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핵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평양 측의 발표가 있자, 국내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오늘날의 세계상(世界象)을 보여주는 다양한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 반응은 당연히 그 각각이 사회 각 세력의 정치적·계급적 성격과 '목적'을 반영하고 있다.
가장 요란하게 들리는 것은 물론 독점자본, 따라서 제국주의의 이해를 반영한 목소리인데, 이는 지금의 세계가 독점자본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고, 따라서 지배적인 대중매체가 독점자본에 의해서 그 선전수단, 이데올로기 조작수단으로 장악되어 있다고 하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들은, 평양 측의 핵무기 개발과 보유, 그리고 핵실험은 모두 국제평화, 특히 동북아시아의 평화에 대한 평양 측의 도전·도발이며, 따라서 그에 대한 강력한 응징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나라당이나 '조·중·동'을 위시한 극우세력들의 가히 광란의 반응에 대해서는 새삼 언급할 가치도 없을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하에서 '자유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 평가되고 있는, 따라서 예의 극우세력에 의해서는 '좌파적'이라고 규탄받고 있는 TV방송이나 일부 '진보적' 언론들의 경우에도, 군사적 제재가 자칫 불러올지 모르는 전쟁의 위험을 경계하는 것을 빼고는, 사실상 동일한 관점에 서 있다. 그들도 평양 측의 핵무기 보유, 핵실험을 동북아의 평화에 대한 도발로 보면서 그에 대한 제재를 당연시하고 있는 것이다. 10월 9일 당일 MBC 저녁뉴스의 진행자는 심지어 "북한의 인민들만 불쌍하다"는 요지의 발언으로 뉴스를 끝냈을 정도이다(자신이야말로 노예근성에 찌들어 있고, 그만큼 불쌍한 줄도 모르고!).
주요 국가의 공식적 반응도 비슷하다. 북에 대해서 가장 적대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경우야 그렇다 치고, 몇몇 핵무기 보유국가의 국가의 반응을 보자면 이렇다.
◆ 푸틴 러시아 대통령 : "무조건 비난한다."
◆ 파키스탄 외무부 보도관: "지역을 불안정하게 하는 행위로서 유감이다."
◆ 블레어 영국 총리: "인접국가나 광범한 국제사회의 염려를 무시한 한층 도발적인 행위이다. 무책임하기 그지없는 행동을 비난한다."
◆ 두스트블라지 프랑스 외무장관: "세계의 안정보장에 있어서 극히 심각한 행위이며, 단호한 대응을 국제사회에 호소한다."
(이상, "北朝鮮の核??、各?が非難",, 2006년 10월 10일에서.)
이만큼 위선적이고, 기만적이며, 적반하장의 주장이 또 있겠는가? 다른 것은 다 그만 두더라도, 어떻게 자신들의 핵무기 개발과 보유, 그리고 수백, 수천 차례에 걸친 핵실험은 당연하고, 평양 측의 그것은 안 된단 말인가? 핵무기에 관한 한, 사실을 말하자면, 미국이야말로 가장 비난받아야 마땅한 나라이며, 나아가 실제로도 국제평화와 인류의 안전에 가장 위험한 존재가 아닌가? 미국의 한 노동자 정치신문을 인용해보자.
미국이야말로 맨 처음 원자폭탄을 개발했다. 미국이야말로 인구밀집 지역들―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투하한 유일한 국가이며, 남태평양에서의 미국의 원폭실험에 수천 명이 노출되어 방사능 중독으로 앓고 있다. 실제로 그 해악이 너무나도 거대한 나머지 2001년에 핵배상심판위원회(Nuclear Claims Tribunal)는 비키니 섬의 주민들에게 5억 달러 이상을 배상하도록 미국정부에 명령했다.
미국은 지금까지 7만 개의 핵폭탄을 제조했고, 지금도 1만 개 이상의 핵폭탄을 비축하고 있다. 수소폭탄을 맨 먼저 개발한 것도 미국이다. 수천 마일 떨어진 국가들을 겨냥하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맨 먼저 개발한 것도 미국이었다. 핵무기로 무장한 잠수함을 맨 먼저 개발한 것도 미국이었다. 중성자탄을 맨 먼저 개발한 것도 미국이었다. 다탄두각개목표재돌입미사일(MIRVs)을 맨 먼저 개발한 것도 미국이었다. 1945년 이후 미국은 핵무기 프로그램에 5조5천억 달러를 써왔다.
("The first WMD deception―Nukes and the Cold War", Workers World, May 6, 2004. 이 신문에 의하면, 미국은 지금도 핵무기의 개발·생산에 매년 350억 달러 이상을 쓰고 있다.)
이 신문은, "미국정부는 북(North Korea)이나 이란, 이라크 같은 나라들이 핵무기를 확보하려고 함으로써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세계평화가 없는 것은 무엇보다도" "미국의 점령군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라며,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미국의 초국적기업과 은행이 계속 세계를 지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펜타곤[미 국방부]이 휘두르고 있는 거대한 양의 핵무기에 의해서 세계가 매일 협박을 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무시무시한 무기를 가지고 있지 못한 나라들은 어느 나라나 만일 워싱턴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경우 폭격으로 그 존재 자체를 없애버리겠다는 협박을 받고 있다. 베트남의 경우 헨리 키신저와 빠리 평화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내내 핵무기로 말살시켜버리겠다는 협박을 거듭거듭 받아왔다.
실제로 지난 9월 21일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했던 파키스탄의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침략전쟁에 협력하지 않을 경우 "폭격을 받을 각오를 하라, 석기시대로 돌아갈 각오를 하라"는 리처드 아미티지 당시 미 국무차관보의 협박 때문에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략에 협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미국의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폭로한 바 있다.
이러한 사실들에 침묵한 북의 핵실험 비난, 그것은 기만이자 반북·반공책동이며, 기껏해야 위선에 불과하다. 더구나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주요 핵 보유 국가들의 그것은, 기만일 뿐 아니라, 자신들만이 핵을 보유하고 그를 통해서 세계에 대한 협박과 지배를 계속하겠다는 제국주의의 깡패논리일 뿐이다.
영국의 한 대학 연구원이, "북이 핵실험을 강행한 배경은 ... 핵 보유 국가들이 자신들과 동맹국들은 핵무기에 매달리면서 다른 나라들에게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이중잣대를 강요하려 한 것"이고, "공산주의 정권은 지도상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믿는 미국정부에 맞서 북은 억지력을 구축해왔다"며, 이러한 "북의 정책은, 미치기는커녕, 아주 이성적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Dan Plesch, "North Korea's nuclear policy is not irrational at all",
평양 측의 핵무기 개발·보유·실험은 미국의 "대북 정책이 낳은 '쓴 열매'"
평양 측에 의한 핵무기의 개발, 보유 그리고 그 실험은 미국에 의해서 강요된 것이다. 이는 세계의 진보적 인사나 단체들은 물론 자유주의적 부르주아 언론조차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하고 있는 바이다. 예컨대, 프랑스의 [르몽드]가 10월 10일자 '사설'에서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의 벼랑끝 외교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대북 정책이 낳은 '쓴 열매'"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공산주의 정권은 지도상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믿는 미국정부에 맞서 북은 억지력을 구축해왔다"고 말하는, 앞에서 언급한 [가디언]의 기사도 물론 유사한 견해를 표명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예컨대, [프레시안]은, "북한의 핵개발 문제는 기본적으로 북미간의 적대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재래식 무기 불균형 확대,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 배치, '비핵국을 핵으로 공격하는 초유의 시나리오'였던 팀스피리트 훈련, 사회주의권 붕괴 후의 경제난 등으로 북한은 '값싸고 강력한' 핵무기를 개발해 미국에 대한 억지력을 확보하려고 했다"고 쓰고 있다.(황준호 기자, "'포용정책'이 도대체 뭡니까?―[시각] 포용정책에 관한 '해괴한' 논리 두 가지",
실제로 이번의 핵실험은 미국, 특히 부시 정부의 대북 위협·압살정책의 결과이다. 미국, 특히 부시 정권은 평양 측을 '깡패국가'니, '악의 축'이니 하는, 사실은 제국주의 열강, 그 중에서도 특히 자신들에게나 해당하는 악의적인 딱지를 붙이면서 '체제 교체'(regime change)의 의지, 즉 북의 체제 자체를 압살하겠다는 의지를 거듭거듭 표명해왔다. 대표적으로 2002년 1월 부시 미 대통령의 '연두교서'가 그것이다.
이에 대해서 미국의 노동자 신문 [워커스 월드](Workers World)는 정당하게도 이렇게 쓰고 있다.
2002년 1월의 연두교서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및 이란과 더불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날조된 '악의 축'에 포함시켰다. 1년 후 미국은 이라크에 대한 전면적인 침략을 개시하여 그 정부를 전복시키고 괴뢰정권을 세웠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 모두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우리는 부시의 연두교서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사실상의 선전포고로 생각하고 있다"고, 당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유엔 주재 대사 박길연은 <워커스 월드>(2002년 3월 28일)에 말했다.
그 대사는 또한 펜타곤[미 국방부]의 2002년 1월 ?핵정책 개관?(Nuclear Policy Review)에 주목했는데, 그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포함하여 7개 국가에 대하여 핵무기를 사용하는 계획을 담고 있었다. 대사는, 그것은 이전의 합의를 무효로 만든 것이라며, "이는 대단히 심각한 상황전개다"라고 말했다.(Deidre Griswold, "Behind the nuclear issue in Korea―The real reasons for Washington's hostility", Workers Wosrld, May 24, 2005.)
2002년 9월 국립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은 '선제전쟁'(preemptive war, 예방전쟁) 및 '체제 교체'라는 독트린을 제시하고, 그것을 부시의 '악의 축'이라는 주장과 연결시켰다. 6개월 후 워싱턴은 아무런 도발을 받지 않았지만 이라크의 체제를 교체하기 위한 선제전쟁을 개시해 사담 후쎄인 정부를 전복시켰다.
... 나아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미국의 핵 폭격기들과 핵무장 잠수함들, 크루즈(순항) 미사일들, 항공모함들, 그리고 구축함들로 둘러싸여 있다.(Fred Goldstein, "Nuclear crisis made in USA―Bush threats forced North Korea to arm in self-defense", Workers World, Oct. 12, 2006.)
결국 도발자는, 평양 측이 아니라, 미국이며, "그리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미국의 공격에 대한 억지력으로서 자신의 핵무기를 개발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선 것은", 그리고 실제로 핵실험을 하고 나선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적대·압살정책이 지속되는 한 그것은 주권국가의 "생존을 위한 권리"(right to exist)인 것이다. (극우 인사·단체·언론이 광분하고, 기타 자본의 언론매체들이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남북이나 세계의 대부분 노동자·인민이 북의 핵실험 사실을 대체로 '무덤덤하게' 들어 넘기고 있는 것도 사실은 모두 그 때문일 것이다.)
가능한 한 '공정한 시각'을 가지려는 듯이 행동하는 일부 인사들조차 북의 핵무기 보유나 핵실험이 일본이나 대만의 핵무기 보유를 자극하는 등 동아시아의 안전에 위협을 가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사실은 전말이 전도된 것이며, 실제로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켜가고 있는 미·일 제국주의의 적반하장의 주장을 합리화시켜줄 뿐이다. 미·일, 특히 미국의 적대·압살정책이 북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개발·보유하고, 핵실험으로 그것을 입증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주장은 이를 거꾸로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언필칭 '진보'를 자임하는 '환경운동연합'의 어릿광대짓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0월 11일자로 '환경운동연합'의 홈페이지의 맨 윗머리에는 "핵 개발, 평화 위협하는 최악의 선택―북한 핵실험. 동북아 핵확산 위기 우려돼"라는 제목 하에 '환경운동엽합 <공동대표: 신인령·윤준하, 사무총장: 김혜정>' 명의의 '성명서'와, "11일 환경운동연합은 위와 같은 성명을 내고,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북한 핵실험 규탄 및 평화기원 퍼포먼스'를 진행했다"며, 어릿광대 놀음을 찍은 사진 3컷을 자랑스럽게 내걸고 있다. 물론 자본의 선전기관들도 이 어릿광대짓을 그냥 흘려보낼 리 없고, 사진과 함께 보도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의 '성명'은 말하고 있다. "북한의 이번 핵실험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민족적 합의와 국제사회의 기대를 저버리고,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는 군사적 도발 행위"이며, "북한의 핵 보유는,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지역의 핵무장을 부추길 수 있다"라고. 마치 한반도와 동북아가 무핵지대라도 되는 듯이 떠벌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홈페이지는, "환경운동연합은 어떠한 경우에도 북한의 핵실험과 핵개발을 용납할 수 없음을 밝히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고 동북아의 핵무장을 가속화시키는 북한의 핵실험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하고 있다. 정말 가소로운 얘기, 즉 마치 자신들이 용납하고 말고 할 수 있다는 듯한 과대망상이다.
환경운동연합은, 북의 핵실험이 미국에 의해서 강요된 것이라는 사실은 설령 이해할 수 없었더라도, 동북아는 물론이요 한반도가 결코 '비핵화' 지대가 아니며, 백보양보해도 최소한 미국의 이른바 '핵우산' 아래 놓여 있는 지역이라는 사실, 정부나 미 제국주의조차 결코 부인하지 않고 있는 사실은 알고 있었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이 나라에서 핵무기를 철수시켰다고 하지만, 그것은 결코 한번도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주장일 뿐이라는 사실도 상기했어야 할 것이다.
앞에서 [프레시안]도 "'비핵국을 핵으로 공격하는 초유의 시나리오'였던 팀스피리트 훈련"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았지만, 북이 핵무기로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난 50여 년 동안 북이야말로 미국의 핵무기의 위협을 받아온 것이다. 따라서 환경운동연합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민족적 합의와 국제사회의 기대를 저버리고" 운운할 양이면, 핵을 보유하고 핵실험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북을 비난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 전에 그렇게 강요하는 미국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벌였어야 할 것이며, 미국을 향해서 핵무기를 철수시켰음을 객관적으로 검증하자고 요구하고 나섰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환경운동연합은 그렇게 하는 대신에 엉뚱한 어릿광대짓을 벌임으로써 결과적으로 독점자본의 반북·반공 소동에 일익을 담당하고 나섰다. 하기야 재벌들의 재정 지원을 받으며 '환경운동'입네 하고 있는 '시민운동단체'이니 무슨 말을 하랴만, 아무튼 이번의 어릿광대짓으로 또 한번 재벌들의 눈에 들었음은 틀림없을 것이다.
혹시 누구든, 독점자본의 이데올로기 조작에 걸려 환경운동연합처럼, "북한의 핵보유는,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지역의 핵무장을 부추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예컨대 중동과 특히 이라크를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의 중동 지배의 지렛대인 이스라엘은 오래 전부터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그것은 결코 중동의 다른 어떤 나라가 핵무기를 개발·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부추김을 받은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이라크가 이른바 '대량살상무기', 즉 핵무기나 화학무기를 개발·보유하고 중동과 국제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며 이라크를 침략, 합법적 정부를 전복시키고 괴뢰정부를 세워 끝없는 테러와 학살, 내전으로 몰아가고 있지만, 주지하는 것처럼, 거기에서는 미군이 사용하는 열화우라늄탄 외에는 어떤 '대량살상무기'도 발견되지 않았다.
사실, 이라크 지역에서의 '대량살상무기'라면, 1925년 북부 모술 지역의 쿠르드 족에 대한 영국군의 화학무기 공중살포가 최초였다. 그러한 범죄를 저지른 영국 제국주의가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 운운하며, 미군과 함께 오늘날 또 다시 이라크를 유린하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가 실제로 이른바 '대량살상무기', 특히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였더라도 오늘날 과연 저렇게 처절하게 유린당했겠는가?
미국의 대북 적대 이유
많은 사람들이 북의 핵무기 개발과 보유, 그리고 실험은 '부시 정권'의 대북 압박·적대의 결과라고 말하지만, 이는 사실은 반쯤만이 진실이다. 미국은 제2차 대전 종전 이후 내내 북을 압살할 목적으로 압박·적대해왔고, 부시 정권은 그 연장선상에서의 최근의 행위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전쟁'은 1953년에 끝났지만, 동시에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평양 측이 거듭거듭 평화조약과 불가침조약을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 측이 완강하게 이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미국은 왜 그토록 완강하게 평화조약을 거부하며, 북에 대해서 위협을 가하면서 압박·적대하는가? 왜 그토록 집요하게 북을 압살하려 하는가?
다름 아니라, 북이 자본가와 지주의 재산을 몰수한 사회주의 국가, 노동자·인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들 제국주의, 곧 독점자본의 입장에서는 사회주의 국가, 노동자·인민의 국가의 존재는 그 자체가 자신들의 체제에 대한 도전·위협으로서 절대로 그대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며, 그리하여 저들은 과거 쏘련을 상대로 벌였던 냉전과 똑같은 이유와 목적에서 북을 압박하고 적대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저들은 충분히 영특해서, 그러한 냉전과 위협·압박·적대가 현 조건 하의 사회주의 국가와 인민에게는 커다란 장애·손질·고통이며, 자신들에게는 치부의 수단일 뿐 아니라 과잉생산의 압박을 다소라도 완화하는 수단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있다.
실제로, 오늘날의 북이나 쿠바 등은 말할 나위도 없고 과거의 쏘련조차도 제국주의 열강이나 기타 자본주의 선진국에 비해서 그 생산력 수준이 현저히 낮았고, 자원은 제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생산력 발전은 미국을 위시한 제국주의 열강이 가하는 봉쇄정책에 의해서도 크게 제약당했지만, 제국주의의 군사적 위협에 대항하기 위한 군비증강에 의해서도 크게 제약당했다. 즉, 제한된 인적·물적 자원을 사회주의의 건설과 발전을 위해 동원하는 대신에 비생산적으로 낭비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당했던 것이다.
결국 미국을 위시한 제국주의, 독점자본은, 한편에서는 그렇게 그들의 군사적 압박·위협·적대가 사회주의의 건설과 내적 발전 자체에도 커다란 장애·손실·고통으로 작용한다는 사실 자체까지를 간파하면서 그러한 압박·위협·적대를 가해왔던 것이고, 또 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그러한 군사적 압박을 가하기 위한 군비경쟁, 군비증강이 독점자본 자신에게는 더할 수 없이 커다란 치부수단이며, 자본주의적 생산의 과잉생산 압력을 다소라도 완화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도 그들은 간파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정부가 매년 지출하는 수천억 달러의 군사비의 상당 부분은 이른바 군산복합체를 살찌우기 위해서 그들에게 지불되고 있으며, 이들에 의한 군수품 생산은 그 자체 결코 재생산을 위한 생산적 소비에도, 개인적 소비에도 들어가지 않는, 순전히 소비만을 위한 소비인 것이다.
제국주의의 위협을 당하는 사회주의 국가의 입장에서는 물론, 그것이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발전시키는 데에 커다란 장애요, 손실·고통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면서도, 그 자체로서는 마찬가지로 군사적 태세를 강화하여 맞대응하는 수밖에는 다른 방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군사적 태세·능력을 강화하여 나치 독일의 침략을 격퇴하지 못했다면, 쏘련 사회주의가 20세기 마지막 10년대에가 아니라 1940년대 초에 무너졌을 것임은 논리적으로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종파주의자들의 태도
물론 자본주의 혹은 제국주의 국가 내부의 노동자계급이 활발한 반전·계급투쟁을 벌임으로써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제국주의의 압력을 완화시킬 수 있었다면, 사회주의 국가는 훨씬 그 압력을 덜 받으면서 훨씬 굴절 없이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며, 20세기의 역사, 나아가 21세기의 역사는 지금과는 크게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인류의 역사적 도약은 훨씬 앞당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혹은 제국주의 국가 내부의 노동자계급운동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그들 노동자계급 자신이기 때문에 20세기 사회주의 국가가, 간접적·제한적으로 정치적·사상적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을 수는 있어도, 직접적으로 좌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노동자계급의 주요 부분이 1930년대와 40년대 초에는 파시즘의 포로가 되어 사회주의 쏘련에 적대하였고, 1950년대 중반 이후에는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제국주의적 사회보장체제에 안주한 나머지 그 정치적 포로가 되어, 대표적으로 미국의 노총 AFL-CIO처럼 사회주의 세계체제에 적대하거나, 제국주의의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적대를 수수방관하였다. 그리고 자칭 '맑스-레닌주의'의 계승자임을 자칭하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은 그 종파주의적 전통에 따라 제국주의의 선전기관을 능가하는 반쏘·반공선전을 일삼았다.
물론, 낙후됐던 구체제가 남긴 열악한 경제·사회적 조건 및 제국주의의 압박·적대·봉쇄에 의한 사회주의 발전의 어쩔 수 없는 지체와 굴절이 그들 종파주의자들의 좋은 공격 대상이었다. 그리고 그들 종파주의자들의 공격과 모략은 마침내 1960년대가 되면서 쏘련, 즉 20세기 사회주의는 '사회주의가 아니고, 국가자본주의일 뿐이다'고 하는 주장으로까지 발전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극악한 반쏘·반공주의는, 쏘련과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붕괴를 계기로 오늘날에는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자들' 혹은 '스피노자 맑스주의자들'임을 자칭하는 소부르주아 신무정부주의자들에 의해서도 널리 선전되고 있다.
그러나 묻건대, 주요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소유가 존재하지 않고, 그것들을 국가와 노동자·농민의 협동조합이 소유하고 있는 사회를 '(국가)자본주의'라고 규정할 만큼 자본주의의 개념을 무개념하게 확대할 양이면, '봉건제'나 '노예제' 등의 개념도 그렇게 무개념하게 확대하지 못할 리 없을 것이고, 따라서 그것을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하는 대신에 '국가봉건제'나 '국가노예제'로 확대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쏘련 등 20세기 사회주의에서 생산수단에 대한 주요 소유형태가 국유였고, 그 경제가 계획경제체제였다는 것을 비난하면서 '국가자본주의'니 '국가사회주의'니 하며 운운하는 자칭 맑스주의자들, 자칭 맑스-레닌주의의 계승자들은, 무엇보다도, <공산당 선언>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혁명의 제1보는 프롤레타리아트를 지배계급으로 높이는 것,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이 정치적 지배를 이용하여 부르주아지로부터 차례로 모든 자본을 탈취하고, 모든 생산용구를 국가의 수중에, 즉 지배계급으로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중에 집중하고, 생산력의 양을 최대한 급속히 증대시킬 것이다.
이는 당연히 처음엔 단지 소유권과 부르주아적 생산관계에 대한 전제적인 침해를 통해서만, 따라서 경제적으로 불충분하고 영속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방책에 의해서만, 수행될 수 있는데, 그러나 이들 방책은 운동이 진행됨에 따라서 그 자체를 내몰고, 생산양식 전체를 변혁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불가피하다.(MEW, Bd. 4, S. 481.)
그리고 그들이 정말로 유물변증법과 유물사관을 자신의 철학으로 체득한 맑스주의자이고자 한다면, 20세기 사회주의를 평가할 때, 다음과 같은 지적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공산주의 건설이라는 의식적 과정은, 자본주의체제의 이론적·이데올로기적 한계를 정신적으로 얼마나 초월했든, 역사적으로 아무튼 구질서의 산물이며, 따라서 그 구질서의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담당되어 왔다. 헤겔의 ‘절대정신’과는 달리, 그들은 역사의 완결점에서 역사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이 역사의 산물이자 이 역사의 제약 속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가 그러하듯이, 그들의 어깨에 과거의 짐, 그들의 운동을 방해하고 제한하는 짐을 지고 있다. 한 세대나 두 세대 내에 이 짐을 벗을 수는 없다.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진보적인 사람들의 장기적인 투쟁을 통해서만 그것은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건설하는 과정은 동시에 이러한 목표를 위해서 투쟁하는 모든 사람들의 교육과 진보의 과정이기도 하다.
사회주의 사회에 관한 이 사람들의 주관적 전망은, 그들의 심중에서는 완벽할지 모르지만, 역사적 현실이라는 객관적인 영역으로 들어가자마자 그 완벽성을 잃게 된다. 사회주의 건설과정에서는 자각과 주체적 요소가 우위를 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객관적 현실이 인류의 진보를 지향하는 전위의 의지 앞에 무조건 항복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 건설과정과 과거 역사의 발전과정의 유일한 차이는, 맑스가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여기에서는 역사상 최초로 살아 있는 현재가 죽은 과거를 지배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살아 있는 현재가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유산은 언제나 현재에 대해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객관적 현실을 지배하는 법칙에 정통하고 이들 법칙의 요구에 일치해야만 이러한 유산을 극복하고 그 영향력을 제한할 수 있는 것이다. 중력의 법칙을 충분히 이해하고 나서야 인간은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공산주의를 향해서 꾸준히 전진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법칙에 정통하지 않으면 안 되고, 그것들을 제어할 적절한 방법을 찾아내지 않으며 안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인간의 의식과 주관이 이들 객관적인 법칙 및 요구와 ―일치하지 않고― 충돌하게 되면, 언제 어디에서나 죽은 과거가 다시 살아 있는 현재를 지배하게 되는 기반이 형성되는 것이다. 가장 깊은 철학적인 의미에서는 이것이 사회주의의 위기의 궁극적인 원인이다.
나아가, 공산주의자의 주체적인 오류는, 그것이 아무리 크고 결정적일지라도, 제국주의 및 그 음모와의 극히 어렵고 불리한 투쟁 속에서 발생했다고 하는 것, 그리고 어떤 이정표도 없는 완전히 전인미답의 역사적 길을 개척해 가는 도정(道程)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것을 망각한다면, 이는 커다란 오류일 것이다. 그리하여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인류 진보의 진정한 전위들이 그들의 숭고한 투쟁 과정에서 범한 오류와 과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기 위한 장기적인 투쟁 속에서 유사한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 오히려 우리는 그들의 긍정적·부정적 경험으로부터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Bahman Azad 저, 채만수 역, [영웅적 투쟁 쓰라린 패배], 노사과연, 2005, pp. 171-72.)
여기에서 이렇게 다소 장황하게 종파주의자들의 반쏘·반공주의 등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예의 '국제사회주의자들'임을 자랑하는 집단이 참으로 기회주의적이고, 부정직하게 반북·반공주의적인, 다음과 같은 글을 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다함께' 그룹, 혹은 최근의 개칭에 따르면 '맞불' 그룹은 그 홈페이지에 "북한 핵실험 - 미국의 대북 압박이 낳은 위험한 결과, 유엔 제재는 해결책이 아니다"(필자, 김하영)는 글을 게재하고 있는데, 그들은 이렇게 북의 핵실험이 미국의 대북 압박이 낳은 결과이고, 유엔의 제재는 해결책이 아니라면서도, 그 글에서 부정직하게 제시하는 해결책은 사실상 북의 일방적 투항을 요구하는 것이다. 물론 그들 종파주의자들의 고고한 '맑스-레닌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북의 체제는 '관료주의적' '국가자본주의'체제일 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북한 당국은 핵실험이 "조선반도와 주변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 데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장 미국의 군사 대응이 없다 해도 북한 핵실험은 평화와 안정은커녕 동북아 긴장을 한층 강화시키는 효과를 낼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은 일본의 핵무장을 자극할 것이고, 이렇게 되면 남한과 대만도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결국 동북아는 핵 공포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고, 심지어 핵 전장이 될 수도 있다. ...
핵 공포의 균형이 평화와 체제를 보장할 수는 없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 때 인류는 핵전쟁 코앞까지 갔었다. 4년 전 카슈미르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은 핵전쟁을 일으킬 뻔했다..
이러한 주장은 그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앞에서 말한 대로거니와, 아무튼 "누이 좋고 매부 좋게 그저 잠자코 죽어지내고, 투항하라"는 말을 그들은 이렇게 부정직한 표현으로 하고 있다. 이는 사실, 1920년대로 들어서면서 서유럽, 특히 독일의 혁명이 당분간 무망한 것으로 되면서 레닌이 주장했던 이른바 '일국사회주의 건설론'을, 종파주의적 의도에서, 레닌(주의)와는 무관하고 오히려 그에 모순되는 스탈린의 주장인 것처럼 날조하면서, 그렇게 서유럽의 혁명이 당분간은 객관적으로 무망하기 때문에 그만큼 쏘련에서 사회주의 건설을 서둘러야 하는 조건에서 소위 '영구혁명론'의 깃발이나 나부끼면서 사실상 쏘련에서의 사회주의의 건설을 포기했어야 한다는 주장을, 그렇게 부정직하게 주장하는 저(들)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전통과 면면히 맞닿아 있는 것이다.
또 그 글은 이렇게도 말한다.
북한 관료의 처지에서는 핵실험이 미국의 압박에 맞서는 불가피한 수단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핵실험은 사회주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동북아시아 민중을 담보로 한 위험한 게임일 뿐이다. 또한 남한과 일본 등지의 민중 운동에 부정적 효과를 낼 수 있다. ...
핵무기로 상대 국가의 노동자·민중을 위협하는 것은 공포를 부추김으로써 제국주의를 패배시킬 수 있는 진정한 잠재력을 갉아먹는 일이 될 뿐이다.
"공포를 부추김으로써"(?) ― 이는 스스로 소심한 무섬증 환자라는 사실을 무심결에 토로하는 것에 다름 아닌데, 아무튼 이렇게 되면, "핵 공포의 균형이 평화와 체제를 보장할 수는 없다"는 '체제'는 사회주의 체제가 아니라 '관료 체제'에 불과하고, 사실 저들이 하고 싶었던 얘기는 예의 '국가자본주의 체제'이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는 "미국의 압박에 맞서는 불가피한 수단"으로서의 "핵실험"조차 "사회주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동북아시아 민중을 담보로 한 위험한 게임일 뿐"이며, "남한과 일본 등지의 민중 운동에 부정적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며, 노동자·민중에 대한 위협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 국가의 노동자·민중을 위협하는 것"이며, "공포를 부추김으로써 제국주의를 패배시킬 수 있는 진정한 잠재력을 갉아먹는 일이 될 뿐"이다.
이것이 소위 '국제사회주의자들'의 간교한 말솜씨이고, 부정직한 반공선동이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그들 자신이 벌이는 일이 아니면, 어떤 것도 결코 사회주의적인 것으로서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니까!
소위 '국제사회주의자들'은 말한다. "핵실험은 사회주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이라고. 그러나 제국주의의 핵실험은, 아무런 관계도 없기는커녕, 사회주의를 압박하고 압살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의 그것은, 결코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주의를 지키려는 것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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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수 님은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