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는 현대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복잡한 문제들 중 하나이다. 동시에, 노동자들에게도 ‘이주’ 또는 ‘이주 노동’ 문제는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이다.
노동부가 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07년 말 총 국내체류 외국인력은 06년(42만5천명)에 비하여 5만 9천명 증가한 48만 4천명으로 경제활동인구(2천4백35만 천명)의 1.9%, 임금노동자의 3.2%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007년 말이 되면 노동자 열 명 중 두 명이 이주노동자라는 이야기다. 이런 측면에서 민주노총을 비롯한 산별노조와 지역 차원에서 이주노동자의 조직화는 피해갈 수 없는 문제가 되고 있다.
물론 2000년 10월 ‘이주노동자 노동권 완전 쟁취와 이주취업의 자유 실현을 위한 투쟁본부’ 결성에 이어 2000년 4월 평등노조 이주노동자 지부가 설립되었고, 380일간 ‘강제추방 저지,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를 위한 명동 농성투쟁의 성과로 전국적 이주노동자의 조직화를 목표로 하는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조합이 2005년 4월 건설되어 이주노동자를 이주노동자 운동의 전면적인 주체로 내세우는 활동이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기존 노동조합에서 이주노동자를 조직할 수 있는 시스템과 역량의 투여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20, 21일 양일간 민주노총 9층 교육원에서는 국제노동기준과 이주노동자 기본권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이주노동자 조직화 전략을 논의하는 의미있는 토론이 진행된다. 민주노총 주최, ILO, 국제건설목공노련, 이주공동행동 후원으로 열린 ‘이주노동자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국제회의(이주노동권국제회의)’이다.
이번 이주노동권국제회의에는 마놀로 아벨라 EU-ILO 이주 프로젝트 고위자문위원과 카룰 아누아르 말레이시아 반도 목공노조 교육.조직담당, 나까지마 히로시 일본 전통일노조, 아나 마리아 코랄 스페인 노총 이주 담당자, 춘다마니 네팔노총 담당자 등이 참가해 각 국의 경험을 공유한다.
20일 진행된 토론에서는 이주노동자 조직화 전략에 대한 집중적인 토론이 진행되었다. 참가자들은 토론을 통해 국제적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주노동자 조직화 전략에 대한 경험을 공유했다. 동시에 이번 토론은 민주노총을 비롯한 지역과 산별에서 이주노동자 조직화 '전략'에 대한 고민을 본격화하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 “송출국-수입국 간 노동조합 직접 연대해”
말레이시아반도 목공노련(TEUPM)에서 교육과 조직을 담당하고 있는 카룰 아누와르는 건설.목재 노동자 국제노조(BWI)와 함께 진행되어온 2년간의 이주노동자 조직화 프로젝트를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카룰 아누와르는 산업적 특성에 따라 가구 공장이 공단 지역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점을 활용해왔다고 전했다. 공단 지역의 2개 정도의 소규모 가구 종장 중 하나를 타겟으로 삼아 “진입 지점”(조직화의 출발)으로 만들고, 이것을 기초로 공단 전체로 확장시켜가는 방안을 택했다. 여기에는 한 공장안에서 이주노동자들을 국가별로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넘어서서 하나의 조직화 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 공장의 조직화 팀이 공단 내 다른 공장으로 확산, 결합되면서 하나의 지역 핵심 그룹을 형성하는 모델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말레이시아반도 목공노련(TEUPM)에서 소개한 이주노동자 조직화 전략에서 많은 관심을 끈 부분은 바로 송출국과 수용국간 노동조합의 직접적인 연대이다. 말레이시아반도 목공노련은 그 동안 조직화 캠페인을 위해서 네팔 노총 등에서 직접 조직활동가가 말레이시아로 들어와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화한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조직화 캠페인을 위해 직접 송출국과 수용국 사이의 직접적인 활동가의 교환을 통해 이주노동자 조직화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 국제연대를 더욱 강화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건설.목재 노동자 국제노조(BWI)의 사례이다. 카룰 아누아르는 건설.목재 노동자 국제 노조(BWI) 조합원은 어느 국가에 있더라도 한 노조의 조합원이기 때문에 방글라데시나 네팔 등에서 조합원이었다고 한다면, 말레이시아에서도 자동적으로 조합원의 자격을 얻게된다고 설명했다. 국제 산별 노동조합이 이주노동자 조직화에 있어 또 다른 가능성을 던질 수 있는 부분으로 보인다.
일본은 아직도 연수생제도...강제노동 비난받아
일본의 이주노동자 투쟁의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나온 나까지마 히로시 일본 전통일 노조 활동가는 “화장실을 가는데 1분당 15엔의 벌금을 이주노동자에 물리기도 하고, 실내에서 코트를 입고 있어야 할 만큼 열악한 조건”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노동하고 있다며, 일본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인권 유린도 심각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에서는 “외국인 고용상황 신고를 의무화”하면서, 더욱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규제와 감시가 심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법무성에 정보 제공을 일원화하고 치안정책 및 테러 대책의 영향으로 벌칙 규정이 강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일본은 외국인 연수생제도, 기능실습제도 두 가지를 두고 있으며, 2개의 제도를 통해 최대 3년간 체류가 가능하도록 하는 단기 로테이션 취업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나까지마 히로시는 미 국무성 2007년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일본이 “외국인 노동자들이 ‘외국인 연수’제도를 통해 강제 노동의 상황에 있다”고 한 지적을 인용해 일본의 상황을 폭로했다.
그러나 일본 전통일 노조는 현재 2000여명의 이주 노동자 조합원들을 조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명이라도 노동조합을 만들면 협상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는 법을 활용하면서 이주노동자 조직화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조직화 "전략"을 말하다
한국의 사례에서는 지난 몇 년간 이주노동자 운동의 역동성을 반영이라도 하듯, 지역과 산업별, 그리고 이주노동자 독자 노조 조직 등 다양한 측면에서의 가능성이 토론되었다.
김혁 금속노조 정책국장은 이주노동자들의 독자 노종조합은 “활동가들의 다수가 추방되는 상황에서 재생산이 어렵다. 이주노동자들이 일상적인 임단협 교섭을 하기 힘든 조건에 있다”며 현재 이주노동자들의 독자적 노동조합인 이주노조(MTU) 등이 가진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은 당분간은 그대로 갈 수 밖에 없다. 산별노조와 연맹들이 있지만, 과제로 삼아도 제대로 사업을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며 기존 노동조합 질서가 이주노동자 운동을 포괄하는 데 있어서 역시 한계를 갖고 있음을 꼬집었다.
김혁 금속노조 정책국장은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산별노조 차제가 이주노동자를 조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주요 지부와 지회까지 담당자를 만들고 전략 지역과 업종을 선택해서 적극적으로 조직해야 한다”는 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산별이 과연 이주노동자들의 주체로 내세우는 투쟁을 조직하는 데는 한계를 갖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진억 민주노총 서울본부 정책국장은 “상당수 이주노동자들이 금속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금속노조의 역할이 중요하긴 하지만, 또한 상당수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이 없는 영세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즉 금속노조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지역에서의 조직화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산별 노조가 “이주노동자들을 대리해서 임단협 교섭을 통해 부분적 노동개선은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활동이 다수자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소수자는 주변부화, 대상화되기 쉽다”며 산별 중심의 이주노동자 조직화가 자칫 이주노동자들을 노조 활동의 주변부로 밀려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을 제기했다.
김진억 국장은 이주노동자 독자 노조의 한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주노조(MTU)는 “법제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돌파구로 삼고 있지만, 제도개선이 된다고 하더라도 조직화는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전제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독자 노조의 재생산의 불안정성에 대한 지적이다.
김진억 국장은 “세 가지 전략 모두 다 근거가 있고, 문제와 한계가 있다. 현재로서는 다면적 조직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라며, “이주노조의 독자적 중심성에 산별과 지역을 결합시키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아울러 “산별 조직화와 이주노동자 독자적 조직화 사이에서 결합의 지점을 찾기 위해서 이중 멤버쉽을 가질 것”을 제안해 눈길을 끌었다. 일상적 조합으로서의 산별 조합원으로서 활동하는 것과 이주노동자들의 자기 요구를 주체화 할 수 있도록 하는 이주독자노조 조합원으로서의 이중 멤버쉽이다.
그러나 김진억 국장은 여전히 “지역 조직화가 핵심”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오늘에 이어 21일에는 각국의 이주정책과 노동조합의 대응을 공유하고, 한국에서 이주노조 투쟁의 경험을 나누는 자리가 마련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