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는 이번 선거실명제 시행에 따라 그간 실명제의 위헌성을 지적하며 폐지를 주장해 온 진보언론의 불복종 운동도 본격화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실명제 반대 입장을 표명해 온 일부 인터넷언론사들이 막상 선거실명제가 시행되자 태도를 바꿔 민간신용정보회사의 실명인증시스템을 설치하는 등 사실상 선거실명제를 전면 수용하고 있어 선거실명제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18일 0시 기해 선거실명제 본격 시행
이번 선거실명제는 공식선거운동이 끝나는 31일 0시까지 시행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는 이 기간 동안 대상 언론사 사이트에 의무적으로 실명인증시스템을 설치토록 하고 있고, 이에 따라 독자들은 언론사 홈페이지에 댓글 등을 남길 때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한 실명인증을 거쳐야 한다. 선관위는 언론사가 실명인증시스템 설치를 거부할 시 과태료 1천만 원, 익명 댓글을 삭제하지 않을 경우 건당 3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 같은 선거실명제에 대해 그간 정보인권단체들과 진보적 언론들은 △정시사상·표현의 자유 침해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 △죄형법정주의 위반 △개인정보 명의 도용 등 선거실명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즉각적인 폐지를 강력 촉구해왔다.
전국 104개 인터넷 언론사와 31개 인권사회단체 등으로 구성된 ‘선거실명제폐지 공동대책위원회’(실명제폐지공대위)는 그간 “선거실명제가 시행되면 국민들은 자신이 올리는 글이 문제가 되지 않을지, 사전에 자기 검열을 해야만 할 것”이라며 “인터넷 실명제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국민들의 입과 귀를 봉쇄하는 그 어떤 정부의 정책보다도 위헌적인 조치이며,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제도”라고 주장하며 선거실명제 강행 시 불복종운동 돌입 의사를 밝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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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넷방송국·이주노동자방송국 등 선거실명제 전면 거부
이에 따라 노동넷방송국, 이주노동자방송국, 울산노동뉴스 등 진보적 인터넷매체들은 선거실명제 전면거부를 선언하고, 18일부터 본격적인 불복종운동에 돌입했다. 이들은 실명제가 시행되는 선거 시기 동안 실명인증시스템 설치를 전면 거부하는 한편, 독자들의 익명 댓글란과 자유게시판 등도 원래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17일 전면거부를 공식 선언한 노동넷방송국은 “인터넷 실명제는 국민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 등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본원적인 권리를 짓밟을 수 있는 지극히 위험한 제도”라며 “선거실명제는 물론 그 이후에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에 의해 강제되는 어떠한 인터넷 실명제 시도에도 굴하지 않고 전면 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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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대자보, 참말로, 디지털 성남일보, 전북인터넷대안신문 참소리 등의 진보적 인터넷언론들이 댓글란과 게시판을 폐쇄하는 형태로 선거실명제 불복종 운동을 벌이고 있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해당 언론사 사이트에 독자들이 익명 글을 올릴 공간이 없다면, 실명인증시스템을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 이들의 조치는 차라리 게시판을 닫더라도 국가권력이 국민들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검열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영세한 진보적 인터넷언론들이 수천만 원에 달하는 과태료를 각오하고, 또는 독자들의 소통공간인 댓글 란과 게시판 자체를 폐쇄하면서 선거실명제에 반대하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이들은 독자, 더 나아가 국민들의 정치사상·표현의 자유 그리고 언론의 자유를 지켜내는 것이 바로 진보언론의 소명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오병일, “인터넷언론, 이용자 표현의 자유 보장 보다 밥그릇 챙기기에 집중”
소수의 진보적 인터넷언론들이 이용자의 권리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정부의 선거실명제 강행에 맞서 전면 불복종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보수적 종이신문들은 물론 그간 실명제 반대 입장을 표명해 온 이른바 ‘주류’ 인터넷매체들의 반응은 썰렁하다.
18일 선거실명제가 시행되기 이전부터 민간신용정보회사를 통해 실명인증시스템을 설치하고 시행에 들어가는 인터넷언론이 있는가하면, 그동안 실명제폐지공대위에 참여하고 있던 진보적 인터넷언론사들 조차 막상 실명제 시행에 돌입하자 실명인증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이 같은 인터넷언론들의 태도에 대해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이미 민간 실명인증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인터넷 언론사들 입장에서는 이번 선거실명제 시행이 그리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며 “언론사들이 독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문제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독자들과 네티즌들은 선거실명제 시행으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직접적으로 침해받게 되었지만, 언론사들은 자신들의 밥그릇이나 챙길 생각을 하고 있다”며 “일부 인터넷 언론사들은 겉으로는 실명제에 반대한다며 표현의 자유를 운운했지만, 결국 실명제를 이용해 회원가입 이벤트나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이번에 선거실명제 시행에 들어간 언론사들의 상당수는 행정자치부의 인증시스템이 아닌, 자체적인 회원인증시스템으로 실명인증을 하고 있다. 따라서 실명제를 시행하고 있는 언론사에 글을 남기기 위해서는 단순히 실명인증을 받는 것이 아니라, 아예 회원가입을 해야만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오병일 활동가는 덧붙였다.
한편, 민중언론 참세상은 지난 14일 선거실명제 전면거부를 선언했고, 현재 선거실명제 반대 특별페이지를 구성해 다양한 방식의 불복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