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고 힘든 하루를 보내고 초저녁 설핏 든 잠을 전화벨 소리에 깨고 이렇게 모니터 앞에 앉았다. 오늘은 아주 길고 힘든 하루를 보냈었어. 날벼락 같은 너의 죽음을 듣고도 병실에 갇혀 꼼짝 못하는 내 자신도 원망스럽고 그렇게 황망히 가버린 너도 야속하고 그렇더구나.
너를 민중의료연합 사무실에서 권미란의 소개로 처음 보았을 때 구구한 자신의 소개를 하지 않아도 너의 살아온 이력을 다 알 것 만 같았어.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에 화상을 입은 듯한 너의 외모를 보고 나 못지않게 아프고 힘들게 살아온 친구라는 걸 단박에 느끼면서 진 한 동질감을 느꼈었다. 너나 나나 어떻게 병마와 싸워 왔는지 앞으로도 어떻게 병마와 싸워야 하는지 서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뭔가가 있었다고 생각해. 우린 한번도 서로의 아픈 이력에 대해 얘기해 본적이 없었잖아.
너가 앓고 있던 백혈병이나 내가 앓고 있는 에이즈란 병이나 환자들의 문제는 거의 대동소이 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어떤 방법이 환자들의 권익에 도움이 될까를 늘 고민하고 문제의 핵심들을 잘 짚어내던 풍부한 너의 경험과 지식에 배울 점 이 참 많은 친구라고 늘 생각 했었다.
그리고 훗날 에이즈 환자나 백혈병 환자나 모든 환자들이 다같이 연대하여 환자의 권익을 찾기 위한 일들을 해야 한다고 그래 놓고서 그렇게 황망히 가버리다니,,,
나의 신체 한쪽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든다. 그렇게 위태롭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너에게 내가 참 많은 기대를 했었나봐. 죽음은 망자의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산자의 것이라는 말이 있던데 그 말 이 딱 맞는 것 같구나.
나 역시 앞으로도 내가 얼마나 살아 나갈 수 있을까 문득문득 드는 생각에 고개를 가로 저으며 ‘얼마를 사는 게 뭐 중요해 하루를 살아도 열심히 사는 게 중요하지’라고 다짐 했었는데, 너의 죽음을 접하고 얼마를 사는 것도 중요 한 일이구나라는 걸 깨닫게 된다.
나도 참 우매한 인간에 불과 한 것 같아. 난 죽음 이라는 걸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었어. 훌쩍 떠나버리면 그만 아닐까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아. 남아있는 사람도 생각해야 한다는 걸 또 배우게 된다. 아마 너도 그렇게 편안히 눈감지는 못했을 것 같아.
그동안 너를 힘겹게 짓누르던 삶의 무게를 이제 그만 내려놓고 먼저 간 그곳에서라도 고통 없이, 아픔 없이, 질병 없이, 편안히 살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함께 하려던 우리의 일들을 너를 생각해서, 나를 위해서 그리고 남아 있는 이들을 위해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먼저 간 그곳에서 라도 날 지켜봐줄 거 라 믿는다!
상덕아! 그곳에선 제발 아프지 말아라!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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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기 님은 HIV/AIDS 인권모임 나누리+ 대표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