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이미 여론향방을 선도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공권력에 대한 ‘단순 테러’로 규정하는 보수언론은 ‘김명호’ 개인의 신변잡기에 몰두하는 분위기고, 이른바 개혁진보언론들은 뒤늦게나마 ‘김명호 사건’의 본질 진단에 나섰지만 사건이 갖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분위기다.
한편 네티즌들은 ‘법원 판결에 대한 불합리성을 성토’하며 구명운동에 나서고 있다. 구명운동에 나선 네티즌들은 본질 맥락을 공유하는지 불분명한 채 대체로 ‘동정론’으로 몰리는 듯한 상황이다.
개혁언론, 진보언론 초기 대응 실패
그런 의미에서 소위 개혁언론과 진보언론의 초기 대응은 가벼웠다. 사건 발생 당일인 15일 주요 일간지들이 이번 사건을 일제히 ‘테러’라 규정했다. ‘석궁은 어떤 무기인가’ '사법 사상 최악의 테러' ‘문제가 된 수학문제’ 등의 선정적 기사를 쏟아냈고, 개혁언론, 진보언론조차 보수언론과 기성언론의 보도 흐름에서 노골성만 감안한 수준에서 뒤를 따랐다.
한겨레는 사건이 중반부로 흐를 때까지 사설을 제외하곤 자체 기사 없이 통신사인 ‘연합뉴스’ 기사로 대체하다가 17일부터 뒤늦게 자체 보도를 시작했다.
사건 당일인 15일 한겨레는 사설 <‘판사 피습’, 사법 불신 키워선 안 된다>에서 보수언론 등 주요 일간지 보다 다소 점잖은 논조로 이번 사건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다. 한겨레신문은 이 기사에서 “재판을 이유로 법관한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건, 범죄 행위를 넘어 법치와 민주주의의 근간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며 “최근 법조 비리와 법원-검찰 갈등으로 가뜩이나 사법 불신이 심각한 터. 이번 일로 재판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확산될까 우려스럽다”며 사법 불신을 우려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기성언론 개인 신변잡기 일색
이 사이 연합뉴스, 문화일보, 국민일보, 서울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주요 언론들은 <김명호 전교수가 지적한 95년 대입본고사 수학문제>, <“법적 결정 수긍 못하는 성격적 결함”>, <테러 부른 수학문제>, <판세테러는 21세기 로빈후드?>, <‘석궁테러’ 재구성해보니..“집벽을 과녁 삼아 사격 연습”>의 기사들을 쏟아냈다.
연합뉴스는 15일 <고법부장 피습에 쓰인 석궁, 인명살상도 가능>의 기사에서 “15일 총포류 제조업계에 따르면 석궁은 일반적으로 사냥용으로 주로 사용되는데 유효사거리가 50~60m이며 최대사거리는 150~180m에 달한다”며 “성능이 좋은 석궁에 뾰족한 촉을 장착해 사냥용으로 쓰면 달아나는 멧돼지도 사살할 수 있으며 멧돼지를 잡은 후에는 촉을 손으로 빼기 힘들 정도로 위력이 세다”고 석궁의 파괴력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다.
중앙일보는 17일 <‘판사석궁테러’ 김명호씨는 누구>에서 김씨(김명호 전 교수)와 같은 과에 재직했던 동료 교수는 김씨에 대해 “성격이 좀 모나고 유별난 사람이었다. 학자로서 업적이 문제됐다기 보다 다른 교수들과 부딪치고 인신공격을 한 게 재임용 탈락의 원인이었다”고 전했고, 또 다른 지인은 “수업시간 중 ‘시위하는 학생들을 총으로 쏴 죽여 버리고 싶다’고 얘기하는 등 성격과 언행이 특이했다”고 기억했다”는 등의 내용을 실었다.
프레시안, ‘테러’에서 ‘판사피습사건’으로
프레시안은 사건 다음날인 16일 <“내 억울함 알리기 위해 저항”..법원 ‘경악’>에서 “판결 시비로 인해 법정에서 소송 관련자들이 판사를 협박하거나 자해 또는 상대편 소송 관계자에게 테러를 가하는 행위는 있었지만, 이렇게 판사가 직접 공격을 당한 것은 처음”이라며 “법원이 발칵 뒤집어졌으나 공격을 가한 김 전 교수는 당당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프레시안은 16일 몇몇 기사에서 이번 사건을 ‘테러’로 보도했다. 한겨레신문이 초기 사설에서 이번 사건을 ‘테러’로 규정한 것과 흡사하다.
그러나 프레시안은 17일 교수노조 성명 발표를 기점으로 기사의 성격이 달라진다. 17일 기사부터는 ‘테러’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판사 피습’ 사건으로 명칭도 바꾸었다. 과거 서울대 김민수 교수 재임용 탈락 사건 당시 ‘김민수 교수 원직 복직을 위한 학생대책위원회’ 활동가의 기고를 싣는 등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또한 김명호 전교수를 면회한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과 인터뷰를 시도해 “국회 내에 김명호 전 교수 사건의 진상조사단을 꾸릴 것을 법사위와 교육위에 제안하겠다”는 발언을 옮기기도 했다.
프레시안은 기고 <‘김명호 석궁사건’에서 7년 전 기억을 떠올리다> 편집자주에서 “김명호 전교수 역시 법원이 판시한 교수 재임용 부적격 사유는 ‘교육자적 자질 미달’이었지만 김 전교수가 1995년 성균관대 입시 본고사 문제의 오류를 지적하지 않았더라도 그가 재임용에서 탈락했으리라고 보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며 “여러 가지 공통점과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7년 전 서울대에서 벌어진 김민수 교수 사건, 그리고 사건 당시 주변 사람들이 보였던 다양한 반응은 지금 김 前 교수 사건을 놓고 벌어지는 논란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고 밝혔다.
한겨레 뒤늦게 보도 시작
한겨레신문도 17일부터 사실보도 수준에서 기사를 싣는데, 이번 사건에 대한 한겨레신문의 태도 변화는 <재임용 탈락 교수들, 복직 ‘하늘의 별따기’>에서 암시된다.
한겨레는 이 기사에서 재임용 탈락의 다른 사례를 예시로 들고, “부당하게 재임용에서 탈락한 이들을 구제하고자 교육부는 2005년 7월 교원소청심사특별위원회를 꾸려 해당자들의 재심사 신청을 받았다”며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2006년 헌법재판소는 이 특별위원회의 결정이 법적인 강제력을 가지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대부분 대학들은 특별위원회에서 부당한 것으로 밝혀진 재임용 탈락에 대해 어떤 조처도 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또한 전국교수노동조합과 변호사 등의 발언을 통해 ‘잘못된 재임용 탈락에 대한 교육부의 무책임’과 ‘부당하게 재임용에 탈락한 경우 실질적 구제를 할 수 있는 판결이 나오지 않는다’는 내용을 지적했다.
개혁진보언론 막판 스퍼트
15일 오후 김명호 사건 발생 이후 김명호 우발적 사고 주장, 17일 김명호 씨 억울함 호소하며 단식 시작, 영장심사, 교수지위확인소송 담당 주심판사 판결문 공개, 18일 김명호 씨 살인미수로 구속수감까지 지난 1주일 사건은 숨 가쁘게 진행되어 왔고, 언론은 이를 재구성해왔다. 사건 발생 이후부터 언론은 평균 2~3개의 기사를 생산했으나 주말이 낀 점을 감안해도 김명호 사건 보도는 눈에 띄게 줄었다.
보수언론 등 기성언론 발 김명호 사건은 벌써 종반부로 치닫는 분위기다. 언론의 속성상 이슈가 생기면 기사는 또 쏟아지겠지만, 지난주와 같이 탑뉴스로 주목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정란 상지대 교수는 인터넷신문 ‘데일리서프라이즈’에 실은 칼럼 <‘석궁’현대의 야만을 향해 내지른 수학자의 비명!>에서 “석궁은 나의 힘의 의지를, 나 바깥의 외계로 가장 먼 거리까지 실어다주는 도구. 내 팔을 가장 멀리까지 연장해 주는 도구. 교수들의 카르텔과 학문의 자유, 개인의 양심의 자유와 사법 편의주의를 가르는 긴 공간. 김 교수의 석궁은 이곳에서 어떤 사람들의 언어는 여전히 빽빽한 기득권의 회로를 통과하지 못한다는 것, 여전히 영주님들의 언어만이 소통되는 곳이라는 것을 증거한다”고 주장했다.
오마이뉴스는 주말까지 보도를 이어가고 있고, 프레시안도 여전히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종 과녁은 다르겠지만 김명호 교수의 석궁이 이들 언론에 실려 어느 정도 멀리까지 날아가게 될 지는 앞으로 더 두고 봐야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