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욱 열사가 보름간 죽음과 싸움을 벌이다 결국 하늘로 갔다. 제발 그곳에는 택시노동자의 설움도, 비정규직의 설움도, 가난의 설움도, 양극화라는 무시무시한 말도 없길 기원해 본다.
열사의 마지막 하루를 담은 기사에는 이런 덧 글이 달렸다.
“한미FTA 하면 미국 택시가 들어오나요? 왜 택시 기사분이 한미FTA 반대한다고 끔찍한 일을 한건지? 농민들이 힘든 건 이해를 하겠는데... 택시 기사분과 FTA는 관계가 없어 보이는데? 왜 그런지 설명 좀 해 주세요”
그렇다. 열사를 취재하면서 주변을 지나가는 시민들의 비슷한 반응을 많이 접했다. 택시 기사와 한미FTA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 농민이 아닌 노동자 허세욱 열사와 한미FTA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민중의 얼굴을, 마음을 가진 허세욱 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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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답은 허세욱 열사가 남긴 유서를 보면 알 수 있다. 허세욱 열사는 “망국적 한미FTA를 폐지하라”며 “나는 이 나라의 민중을 구한다는 생각이다”라고 편지지에 꾹꾹 눌러 적었다. 허세욱 열사는 농민의 얼굴을 한 민중을, 노동자의 얼굴을 한 민중을, 빈민의 얼굴을 한 민중을 구하는 마음으로 그 끔찍한 분신을 선택한 것이다.
허세욱 열사는 농민의 얼굴을 한 택시 기사였으며, 빈민의 얼굴을 한 택시 기사였으며, 노동자의 얼굴을 한 택시 기사였다. 미국산 농산물의 관세 철폐로 시름에 빠진 농민들의 마음은 열사의 마음이었으며, 공공서비스 개방으로 물이며 전기를 비싸서 사용하지 못하게 될 빈민의 마음은 열사의 마음이었다.
허세욱 열사는 그런 민중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미국 택시가 한국에 들어오지 않을 지라도 청와대 앞에서 일인 시위를 했으며, 택시에는 언제나 유인물을 가지고 다니며 택시에 타는 농민, 노동자, 빈민, 학생, 장애인, 여성들에게 한미FTA의 위험성에 대해 알렸던 것이다. 허세욱 열사는 “민중을 구한다는 생각”으로 몸에 불을 붙였다고 했지만, 그는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몸에 불을 붙인 것이다. 허세욱 열사는 몸에 불을 붙이지 않더라도 점점 더 심각해지는 양극화로 어디선가 쓸쓸하게 죽어갈 수많은 민중의 얼굴을 하고 스스로를 살리기 위해 몸에 불을 붙인 것이다.
수많은 민중들은 눈으로 보기에 직접적으로 자신의 삶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순간에 불의에 맞서 저항했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자유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언제나 그런 순간에 역사는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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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민중을 우롱하는 것들
허세욱 열사는 “숭고한 민중을 우롱하지 마라”라고 했다. 노무현 정권은 평택으로 미군기지를 이전하면서, 비정규직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한미FTA를 타결시키면서 이 순간에도 숭고한 민중을 우롱하고 있다.
허세욱 열사가 마석 모란공원에 묻힌 날에도 기자에게는 어김없이 행정자치부로부터 보도자료가 왔다. 내일(19일) 박명재 행정자치부 장관이 전국 지방자치단체 부단체장 246명을 초청해 한미FTA 설명회를 개최한다는 것이었다. 행정자치부는 “지방자치단체 핵심 리더인 부단체장들의 이해를 돕고, 중앙-지방간 공동 대응전략을 모색하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고 밝히고, 박명재 장관은 “한미FTA 타결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정부-지방자치단체 간 긴밀한 협력을 통해 국가경쟁력 제고의 디딤돌로 삼을 것을 당부”하는 인사말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는 왜 택시 기사 허세욱이 몸에 불을 붙였는지는 안중에도 없다. 아니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아니 잘 죽었다라고, 빨리 없어져 주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이 땅의 골칫거리 민중들이 모두 다 사라져주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열사는 민중의 가슴 속에 활활 타오르며 살아있다.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민중을 우롱하는 높으신 분들과의 한 판 싸움을 끊임없이 벌여 가야 한다. 멈춰서도 안 된다. 그 속에서 택시 기사 허세욱 열사의 죽음은 부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