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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포스터. 브뤼노 역할을 맡은 호세 가르시아의 모습. 포스터는 처량한 그의 모습이 거꾸로 배치되어 있다. |
영화 ‘액스’는 40대 제지 회사의 중견간부였다가 구조조정 당한 남성 가장이 주인공이다. 나름대로 능력을 인정 받았던 주인공 브뤼노 다베르는 15년간 일한 회사의 공장 이전으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됐다. 그는 15개월 치 월급을 퇴직금으로 받고 유유히 직장 생활을 정리한다.
능력을 인정받아 온 만큼 자신의 능력을 믿었던 브뤼노의 고백이 씁쓸한 이유는 2년 후인 현재, 여전히 그는 구직 상태에 머무러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핵심은 그의 재취업 분투기다. 그가 재취업을 위해 택한 방법이 정말 기발하다. 자신의 회사가 존재하는 것 처럼 허위 구인광고를 낸 후, 수많은 경쟁자들의 이력서를 받아 자신과 비슷한 물망 대상을 선택, 후보들을 제거하는 극단적인 방법이다.
재취업 분투기의 암담한 소재와 그가 택한 연쇄 살인이란 방식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전혀 심각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주인공의 어수룩한 행동과 우발적 사건 사고들 때문에 연신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인위적인 기교도 없고 내용은 재밌게 흘러간다. 그렇지만 사연 없이 등장하는 인물이 없듯이 대상들과 사건들 속에 드러나는 풍자는 날카롭다.
평범했던 한 남성 가장이 끔찍한(?) 연쇄살인마로 돌변하는 모습이 몰고와야 할 스릴과 긴장감은 오히려 안타까움과 측은함으로 변한다. 보는 사람은 오히려 그의 연쇄살인이 완전범죄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그의 응원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주인공이 처한 현실과 내가 딛고 있는 이 현실의 동질성 때문은 아닐까.
주인공의 장기화 된 구직활동에 아내는 파트타임 비정규로 거리에 나섰다. 실업급여를 타기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선 사람들도 우체국에 빼곡하다. 등장인물 주변인 중에 누구 하나 구직 중이 아닌 사람이 없다. 5년의 구직활동 끝에 가정 파탄으로 인생 패배자임을 자책하며 처음 본 사람에게 눈물을 쏟는 등장인물도, 판매 성과 대로 월급을 받는 옷가게 판매원이 된 간부와 식당 아르바이트에 나선 이들 모두 이 시대를 살아가는 ‘노동자’ 그들의 군상이다.
이 영화가 ‘신자유주의 노동시장의 비인간성을 폭로하는 적나라한 보고서’라는 평을 달게 된 이유도 두 가지 맥인 듯 싶다.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노동 유형들. 실제로 유연화된 비정규직 노동의 다양한 형태가 소재가 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가 택한 ‘연쇄살인’이라는 방법. 경쟁을 통해 일자리를 지켜야 하는 양육강식의 세계. 신자유주의의 극대화된 노동유연화는 다른 사람을 죽여서라도 자신의 일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다는 은유적 의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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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은 다시 원점이다. 주인공이 돌파했던 그 난관 후 또 다른 저격수가 주인공의 목을 노리고 있다. 사회의 구조가 변하지 않는 이상, 반복 될 수밖에 없고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다는 암시다.
또한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브뤼노의 가정. 스스로 '그들을 위한 일'이라며 연쇄살인을 정당화 시키는 그 기반에는 그가 지키고 싶어하는 '가정'이 있다. ‘일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는 브뤼노가 맡은 ‘가장’의 역할 또한 많이 비틀어져 있다.
소재는 무겁지만 영화는 가볍게 보자. 그 만큼 재밌고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좋은 영화다. 영화 홍보지에는 ‘영화는 영화일 뿐! 절대 따라하지 말라’는 주문이 적혀 있다. 아마 극장을 나설 때면 그 주문에 절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전하는 ‘질 높은 블랙 코메디’. 이런 영화 한 번 어떨 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