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성전환자 호적정정 허가 첫 결정

성전환자 법률적 의미와 성별정정 원칙 확인

대법원이 성전환자의 호적상 성별 정정을 허가하는 결정을 내려 주목된다. 그간 각급법원에서 담당 판사의 재량에 따라 성전환자의 호적정정 결정이 내려진 적은 있었지만, 대법원 차원에서 성전환자의 법률적 의미와 성별정정 원칙을 확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성전환자들의 호적정정 신청이 이어지는 한편, 성적소수자 단체들과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 중인 성전환자 성별변경 관련 법안(성전환자성별변경특례법) 제정 작업에도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대법원, “성전환자,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인간다운 생활할 권리 있다”

대법원은 22일 성전환자 A씨의 호적정정신청 신청에 대해 불허결정을 내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해당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 한 A씨는 법원에 호적정정 신청을 냈다 1,2심에서 모두 기각되자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을 통해 “성전환자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향유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며 “이러한 권리들은 질서유지나 공공복리에 반하지 아니하는 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하며, 호적정정에 관한 법률 절차에 따라 호적의 성별란 기재를 바꿀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성전환자는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성정체성으로 고민하며 의학적인 치료를 받아도 해결되지 않아 결국 성전환수술까지 거쳤음에도 호적과 주민등록번호가 여전히 종전의 성에 의한 것으로 남아 있음으로써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취급되고 취업이 제한되는 등 고통을 겪어 왔다”며 이번 호적정정 허가 결정의 배경을 밝혔다.

특히 대법원은 이번 결정과 함께 “궁극적으로 성전환자에 대한 구제는 의학적·법률적 요건, 절차·효과 등에 관한 모든 사항을 정한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해결방법”이라며 성전환자 관련 입법을 촉구하는 의견을 밝혔다.

대법원 성전환자 범위, ‘치료’ 및 ‘수술’ 필요

이와 함께 대법원이 이번 결정에서 호적상 성별을 변경할 수 있는 성전환자의 법률적 의미와 요건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

그러나 대법원이 성전환자에 대해 ‘정신과적으로 성전환증의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아도 위 증세가 호전되지 않은 자’라고 규정하는 등 성전환자를 치료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어 향후 성전환자 범위와 호적정정의 법적요건 등에 대한 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재판부는 △생물학적인 성에 대한 불일치감과 반대의 성에 대한 귀속감을 느끼고, 일상생활에서 반대의 성을 가진 사람으로 행동하고, 자신의 신체 역시 반대의 성으로 만들고자 원하여 △정신과적으로 성전환증의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아도 위 증세가 호전되지 않음으로써 △의학적 기준에 맞추어 성전환수술을 받아 반대 성으로서의 외부 성기를 비롯한 신체를 갖추고 있는 사람을 성전환자로 규정하고 있다.

“성전환자 지원과 인권보장 방안 마련되어야”

황장권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이번 대법원의 결정에 대해 우선 “현행법으로 전혀 구제할 방법이 없었는데, 이번 대법원 결정으로 그나마 성전환자가 성별정정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며 환영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황장권 사무국장은 대법원이 규정하고 있는 성전환자의 범위와 호적상 성별정정 요건과 관련해 “성전환 수술을 받은 사람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수술을 하지 않았거나, 호르몬 주사만 맞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는 제외되는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현재 조건에서는 성전환자가 수술을 하려고 해도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등의 문제가 존재한다”며 “단순히 성전환자에 대한 호적 상 성별정정 뿐만 아니라 제반 지원과 인권보장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럽 수술 없이도 성전환자 인정하지만, 한국사회에서는 불가피한 현실”

최현숙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 역시 이번 결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뒤 성전환자 범위 문제와 관련해 “성전환자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에 대해 여성, 성소수자, 학계, 의료계 등의 견해가 다 다르다”며 “유럽 국가들 중에는 수술 없이도 성전환자로 인정하고, 성별변경도 허가하는 경우가 있지만, 한국사회의 사법부가 수술의 여부를 묻는 것은 불가피한 현실인 것 같다”고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한편, 최현숙 위원장은 ‘성전환자성별변경관련법제정을위한공동연대’에서 준비 중인 성전환자성별변경특례법과 관련해 “특례법에서는 성전환자에 대해 수술여부를 묻지 않고, 생식능력이 영속적으로 결여된 상태로 규정하고 있다”며 “성적소수자운동 진영의 법안을 최종 완성해 9월 정기국회 때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