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입맛대로 '세계은행'

미 부시, 세계은행 총재에 로버트 죌릭 임명

미 부시 대통령은 여자친구의 승진 및 연봉 인상 스캔들로 불명예스럽게 퇴임하는 폴 울포위츠 세계은행(World Bank) 총재 후임에 전 미 국무부 부장관 로버트 죌릭을 임명한다고 30일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세계은행을 비롯한 국제금융기구가 미국의 확고한 영향력 아래 있음이 다시 확인되었다.

미 부시 대통령은 세계은행 이사회가 이번 결정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오랜 부시家와의 인연...대외정책의 핵심 맡아와
“경쟁적 자유주의”도입한 장본인


로버트 죌릭은 미 부시 행정부 내에서 2001년 2월에는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지냈고, 2005년 1월부터는 미 국무부 부장관을 지냈다.

로버트 죌릭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로 있을 당시 “경쟁적 자유주의”를 도입해, 위기에 봉착해 있는 다자간 무역질서(WTO) 대신 양자간, 지역간 FTA를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공세적으로 추진하기도 했다. 그는 2004년 CAFTA(중미자유무역협정)을 추진했고, 에콰도르, 페루 등과의 협상도 개시했다.

그러나 로버트 죌릭은 행정부 내에서 뿐만 아니라 월가에서도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작년 6월 부장관에서 물러난 직후 골드만삭스 국제담당 부회장으로 일해 왔다. 분만 아니라 회계부정으로 파산해 악명 높았던 엔론의 자문위원이기도 했고, 알리앙스 캐피탈, 존스 인터케이블의 임원진으로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부시家와의 인연은 비단 이번 부시 행정부의 인연만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아버지 조지 부시대통령 시절부터 현 미 부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대외경제정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로버트 죌릭은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 냉전 후 대외경제정책을 수립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1989년에서 92년까지 국무차관을 지냈고, 92년에서 93년까지는 백악관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아버지 조지 부시 행정부 당시 NAFTA 협정을 체결할 때 ‘구원투수’역할을 한 것도 로버트 죌릭이었다. 어려운 순간마다 당시 멕시코 대통령이었던 살리나스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 사이를 오가며 NAFTA 협정을 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WTO가 만들어지기 우루과이 라운드가 농산물에 대한 이견으로 유럽과 협상이 고착상태에 빠졌을 때에도 협상을 주도하는 역할을 했다. 동독과 서독의 통일과정을 미국이 설득할 때에도 로버트 죌릭은 빠지지 않았다.

“미국을 증오하는 ‘악(evil)'이 있다”
군사력 우위에 기초한 외교정책 주장하는 현실적 네오콘


로버트 죌릭은 도널드 럼스펠드, 딕 체니, 울포위츠 등 절대적인 미국 군사력의 우위를 주장하고 미국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네오콘 인물들에 비하면 온건하다고 평가되기는 한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으로, 죌릭 또한 현실적 네오콘으로 분류된다.

1998년 로버트 죌릭은 네오콘의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의 선언문에 서명하면서 네오콘의 그룹에 합류했다. 그 선언문은 군비 예산 증가 및 이라크 정권교체 등을 요구하는 선언이었다.

또, 로버트 죌릭은 '악'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등장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로버트 죌릭은 부시 취임 1년 전에 쓴 글에서 “미국과 미국이 표방하고 있는 생각을 증오하는 ‘악’이 있다. 오늘날 우리는 핵, 생화학 무기를 미사일과 함께 개발하는데 노력하고 있는 적들을 마주하고 있다”며 “미국은 이 적들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의 ‘제왕’
‘초국적기업 위해 국제금융기구 이용’ 비난 피할 수 없어


미 부시 대통령은 이번 결정이 세계은행 이사회에서 무난히 받아들여질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이 미 헤게모니를 위해 ‘전쟁광’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전 미 국방부 장관 울포위츠를 자리에 앉힐 때만해도 총재임명을 놓고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로버트 죌릭의 경우 그 동안 미국의 대외정책을 담당해 온 점을 높이 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패권주의적 행보에 대해 중국과 인도 등 일부 이사회 국가들은 불편한 심기를 내보이고 있다.

국제 시민사회에서도 이번 결정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니엘 그린피스 세계은행 담당은 “부시의 오래된 친구인 로버트 죌릭을 선택함으로써 충성심을 우선에 놓았다”며 “죌릭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WTO를 추진해왔던 인물”이라고 꼬집었다.

그 동안 세계은행은 개발도상국에 차관을 제공한 대가로 물을 비롯한 천연자원의 사유화를 추진하고, 외채 위기를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전 세계적으로 받고 있다.

부패 스캔들로 자리를 물러난 울포위츠 대신 부시와 ‘오랜 친구’인 로버트 죌릭을 자리에 앉힘으로써, 미국이 초국적 기업의 이익을 위해 국제기구를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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