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전문] ‘판’ 움직이는 07년을 새로운 기회로

3개 싱크탱크 주체들이 말하는 반신자유주의의 과제들

사회자(유영주 민중언론참세상 편집국장) : 들어가기 전에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 진보정치연구소, 진보전략회의(준) 등의 근황과 최근에 주되게 고민하고 있는 내용 이야기부터 풀어놔보자.

김병권, “사회경제적 변화 속에 달라진 ‘민중’, 주체의 문제 고민 중”
장석준, “신자유주의에 맞서서 가치로 내세울 수 있는 키워드가 ‘사회연대’”
홍석만, “진보운동의 전체적인 자기담론과 전략 구체화 작업 중”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 연구센터장: 올 상반기에 주로 고민하고 있는 내용은 주체의 문제이다. 대안을 얘기하려면 이를 실현할 주체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진보운동이 대안실현 또는 사회변화 실현의 주체로 생각하는 주체 개념은 길게는 20년 전, 빨라도 10년 전의 개념이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과거적 주체 개념을 염두에 두고, 진보운동의 전략과 전술의 주체로 가정하지 않는가하는 문제의식이 있다. 한국의 사회․경제구조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구조가 변했으면 당연히 그 안에 사는 주체들의 사회경제적 처지와 조건들이 많이 바뀌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진보운동이 사회구조의 변화에는 많은 관심을 갖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처지와 조건의 변화를 심각하게 고려해왔는지, 해왔다면 운동의 주체와 연결을 해봤는지에 대해 회의가 들었다.

과연 과거 우리가 생각했던 주체가 여전히 유효한지, 아니면 다른 컨셉으로 주체 범위와 범주들을 생각해야 되는지. 이게 새사연에서 올 상반기에 생각하고 있는 주된 주제들이다. 경제도 산업구조 변화가 얼마나 되었는지, 이에 따라 계급계층적 구조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바뀐 것에 준해서 큰 의미에서의 민중이라는 구성부분의 실제 내용들이 과거와 달리 어떤 구조가 되어있는지 등이 새산연의 주된 고민 지점들이다.

장석준 진보정치연구소 연구기획구장: 진보정치연구소는 당 부설 기관이다보니 당 전체 일정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돌아갈 수밖에 없다. 작년부터 단계적으로 준비하고, 중간 성과물을 낸 것이 사회연대국가전략이다. 이 용도는 일단 당이 대선 정책을 내는데 있어 큰 틀에서 방향설정을 돕기 위함이다. 내용적으로는 키워드를 찾고자 했다. 굉장히 추상적인 수준에서 사회주의, 사민주의 등이 얘기되는 데 그 보다는 구체적 차원에서 ‘대중들에게 메시지로 다가갈 수 있는 키워드가 뭐가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잠정적으로 나온 것이 사회연대라는 것이다. 사회연대라는 가치는 공화주의적 가치와 사회주의적 가치의 접점이라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에 맞서서 적극적인 가치로 내세울 수 있는 키워드를 사회연대로 잡고, 이 키워드를 중심으로 경제, 정치, 복지 등의 부분에서 정책들을 어떻게 배열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실험과 정리 작업을 하고 있고, 올 상반기 까지는 이런 작업들이 계속될 것이다.

홍석만 진보전략회의(준) 운영위원장: 진보전략회의는 작년부터 한미FTA저지투쟁,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투쟁 과정 속에서 주로 사회운동 진영의 정책적 네트워크를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사회운동진영이 여러 사안에 결합해서 투쟁해왔지만, 대부분 방어투쟁에 치중한 면이 있고, 그나마 그 성과도 이어지지 못했다. 때문에 이런 성과들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축적시켜나갈 것 인가에서부터 고민을 시작했다. 내부 구성은 사회운동 각 영역의 활동가들이 참여하고 있고, 여기에 연구자들과 관심 있는 분들이 참여하고 있다. 아직 정식 발족은 못했고, 빠르면 4월 중에 발족할 예정이다.

내부적으로 단일한 전략으로 합의보기 어려운 구조가 있고, 다만 신자유주의 하에서 대안적 담론들을 어떻게 발달시키고, 진보운동 자체가 전체적인 자기담론과 전략들 구체화해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기존의 운동과 새롭게 등장한 사회운동을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다. 현장운동과 사회운동이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의 문제, 더 나아가서 이념적 가치형태로서 생태․여성․평화․인권 운동의 주체형성과 운동노선적 결합의 문제, 마지막으로 신자유주의를 넘어선 체제, 그것이 대안세계화 형태든, 사회화 형태든, 적극적인 한국사회 진보적인 변화에 대한 상을 잡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을 모아가고 있다.

홍석만, “신자유주의, 노동에 굴종적 양보를 요구하는 형태의 사회체제”
장석준, "87년-97년 체제, 재벌들이 국내산 초국적자본으로 성장하는 1단계, 2단계"
김병권, "87체제는 부차적, 97년 체제의 규정력이 더 주요"

사회자: 오늘의 큰 주제, 신자유주의를 어떻게 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답들을 주셨으면 좋겠다. 최근 87체제 혹은 97체제 등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우선 신자유주의체제는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해보자

홍석만: 신자유주의체제는 존재한다고 본다. 한국 자본주의 발달과정과 87년 체제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본다. 87년 체제의 형성은 형식적 민주주의만 가지고 얘기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얘기하는 원포인트 개헌 등의 정치체제의 문제, 즉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측면이 있다. 87년 헌법이 주목하는 점은 기업이라는 주체를 헌법적으로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형식적 민주주의의 진전 못지않게 헌법적 주체로서 기업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과거 군사독재 하에서 기업의 권리와 경제는 국가에 종속되어 있었는데, 독점적 축적 과정 이후에 이 기업이 자율성들을 획득해나가는 과정이었다. 한국의 자본 자체가 세계자본주의체제와 결합하면서, 그런 요구들이 맞물려졌다. 이게 표현된 것이 87년 헌법으로 드러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신자유주의가 받아들여지기 시작하고, 김대중 정부의 등장이 신자유주의로 전면화 되는 계기였다.

정치적으로 놓고 보면 신자유주의적 개혁이라는 것은 모든 민중의 사회적 권리를 양보할 것을 강요하고, 노동에 대해서도 극단적 유연화 정책을 펴기 때문에 정치적 관리형태로서 일정한 중간적 성격을 지니는 정부를 요구한다. 또 그 속에서 갈등의 관리라는 측면에서 시민단체가 형성되고, 이것의 근본적 목적은 갈등을 조절하고, 위기를 넘어서는 정부형태의 형성이다. 동시에 노동에게는 일정정도의 양보를 수용할 만한 주체들을 형성해나가는 형태들, 구체적으로 사회적합의주의의 형성이다. 이렇게 표현되는 이 체제, 노동에게는 대단히 굴종적인 양보들을 요구하는 이런 형태의 사회체제들이 바로 신자유주의 체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결론적으로 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형성되었던 체제를 이른바 신자유주의의체제라고 부를 수 있겠다.

장석준: 기본으로 전제될 게 신자유주의라는 게 1970년 대 이래의 세계자본운동의 산물이기 때문에 전 지구적 시야를 깔고 이야기를 해야한다. 때문에 대단히 방대한 주제이다. 다만, 각 국가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흐름이 영향을 미치고, 사회를 전체적으로 종속시키고, 포섭해 내는 과정이 특수하게 나타난다. 때문에 그들 국가의 특성을 나타내는 의미로서의 체제 개념은 유용하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사회 독특한 신자유주의체제를 얘기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최근 87년 체제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까, 이에 대한 반대테제로 97년 체제를 부각시키는 논의가 있다. 그 취지는 이해가 되나, 그것이 오히려 놓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87년 체제와 97년 체제는 단절성 보다 연속성이 더 강하다고 본다.

특히 정치적 의미에서의 87년 체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민주화와 동반해 일어났던 경제적 자유화, 이는 사실상 재벌의 국가로부터의 독립, 재벌의 경제적 장악력 강화이다. 이런 과정들이 86, 87년의 3저 호황과 함께 벌어졌던 것이고, 80년 말, 90년 초 경제적 운동이었는데, 이것을 87년 체제의 주요한 한 축으로 보아야한다. 이렇게 봤을 때, 87년 체제와 97년 체제라는 것은 사실 한국의 재벌들이 국내산 초국적 자본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서 1단계, 2단계에 불과했던 것이다. 빅딜을 통해서 결국은 삼성과 현대를 두 축으로 정리된 과정이었고, 이를 주목해봐야 한다.

김병권: 사실 신자유주의체제 존재 여부는 학문적 수준에서 논의가 가능하지만, 실물적 수준에서는 논의할 필요가 없는 문제라고 본다. 직장다니는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 말하면, 욕 먹기 딱 좋다. 97년 이후 국민들의 삶이 확연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굳이 표현하자면, 신자유주의인데, 이건 대단히 학문적인 논의라고 생각한다.

87년 체제와 97년 체제는 연속성과 단절성도 있는데. 굳이 체제라는 개념을 쓴다면 지금은 97년 체제가 맞다고 본다. 현재 2007년을 기준으로 학계에서 사회구조를 분석하는데 87년 체제라는 개념을 쓰는 게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87년 체제 쓰면서 혼란스런 이유가 그 관점만 놓고 보면, 참여정부나 열린우리당은 어떤 의미에서는 87년 체제의 긍정적 산물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를 계승해야 한다는 차원으로 나가면, 지금도 참여정부를 끌어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구조에서는 이런 측면은 대단히 부차적 측면으로 전화되어버린 것 아닌가. 지금은 이미 97년 이후 변화된 상황들이, 한국사회 더 주요한 규정력을 가진다. 또 이 규정력들에 의해 표현되어지는 반응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렇다면, 참여정부가 87년 체제의 긍정적 산물이라는 규정력은 국민들이 볼 때는 대단히 부차적이고,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이식하고 있다는 규정력이 훨씬 더 주요하고,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따라서 현재진행형으로 놓고 본다면, 97년 체제의 규정력이 훨씬 더 주요하고, 87년 체제로부터 이어져온 규정력은 부차적이라는 생각이다.

사회자: 탈신자유주의라는 표현이 적당한지 모르겠으나, 신자유주의를 넘기 위한 과제를 정치적 맥락과, 경제적 맥락으로 나눠 얘기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장석준: 탈신자유주의라고 했을 때는 굉장히 광범위한 스펙트럼과 폭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신자유주의라는 게 전 세계적 자본운동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궁극적인 탈신자유주의가 되려면, 전 세계적 자본운동 자체를 제어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야 한다. 여기까지는 많은 과도적 단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이 과도적 단계까지를 탈신자유주의라고 부르더라도 상당히 많은 전략과 전술적 수준들을 포괄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탈신자유주의’라는 말이 지나치게 포괄적일 수 있겠다.

그 연장선에서 우리는 일정한 과도기를 전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적 혹은 지역적 수준에서의 신자유주의 극복의 흐름들은 미미하게라도 나타고 있다. 그러나 이런 흐름들이 세계적 혹은 지역적으로 어느 정도 무르익어 가는가, 이 시간과 국내에서의 정치경제사회적인 시간이 어떤 식으로 맞아떨어지는지를 주목해서 봐야한다. 그 과정에서는 일국적 수준에서는 일정하게 과도적 전략이 필요하다. 과도적 전략에 있어서는 전 세계적 시간대의 문제도 있을 뿐만 아니라, 일국 차원에서 신자유주의의 극복의 주체형성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가, 또 그 주체형성의 시간대가 어떤 식으로 발전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이런 측면 고려하면서, 하나의 과도적 단계로서 한국에서 가능한 탈신자유주의의 방향을 이야기해야할 것 같다.

김병권: 구체적으로 영미식 자본주의를 신자유주의의 전형적 형태로 그리고 당장은 한국이 영미식 자본주의가 전형적으로 도입된 구조로 본다면, 이걸 어떻게 넘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보다 실천적이지 않은가 생각한다. 그런데 ‘영미식 자본주의 또는 주주자본주의가 세계적 현상이냐’라고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흔히 얘기하는 유럽 모델은 ‘영미식 자본주의가 적용된 모델이냐’라고 물을 수 있고, 중국, 인도, 베트남 등에 대해서도 그런 질문이 가능하다. 구체적 형태로 영미식자본주의를 신자유주의의 가장 전형적 형태로 보고, 이게 한국에 적용되었다는 전제를 깔고 난 후 ‘이게 현재 대세냐’라고 했을 때는 과거도 현재도 아닐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탈신자유주의라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범지구적으로 신자유주의로 단일화되어 있다’라고 얘기를 하는 부담을 지니게 된다. 이 부담을 진다는 것은, 한국에서 탈신자유주의를 하는 것은 범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된 것을 한국이 선도적으로 돌파할 수 있겠냐는 부담을 짊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안에 대한 논의가 어려운 구조로 빠지게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장석준: 그 부분은 생각이 좀 다른 것 같다. 현상이 어려우면, 대안도 어려울 것을 인정하고 갈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여러가지 시각들이 있는데, 자본주의 유형론으로 신자유주의 접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자본운동으로 표현했을 때 전일적으로 ‘70년대부터 신자유주의가 지배하고 있다’기 보다는 끊임없이 신자유주의가 경향적으로 자신을 관철시키는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영미식 자본주의의 안티테제로 얘기하는 라인형 자본주의 등도 영미식 자본주의의 주요 특징들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국내, 국외 초국적 자본들에 의해 끊임없이 흔들려가고 있는 과정이 70년대 이후 과정이라고 봐야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분명히 전 지구적 경향으로서의 신자유주의를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그 상황 속에서 과도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전략들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병권, “신자유주의라는 추상개념 구체적 수준으로 끌어내려야”
장석준, “‘좌익민중주의’나 차베스 사례 발전시켜야”
홍석만, "방어투쟁 아닌, 민영화기업 ‘국유화․사회화’로 되돌리는 투쟁 조직해야“

홍석만: 유럽의 국가들에서도 신자유주의적 조치들을 상당수 받아들이고 있는 형국이다. 복지국가 모델의 위기, 유럽에서의 사민주의 몰락이 신자유주의화되어가는 현실을 보면, 영미식 자본주의 등의 특수한 형태만 가지고 얘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원래 주제로 돌아오면, 정치적 과제는 어쨌든 주체형성의 문제라고 본다. 새사연에서 중점적 고민으로 잡고 있는 것처럼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주체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의 문제다. 한국적 상황은 따로 얘기를 하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렇게 나쁜 조건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의 아주 암울했던 상황보다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세계적 수준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저항도 세계적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반미전선이 꾸준히 확장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남미에서 차베스의 경우 신사회주의 얘기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과는 전혀 다른 정책들로서 남미 위기들 극복하려는 흐름과 움직임이 있다. 또 남미에서 좌파 도미노현상들이 말해주는 부분이 있다. 유럽에서도 21세기 전후로 실업자운동에 이어서 작년 프랑스 이주노동자들 투쟁 등이 현재로서는 단순한 저항으로 볼 수 있지만, 이 주체들이 어떻게 형성해 나가냐의 문제가 중요하다. 서구유럽사회에서 기존의 전통적 운동들, 특히 노조운동의 경우 과거에는 일국단위에서 산별을 건설했다. 그러나 이제는 지구적 수준에서 국제적 산별건설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이런 흐름들을 보면 신자유주의가 세계적인 운동화되면서 이에 대한 반경향으로서 저항의 주체들이 스스로를 조직해나가고 있다. 이런 점들도 우리도 제대로 볼 필요가 있고, 그 속에서 정치적 주체형성의 가능성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병권: 사실 한국에서 대안론은 저변의 국민적 흐름을 쫒아서 인구에 회자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국민적 수준에서는 탈신자유주의에 대한 인식의 공감대가 수동적이지만, 근거는 매우 넓다. 그러나 이게 정치적으로 어떻게 표현되는가는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정치적으로는 이 신자유주의라는 추상개념을 어떤 식으로든 구체적 수준으로 끌어내려야 한다. 극단적으로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 물어보면, 많은 이들이 신자유주의를 반대한다고 한다. 그런데 한미FTA에 반대하는 교집합은 같지가 않다. 말하자면 신자유주의는 추상적 개념이고, 한미FTA는 구체화된 개념인데, 추상적 수준에서는 다 반대한다는데, 구체적 개념으로 들어가면 ‘잘 모르겠다’거나 피동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이다. 현재 ‘반신자유주의로 정치적 단결이 되어있냐’라고 할 때 말로는 되어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건 대단히 추상적이기 때문에 반신자유주의가 공통분모라는 것을 신뢰할 수 없다. 문제는 구체적인 손에 잡히는 몇 가지 아젠다로 끌어내리면서, 반신자유주의에 대한 정치적 연대를 구체화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는 것 같다.

장석준: 최근 조희연 교수가 ‘좌익민중주의’라는 개념을 이야기했다. 위험하게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나, 기본적인 문제의식에서 공감한다. 결국은 정치경제학적 분석이 곧바로 정치적 주체형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도 실천과정에서 절감한다는 것이다. 우리 주목해야 될 것은, 서구에서 인민주의, 혹은 담론정치가 좌파들 사이에서 회자된 시점이 70년대 말 80년대 초이다. 이때가 서구에서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정권들이 등장하면서 민중운동과 대결했던 시기이다. 근데 한 판 깨졌고, 대표적으로 영국이다. 왜 신자유주의에 당연히 반대해야 할 민중이 신자유주의 추진세력과 동맹관계를 형성하게 되는가에 대한 연구들도 있었다.

핵심은 단순히 사회경제적 범주로서 신자유주의에 피해 받는 대중에 더해서 이들을 결집하고 응집시킬 수 있는 담론과 쟁점들을 기동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는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흔히 인민주의라고 얘기하는 정치행태가 우리의 전략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의 ‘좌익민중주의’나 차베스 사례들은 정치전략 측면에서 발전시켜야할 고민들을 담고 있다.

홍석만: 구체적 수준으로 내려와야 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사회운동 차원에서 얘기를 하면, 반신자유주의 전선이라는 것이 대부분 방어투쟁이었다.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전략이라는 게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정리되면 국제수준으로 열어버리고, 한발 빼주면, 계속 후퇴하는 식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대안을 찾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추상적 구호로 ‘신자유주의 반대’로는 안 된다. 한미FTA가 되면 사실 반대할 거리도 없어진다. 더 이상 반대투쟁가지고는 어려운 문제들이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는 계속 가중될 것이다. 단순히 피해만 부각시킨다고 해서 대중들이 결집할 것인가라는 문제들이 있다.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이제는 반대투쟁 혹은 피해를 부각시키는 투쟁과 결합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대안적 고민들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거꾸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방어투쟁이 아니라 거꾸로 민영화된 공기업을 붙들고, 이것을 다시 국유화든, 사회화든 민영화가 아닌 형태로 되돌리는 투쟁을 조직해보는 것이 어떨까. 이것들을 다시 바로잡아가는 투쟁들이 조직되는 방식. 이렇게 구체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현장에서의 패배주의나 허무주의가 너무나 광범위해서 이런 희망의 불씨들을 다시 되살려 놓지 않는다면, 진보운동이 대안적 세력이 되거나 그 안에서 주체형성이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은 무망하다라는 생각을 한다.

사회자: 홍석만 운영위원장이 신자유주의 반대를 넘는 구체적 대안으로 사회화 또는 국유화를 생각해볼 수 있지 않는가라고 지적했다. 대안으로 새사연의 노동중심경제론과 진보정치연구소의 사회연대전략과 연관해 얘기를 풀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장석준, “자본에 대한 통제, 재벌한테 빼앗아 올 필요도 있다”
김병권, “공공펀드 조성 등 진보식 자본동원 문제 고민해야”
홍석만, “신자유주의 유지․관리하는 조정은 또 다른 위기 불러올 것”

장석준: 사회연대국가전략에서 빠져 있거나, 더 발전시켜야 할 부분에 대해서 개인적인 수준에서 얘기를 하겠다. 신자유주의체제에서 과도적이고, 중간적인 대안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자본에 대한 통제라고 본다. 자본에 대한 통제력을 어떤 식으로, 얼마나 확보하냐의 문제다. 이게 되었을 때 서유럽 복지체제의 합리적 핵심을 가져가면서도, 한국사회에 적합한 복지체제 혹은 노동체제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전략을 만들어가는 차원이나, 현실 정치에서 의제형성 차원에서나 우리가 공세적으로 얘기하지 못했던 자본에 대한 통제, 핵심은 초국적 자본에 대한 통제를 과감히 얘기해야 한다. 이것의 하위 부분으로서 민영화 기업에 대한 재국유화 등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정말 경제가 이딴 식으로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는 재벌한테 빼앗아 올 필요도 있다고 본다. 이런 부분에 대한 전 민중운동 내의 합의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면, 지금부터 바로 시작해야 한다. 이런 점들을 대안에 대한 중요한 고민의 축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김병권: 지금 시대가 저항적 연대로는 넘기 힘들다. 대안적 연대로 넘어서야 하는데, 한국 사회운동이 대안적 연대로 뭘 해본 역사가 별로 없다. 대안적 경제전략을 세울 때 생산관계나 생산력까지 포함해서 노동을 움직이는 문제가 중요하지만, 실제로 진보가 경제를 운용하겠다는 집권적 마인드를 가지고 사고하기 시작하면, 반드시 자본에 대한 동원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진보의 가장 취약한 고리가 자본 동원에 대한 아이디어가 약하다는 데 있다. 진보는 상당부분 복지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 보니 국가재정이 생각나고, 국방비 밖에 생각나지 않으니 국방비 전환하는 구조를 얘기한다. 그것도 안 되면 세금을 더 걷자는 구조다. 이 메커니즘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이런 구조의 범위를 넘지 못하는 게 진보의 한계다.

한국이 어쨌든 남미 보다 나은 측면이 있다고 본다. 차베스가 훌륭하지만, 불쌍하다고도 생각한다. 국가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것이 석유회사 밖에 없다는 점에서 불쌍하다는 것이다. 한국은 재정이 아니고도, 굉장히 많은 구조에서 자본을 동원할 수 있는 잠재적 능력이 있다. 우스운 사례일 수 있지만, 예를 들어 98년에 금모으기 운동해서 조 단위 돈을 모은다. 쌈짓돈 털어서도 조 단위 돈이 나온다. 또 벤처 열풍 불었을 때 정부에서 낸 돈은 중소기업에 원래 지원하던 자금에 약간 더해서 5년 간 20조 밖에 안냈다. 그런데 실제 동원된 돈은 100조가 넘는다. 말하자면, 삼성 다 안 뺐어도 국민적으로 돈 모으면 삼성을 사버릴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고, 이런 잠재력을 어떻게 동원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구체적인 사례로 두 가지만 이야기하면, 왜 진보가 우리은행의 공공화에 대해서 집요하게 관심을 안 가지는지 궁금하다. 몇 년 동안 올라간 주식가치만 보더라도, 예금보험공사가 30%만 남기고 다 팔아도 공적자금 회수가 되는 수준까지 주식가치가 상승했다. 이미 우익들조차도 ‘예금보험공사가 왜 다 터냐, 30%는 남겨놓아라’는 얘기를 할 정도가 되었다. 그렇다면 진보진영은 적어도 한 개 은행은 반드시 공공화를 시켜나가는 것부터 대안논의를 출발해야 하는데, 이에 대해 관심이 없다.

두 번째로는 펀드인데, 이것을 꼭 펀드자본주의다 또는 주주자본주의다라고만 생각할 것은 아니다. 내가 보기에 얼마든지 공공펀드 조성할 수 있다. 사회복지사업이나 공공사업에 굳이 재정을 동원하지 않고, 공공펀드를 조성해서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다. 예를 들어 요식적이긴 한데, 작년 12월에 우정사업본부와 산업은행이 2조를 출자해서 철도건설과 학교 짓는 펀드를 2조 만들었다. 진보가 생각하는 복지 아젠다든, 사회서비스 아젠다든 이를 위해 공공펀드를 얼마든지 조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진보가 진보정책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자본을 진보식으로 동원하는 방법에 대한 기제를 가지고 있어야지, 국가재정에 대해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본을 동원하는 것은 다른 나라보다 얼마든지 가능한 구조이다. 그리고 지금이 기회인 것 같다. 왜냐하면, 어쨌든 자본이 안정적 수익률을 찾아서 해외로 나가는 구조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한 보다 공격적 대안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것이 새사연의 고민 중 하나다.

홍석만: 기본적으로 자본에 대한 통제가 두 가지 방향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겠다. 어떤 형태로든 신자유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금융자본 자체에 대한 조절과 통제가 있을 수 있겠다. 지적한대로 은행 민영화가 치명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은행노조 쪽에서는 관치라고 얘기하는데, 차라리 관치가 낫다라고 할 판이다. 물론 과거와 같이 국가에 종속되는 형태는 문제가 잇겠지만, 지금처럼 초국적자본의 이익에 일방적으로 봉사하는 형태의 은행을 방치해 놓는 것은 문제가 있다. 결국은 생산수단 자체를 조절하고 통제하고 더 나아가 대안적으로 노동자들이 소유하는 문제까지 들어가서 자기계획들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다. 이전에 시도가 없었던 것 아니나, 단절된 것 같다. 자주관리도 의미가 있었다고 보는데, 이런 시도들을 이어나갈 필요가 있겠다.

다른 한편으로, 이미 국내 떠도는 시중 자본이 500조다. 밖에 나가있는 돈까지 치면 1천조 가까이 된다. 이건 굉장히 위험한 것이다. 자본 자체가 굉장히 과잉화 되어 있다. 단순히 신자유주의를 유지시키고, 관리하는 조정은 또 다른 위기를 낳을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팽창된 자본들을 어떻게 통제하냐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본다. 이런 형태 전략이 나오지 않으면, 결국에는 파국으로 치닫을 수 있다. 500조, 1천 조 되는 자본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1%만 있어도 되는 문제이고, 현재 재벌의 소유구조나 관계에서도 국가나 사회적으로 역으로 지배할 수 있는 방식들을 적극적으로 고려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장석준: 올해는, 어떻게 보면 새로운 2007년 체제가 만들어 질 수 있는 좁게는 정계개편, 넓게는 사회세력 재편까지 이뤄질 수 있는 격동의 한해이다. 방금 이야기했던 주제들이 진보세력의 대중적 메시지로 합의되고, 선전되고 사람들의 가슴속에 각인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올해가 탈신자유주의의 매듭점이 될 수 있겠다 생각한다.

사회자: 한국적 대안의 전망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한국에서 남미의 길 혹은 유럽식 복지국가 모델 이도 아니면 제3일 길은 무엇이고, 이를 위한 핵심 과제는 무엇인가

김병권, “남미, 모델 실현의 경로에 대한 참조사례”
홍석만, “남미․유럽과 운동기반 등 달라, ‘주체’ 아래 경로와 모델이 배치되어야”
장석준, “일본 진보운동의 경로 따라가지 않기 위한 대안적 주체 고민 필요”

김병권: 목표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를 고려치 않고, 타겟모델로만 본다면 스웨덴이나 북유럽 모델이 훌륭하다. 그러나 대안이라고 한다면, 타겟모델, 경로, 그리고 실현할 주체의 고민이 다 되어져야 한다. 이 모든 게 있어야 한다. 모델로만 놓고 보면 북유럽식 모델이 휼륭하지만, 경로를 보면 우리가 1920년대 스웨덴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하반기에 새사연이 베네수엘라 연구를 했던 건 모델 때문이 아니라, 경로 때문이었다. 경로는 시대성을 많이 탄다. 20세기 초반 또는 19세기에 아무리 좋은 경로가 나왔더라도, 20세기에 실제 실현된 경로가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남미의 사례가 자신들의 모델을 어떤 방식으로 실현했는가라는 의미에서 참조가 될 것 같다.

홍석만: 한국은 한국적 길을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모델과 경로와 주체 다 필요하다고 본다. 모델도 현실성이 있기 때문에, 일종의 유토피아가 아닐 것이다. 경로로 본다면, 남미와는 한국 상황이 차이가 많이 난다. 운동기반 자체가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는 전통적 노조운동에 제한되었지만, 남미의 경우는 군부 내에서조차 급진적 전통과 역사를 가진 세력들도 있다. 우리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또 베네수엘라의 경우 빈민운동을 기반으로 지역 공동체들이 조직이 되고, 또 이 운동세력들이 좌파의 역사적 정통 속에서 같이 크면서 결합되어 온 상황이다. 남미 식 모델이라는 게, 자본운동의 발전 속도나 사회구성 측면 등에서 한국의 상황과 다른 면이 많다.

오히려 현재의 상황만 놓고 보면, 서유럽과 일정 비슷하다. 그러나 유럽 운동과도 역사와 전통이 너무 다르다. 또 남북관계 문제도 함께 놓여있다. 이랬을 때 한국적 모델과 대안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전히 주체의 문제일 수 있겠다. 기존 조직운동 수준에서는 한계에 봉착한 상황이고, 이를 뚫고 나가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주체들과 함께 가는 방식 속에서 경로와 모델이 배치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장석준: 한국사회와 관련해서 유형화해 타 사회와 비교했을 때, 한 가지 불길한 점은 일본과의 유사성이다. 한국사회의 지금 상황이 일본에서 50-60년대 안보투쟁 시기까지 좌익세력들이 시민사회 주도적 세력으로 활동하다가 70-80년대 거치면서 일본 사회 내에서 소금이 물에 녹듯 형체 없이 녹아 들어가버렸던 과정과 비슷하다. 구조적으로도 같은 동아시아 사회이기 때문에 충분히 유사성을 말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어쨌든 일본의 그 시기는 전 세계적인 케인즈적 국면과 얽혀있었던 것이고, 지금 한국사회는 전 세계적 신자유주의 국면과 얽혀있기 때문에 똑같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면 일본에서 조직노동운동이 체제내화 되었던 전철을 밟지 않으면서, 대안적 주체를 발굴해낼 것인가. 일본에서는 대안적 그 주체를 지역운동에서 찾았던 것인데, 지역운동과 조직노동이 완전히 분리되면서 시민사회 내 진보세력들이 파편화되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그런 경로를 반복하지 않으면서, 대안적 주체를 형성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데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회자: 현실을 놓고, 보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새로운 대안적 주체의 상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장석준, “영세자영업자, 신자유주의 최대 피해계층”
홍석만, "노조 구조 넘어 지역 주체들과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김병준, 노동자․농민․학생․소자산계급 등 전부 재규정해야“

장석준: 그동안 빈민운동, 지역운동 등 애매하게 표현된 부분이 있는데, 이에 대한 계급계층적 분석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새사연에서 진행할 연구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의 최대 피해계층이지만, 진보세력이 주목하지 못한 계층, 영세자영업자 등이 지역에 굉장히 많이 포진되어 있다. 이들을 어떻게 조직화해낼 수 있을까, 어떤 쟁점을 가지고 조직화할 것인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담인데, 민주노동당 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운동이 카드수수료 인하 운동이다. 전통적 시각에서 보면 굉장히 개량적이고, 이익집단에 부화뇌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영세자영업자들의 실질적 고민들을 조직화한 것이다. 여기에 머물면 안 되겠지만, 이를 어떻게 새로운 모델로 발전시킬 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홍석만: 신자유주의 세계화 국면 하에서 주체 문제에서 가장 중심적 화두는 지역이라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모순적 작동 메커니즘 중 하나가 지역에 대한 문제를 확산시킨다는 것이다. 지역 개발이라는 명분 하에 새만금, 방폐장 문제들이 퍼져나갔다. 노동 쪽에서도 업종으로 산별 조직하기 보다는 지역으로 하려고 한다. 지역에서 어떻게 주체들을 지역적 규모와 수준에서 조직해낼 것인가가 핵심적 화두라고 보인다. 그런 면에서 심상정 의원이 지구당을 지역센터로 개조해야 한다는 제안은 좋은 제안이라고 본다. 정당운동이 특정시기에 동원되는 구조가 아니라, 지역운동의 거점으로 형성될 필요가 있다. 또 마포에서 민중의집 운동 등 지역의 중심거점들을 통해서 지역 주체들과의 다양한 결합을 도모한다는 측면에서 좋은 예일 것이다. 이런 예들이 단순히 노조나 농민회 등의 구조를 넘어서 지역 주체들과 유기적으로 결합하면서 진보의 역량과 힘들이 축적될 수 있는 방식이 아닌가 싶다.

김병권: 노동자, 농민, 학생, 소자산계급 등 이들을 전부 재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극단적 사례가 학생과 농민에 대한 재규정이다. 예를 들어 1980년대 기준으로 보면 그때 당시 대학생이 60만이고, 농민이 1천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대학생이 300만이고, 농민의 경우 가구전체를 포함해서 330만 명이다. 이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영업자 지적했지만, 전통적 계급분석구조로 보면 자영업자는 소자산계급이다. 소득, 노동의 이동경로 등 여러 가지 데이터를 놓고 보면, 지금 자영업자는 임금노동자 보다 더 나쁜 구조에 있다. 공식적 임금노동구조에서 퇴출되어 나간 사람들의 마지막 거처이다. 이들을 과거처럼 소자산계급으로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이를 지역운동과 연관을 시켜보면, 90년대 이후 지역주민운동 활성화되었는데, 문제가 주민단체가 토대로 서있는 구조가 전업주부나, 노인들이다. 말하자면, 선거운동할 때 득표율 계산하는 사람들의 구조와 비슷하다. 실제로 회원들의 90%는 자영업자인데, 이들은 돈만 낸다. 바쁘니까 못한다. 주민운동을 하시는 분들의 사업방식에 자영업자들이 참여할 수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만약 우리가 자영업자가 옛날 소자산계급이 아니고, 이들이 공식적 노동자 보다 더 열악한 구조에 속하고, 언제든지 기회가 되면, 노동을 하고 싶은 사람들로 본다면, 전혀 다른 사업방식들이 전개될 수 있다고 본다. 지역운동이 주부나 노인들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영업자들을 상대로 하는 새로운 방식들이 전개가 될 수 있고, 이들의 요구에 근거한 운동들을 고민하기 시작하면, 지역운동의 판구조가 많이 바뀔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적 차원에서 자영업자를 준 노동운동구조의 운동주체로 만드는 성격규정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회자: 올 한해를 놓고 대선시기의 진보운동의 과제 측면에서 정책과제와 대항담론들을 어떻게 구체화시키고, 현실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제안을 한다면

장석준, “‘최적강령’ 합의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후보로 환원되어선 안돼”
홍석만, “당은 party, 집안 잔치만 해서는 큰 판 만들 수 없다”
김병권, “한국사회 대중적 에너지 새롭게 표출되는 계기로 만들어야”

김병권: 당이 할 일이 많을 것 같은데...

장석준: 역설적인 것 같은데, 방금 당에 할일이 많다고 하셨는데, 당이 보다 뚜렷하게 자기기반을 넓게 갖는 사회적 세력으로 인정받으면 받을수록 역설적으로 당 혼자로서가 아니라 전체 진보적인 시민사회의 조직자로서 그리고 촉매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실제로 한나라당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보수적 시민사회의 촉매역할을 하면서 꾸준히 망을 만들고 있다. 사실 민주노동당이 그런 부분에서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번 시기 역시 선거시기이기 때문에 할 일 많겠지만, 당이 법적 한계와 경계를 넘어서서 시민사회 전체를 활성화시키는 할 일들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전제해서 몇 가지 얘기하겠다.

손호철 교수의 ‘최적강령’이라는 표현을 빌려오면, 그 안에 문제의식이 담겨있다고 본다. 이번 대선시기에 궁극적 상에 대한 부분에서 합의가 안 되어있고, 미완성인 부분 있다. 그런데 적어도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넘어서야 한다는 것과 좀 더 구체적이고 대중들에게 메시지로 다가갈 수 있는 수준의 최적강령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이번 대선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대선 시기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후보문제가 중요하게 제기가 되겠지만, 적어도 이번 대선이 거기에 환원되어선 안 된다. 이 과정 자체가 최적강령을 만들어내고, 이에 대해 토론하고, 이 토론 과정이 대중들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새롭게 결집시켜가는 과정들과 연동되어 이뤄지는 한 해를 만들어가는 게 진보세력 전체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홍석만: 기본적 문제의식 동의한다. 이번 대선이 한국사회 진보진영의 재편에 대한 얼개를 짜내는 과정이어야 한다. 강령으로 표현될지, 각자의 영역에서 요구들을 모아나가는 과정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런 형태의 과정들이 조직되지 않으면, 우리에게 있어 대선이 의미가 있나 싶다.

또 하나는 지금 민주노동당으로 대표되는 진보정당 운동도 그런 면에서 넘어서 볼 필요도 있겠다. 며칠 전 당 대회에서 후보선출방식에 대한 논의도 있었고, 3가지 안이 나왔다. 그런데 어떤 식으로든 그것은 민주노동당의 잔치가 된다. 민주노동당 뿐만 아니라 사회운동과 진보진영이 함께 대선국면을 돌파하고, 일종의 잔치를 벌여야 한다. 당이 파티(Party)다. 그러면 파티(잔치)를 해야 하는데, 자기 집안 잔치만 해서는 큰 판의 잔치를 만들 수는 없다. 이랬을 때 필요한 게 뭐냐를 고민해야 한다. 당을 포함해 사회운동진영, 민주노동당이 아닌 정치세력들이라고 하더라도 이들이 함께 주체가 되어 참여할 수 있는 구조, 그리고 관계와 방식들이 존재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신자유주의 위기 국면을 돌파하고, 또 다른 대안세력으로 거듭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덧붙이면, 최근 민주노동당 안에서 얘기되는 민중경선제나 국민경선제는 사실 진정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미 마치 줄 세우기나 득표 전략으로 전락된 느낌이다. 이런 의미에서의 민중경선이라는 것은 경계해봐야 한다. 실제로 참여라는 수준에서 당의 문호도 열고, 함께 만들어가는 대선투쟁이라는 개념에서 조직하고, 대선국면에서 급진적 요구들을 형성하기 위한 계기나 방식들을 찾아봐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좀 더 구체적 수준에서 얘기하자면, 실제로 국가단위에서 필요한 것들이 뭔지, 한국사회 전체적인 개조방향들에 대한 비젼을 제시해줘야 하는데, 이런 수준에서 보면 불가피하게 사회화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

김병권: 현재 정치역학만 놓고 보면, 뭘 선택해야 하냐는 것은 나를 포함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강요 수준이다. 패가 뻔한 상태에서, '어쨌든 선택을 해야하지 않냐' 가지고는 재미가 없다. 정치역학이나 판구조가 올해 안에 어떻게 바뀔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이것을 가지고 연구원 수준에서 고민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대선이 초점일지, 내년 총선 초점일지 모르겠으나, 올해를 계기로 한국사회의 대중적 에너지가 다른 방식으로 표출되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한미FTA가 시작되었을 때 굉장히 색다른 기대감이 있었다. 2000년 이후 처음으로 민중운동이 주도해서 국민적 아젠다를 만든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미FTA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제기하고, 중심에 서고, 책임을 지고 거의 국민적 의제 수준까지로 끌어올린 것이 불과 일년 전이다. 이에 대한 발전적 에너지가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다. 특히 그 가운데에는 이른바 386세대를 넘어서는 뒷 세대들이 대한민국의 중심세력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실히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그 세대들이 20대 초반에는 X세대니, 신세대니 했는데, 정확하게는 IMF세대다. IMF와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그러면서 IMF가 사회의 전부인 것으로 받아들여진 그 세대가, 외환위기 시스템을 가장 적극적으로 깰 수 있는 세대라고 생각한다. 이미 그들이 개인화되고, 파편화된 시점도 이미 지났다고 생각한다. 과거 세대의 방식은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단결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들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우리들의 이후의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근거가 되지 않을까 한다.

장석준: 올 대선과 내년 총선을 계기로 단순히 정해져 있는 합법적 정치일정에만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과 조우하는 대중적 참여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열기의 동원은 우리가 비교적 최근에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탄핵, 월드컵 등이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열기의 동원만 있었지, 지혜와 상상력과 열기가 함께 가는 동원을 최근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런 것들을 가까운 정치일정 속에서 만들어낼 수 있을까가 핵심 과제인 것 같다. 이를 위해서 여러 가지 계기를 고민하는데, 사실 한미FTA를 국민투표로 결정하자는 것도 이런 고민의 반영이었던 것 같다. 내가 노무현 대통령의 원포인트 개헌을 민중적 사회적 개헌으로 맞받아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글을 썼는데, 이런 계기들에 대해 진지하고 적극적인 고민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

사회자: 정책적 그리고 운동적 측면 외에 대선시기 개입할 수 있는 실내용에 대해 얘기를 한다면

김병권: 지금은 할 얘기가 없다

사회자: 홍석만 운영위원장 지적 중에 대선시기에서 진보진영 참여의 장을 열자라는 맥락에서 후보전술에 대한 판단도 열려있는 것인가

홍석만, “민주노동당 후보가 아닌, 좌파진영의 후보 사고할 수 있다”
장석준, “민주노당 밖 세력 실체화, 당 활성화에도 긍정적 역할”

홍석만: 원칙적 수준에서 진보의 의제들을 형성해 나가고,급진적인 면을 고취시키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결합된 운동들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들이 후보로도 표현이 될 필요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답답한 점은 후보에 대한 상상력도 민주노동당의 틀에 갇혀버리는 느낌도 많이 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좌파진영에서도 민주노동당의 후보가 아닌, 좀 더 자기의 요구와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노동자민중후보도 필요하고, 필요하다면 운동과정의 특정 시점에서 사고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직 의견 수준이고, 실물적인 운동흐름으로 나타나고 있지는 않다. 민주노동당만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당이나, 노동자의힘이나, 현장의 운동세력들, 사회운동진영의 운동단위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런 단위들이 함께 결합되어서 대선의 지형을 왼쪽으로 계속 끌고나가는 역할들을 해줘야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장석준: 난 오히려 적극적으로 바라는 부분이다. 민주노동당 왼쪽에 좌파 의견 분포가 존재하고, 오른쪽에도 대중적 의견분포가 존재한다. 이런 부분들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실체화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개인으로만 이야기 되는데, 이런 부분들이 실체화되어서 대중적 토론과 결합되어진 진지한 정치협상은 대중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정치적 사건들이다. 이 부분들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되는 게 민주노동당이 활성화되는데도 긍정적 역할을 미칠 것이라고 본다.

홍석만: 하나만 덧붙이자면, 민주노총에서 민주노동당에 민중경선을 제안했다. 앞서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말한 대목인데, 지금 현재 민주노조의 운동의 여러 현실과 노선들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이런 얘기를 한다면, 민주노총 내의 여러 의견과 입장을 반영한 수준이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 그 제안이 성립이 되려면, 먼저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에 대한 개정 또는 변경에 대한 문제를 같이 얘기해야 하는데, 이런 건 전혀 안 나온다. 민주노총 안에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입장이 다수이기는 하지만, 다른 여러 가지 의견분포가 많다. 이런 부분들과 같이 하려고 하는 진정성이 보이느냐는 지점에서 의심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농, 민주노총 등의 대중조직들이 운동을 조직해나가는 과정으로 이번 대선이 자리 잡을 수 있는 조치들이 먼저 나와 주는 게 희망적이겠다는 생각이다.

사회자: 마무리 발언 부탁한다

장석준: 정치의 시간은 물리적 시간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국 사회만큼 이를 절감하는 사회도 없다. 정말 중요한 사건이 1년에도 몇 번씩 일어난다. 그 사건의 시간은 물리적으로는 짧아도, 사회구성원들에게 직접적이고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지난 총선이 끝나고 올해까지의 시간은 참으로 긴 시간이었지만, 대선이 벌어지는 올해는 지난 3년 보다 훨씬 밀도 있게 무게를 가지고 진행될 것이다. 따라서 진보운동의 각 주체들도 이런 생각 속에서 책임있으면서도, 선도적인 움직임들을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김병권: 지금이 87년 체제든, 97년 체제든, 어떤 경로로든 올해가 그것의 전환이 될 것이라고 본다. 단순히 대선과 총선이 아니더라도, 대중운동적인 구조로 보아도, 과거의 시스템과 단절 혹은 시작될 수 있는 전환의 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을 대안적 내용으로 풀지, 주체의 운동적 방식으로 풀지 또는 선거제도라는 구조로 풀어질지 모르겠지만, 올해가 신자유주의 시스템에서 각도를 전환할 수 있는 해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홍석만: 한나라당 후보들 까지도 한반도 운하, 반핵, 광개토전략 등등을 얘기하고 있다. 보수진영이 한반도 문제까지 자기 영역을 확장해 들어가고 있다. 이전처럼 냉전, 분단 등의 코드로 접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을 통한 권력재편이라는 것은 신자유주의 재편을 한반도 수준에서 확장하는 것이 주요한 의제로 저들에게는 놓여있는 것이고, 그만큼 한국사회가 역동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크게 보면, 북미관계 변화에 따라 53년 체제 자체가 변화할 가능성이 있고, 이런 사회변화에 진보운동의 어떻게 능동적으로 대처하느냐의 문제가 사활적으로 걸려있는 게 이번 2007년의 과제이다. 이 속에서 뭔가 변화한다는 것 자체는 우리에게도 기회라는 것이다. 고정되어 있던 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인데, 주어진 판만큼 우리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현재의 대중운동의 상태를 반전시킬 수 있는 한해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2007년 진보진영의 대응과 합의점들을 끌어내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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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 좌담 , 진보정치연구소 , 새사연 , 진보전략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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