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독점권은 특허권과 함께 다국적 제약사가 가장 중요한 지적재산권의 하나로 취급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데이터는 신약의 품목허가를 얻기 위해 식약청(식품의약품안전청)에 제출하는 신약의 안전성 및 유효성에 관한 자료를 가리키는데, 오리지널 제약사가 식약청에 제출한 자료를 다른 제약사의 제네릭 의약품 허가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오리지널 제약사에게 독점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한미상공회의소의 2005년 정책보고서에서는 한국이 트립스 협정(무역관련지적재산권 협정)의 의무에 따른 데이터 독점권을 확실하게 이행하라고 촉구하고 있으며, 2006년 정책보고서에서도 한국의 데이터 독점권 제도가 제한적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 재계의 주장은 트립스 협정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것으로 사실과 다르다. 왜냐하면 트립스 협정에는 데이터 독점권을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트립스 협정에는 의약품의 허가를 받기 위해 제출한 자료를 함부로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고, 이 자료를 불공정하게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금지할 뿐이다. 한국의 약사법과 영업비밀보호법은 의약품 허가 과정에서 제출된 자료의 공개와 불공정한 이용을 금지하고 있으므로 TRIPS 규정을 준수하고 있다. 여기서 불공정한 이용은 계약을 위반하거나 남을 속여서 자료를 몰래 빼내서 이용하는 것을 말하는데, 식약청에서 이미 안전하다고 판단한 신약과 동일한 제네릭 의약품에 대해 신약의 자료를 근거로 제네릭 의약품을 안전한 것이라고 허가해 주는 것이 불공정한 상업적 이용이라고 볼 수는 없다. 미국의 주장처럼 데이터 독점권을 인정하면, 후발 제약사도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시험을 반복하라는 꼴인데, 미국의 식약청조차도 이것은 비윤리적이고 불필요한 비용낭비라고 할 정도이다.
트립스 협정에서 데이터 독점권을 인정받지 못하자 미국은 무역보복을 무기삼은 양자협상을 통해 다른 나라에 데이터 독점권 제도를 도입하도록 강요해 왔다. 1996년 미국은 데이터 독점권을 문제삼아 호주를 상대로 무역보복을 협박했으며, 1997년에는 아르헨티나, 그 다음 태국과 대만을 상대로 통상압력을 가해왔다. 이처럼 트립스 협정 의무가 부과되지도 않는 데이터 독점권을 미국이 통상압력을 통해 상대국에게 강요하자 국제연합(UN)과 세계보건기구(WHO)는 트립스 협정은 데이터의 ‘보호(protection)’만을 의미할 뿐이며, 데이터 ‘독점(exclusivity)’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해석을 내 놓았고, 2001년에는 아프리카 그룹, 브라질,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등은 트립스 협정은 데이터 독점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트립스 이사회에 표명하기도 했다.
데이터 독점권 제도는 한국에서 이상한 형태로 운영하고 있어서 이것을 바로 잡는 것이 시급하다. 신약은 허가를 받더라도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재심사를 받아야 한다. 정말로 안전하고 유효한지를 다시 심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재심사 기간 동안에는 제3자가 동일한 의약품의 허가를 받으려면 신약 제약사가 제출한 자료와 동등 이상의 자료를 내야만 한다. 신약의 재심사라는 제도의 취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자료의 독점권을 인정한 것일 뿐만 아니라, 동등 이상의 자료라는 것도 잘못된 규정이다. 신약에 대한 자료는 공개를 못하도록 되어 있는데, 오리지널 제약사가 무슨 자료를 냈는지도 모른 채 동등 이상의 자료를 제네릭 제약사가 어떻게 낼 수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규정은 약사법에는 없고 식약청의 고시에만 들어 있다. 즉, 상위법에 아무런 근거도 없는데, 훈령에 불과한 식약청 고시에서 데이터 독점권을 인정하는 것이어서 무효로 될 가능성이 많다.
데이터 독점권은 결국 특허권과는 별개로 오리지널 제약사가 의약품 시장을 독점하도록 하여 제네릭 제약사의 경쟁을 막고 그 결과 의약품의 가격이 상승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실제로 2003년 한국 식약청의 조사에 따르면, 신약에 대한 특허권이 만료되었으나 데이터 독점권으로 보호되는 품목이 모두 100건이 넘는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1998년에서 2004년 2월까지 미국 식약청에서 허가한 137개의 의약품을 조사한 결과, 17%에 달하는 23개 의약품이 이미 특허 보호기간이 만료되었지만 데이터 독점권 보호 기간이 남은 것이었다.
또한 데이터 독점권은 특허의약품의 강제실시(강제실시란 특허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도 정부나 정부의 허락을 받은 제3자가 특허발명을 사용할 수 있는 제도이다. - 본 연재 7탄 참고)를 아무런 쓸모없이 만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특허의약품을 강제실시하더라도, 이 의약품이 데이터 독점권으로 보호받고 있다면 그 기간 동안에는 강제실시권자는 품목허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특허발명의 강제실시 제도가 데이터 독점권 제도에 의해 쓸모없게 되는 결과가 생긴다.
그리고 미국이 주장하는 데이터 독점권은 한국 식약청에 제출된 데이터만 한국에서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식약청에 제출된 데이터도 한국에서 보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제약사가 미국 식약청에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관한 데이터를 제출하여 의약품의 판매 허가를 받은 다음, 이 의약품을 미국 내에서만 판매하고 한국에는 시판하지 않는다고 해 보자. 이 경우에도 미국 식약청에 제출된 데이터를 한국에서 보호해야 하므로, 한국의 제약사는 임상시험을 반복하지 않는 한 동일한 성분의 의약품이라 하더라도 한국 식약청으로부터 품목 허가를 받을 수 없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의약품이 공급도 되지 않고 데이터 독점권으로 인해 국내 제약사가 의약품을 시판하는 것도 금지되는 결과가 된다.
데이터 독점권의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을 특허권과 별개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신약을 개발하면 예외없이 특허를 받는데, 의약품이 안전한지 유효한지 시험하는 것은 의약품의 허가를 받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특허를 받기 위한 발명 과정의 하나이다. 안전하지도 않고 유효하지 않은 의약은 특허를 받을 수 있는 의약품이 될 수 없으므로 이런 자료를 보호하더라도 특허권과 중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데이터 독점권은 특허권과 별개로 보호하라고 주장한다. 미국과 호주가 체결한 FTA에도 데이터 독점권의 기간은 특허권이 만료되더라도 단축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 결국 데이터 독점권은 불공정한 행위를 제재하거나 정당한 노력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다국적제약사의 시장독점을 보장하는 기능만 하고 있는 것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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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희섭 님은 정보공유연대 IPLeft 대표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