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광고는 마약광고보다 나쁘다'
대부업(사채)광고에 출연한 연예인들 중 몇몇은 생각이 짧아 그랬다고 출연을 중단했고 또 몇몇은 누가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출연하고 있다.
그리고 마약광고보다 더 나쁘다는 아파트 광고에는 그 어떤 연예인도 ‘짧은 생각’을 고칠 생각 없이 여전히 미모를 자랑하며 출연하고 있다.
대부업, 아파트 광고에 출연하는 미남, 미녀 연예인들, 그래서 돈을 와장창 버는 연예인들의 달콤한 속삭임. 그 달콤한 속삭임에 넘어가는 것은 주로 서민들(사채는 사실 주로 근사한 담보물이 없는 서민들이 끌어 쓰지 않나?)이다.
고리대금업자들의 ‘무이자’의 속삭임에 넘어간 서민들의 가정이 지금 파탄 나고 있다. 그래도 또 누군가는 계속 텔레비전에 출연하여(돈 버니까, 돈만 벌면 장땡이니까) 대출을 속삭인다. 자신의 인기를 가장 나쁜 식으로 소비하고 있다, 돈만 벌면 양심에 꺼릴 것도 없으니까. 이럴 때 돈은 양심을 커버한다.
당신의 책은 얼마나 팔리나
▲ 공선옥 소설가 [출처: 오도엽] |
그런데 ‘돈이 양심을 커버’하는 메커니즘에서 이 나라 작가들은 자유로운가. 요즘은 어디를 가나 심지어 작가들이 모여 있는 자리엘 가도 꼭 한 번씩은 받는 질문이 있다. 당신의 책은 얼마나 나갔냐,는 것이 그것이다.
작가이든 아니든, 작가에게 던지는 질문이 무엇을 어떻게 쓰느냐는 것이 아니라 팔리느냐, 안 팔리느냐, 인 것에 대해 그러나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나 받는 작가나 그리 문제시 하지 않는 분위기가 된지는 오래 되었다.
팔리는 작가는 인기작가고 인기작가는 언론에 빈번하게 등장하며 출판업자들은 그런 작가를 잡지 못해 안달을 한다.
안 팔리는 작가인 내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게 무슨 억하심정에서 나오는 소리인 것으로 치부될 것이 우려스럽기는 하지만, 그런 우려를 무릅쓰고 나는 작가인 내가 견지해야 할 태도에 대해서 밝힌다.
나는 내 작품의 판매부수에 대하여 초연할 것. 팔리고 안 팔리고는 책의 운명이며 출판업자들의 몫이다. 나는 작가다. 나는 오직 내가 최선을 다해 의미 있는 작품을 쓰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만으로 글을 쓸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의미 있는 글이란 어떤 글인가.
진정한 좌파 작가의 태도
나는 언제나 내 글 쓰는 입장을 ‘좌파’ 쪽에 세운다. 좌파란 무엇인가. 주류가 되고 있는 선에서 비껴나는 자세가 내가 생각하는 좌파다. 혹여 내가 서 있었던 좌파의 자리가 주류가 됐을 때 그 자리를 떨치고 나오는 자세 그것이 좌파가 취할 태도다.
좌파적 입장에 서기를 바라는 내가 가장 경계하는 글이란, 소위 상식으로 포장된 기존의 구도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강화시키고 공고화시키고 거기서 이득을 얻는 글이다.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인기 작가가 그 인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연예인이 인기를 함부로 파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다. 그렇다는 것을 작가가 명확히 인식하는 것, 그것이 나는 작가가 일차적으로 지녀야 할 태도라 생각한다.
그러나 작금의 이 나라 문학판에서는 너도나도 인기작가, 잘 팔리는 작가가 되기만을 원할 뿐, 인기작가에 대한 선망과 인기작가가 된 것에 대한 자부심만이 횡행할 뿐, 작가의 인기에 대한 작가 자신들의 깊은 고뇌와 성찰과 책임감에 대한 논의는 없다.
작가 또한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들과 하등 다를 바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든, 사채든 돈만 벌면 장땡이니 아무 광고에나 출연하는 연예인처럼 작가도 어디 돈 되는 소재거리나 찾아다니고 있지는 않은지.
이제, 우리 문학판에서 돈 되는 작품을 쓰는 작가만을 주목하는 행태가 얼마나 낯부끄러운 짓인지를 자각하지 않으면, 한국문학은, 한국문학을 읽는 독자로 일컬어지는 나라 안 사람들의 문학적 수준(문학적 수준이란 사고하는 수준으로 이어진다)이란 ‘강남 부자 선망하기’의 수준에서, 혹은 ‘서울대 선망하기’의 수준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선망하다 죽는다. 보라,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죽고살기식 부자, 명문대 따라잡기의 처절한 몸부림을. 그로 인해서 황폐해지는 이 나라의 삶의 풍경을. 부자나라 미국 따라 하기의 열망이 빚어내고 있는 이 처참한 현실을.
돈 안 되는 글을 쓰겠다
이 나라 작가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도처가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헐어지고 까부셔지고 있는데, 돈 안 되는 일이라면 무시하기를 넘어 처참하게 짓밟히고 있는데도 잘 팔리고 있는 작가들이나, 안 팔리는 작가들이나 모두 한가지로 여전히 사회 도처에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돈 되는 일’에 올인하는 그 모습 그대로 돈 되는 작품을 쓴 작가 선망하기, 그리고 돈 되는 작품에의 꿈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지 않은가.
그리하여 나는 쓰기로 한다. 돈 안 되는 글을 쓰기로 한다. 최소한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힘은 쓰되, 돈 되는 작품을 쓰자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기. 혹여 내가 글을 쓰다가(그럴 일은 정말이지 없을 테지만)내게 돈과 명예와 권력이 주어진다면 나는 그것들을 과감히 떨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런 자세와 용기가 나올 수 있도록 나는 나의 힘을 비축해 두어야 한다. 그러자면 적당적당히, 그때그때 조금은 필요하고 안 써도 무방하며 근본은 안 건드리고 살짝살짝 비위도 맞추는 그런 글일랑 쓰지 말아야 한다. 내가 이 땅에서 글을 쓰고 밥을 먹고 산다면 나는 최소한 그 밥에 부끄러운 글은 쓰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