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드디어 한미FTA 협상 한글문이 공개됐다. 정부는 영문, 한글본 원문 본문과 부속서, 부속서한 등 일체의 내용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협정문의 알짜라 할 수 있는 양해각서(Understanding)는 공개되지 않았다.
이날 브리핑을 가진 김종훈 한미FTA 수석대표는 “이번에 공개된 한·미 FTA 협정문은 최종본이 아니며, 협정 서명(6월30일 예정) 이전까지 양국 간 법률 검토(legal scrubbing)와 우리 법제처 검토를 거치게 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양측 간 합의하에 필요한 경우 일부 문안은 수정될 수 있다”며 향후 재협상에 따른 수정 여부의 가능성을 열어 뒀다. 최종문안은 6월 30일 전, 양국 정상이 서명한 이후에 공개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공개 양해각서, 사실상 알짜 빠진 협정문 공개
현재 정부는 협정 본문, 부속서, 부속서한 등 한미FTA에 포함된 일체의 내용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물론 현재 공개된 내용에서도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들과 곳곳에 독소조항들이 발견되면서 ‘실효성’ 논란과 ‘고의 은폐기도’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여전히 공개되지 않은, 양해각서(Memorandum Of Understanding)에 사실상 알짜의 내용들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 협상 의제가 아니라던 LMO(유전자조작생물체)와 관련해 정부가 고위급 회의 등을 통해 미국 측의 요구를 수용했다는 내용이 밝혀졌다. 특히 협상 막판 섬유 의제와 빅딜된 것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 정부는 LMO와 관련해 전문가 기술협의만 했지 FTA 의제는 아니라고 밝혀왔다. 관계 부처들은 LMO 관련한 내용은 ‘언더스탠딩’ 방식으로 진행됐다며 격하 시켰다. 그렇지만 정부가 말한 ‘언더스탠딩’은 사실상 양해각서 조약수준의 내용과 성격을 갖는다.
특히 현재 공개된 내용에는 이런 각 협상에서의 양해각서(언더스탠딩)와 관련 내용들이 빠져 있다. 또한 통합 협정문 형식으로, 양측의 요구와 결과가 병기된 협정문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또한 공개되지 않았다. 사실상 정부가 일체의 문서를 다 공개했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알짜가 빠진, 선별적으로 문서들이 공개된 셈이다.
다시 反한미FTA 논쟁 국면 도래
정부의 바램대로, 양국 대표가 협정문 서명에 이르는 과정이 그리 순탄할 것 같지 않다.
우선 25일 발표한 협정문에 근거해 내용 논쟁이 상당히 진행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합의한 협정 내용의 실효성 논쟁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는 독소조항 및 단서 조항들을 보면, 사실상 한미FTA 협상을 ‘왜 했나’ 싶은 조항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부의 고의 은폐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범국본은 협정문 공개에 앞서 지난 22일 노무현 대통령의 “협상이 끝나면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반대하는 이들과 무릎을 맞대고 밤을 새워서라도 토론하겠다”던 ‘약속 이행’을 촉구하며 공개 토론회를 제안 했다. 정부와 재계의 주장이 아닌 국민들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평가와 실익을 따져보자는 논란은 이후 더욱 가속화 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오는 6월 2일은 한미FTA 협상 중단을 촉구하며 분신한 고 허세욱 열사의 49제 이기도 하다. 대학로에서 진행될 이날 행사는 사실상 한미FTA 반대 거리 투쟁의 또 다른 시발점이 될 예정이다. 특히 범국본을 중심으로 29일을 전후로 각 지역과 부문의 집중 싸움을 노정하고 있어, 한미FTA 반대 진영의 경우 내용 논쟁과 더불어 6월 거리 투쟁에서 한미FTA 저지 싸움의 여세를 몰 것으로 전망된다.
미 의회가 한미FTA에 대해 활발한 의견개진을 하고 있는 것에 반면 '휴업' 상태인 국회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쏟아지고 있다. 국내에 부재한 통상법 재정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反한미FTA 입장을 밝힌 비상시국회의 소속 의원들과 자문단 전문가들이 결합해 임시국회 및 국회 일정에 따른 활동을 통해 정부를 압박 할 계획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 요구 구체화 되면 반대 여론 더 확산 될 터
이과 동시에 국제수역사무국(OIE) 총회에서 미국이 ‘광우병 위험통제국’ 판정을 받음으로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개방의 공세 앞에 놓이게 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OIE 총회 결과에 따른 구두 약속 등 한국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에 발목이 잡힌 상황에서 ‘8단계 수입 위험 분석(import risk an analysis)’까지 축소하려 해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현재 소비자단체들과 급식운동 단위들이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대대적인 감시 운동에 나설 것을 밝힌 상황이고, 25일 미국육류수출협회가 진행한 미국산 쇠고기 시식행사에서 피케팅 등 거리 행동에 나섰다.
특히 연말 대선 분위기와 맞물려 이런 여론 지형은 하루 앞을 전망하기 어려운 국회와 국민적 논쟁을 촉발할 수도 있다. 이미 한미FTA를 둘러싸고 의원들이 자기 성격을 규정하려 했던 전례를 비춰볼 때, 협정문에 대해 국회도 자기 목소리를 내려 할 것이다. 6월은 대내외 적으로 한미FAT을 둘러싼 논쟁이 불붙는 시기가 될 것이다.
물론 국내 정치지형 뿐만 아니라 미국 내 지형 또한 간과할 수 없다. TAP(무역촉진권한)연장 합의를 전제로 신통상정책이라는 결과물이 나왔다는 해석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과 이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대결 구도는 한미FTA에 예상치 못한 변수들을 키워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끝내 양국 대표가 서명한다면
현재 간과 하지 말아야 할 점은 4월 2일 타결을 선언한 양국의 협정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문서에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미국의 TPA(무역촉진권한) 상 90일간의 의회 검토 기간이 있어야 한다. 그 기한인 6월 30일, 양국 대표가 서명하는 그 순간까지 여전히 싸움의 의제는 남는다.
그러나 어떻게든 양국 대표가 한미FTA 협정문에 서명을 하게 된다면, 양국 국회의 비준 절차가 남게 되기 때문에 사실상 싸움의 유형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관련 근거 규정이 없기 때문에 최종 서명 이후 국회 비준 동의안이 제출 되면 언제라도 국회에서 처리하면 된다.
비준동의안은 소관 상임위인 통일외교통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본회의에서 최종 처리되는 수순을 밟게 된다. 그간 한미FTA 협상 내용과 관련해서 한미FTA체결대책 국회 특별위원회(한미FTA 국회특위)에서 주되게 논의를 해 왔으나 국회 비준 처리 과정에서는 실질적인 역할이 없다. 각 상임위 별 관련한 내용을 추가 검토 할 것이나 사실상 최종 관문은 ‘통외통위’가 되는 셈이다. 12월 대선 등을 고려할 때 9월 정기 국회에 제출된 가능성도 있으나 처리 여부를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여전히 미공개 내용에 대한 공개, 실효성 논쟁 등 논란이 국회 내에서도 계속될 것이고, 특히 9월 이후 본격적인 대선 국면이 도래할 것임을 고려할 때 다시 한 번 국회 내에서 한미FTA를 둘러싼 선긋기가 진행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선 국면에서 누가 한미FTA 비준 동의라는, 그 정치적 부담을 안을 것인가를 고려할 때 사실상 내년 4월 총선까지 처리 하지 못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는 의회를 중심으로 본 한국 내 여건이다. 물론 이런 국회 지형을 만들어 내는 것 또한 국민 여론이 바탕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6월은 한미FTA 실효성에 대한 대국민 검증작업이 더욱 절실해 지는 시기인 셈이다.
미국의 경우 현재 90일간의 소관 상임위 별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검토 이후 미국 행정부는 일종의 상충법률리스트와 같은 미국내법 수정안과 이행법안을 제출하고, 그로부터 90일 이내 미 의회가 동의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미국의 경우 미 의회가 언제 한미FTA를 통과 시킬지 여부는 미 행정부가 이행법안을 언제 제출하는가에 달려있다.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의 경우는 1년여의 시간이 소요됐다. 미국 또한 2008년 대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미국 내 지형에 따른 변수는 충분하다.
충분한 정치적 변수.. 무엇을 해야 할까
지난 10일 발표된 미국의 신통상정책이 사실상 의회와 행정부의 TPA(무역촉진권한) 연장을 조건으로 한 거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6월 말이 기한인 TPA 기한이 연장된다면 미국의 경우 미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강하게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자동차, 서비스 등의 재협상을 카드를 들고 나올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렇게 되면 공은 한국으로 넘어오게 되고 미국의 공세적인 요구에 사실상 한미FTA 협상은 또 다른 파고를 맞게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까지(25일) 미국은 공식적인 재협상 요구를 하고 있지 않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과정과도 연관된다. 일각에서 2~3개월 후 미국산 쇠고기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여론몰이를 하고, 미쇠고기수출협회는 25일 시식회를 갖으며 한국시장 공략에 나섰다. 의제가 아니라 해도 한미FTA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문제는 맞물려 돌아갈 수밖에 없다.
미국산 쇠고기가 국제수역사무국(OIE) 총회에서 광우병 통제국 등급을 판정 받았다 해도, OIE 결정은 권고 사항일 뿐 강제 사항이 아니라는 점과 미국의 사료 정책 등 여전히 광우병 위험에 대한 문제제기가 계속되고 있다. 소비자들과 보건의료인들이 ‘감시단’을 자처하고 나섰고, 정부가 8단계의 수입 위험 분석 단계를 2~3개월 내 축소해 진행하려는 분위기에 대국민 반발 여론이 확산될 가능성도 높다.
재협상 논란을 피해가기 위한 ‘추가협의’ 가능성과 한국의 연말 대선과 내년 4월 총선, 미국의 내년 대선 등 양국의 정치 지형과 이해에 따라 한미FTA 타결을 쉽게 낙관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다.
협정문을 꼼꼼히 볼 수록 이 정부의 무책임함이 극에 달한다. 정부가 어떻게 이런 내용에 그렇게 자랑스러워했을까 놀라울 뿐이다. 지난 2일 타결은 말 그대로 ‘선언’에 불과하다. 한미FAT 협상 저지, 백지화를 위한 싸움은 이제 본판의 시작인 셈이다.
아쉽게도 이런 정세에 비해 동력이 충분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여기서 싸움의 공을 넘기고 포기할 순 없지 않은가. 6월은 진정 한미FTA 협상을 둘러싼 대국민 여론 싸움의 시작이다. 다시 운동화 끈을 조여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