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의 신화’…9월 총파업으로 이어진다

유통업계 최초의 공동투쟁...비정규노동자까지 아우른다

검정 양복에 무스를 발라넘긴 머리. 이제 익숙함을 넘어 보이지 않으면 어색할 정도다. 노조와 다툼이 있는 사업장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용역경비업체 직원들. 서울 신촌에 있는 이랜드 본사를 찾아간 날, 정문에는 검은 양복이 줄을 서있다.

이랜드노동조합은 지난 22일부터 본사 주차장에서 노숙농성을 들어갔다. 이랜드 사측은 3월 6일 노동조합에 단체협약해지 통보를 했다. 노동조합은 전임자 축소, 노조간부 인사이동 때 합의사항을 협의로 변경, 노조활동 및 교육시간 축소를 담은 단체협약 ‘개악안’을 관철시키려는 사측의 음모라고 맞서왔다.

이랜드노조 5년 만에 파업을 준비

40여 차례의 교섭이 제자리를 맴돌고, 9월 6일 단체협약 만료일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노동조합은 “사측이 수정안을 내지 않고, 개악안을 노조에 받을 것만을 요구한다면 더 이상 교섭은 무의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측은 임금과 관련해서도 동결을 내세우고 있다. 물가상승을 감안하면 임금 삭감안이다. 심지어 지방노동위에서 복직판결을 받은 조합원을 아직도 복직시키지 않고 있다. 교섭에도 노무담당 과장, 대리를 내세워 교섭을 시간끌기로 가져가고 있다. 9월 6일 단협 만료시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남신 이랜드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사측의 교섭 무성의에 분노하고 있다. 단체협약 해지로 노동조합을 무력화 시키려는 것이 회사의 방침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은 단체협약 만료일이 9월 6일에 앞서 5일 총파업 출정식을 준비하고 있다.

8월 29일 쟁의대책위원회 회의와 8월 31일 조합원 총회를 거쳐 파업을 결의하려고 한다. 지난 2000년과 2001년에 걸쳐 전개하였던 265일 총파업 이후 5년 만에 노동조합은 파업을 선택한 것이다.

265일 파업, 정규직 전환 일궈

이랜드노동조합의 파업은 단순히 단위사업장만의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2000년 파업 당시 노동조합은 ‘비정규직인 계약직 직원들의 임금은 개별적으로 처리하겠다’는 사측의 입장에 맞서 총파업에 돌입했다. 비정규직의 문제를 정규직 노동자가 함께 맞서 싸운 것이다.

이랜드노동조합의 해를 넘긴 265일의 기나긴 파업은 노동운동에 큰 획을 긋는 성과를 남겼다. 비정규 직원의 정규직 전환을 회사와 합의를 한다.

1980년 이화여대 앞에서 500만원의 자본금으로 보세 옷 점포로 시작한 이랜드가 재계 37위의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한 것을 ‘신화’라고 이야기 한다. 이랜드노동조합이 265일 파업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 전환을 일궈낸 것도 이에 못지않은 노동운동의 ‘신화’다.

신화는 누가 이어가나

이랜드의 홈페이지에는 ‘21세기에도 이랜드의 신화를 이어간다’는 문구가 뜬다. 이랜드노동조합도 2006년 노동운동의 또 다른 신화를 열어가고 있다.

이랜드노동조합은 까르푸, 뉴코아 노동조합과 함께 유통업계 최초의 공동투쟁의 ‘신화’를 만들고 있다. 지난 5월 까르푸, 뉴코아, 이랜드 노조는 공동투쟁본부를 꾸리고, “고용불안, 노조탄압에 맞서 3사가 공동 대응하여 현안문제를 해결하고, 공동투쟁을 바탕으로 3사 노조의 통합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공동투쟁본부를 중심으로 3사는 해고자 복직투쟁 등을 공동으로 벌이고, 공동투쟁의 힘은 뉴코아 노조의 협상타결을 이루어내는 결과를 낳았다.


김경욱 까르푸노동조합 위원장은 “이랜드의 문어발적 사세확장으로 이랜드 계열 노동자들은 공동운명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뭉치게 되었다. 유통업계에서 처음 시도하는 공동투쟁이라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한다.

품앗이를 넘어 공동투쟁

까르푸노동조합은 비정규직에게도 조합을 열어 1000여명의 조합원 중 400여명이 비정규직이다. 김경욱 위원장은 “비정규직을 조직하지 않고는 정규직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의식이 조합에서 적극적으로 비정규직 조직에 나서게 됐다고 한다.

이남신 이랜드노조 수석부위원장도 “3사 공동투쟁의 의미는 유통업계 노동자의 통합의 교두보를 만들 것이고, 비정규직이 만연된 유통업계에서 간접고용노동자까지 노동조합이 아우르려는 시도다”고 한다.

5년 전 265일 파업투쟁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이뤄낸 이랜드노조가 다시 파업을 준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은 “단협, 임금, 해고자 문제로 다시 파업을 준비한다. 이랜드만이 아닌 까르푸와 동시타결을 목표로 공동투쟁을 전개할 것이다. 까르푸노조도 실정에 맞게 이랜드와 공동투쟁을 전개하기로 했다”고 한다.

9월 이랜드노동조합의 파업은 유통업계 노동조합끼리의 품앗이를 넘는 공동투쟁의 중심이 될 것이고, 이후 비정규직까지 아우르는 유통노동자의 단일한 조직을 일구는 씨앗이 될 거라고 조심스럽게 전망도 한다.

김경욱 위원장의 말이 떠오른다. “연대투쟁이 아닙니다. 공동투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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