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밤 조합원들은 "꼭 돌아오겠다"고 했다. |
농성장에 경찰의 군화발 소리가 나기 직전, 조합원들은 모여서 마지막 결의를 다졌다. 어제(19일) 밤 조합원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이경옥 이랜드일반노조 부위원장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글을 보내주셨다며 글을 읽기 시작했다. "하루 여덟 시간을 제 자리에 멈춰선 채 화장실조차 갈 수 없었던 그들은 꽃보다 아름다운가"라는 첫 구절에 조합원들은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경찰의 경고방송이 이어지고, 전투경찰의 목소리가 입구를 통해 새어 들어오던 어제 밤 농성장을 지키던 조합원들은 새우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오늘 오전 그녀들은 "아들 같아서 안타깝다"라고 말하던 전투경찰들 손에 끌려 경찰서로 갔다. 그녀들은 "반드시 다시 모여서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글의 전문이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운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하루 여덟 시간을 제 자리에 멈춰선 채
화장실조차 갈 수 없었던 그들도 꽃보다 아름다운가.
하루에도 산더미 같은 물건을 팔아치우면서도 막상 제 것으로는
단 하루도 지닐 수 없었던 그들도 꽃보다 아름다운가.
온종일을 서서 일하다 퉁퉁 부은 다리로 어기적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도 꽃보다 아름다운가.
아픈 새끼를 집에 두고 와서도 “고객님, 어서 오십시오”
"사만 팔천 사백 이십 원 나왔습니다. 적립카드 있으십니까?”
“비밀번호 눌러주시겠습니까?”“고객님, 봉투 필요하십니까?”
“고객님, 안녕히 가십시오. 고맙습니다”
컨베어 벨트를 타고 오는 부품처럼 밀려드는 손님들을 향해
하루 수천 번도 더 웃어야하는 그들도 꽃보다 아름다운가.
고객님의 부름이라면 득달같이 달려가지만
집에선 새끼도 서방도 만사가 귀찮기만 한 그들도 꽃보다 아름다운가.
그렇게 일하고 한 달 80만원을 받았던 그들도 꽃보다 아름다운가.
1년 계약이 6개월로 6개월이 3개월로 3개월이 0개월로
그런 계약서를 쓰면서도 붙어있기만을 바랬던 그들도 꽃보다 아름다운가.
주저앉고 싶어도 앉을 수 없었고 울고 싶어도 울 수 없고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고 소리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던
단 한 번도 그럴 수 없었던 그들도 꽃보다 아름다운가.
▲ 이정원 기자 |
그러나 지금 그들은 꽃보다 아름답다.
너펄거리는 반바지를 입고 딸딸이를 끌고 매장 바닥을 휩쓸고 다니는
그들은 어떤 꽃보다 아름답다.
매장 바닥에 김칫국물을 흘려가며 빙 둘러 앉아 도시락을 먹는 그들은
이제야 비로소 꽃보다 아름답다.
거짓웃음 대신 난생처음 투쟁가요를 부르고 팔뚝질을 해대는
그들은 세상 어떤 꽃보다 화려하다.
▲ 이정원 기자 |
성경엔 노조가 없다는 자본가에게 성경엔 비정규직도 없다고
자본의 허위와 오만을 통렬하게 까발리며 싸우는 그들은
어떤 꽃보다도 값지다.
한 달 160만원과 80만원. 정규직과 비정규직.
말로는 '하나'임을 떠들지만 사실은 '둘'이었던 정규직의 알량한 위선을 넘어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구호가 얼마만한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온몸으로 증언하는 그들은 어떤 꽃보다 귀하다.
▲ 이정원 기자 |
이 싸움은 단지 이랜드 홈에버의 싸움이 아니다.
비정규직 철폐를 외쳐왔던, 비정규직과의 연대를 부르짖어왔던
우리들의 의지와 양심을 시험하는 싸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비정규직이라는 이 사회의 '불편한 진실'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게 될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싸움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그들에게 향하는 우리의 마음 하나하나, 발길 하나하나가 힘든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힘과 용기가 될 것이다.
▲ 이정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