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미 씨는 군산휴게소 노동자다. 아직 세상의 부조리를 알기에는 너무나도 맑은 얼굴을 지니고 있다. 가랑잎 구르는 소리만 들어도 자지러지게 웃던 소녀의 눈에는 어느새 분노가 스며들고 있다.
버스에서 내린 노동자들은 흥분했다. 이야기하자고 왔는데 문전박대를 하는 법이 어디 있냐며, 철문너머로 나팔을 불며 항의를 한다. 임은미 씨도 목에 걸고 있던 빨간 나팔을 입에 물고 철문 앞에 다가선다.
닫힌 철문에 나팔을 불고
“하루 12시간 맞교대해요. 주말에 쉬는 것은 상상도 못하고, 평일에 하루씩 쉬지요. 생리휴가나 월차휴가는 쓰지도 못하지요.”
휴게소 노동자들은 근무가 시작되면 친구들 만날 시간도 없다고 한다. 12시간 주야 맞교대에 휴일에는 쉬지를 못하니, 자연히 친구 만나는 일과 멀어진다고 한다.
“우리가 받는 기본급은 하루 12시간 근무해서 98만 원이예요. 야간근무를 하면 수당으로 하루 6천원을 받아요. 초과근로수당이 뭔지, 야간수당이 뭔지도 모른 체 주는 대로 받은 거죠.”
잔업과 야간수당을 계산하면 이들이 받는 급여는 법정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 수당은 제쳐두고, 채용할 때 약속했던 상여금 200%는 여태껏 한 번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번도 구경 못한 상여금
2001년 12월에 문을 연 군산휴게소는 2004년 1월 찬효산업에 위탁되면서 문제가 발생을 한다. 찬효산업에 위탁되면서 연봉이 적게는 200만 원에서 500만원까지 줄어들게 된다. 2004년에 60명이었던 근무인원은 찬효산업이 위탁을 맡으면서 36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만큼 남은 사람의 일은 많아져야 했다.
또한 휴게소에 물건을 납품하는 업체의 결재대금도 상습적으로 지급하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도로공사로부터 찬효산업은 수차례 경고를 받았다.
“숙소에 기름을 납품하는 업체에 대금을 지불하지 않으니, 겨울에 숙소 보일러 기름이 떨어져도 가져다주지 않아요. 지난겨울 눈이 많이 왔잖아요. 집에도 가지 못하고 숙소에서 자면서 일을 하는데, 냉방에서 발발 떨며 자야했고, 찬물로 샤워를 해야 했어요. 직원들의 복지에는 하나도 신경을 쓰지 않아요.”
한겨울 찬물로 샤워를 하며
임은미 씨는 하루 열두 시간 쉬는 시간도 없이 다리가 탱탱 붓도록 서서 일을 했다. 고객들이 짜증을 내도, 억지를 부려도 웃으면서 맞이했다. 군산휴게소를 찾은 고객들에게 좀 더 좋은 기억을 남기려고 최선의 노력을 했다. 밥 먹는 시간 삼십분을 제외하고는 주야 열두 시간 교대하며 웃으며 고객을 맞이하였다.
“전북평등노동조합에 가입했어요. 노조에 가입하자 찬효산업은 차마 생각도 못한 방법으로 노조탈퇴를 강요했어요. 어처구니없는 누명을 씌워 해고를 하고, 폭력배를 동원하여 겁을 줬어요. 입점해 있는 업체를 계약해지하여 조합원을 해고 하고. 세상이 참 무섭다, 사는 게 너무 두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화를 걸어 성폭력도 가했다고 한다. 한 조합원은 성적 수치심과 모멸감에 하혈을 하는 등 스트레스를 받아 결국 사직서를 내는 일도 벌어졌다.
노조에 가입한 군산휴게소 노동자들은 4월 18일까지 10차에 걸친 단체교섭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교섭은 한 번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4월 18일 파업에 들어가며,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성폭력도 서슴지 않고
“파업에 대한 회사의 답은 어이없게도 영업 중단이었어요. 파업에 들어간 지 3일 만에. 기숙사마저 폐쇄를 하고요. 도로공사는 한발 더 나가 4월 21일 군산휴게소 출입구를 막고, 화장실마저 사용하지 못하게 했어요. 전기와 수도도 끊어버리고.”
고속도로 휴게소는 단순한 이익을 남기기 위한 사업장이 아니다. 고속도로는 사기업이 만든 것이 아니라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휴게소는 장거리 운전을 하는 사람에게는 생명과 연관된 안전시설이다. 노조에 가입했다고 일방적으로 사기업이 영업장 문을 닫고, 도로공사는 입구를 봉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군산휴게소 주변 갓길에는 쉴 곳을 찾지 못한 운전자들이 차를 세워두고 있어요. 위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위탁업체가 영업을 하지 않아도 휴게소의 화장실과 주차장은 이용할 수 있게 해야죠. 세금으로 만들어진 도로를 통행료를 내고 이용하는 국민에게 당연히 보장될 권리에요.”
도로공사는 이윤만...생명은 나몰라
이희철 죽암휴게소 노조위원장은, “도로공사는 위탁업체로부터 매출의 18%를 임대료로 받아갑니다. 휴게소의 임대료만 챙기면 도로공사의 역할이 끝나는 게 아닙니다. 막대한 이익을 휴게소에서 받아가는 도로공사는 휴게소 노사 간의 제3자가 아닌 당사자입니다. 당연히 휴게소 폐쇄 등의 책임은 도로공사에 있는 겁니다.”고 주장을 한다.
5월 19일 공공연맹 대표자는 한국도로공사와 면담을 가졌다. 면담의 결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한가로운 답변뿐이다. 찬효산업은 영업을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도로공사와 위탁계약은 아직 유효하다. 도로공사는 절차를 걸쳐 휴게소가 정상화가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휴게소 화장실과 주차장은 개방해, 고속도로 이용자에게 편의를 제공해야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도, 도로공사는 이 자리에서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꼬박꼬박 매출의 18%를 챙겨가고, 이제 와서는 나 몰라라 해서야 되겠습니까? 찬효산업이 영업을 하지 않겠다는 데 시간을 끌 이유가 있습니까? 일방적으로 문을 닫았으면, 이에 대한 책임을 묻고, 계약을 해지하여 하루빨리 정상화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요.”
하루빨리 휴게소 정상화 해야
인터뷰를 하자고 하니 수줍어하며 거부하던 임은미 씨의 목소리는 점점 강해지고 또렷해진다. 노조에 가입하고, 파업 한 달을 넘기면서 임은미 씨의 눈도 가슴도 바뀌어가고 있다. 멋모르고 시작한 일터에서, 자신이 노동자임을 찾아가고 있다.
“이젠 머리띠도, 조끼도 어색하지 않아요. 남들이 파업을 할 때는 몰랐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아요. 꼭 저희 일터를 찾을 거예요. 다시 군산휴게소 문을 열고, 휴게소를 찾는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로 보답할 거예요. 더 많은 사람들이 저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었으면 좋겠어요.”
이 날 도로공사 집회에서 오은옥 조합원이 그 동안의 투쟁과정을 발표하자, 모두들 눈자위가 붉어졌다. 임은미 씨도 설움이 가슴을 뚫고 일어나 한없이 눈물을 쏟았다. 집회를 마치고, 도로공사 입구를 막고 있는 경찰의 방패를 뚫고 본관에 들어가기 위해 몸싸움을 시작하자 임은미 씨는 맨몸으로 방패를 향해 몸을 던진다.
임은미 씨의 첫 직장, 군산휴게소. 짧은 직장생활에서 임은미 씨는 사회의 너무 많은 것을 겪고 있다.
“동료들이 있어 힘들지 않아요.”
인터뷰를 마친 임은미 씨는 다시 경찰의 방패 밑에 등을 기대고 앉는다. 그가 부는 나팔소리가 멀리 퍼져간다. 어둑해져 다시 버스에 몸을 실고 군산으로 떠나는 그의 뒷모습에 석양이 내려앉는다. 내일 아침에는 희망의 웃음이 그의 얼굴에서 피어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