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돌아온 건 해고”

성장가두 LS산전, 그리고 해고된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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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는 회사, LS산전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깨어난다는 경칩이었지만 봄을 잊게 만드는 차가운 바람이 분 6일, 그 바람을 뚫고 거리에 선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LS산전이라는 큰 회사에 다니는 사무직 노동자다.


LS산전은 작년 매출액이 1조 2051억 원, 순이익만 995억 원에 달하는 잘 나가는 기업이다. 증권회사들은 LS산전의 영업이익이 사상최대를 기록할 것이라며 우량주로 적극 추천했다. 이유는 전동공구 사업 매각과 신규사업을 통해 사업구조가 개선되고 있고, 지속적인 구조조정 성과로 재무구조도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신용평가도 나서서 LS산전 회사채의 신용등급을 'A'(안정적)로 평가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거리로 나선 13명의 노동자들

회사는 끝없이 성장하고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지만 13명의 노동자들은 거리로 쫓겨났다. 우량주의 근거가 되었던 매각된 공구사업팀에서 일하던 13명의 사무직 노동자들은 2월 1일 회사에 출근해서야 자신이 해고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억울했다. 그래서 그들은 LS산전 부당해고자 복직위원회(복직위원회)를 만들고 6일, LS산전 본사가 위치한 서울역 앞 연세재단 세브란스빌딩 앞에서 싸움을 시작했다.

그들은 처음해보는 어색한 팔뚝질로 “부당해고 철회하라! 원직복직 쟁취하자!”를 외쳤다. 김천석 복직위원회 위원장은 “1월 31일자로 해고되었는데 해고 사실을 전혀 몰랐다. 2월 1일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니까 네트워크가 차단되어 있더라. 그래서 해고사실을 확인하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그랬더니 인사담당 사람들이 와서 해고통지서를 나눠 줬다”라고 해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흑자에 성과급까지 주면서 경영상 이유?“


이유는 “경영상의 이유”였다. 이에 대해 김천석 위원장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회사는 흑자를 내고 있으며, 직원들에게 성과급까지 줬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상의 이유라는 것이 납득이 되는가”라고 분노했다.

이에 대해 구동훈 민주노총 서울본부 법규차장은 “근로기준법 31조 정리해고 관련 법안을 위반했다”라며 “근로기준법 상 정리해고는 사측이 정리해고 전에 신규채용중단, 근로시간조정, 임원임금삭감, 배치전환 등 해고회피노력을 해야 하는데 LS산전은 이를 이행 하지 않았으며, 같은 부서에서 일했던 생산직 노동자들은 모두 배치전환 된 것에 반해 사무직이라는 이유로 정리해고 한 것은 고용보장의 형평성에도 어긋 난다”라고 지적했다.

13명의 노동자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경영상의 이유”라는 해고사유에 대해서도 구동훈 법규차장은 “LS산전의 경영실적은 최대다라고 예측될 정도로 좋은데 이는 정리해고의 근거로 근로기준법상에서 제시하고 있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에 해당될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LS산전 관계자는 “회사는 정당한 절차를 거쳐 진행한 것”이라고 전했다.

"억울하고 섭섭해... 원하는 건 원직복직“

부당해고에 맞서 6일부터 싸움을 시작한 13명의 새내기(!) 노동자들은 앞으로 다양한 선전전과 집회를 통해 사측의 원직복직을 요구할 계획이며, 회사 앞을 지나가는 동료들에게도 자신들의 억울한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또한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도 할 예정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그들은 난관에 봉착했다. 사측에서 8일 이후에는 본사건물 앞에 집회신고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1인 시위로 억울함을 호소할 계획이다.

김천석 위원장은 사측에게 “다들 10년, 20년 정말 열심히 일 했는데, 결국 돌아온 것은 해고라니... 너무나 억울하고 섭섭하기까지 하다”라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원직복직 밖에 없다. 끝까지 싸울 것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함께 싸움을 시작한 동지들(!)에게 “처음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지만 가슴 속에서 우러나는 마음으로 함께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라며 “끝까지 한 마음이 돼서 싸웠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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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 , 부당해고 , LS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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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고자

    나는 LS산전에서 두 번 이나 정리해고 당했다.
    98년 IMF 때 회사가 어렵다고 해서 두 말 없이 떠났다.
    첫 아들이 태어나 8개월 되었을 때, 입사하고 2년 8개월 만의 일이다.
    아내가 친정에 가있는 동안 사표를 썼다. 나중에 사실을 알고도 겉으로는 나를 탓하지 않았다.


    그 당시엔 아무것도 겁나지 않던 젊음이 내겐 있었다. 30대 초반, 참 좋은 나이 아닌가… 나가면 어디 갈데 없을라구. 선배들 보단 내가 나가는게 맞아..
    그 때는 참 순진했고 세상도 몰랐다. 6개월 위로금 받고 용감하게 나갔으니…


    나가서 조그만 중소기업에 취직해서 열심히 일했고 회사는 순조롭게 성장했다.


    2000년 초 LS산전에서 제의가 왔다. IMF 때 사람이 너무 많이 나가서 개발할 사람이 없다며 다시 들어올 의향이 있냐는 것이다. 사실 좀 고민을 했었다. 나갔던 회사를 다시 들어가는게 아니라는데..

    그러나 아내에게 상의하니 내심 다시 들어갔으면 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결정을 내리고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썼다. 그런데 황당한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LS산전의 입사조건은 정직원이 아니라 프리렌서 설계직이었다.


    프리렌서가 우리말로 비정규직, 계약직으로 번역할 수 있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나는 3개월에 한번씩, 4번의 계약을 갱신하면서 1년을 다녔다. 왜 3개월에 한번씩 계약을 갱신하는지 아는가? 3개월 이상 계약하면 고용보험과 의료보험을 지급해야 한다.
    지금도 LS산전이 비정규직을 그런 조건으로 계약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는 재계약하지 않을 것이라 통보했다. 그리고 추석을 맞아 고향으로 가고 있는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모 부장께서 대뜸 나에게 돌아오면 사장 면접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나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반문했다. 너를 관리자(과장)로 추천했는데 관리자는 사장면접이 있다는 것이다.


    그 때 그만 했어야 했다… 그 말에 속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러겠노라고 약속했다.
    아버지가 갑자기 뇌종양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돈이 필요했다…
    가진 돈이 없으면서 직업도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그런데 내가 실제 LS에서 받은 직급이 뭔지 아는가?
    ‘대리 7개월’ 이었다.
    나는 이것이 나의 가치구나.
    나는 내가 잘난 것 같은데 이것이 나의 몸값이구나. 나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불행은 연달아 온다고 하였던가. 아버지 뇌수술이 끝나고 난 뒤 얼마 안되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내겐 어머니와 같은 존재다. 나는 장의차 뒤를 내 찌그러진 90년식 르망을 몰고 따라 가면서 정말 창피했다.
    나는 원래 겉모습에 치중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그날 만은 정말 창피했다. 그날 따라 와이퍼까지 고장나 세웠을 때 유리창 중간에 서있었다. 비는 오는데..


    30대 중반에 내가 이루어 놓은 것이 고작 이것 밖에 안되나.. 내가 정말 한심했다.


    꼭 성공하리라. 할머니 영전에 맹세했다. 그래서 장례식에서 복귀한 후 나는 죽기살기로 일했다. 남들보다 늦었지만 더 열심히 해서 보란 듯이 성공해 보겠다고, 나도 이 회사에서 이사 한 번 달아보자는 심정으로 이를 악물고 일했다. 그 때가 2002년의 일이다.


    그리고 5년이 흐른 어느날 나는 LS산전에서 짤렸다.

    아직도 내가 왜 잘렸는지 모른다.
    아무도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이 글을 쓰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이가 갈린다.


    그런데 내가 왜 이런 비열한 LS산전으로 다시 복귀하려 하는지 아는가?

    나는 노쇄한 부모님을 모시고있다.
    부양해야할 처자식이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분명히 말하고 싶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니들이 나를 자를 수는 없다! 라고,
    내 손으로 사표를 쓰면 몰라도 니들은 아니야! 라고


    내 힘으로 복귀한 후 내 장래는 내가 결정할 것이다.

  • 해고자

    1월31일 인사팀장이 와서 인수업체로 갈지 말지를 퇴근전 까지 알려주라고 했다. 만약 가지 않으면 오후 7시에 뭔가가 갈거라고 했다. 7시 까지 기다렸지만 아무 이야기가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동료들과 소주 한잔 기울이고 집에 왔지만 도무지 잠이오지 않았다. 뭔일이야 있을까... 설마 해고 까지야 하겠나. 어디 오지로 보내서 괴롭히겠지 등등 온갓 생각이 교차했다.
    뜬눈으로 밤을 세우고 다음날 평상시와 다름없이 출근을 하였다 그런데 네트워크에 접속이 안되는 것이다.
    현장직 사원의 도움으로 인사시스템에 접속해서 내 신상정보를 조회해 보았다. 그 때의 충격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없었다. 퇴직원도 아니고(퇴직한 사람도 '퇴직원'으로 조회됨), 현재원도 아니고 아예 흔적 조차 없었다.
    내가 해고되었는지 아무도 확실하게 확인해 주지 않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노와 모멸감이 치밀어 올랐다.

    정말 누구에게든 화풀이를 하고 싶었다. 그 때의 노트를 보면 참을 忍가 수 없이 적혀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참지 않는다. 돈없고 빽없는 놈이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
    내가 참으면 남아있는 내 동료들이 나와 똑같이 당한다. 이것이 내가 참고, 포기하고, 그냥 좋게 끝내지 못하는 이유다.

    나는 내 힘으로 복직할 것이다. 우리 동지들 중에서 복직을 못 할 것이라 불안해 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법으로 하면 반드시 우리가 이긴다. 그러나 우리는 법보다 우리의 실력으로 회사에 다시 입성할 것이다.
    반드시 명예 회복하고 우리들을 이렇게 만든 경영자들에게 엄중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후배들이, 동료들이 다시는 우리와 같은 고통을 겪지 않도록 내손으로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