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손전화로 문자가 왔다.
“외진 곳까지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레이크사이드 장보금”
정말 외진 곳이다. 외딴 마을 시골길이 끊기는 곳이 골프장 정문이다. 뒤로는 150만평 산을 깎아 만든 골프장이 있을 뿐. 길옆으로 도랑이 흐르고, 십여 가구 남짓한 시골마을이 있다. 나무가 우거진 골프장과 대조적으로, 정문 앞 천막 앞에는 해를 가릴 나무 한그루 없이 황량하다.
외딴 곳, 길은 끊기고
외지다 보니 외로워 보인다. 덩그라니 세워진 천막도, 길옆에 걸린 구호도 외롭다.
▲ 레이크사이드CC노동조합 장보금 직무대행 |
아스파트 위에 천막을 치고, 그늘 한 줌 없는 도로 위에 펼침막을 든 레이크사이드 노동자들이 있다. 고급 승용차가 줄을 지어 씽씽 골프장으로 들어가지만 이들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하지만 레이크사이드 노동자에게는 이곳은 삶터이다. 빼앗길 수 없는 일터다. 지금은 일터 밖에 쫓겨난 이들에게 레이크사이드CC가 대부분 자신들의 첫 직장이다. 10여 년이 넘게 이곳에서 일해 온 사람도 있고, 스물의 청춘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첫 직장인 레이크사이드는 호되게 이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들을수록 기가 막힌다. 웃을 수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보다 어이없어 웃음이 먼저 나온다. 기막힌 사연에 연민보다는 분노가 솟구친다.
외진 곳에서 고맙다는 문자를 보낸 장보금 씨는 227일 파업을 이끌고 있는 레이크사이드CC노동조합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그가 용역경호원들의 폭력으로 얼룩진 이곳에서 위원장 업무를 하고 있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그마한 몸짓만큼이나 목소리도 가냘프다. 아픔과 분노로 가득 차 눈초리가 위로 치켜 올라갔으리라 생각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눈은 선하다 못해 쨍하니 맑다.
카메라를 챙기며 차에서 내리자, 선전전을 하던 그는 반갑게 달려와 맞이한다. 외진 곳의 외로운 파업만큼이나 가슴 깊숙이 자리 잡은 이야기를 한없이 쏟아낸다. 미처 취재수첩도 꺼내지 못했는데….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수첩은 끝내 꺼내지를 못했다.
“너무나 안타까워요. 우리는 뭐 크게 개선해 달라고 하는 것 없거든요. 이쪽저쪽 눈치 보지 않고 편안히 일하는 직장을 갖고 싶었어요. 고용안정이 우리의 요구에요.”
한없이 쏟아지는 이야기
레이크사이드CC는 형제간의 경영권 다툼으로 얼룩졌다. 결국 법정까지 가는 집안싸움으로 이어진다. 2004년 7월 법원은 지금의 대표인 동생의 손을 들어준다. 경영권을 둘러싸고 형과 아우는 서로 용역경호원을 200명씩 동원하여, 총 400명의 용역경호원이 골프장에서 판을 쳤다.
경영권을 두고 벌어진 집안싸움에 직원들은 고용불안을 느꼈고, 안정된 일터를 지키려고, 2004년 8월 2일 노동조합을 만들게 된다.
“편 가르기를 했어요. ‘이쪽 편에 서지 않으면 절반은 물갈이를 하겠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했죠. ‘줄을 잘 서야지 너네가 편하지 잘못하면 패가망신한다.’는 말도 하고요. 저희에게는 가정의 생계가 달린 일터가 형제의 경영권 다툼에 희생물이 된 거죠.”
그 와중에 첫 번째 희생자가 나온다. 전산실에서 근무하는 김도영 씨가 지금 사장의 명령을 어기고, 예전 사장의 편에 섰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다.
형, 아우의 경영권 다툼에 노동자는 새우등
“형, 아우 양측에서 동원한 용역들이 사장실은 물론 경리, 총무, 전산실 사무실 앞에 진을 치고 있다가 서로 치고 받고 야단이 아니었어요.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게 아니었어요. 이쪽저쪽 눈치를 보며 눈칫밥을 먹어야 했고, 직원이 희생자가 되어 부당해고를 당하게 된 거죠.”
노동조합은 교섭을 요구하지만, 경영진은 이런저런 구실로 교섭을 지연을 시켰다. 조합사무실마저 만들지 못하게 하며 노조를 무시한다. 11차례의 교섭은 노사를 인정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가지 못하고, 불신을 키웠다.
“10월 16일 파업에 들어갔어요. 파업에 들어간 게 아니라, 파업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게 맞아요. 회사는 11월 초에 직장폐쇄를 했고요. 아니 직장폐쇄를 했다며 속이고 조합원을 내쫓으려고 한 거죠.”
파업! 그러면 직장폐쇄다?
직장폐쇄 된 레이크사이드CC는 얼마 전까지 누린 아시아 최대의 골프장이라는 명성만큼이나 쉴 새 없이 고급 승용차들이 오가고 있다. “저렇게 운영하면서, 폐쇄라고 해요. 대체인력을 동원해 뻔뻔스레 정상운영을 하면서요.”
파업에 들어가자 11명의 조합원을 해고한다. 감봉 등 징계는 셀 수 없다. 영업을 방해했다며 305억 원의 손해배상청구도 했다.
“말도 말아요. 손해배상 청구한 돈이 305억 원이어요. 조합원들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요. 부모한테도 손해배상을 청구했다고 해요. 여기다가 폭력을 쓴 것을 이야기하면, 차마 치가 떨려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파업에 들어가자 불법대체인력을 고용하여 골프장을 운영하려는 것을 노조에서 발견했다. 노조는 항의를 하려고 사무실로 갔다.
“용역들 삼사십 명이 몰려와요. 다짜고짜 발로 차고, 어깨를 짓누르고, 넘어뜨리고…. 한 조합원은 엄지손가락이 부러져 전치 6주의 진단을 받았고, 여성조합원 여러 명이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어요.”
치가 떨린 폭력의 시작
폭력은 사용자가 고용한 용역경호원들이 썼는데, 고소고발은 조합원이 당한다. “어처구니없게 우리가 대체인력을 감금했다고 고소를 했어요. 항의하러 간 우리는 대체인력을 보지도 못했는데. 진단도 10주가 나왔어요. 조합원이 감금해서 심리적 불안정 고통을 받았다고. 자그마치 10주요.”
“조합사무실도 없잖아요. 천막이라도 칠 수 있게 해야지요. 1층 로비까지 어렵게 들어가 평화 집회를 하고 있었어요. 갑자기 2층에서 소화기를 뿜어대는 거예요. 소화분말에 앞도 보이지 않는데, 소화기 통을 1층에서 집회하고 있는 조합원에게 던지고요. 의자같은 사무집기, 접시, 유리 할 것 없이 2층에서 1층으로 집어던져요.”
새벽엔 소방호스를 끌어다가 잠자는 조합원에게 물대포를 쏘기도 하고, 잠을 자지 못하게 싸이렌을 틀기도 했다고 한다. 다시 살벌한 이야기에서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로 넘어간다.
“도저히 상상할 수없는, 살인적인 폭력을 휘두르더니, 어이없게 사무집기를 조합원이 부수고, 망가뜨리고, 난장판을 만들어서 영업을 하지 못했다고 손해배상청구를 했어요. 또 그 날은 눈이 무척 많이 와서 휴장을 할 수밖에 없었던 날이었는데도, 조합원 때문에 휴장한 것처럼 말이죠.”
살벌한 기억
용역들이 폭력을 가하는 대상은 주로 여성조합원이다. 지나가면서도 손등으로 얼굴을 툭 때린다. “말로 하자면 끝이 없어요. 머리채를 잡아당기기도 하고, 아무 이유도 없이 팔꿈치로 옆구리를 때리기도 하고, ‘***을 다 날리기 전에 입조심 해’하는 언어폭력까지.”
“아침에 나설 때면 솔직히 겁이 덜컹 나요. 오늘 가서 또 깡패들과 부딪혀야 하나. 시간이 지나 몸에 배일만도 한데 아직도 올 때마다 두려워요. 어찌 보면 두려움이 지금까지 오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사람으로는 도저히 할 수없는 짐승 같은 행동. 두려우면서도 꼭 이겨야겠다는 용기를 북돋아주는 것 같아요.”
두들겨 맞으면서 제대로 항변은커녕 늘 가해자로 변하고 만다. 결국 어처구니없는 일은 황당한 일로 번진다. 지난 5월 노조위원장이 폭력으로 구속된다.
“골프장 안도 아닌 밖에 천막을 치고 3일째 되는 날 당하고 말았어요. 방송을 틀어놓고 선전전을 하고 있는데 관리자 한 명이 방송차 위로 올라가 앰프 전선을 자르려고 하는 거예요. 당연히 달려들어 말렸지요. 그 관리자가 전화를 하더니 사람을 불러요. 카메라를 가져나오라고. 사진을 찍기에 사진을 왜 찍느냐고 따졌죠. 항의한 여성조합원을 팔꿈치로 때려 넘어뜨렸어요. 서로 몸싸움이 일어났죠.”
두들겨 맞고...구속
레이크사이드CC 정문 앞에는 고성능 CCTV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몸싸움 과정이 고스란히 기록되고 있었다. 한 편 경찰은 몸싸움이 일어나자 달려와 조합원 11명을 연행해 갔고, 뒤이어 6명을 추가로 연행했다. 또한 다른 곳에 가느라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조합원 1명도 연행을 했다. 위원장, 쟁의부장, 법규부장에게 영장이 발부되었고, 영장실질심사에서 위원장은 구속 되었다.
“회사에서 경찰에 제출한 CCTV자료는 회사에 유리한 부분만을 편집한 거예요. 몸싸움을 유발하고, 조합원을 폭행한 부분은 삭제하고, 회사에 유리한 부분만을 경찰에 제출했지요. 경찰은 앞뒤 정황은 빼고 그 자료로 위원장 구속을 하였고요.”
하지만 위원장의 구속으로 침체될 줄 알았던 조합원들은 더욱 제 일처럼 앞장선다고 한다. 회사는 조합원의 집으로 ‘폭력을 써서 구속이 되는 등 정상적이지 않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다. 장보금 직무대행은 이제 조합원이 흩어지겠구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조합원 스스로가 앞장서서 뭉치는 거예요. 위원장이 없으니 스스로 해야겠다는 의지를 가져요. 각자가 알아서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너무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맙고, 또 고마워요. 조합원들이 위원장 면회 가서 큰소리 쳤어요. 잘 할 테니 걱정마라고.”
조합원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힘을 얻어가고 있다. 서로 웃으며, 남을 먼저 챙겨준다고 한다. “골프장 일이 근무시간도 나눠져 있고, 워낙 고객을 상대하느라 바쁘다보니, 동료지만 동료애를 느낄 틈이 없어요. 서로 오해도 하고요. 하지만 이제 동료가 뭔지 확실히 알았어요. 동지가 뭔지도.”
동료의 얼굴에서 희망을 본다
함께 있을 때 웃고 있다가, 집에서 전화가 오면 멀리 가서 전화를 받는다. 전화로 다투는 소리도 나고, 쥐구멍을 찾아 헤매는 모습도 보인다. 전화를 끊고, 동료 곁으로 돌아오면 신기하게도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다시 웃는다.
“악이 오르며, 조금만 더하자, 조금만 더하자하며 왔어요. 집에서 **년 소리 들어가며. 하지만 내 옆에 동료이자 동지가 있다는 생각에 할 수 있었어요. 힘이 들 때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보며 힘이 된 것 같아요. 동지애가 없었으면 오늘까지 올 수 없었을 거예요.”
서로의 얼굴이 서로를 챙겨주었다. 그 힘이 내가 힘들더라도 레이크사이드에 노동조합을 만들자는 결의를 가지게 했다.
처음 128명의 조합원이었는데, 탄압이 얼마나 심했으면, 80여 명으로 줄고, 이제 40여 명만 남았다. 생계 때문에 함께 하지 못하는 조합원이 있다. 얼마든지 이해한다고 한다. 현장에 복귀한 사람도 있다. 그것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용서할 수없는 사람도 있어요. 구사대가 되어 심지어 우리에게 폭력을 쓰기도 해요. 물론 알아요. 그 비인간적인 행동을 누가 시킨 것인지는. 하지만 용서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장보금 직무대행에게 더 이상 파업동안 일어난 이야기를 듣는 것은 고통이었다. 가슴을 후벼 파듯 아파온다. 하지만 개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더 고통스러운 일이 될 거다.
그의 딸은 이제 23개월이다. 눈에 한참 밟힐 때다. 새벽 6시까지 정문 앞에 나와 선전전을 해야 하고, 밤 11시가 넘어 집에 들어가는 엄마의 마음을 듣는다는 것은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아픔의 시간으로 빠진다.
“조합에 305억 원을 청구했잖아요. 하지만 제가 평생 가져가야 할 불신, 배신, 인간성의 밑바닥을 보고 겪었어요. 이에 대한 심리적인 치유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으로 보상받아야 하는가요? 3천5억 원을 받아도 치유될 수 없어요.”
그는 자신이 용서할 수 없는 것까지 아파한다. 그가 분노하는 것마저 아파한다. 자신이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 타고난 그의 눈처럼, 그 쨍하니 깨질 듯 맑은 눈처럼.
용서할 수 없어 아파하는 사람
뙤약볕 아래서 선전전을 하고 난 그를 다시 뙤약볕 아래로 불러 한 시간이 넘도록 붙잡고 이야기했다. 저 정문 안으로 들어가면, 정원수도 있고, 휴게실도 있는데. 골프를 하다가 쉬어가는 ‘그늘막’도 있는데.
“그래도 천막이라도 있어 행복해요. 3번 빼앗긴 천막이에요. 이제는 빼기지 않을 거예요.” 밤을 생각해본다. 인적도 없는 곳에 세운 천막. 그곳에서 돌아가며 밤을 샌다. 언제 들어 닥칠지 모를 용역들의 폭력에 떨면서 밤을 지새울 천막. 그 천막이 고맙다고 한다.
천막 안 전기밥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난다. 법규부장이 어머니한테서 얻어온 부추김치와 파김치가 익어 제 맛이 난다. 김치 덕분에 오늘은 호화로운 밥상이란다.
“라면은 이제 신물이 나요. 반찬 없어도 라면대신 밥만 먹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모두들 밥 한 공기를 후딱 비운다. 함께 밥을 먹으며, 밥을 생각한다. ‘밥’
밥만 먹을 수 있다면 행복
일터에서 쫓겨나며, 시도 때도 없이 폭력의 공포에 떨며, 찾으려는 밥. 천막마저 빼앗겨 이리저리 떠돌며 찾으려는 밥. 노동자에게 밥은 아직 뜸이 들지 않은 것일까. 목에 밥알이 넘어갈 때마다 목울대가 떨린다.
아직 해는 머리 꼭대기에 있다. 외딴 곳이라 더욱 외로워 보이는 싸움. 227일째. 오늘은 5월 30일이다. 밤에는 쌀쌀하겠지.
레이크사이드는 판교IC를 빠져나와 무조건 앞으로 가다보면 더 이상 앞으로 갈 곳이 없는 능골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오른쪽 길로 가면 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좁은 길로 2KM. 길이 끝나는 곳.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원리에 있다.
그 곳에 가면 외딴 곳에서 사랑의 모닥불을 지피는 아름다운 노동자들이 뛰어나와 반겨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