자자에 대한 책임과 규율은 후속 조치를 통해 강화될 필요가 있다.
-. 금융 산업의 장기적인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금융 산업을 개편할 필요성이 있으며 그러한 개편과제를 효과적이고 일관성 있게 추진하기 위해서 자본시장통합법을 모델로 하는 금융관련법의 정비,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
각종 장벽과 규제를 완화하고, 선물-채권-운용 등 각종 금융업의 겸영과 금융상품의 포괄주의를 도입 등 정부 정책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있으되 어떻게 라는 부분은 구호만 있을뿐 구체적 내용은 아직도 물음표 인 상태다. 말 그대로 재경부 주도의 횟수 채우기, 여론 맞추기 식의 형식적인 공청회란 평가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에 비하면 금융허브 토론회는 좀더 생동감 있다. 이원식 재경부 과장은 2010 자산운용 허브, 2015년 아시아 3대 금융허브가 최종 목표임을 밝히며 ∆자산운용업 육성 ∆금융시장 발전(금융, 채권, 외환시장 등) ∆한국이 강한 금융산업(개발 금융 등)의 발전 ∆글로벌 파이낸셜 네트워크 확장 ∆한국 투자공사 설립 ∆규제 시스템과 감독 시스템 혁신 ∆Living Conditions 건설 등 7대 과제를 꼽았다.
2009년 외환시장 자유화 추진 등 현재에도 ∆자본시장통합법 마련 중 ∆신상품 규제 제거 등 지속적인 규제완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원식 재경부 과장은 “노동, 자본, 기술 등이 이미 국경을 넘나들고 제도만이 남은 상황”이라며 “가장 효율적 제도를 가진 나라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며 차세대 산업으로의 ‘한국에 금융허브가 있어야 할 이유’를 강변했다.
10분의 토론시간을 30분 동안 점유하며 판매과장처럼 영어로 씌여진 파워포인트 자료를 설명하더라도 항의 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원식 과장이 그간 정부의 금융허브 추진 경과를 잘 설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간간히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도 빼 놓을 수 없다.
“국민연금, 퇴직연금제 등의 시장이 확대되고 있고, 외환보유고도 높아 자금의 공급 및 자산 수요가 많다. 저금리 추세에 돈 굴릴 곳이 마땅치 않으니 자산운용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한계에 왔기 때문에 그 거품 제거 시 그 돈을 자산운용시장으로 이동시켜야 한다”
“만약 2008년 월드컵 이후 중국이 부실채권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 IMF때 체득한 전략을 활용해 한국도 경제적 실익을 챙겨야 하지 않겠냐”
“론스타를 국익적 차원에서 몰아세우지 말자. 한국도 중국이나 아시아에서 돈 많이 벌면 지금 한국 벌어진 과정이 해외에서 반복될 수 있다”
모인 사람들이 친근해서 그런지 사적인 자리에서나 나올 만한 예시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다.
제임스 루니 대표는 "세금의 최소화"를 외친다. 이미 한국은 국제 금융도시로 알려진 런던에 비해서도 자본소득세도 없고, 거래세도 현저히 낮음을 인정하면서도 “불필요한 세제 시스템을 만들지 말고, 등산하는 자세로 금융허브를 추진하자”고 한다. 그리고 IMF 직후부터 지금까지 한국에 살고 있다는 자신의 경험을 들며 “한국인의 저력을 믿는다”고 강조한다. 이 칭찬이 참이나 불편하고 기분 나쁘다.
오규택 한국채권연구원 원장은 서울은 인건비도 비싸고, 생활비도 많이 나오니 소위 영국의 더블린 모형(미들/백 오피스 기능 중심의 국제금융허브)을 영어 교육도 가능하고 규제도 완화된 제주나 인천에서 특구를 만들어 보는게 어떻겠냐고 ‘아이디어’를 낸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특구, 기업자유도시, 제주특별자치도 등의 흐름도 별개가 아니라면 과장된 해석일까.
박기순 산업은행 동북아연구센터 센터장은 “중국의 서부대개발 등 개발금융 수요가 존재하고, 러시아 몽골 등 에너지 및 자원개발 금융 수요가 있고, 북한의 개방 추세와 정치적 변화에 따른 개발 금융 수요 있음”을 들며 “통일한국의 투자 인프라 개선에 기여 하겠다”는 의지를 개발금융의 가능성과 NADFC(Northeast Asia Development Financing Council) 동북아 금융협력 추진의 포부를 밝혔다. 현재 산업은행은 로만손, 대마방직 등 북한진출 기업에 금융지원을 진행하고 있다. 동북아개발은행 창설의 여지도 남아 있다. 금융 장벽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이런 금융시장의 변동은 회계, 법률시장의 변화, 서비스 이동에 관한 모든 내용과 연결될 여지가 있다. 제임스 루니 대표는 “외국 자본들이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해도 홍콩 변호사들이 자문을 한다. 해외 변호사들이 한국에서 금융시장에 팀으로 활동할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장벽을 낮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국과 다른 회계 규정을 국제 규정에 맞춰야 하고, 이들의 자유로운 이동도 보장해야 한다. DDA 서비스 시장 협상의 법률시장개방 내용과 왠지 비슷하다.
그리고 이런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보장은 위성 방송 시장의 소유제한 철폐, 병원의 투자 제한 완화, 한국방송광고공사의 해체, 투자에 대한 미국법 적용 등 한미FTA의 투자 부문 그외 협상 의제들과 맞물린다.
국제 모형의 홍콩, 지역 중심의 싱가포르, 국내 시장으로의 역할을 하는 동경, 최근 상해가 금융허브의 노력을 하고 있으나 진정 아시아의 금융허브를 꼽는다면 홍콩과 싱가포르임을 강조한다. 그럼 제 3의 금융허브는? “한국이요”가 이들의 공통된 대답이었다. 한국을 '금융 허브로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해 '규제 완화'와 '세금 최소화'라 답한다.
초대형 자산운용사인 미국계 피델리티의 에반헤일 피델리티 코리아 사장은 이날 “50년 전 한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인들은 역동성이 강한 국민들, 금융허브가 야심찬 목표이나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며 희망의 메시지를 모았다. 그들의 바램일 터.
먹기 좋게 정리하고, 한미FTA가 아니어도 국내 제도 정비를 통한, 정책을 통한 자본이동의 자유화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들이 난무한, 그리고 아직 한국은 그럴 가치가 남아있는 시장임을 강조하는 토론회와 공청회 였다. 물론 그들에게 한미FTA협상 까지 된다면 금상첨화일터. 지피지기(知彼知己)에는 좋은 자리였는데 이후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답을 찾기가 막막한, 정말 답답한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