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 차베스
정당 밖에도 차베스의 선언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다. 일부 지식인들은 논쟁을 통하지 않고 신당을 선언해버린 차베스의 오만한 태도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공동체 조직의 일부 지도자들은 새로운 계획을 지지하지만 다른 지도자들은 반대하는 의견을 갖고 있기도 한다. 다양성 및 참여에 대한 문제가 여기서 명백히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또 이 지역의 사회변혁운동에서 당 구조의 실질적 역할 및 타당성에 대한 문제도 작용하고 있다. 차베스의 제5공화국운동은 쿠바에서 공산당, 니카라과에서 산디니스타, 엘살바도르에서 FMLN이 예전에 얻었던 지지보다 훨씬 낮은 지지를 얻어왔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정당은 현대 남미의 맥락에서 적절성을 갖고 있기는 한 것일까?
친 차베스 정당, 부패와 관료주의로 비판받아
1980년대의 외채위기는 수입대체산업화(Import Substitution Industrialization, ISI) 등과 결합된 국가적 발전모델에 기초하고 있는 전통적인 정당 및 노동기구를 약화시켰다. 베네수엘라 정부에 의해 진행된 개혁을 통해 중앙화된 정당 구조는 더욱 해체되었다. 1984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하이메 루신치(Jaime Lusinchi)는 국가개혁대통령위원회(COPRE)를 만들어 당 내부 개혁을 추진했다.
여기에는 폐쇄형명부제(*후보자의 당선순위가 정당에 의해 미리 결정)를 탈피해 유권자가 자유롭게 후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무기명 투표 시스템, 주지사 및 시장에 대한 직접선거, 사법 개혁, 권력을 중앙정부에서 지역 수준으로 이양하는 것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조치들은 초기에 의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1988년 의회에서 시장에 대한 직접 선거, 정당명부제에 대한 승인, 재정 및 행정의 탈집중화 등이 결국 승인되었다. 그러나 이런 개혁들은 한계가 있었다. 왜냐하면 정당 엘리트들이 탈집중화 과정에 대한 높은 수준의 통제를 계속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는 위기와 불안정의 시기였다. 1989년 카라카조(Caracazo)로 알려진 거리 봉기 이후 전통적인 정당들은 더욱 신용을 잃었고, 민중권력의 새로운 원천이 등장했다. 1990년대 초 지역에서 사회 행동주의가 성장한 시기에 차베스도 군부 내에서 비밀리에 급진적 그룹을 형성했다. 이것이 혁명적볼리바르운동(MBR-200)이다. 1992년 2월과 11월 그는 두 번의 쿠데타를 이끌었다. 1998년 12월에 차베스는 애국전선(Patriotic Front)으로 알려진 당 연합의 지지를 통해 당선되었다. 이 애국전선은 제5공화국운동이 이끌고 있다. 그리고 여론의 지지는 카리스마적인 차베스의 지도력과 함께 그들의 연합으로 통해 얻어진 것이었다.
민중이 차베스를 당선 시켰다!
"정당은 민중을 배제시켜"
2006년 12월 차베스가 재당선될 수 있도록 한 2006년 11월의 선거운동기간동안에 친 차베스 정당들의 역할에 대한 비판도 증가하고 있었다. 특히 이 비판은 민중들 속에서 나왔다. 친 차베스 정당들은 관료주의, 부패 등으로 민중진영에서 비난을 받았으며, 민주적 내부 메커니즘을 결여했으며, 분파주의적 노선을 넘어 협력하는 데 실패했다. 정당의 군인들은 일반 민중들과 의미 있는 관계의 진전을 이뤄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가 공동체 활동에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목격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그들은 멋진 호텔의 회의실에서 그들의 회의를 열었지, 지역에서, 공장에서 또는 열려진 광장에서 회의를 열지 않았다.
최근 선거는 2004년 소환 국민투표 때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2004년 당시 민중들은 차베스를 권좌에서 축출하려고 하는 반대세력이 제안한 국민투표를 거리에 모여 분쇄했다. 제5공화국운동이 지역공동체에서 민중들을 조직하는 데 실패한 한편, 친 차베스 운동을 뒷받침한 세력은 조직된 지역 공동체 활동가들이었다. 지역 공동체 활동가들은 국민투표에 등록하고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도록 적극적인 캠페인을 진행했다. 마찬가지로 2006년 12월 선거에서도 공동체 조직들은 그들만의 선거 운동을 하고, 집회를 열고 정당 밖에서 선거운동을 했다.
라 베가(La Vega)와 같은 민중 진영에서 정당은 내분과 분파주의에 너무 매몰되어 있어 일반적인 민중들을 배제시켰다. 국민투표 때와 같이 선거운동은 공동체 조직가들의 노력 덕택에 큰 성공을 거두었고, 정당은 외부에 머물러 있었다. 일부에서는 최고 지도자들이 정당에서 민중들을 점점 더 배제시켜가는 것을 목격했으며 차베스의 통합정당 주장은 정당의 분파주의와 내분을 제한하기 위한 한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정당통합은 엘리트들의 권력을 강화"
정당 통합 선언은 차베스가 63퍼센트를 얻으며 승리한 선거의 여파로 만들어진 다른 결정들의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차베스는 200-400가구로 조직된 지역위원회에게 더 많은 권력을 줄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2006년 2월 그가 지역위원회에 더 많은 재정을 분배할 것이라는 선언을 한 이후, 카라카스 주민들은 그들 자신의 공동체 위원회 형성을 총회에서 이야기 했고, 작은 규모의 워킹그룹을 조직했다. 지역위원회가 형성된다는 것은 베네수엘라가 차베스라는 인물의 권력에 더 집중하고 중앙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에 반대되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풀뿌리 민중들과 더 많은 접촉을 하고 있는 재구조화된 당을 통해 더욱 명확해지고 있는 민중권력의 자기조직화 단위를 만들어가고 있는데 더 많은 강조점이 가게 되는 듯하다.
그러나 일부 공동체 그룹들은 통합정당에 비판적이다. 라 베가의 한 조직가는 한 깃발아래 모든 정당이 통합하는 것은 엘리트들이 혁명의 과정에서 그들의 권력을 더욱 강화하는 방법이며 이로 인해 민중운동의 의제를 진전시켜나가는데 훨씬 더 큰 장애를 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통합당’이라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정당이 건설되고 있는 방법이다. 위에서 아래로 대통령의 명령으로, 그리고 공동체 활동가들이 아니라 관료주의적이고 부패한 정당에서 조직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베네수엘라 공동체 활동가들에게 더 큰 반향을 얻고 있는 모델은 볼리비아의 MAS(사회주의운동) 당이다. MAS는 전통적 좌파, 일반 민중 및 볼리비아 선주민들이 모인 당으로 여기에는 노동자, 농민, 저지대 고지대 선주민 그리고 무토지농민운동과 같은 사회운동이 참가했다. MAS는 천연 자원의 사유화에 반대하는 투쟁과 탄화수소자원관련 법 개정에서 성공적으로 이런 그룹 연맹들을 동원해냈다. 2005년 3월 MAS는 다른 그룹들과 함께 파업과 도로봉쇄를 조직했고, 카를로스 메사 대통령을 퇴진시켰다. 이들은 2005년 12월에 성공적으로 선거운동을 조직하고 선주민 지도자 출신의 에보모랄레스를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MAS 활동가들은 구체적인 투쟁에 참가하면서 아래로부터 당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은 연맹을 건설하는 한 방법으로, 선거 기구로 그리고 제도적 개입의 수단으로 당을 활용했다.
베네수엘라 정당의 고유한 문제와 엘리트주의 속에서 볼리비아의 MAS와 같은 노선을 따라 새로운 당으로 재구성하는 것은 어려워 보다. 오히려 라 베가 조직가는 사회운동이 지역 위원회를 통해 기초를 건설하고 이것을 정당 독점에 대응하는 단위로 활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아래로 부터 건설해야
사회변혁운동에서 정당의 역할에 대한 논쟁은 베네수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중정치의 초기에 정당과 노동조합은 큰 집단을 구성하고 대변했으며, 다양한 수준에서 정책결정에 영향을 주었고,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전국적, 국제적 동맹을 건설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조직들의 다수는 굳어지고 대변하고 있는 집단의 요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노동력이 점점 더 비공식화되고, 민족, 인종, 성의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조직화 공간이 공장에서 지역 공동체로 이동함에 따라 정당 및 노동조합은 시대에 뒤 떨어지고 경직되어 있는 것이 증명되어 왔다. 위계와 중앙주의는 일만 민중들의 주거지역에서 민중회의를 더욱 민주적으로 하는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투쟁의 가장 혁신적인 형태가 정당이 아닌 공동체 라디오, 공동체 기반의 노동자 조직, 주민 회의, 재가동되고 있는 공장을 통해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그리 놀랍지 않다.
제도적 압력, 연합, 그리고 민중 조직과 국가 사이의 새로운 소통의 수단을 건설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통합당을 만들 것이냐, 또는 볼리비아와 같은 MAS를 만들 것이냐는 궁극적으로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행사할 수 있는 토대에서 민중들을 조직하려고 하는 의지와 아래로부터 지역적 전국적 연계를 건설해 나가려고 하는 힘의 균형이 더욱 중요하다.
[번역] - 변정필 기자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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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3월 19일 Znet에 게재된 글을 번역한 것이다. 원문은 http://www.zmag.org/content/showarticle.cfm?SectionID=45&ItemID=12379 에서 볼 수 있다. 수하타 페르난데스는 미국 퀸스 컬리지와 뉴욕 대학에서 조교수로 있으며, 2006년까지 프린스턴 대학에서 남미 정치를 강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