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보러 방송국을 떠난 이성 및 공공성을 찾습니다’
‘월드컵 보러 집 나간 정치적 이성을 찾습니다’, ‘열정의 중심에서 반대를 외치다’ 등 지난 6일 게릴라 문화행동을 벌였던 문화연대는 토고전(월드컵에 관심 없는 독자들을 위한 특별 써~비스 : 토고는 아프리카 서부 기니만 연안에 위치한 국가로 이번 독일 월드컵에 첫 진출, 13일 한국과 첫 예선전을 벌이게 되면서 한국 언론의 관심을 받게 됨)을 앞두고 방송사의 월드컵 중계 편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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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인권단체들이 MBC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이성적 월드컵 편성을 중지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이정원기자 |
문화연대, 다산인권센터, 인권운동사랑방 등 6개 문화인권단체는 13일 1시 MBC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각 방송사의 월드컵 중계 편성이 “언론 본분을 망각하고 사회적 책임을 외면, 상업주의를 조장한 것”이라며 “비이성적 월드컵 편성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13일 밤 12시부터 14일 밤 12시까지 24시간을 기준으로 방송 3사 월드컵 방송 편성을 분석한 결과에 따라 “각 방송사별 편성의 원칙은 예외 없이 ‘월드컵 전면도배’였다”고 밝히고 “방송사가 원칙 없이 편성함으로서 중요한 사회 의제들이 묻혀버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월드컵 관련 방송 및 영상에 노출되어 있는 시간, 25시간!
문화연대의 방송편성표 분석에 따르면 KBS1 과 KBS2의 월드컵 특집프로그램 시간이 각각 14시간 40분, 11시간으로 61.1%와 45.8%의 편성비율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KBS1과 KBS2 두 채널 모두 공영방송 KBS의 채널이라고 볼 때, KBS는 방송이 없는 낮 시간(12시부터 14시)을 제외하면 방송 편성 전 시간대를 월드컵 방송으로 배치한 것으로 보아도 과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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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메인화면 |
MBC는 토고전이 있는 13일,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종일 방송으로 특별 편성했다. 총 24시간 중 월드컵 특집 프로그램만 18시간 30분, 77%의 편성비율을 보이고 있다. MBC는 이날 아침 6시부터 2시간 동안 방송하는 뉴스 프로그램과 아침드라마를 제외하면 전 시간 월드컵 특집 방송으로 방영하며, 뉴스데스크 등 뉴스프로그램도 월드컵 특집 방송으로 편성했다.
SBS도 사실상 종일 방송이다. 오후 방송 시작인 12시부터 월드컵 특집 프로그램이 배치되었다. SBS의 경우, 총 24시간 중 월드컵 특집 프로그램이 21시간으로 무려 87.5%의 편성 비율을 보인다.
최근 월드컵을 소재로 한 광고가 특수를 누리고 있는 가운데, 각 방송 프로그램 중간 광고시간까지 합치면 시청자들이 월드컵 관련 영상에 노출되어 있는 시간은 이보다 더욱 늘어난다.
방송시장 개방 막은 이유, 공영방송의 공공성 때문이었는데....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종회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한미투자협정으로 떠오른 방송시장 개방은 방송의 공공성과 문화다양성을 위해 기필코 막아야 하는 것이었다”며 “그러나 MBC 등 공영방송이 보여준 비이성적 월드컵 방송 편성에서 방송 공공성은 없었으며, 이를 위한 투쟁의 명분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전규찬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소장은 “문화는 전체주의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공영방송에서 월드컵의 파시즘적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대로라면 공영방송을 지키고 싶지 않은 심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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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인 시위자 뒤로 '월드컵의 감동 MBC가 함께 합니다'라는 대형현수막이 보인다. /이정원기자 |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은 “한미FTA의 현안 가운데 방송쿼터 축소가 있다”며 “방송쿼터가 축소되서 자기 발등에 찍혀야 정신을 차리겠냐”며 더 이상 MBC를 공영방송이라 부를 수 없다고 규탄했다.
“G조 일정 수첩에 적어놓고 이 날짜 피해 투쟁 일정 잡아”
이날 기자회견에는 김정은 KTX노조 부산지부 문화정책담당 조합원 및 박석운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등 평택, 한미FTA, 비정규직 투쟁 등에 나선 활동가들도 참석했다.
이들은 “지난 2002년 월드컵이 어떻게 사회를 마취시켜가는가를 경험한 바 있다”며 “방송 3사가 월드컵을 생중계하는 동안 한미FTA, 평택, 비정규직 문제 등 우리 사회 중요한 의제들이 사장되었다”고 밝혔다.
박래군 상임활동가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G조인데, G조 경기 일정을 수첩에 적어놓고 다닌다”며 “이 일정을 피해서 평택 미군기지확장 저지를 위한 투쟁 일정들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월드컵으로 인한 이슈파이팅의 어려움을 밝혔다. 심지어 광화문 동아일보 앞에서 하루도 빠짐 없이 진행했던 촛불문화제는 토고전이 있는 13일 월드컵 응원단에게 자리를 내주고 광화문 열린광장에서 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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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업투쟁 100여일이 넘은 KTX승무원노조도 비이성적 방송편성을 규탄하며 1인시위자로 나섰다. |
한편 기자회견을 마치고 언론․문화․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MBC 정문 앞에서 ‘언론 본분 망각, 사회적 책임 외면, 상업주의 조장 규탄’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인다. 이들은 프랑스전이 있는 19일과 스위스전 하루 전날인 23일에 각각 KBS와 SBS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