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살 수는 없어도, 저녁이면 맘 편하게 돌아가 쉴 수 있는 공간. 무슨무슨 팰리스는 아니어도, 단전단수 안되고 따뜻한 햇살 들어오는 공간. 굳이 소유하지 않더라도, 쫓겨날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공간.
어디 이런 집 없을까요?
31일 성균관대에서는 사회운동포럼 행사의 일환으로 주거권운동 관련 워크숍이 개최됐다. '살만한 집을 구하는 홈리스들을 위한 복덕방'이란 제목으로 열린 이날 워크숍에는 60여 명의 사회단체 회원 및 활동가들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이날 워크숍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살만한 집'에 대한 생각과 주거의 의미를 짚어보고, 향후 주거권운동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이날 워크숍에 참여한 활동가들이 얘기하는 '살만한 집'이 갖추어야 할 조건은 다양했다. 집주인과의 관계, 프라이버시가 보장,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입지조건, 물은 잘 나오는지 등등. 다양한 고민들 속에서도 워크숍 참가자들은 주거의 문제가 단순히 '집값' 또는 '내집 마련'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데에는 의견을 같이했다.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관심사인 '내 집 마련', 이 '내 집 마련'의 구호 안에는 오로지 집이라는 상품을 소유해한다는 욕망의 충동질만이 그득하다. 한국사회에서 주거문제에 대한 논의는 '내 집 마련'만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왔고, 여기에는 '살만한 집'에 대한 고민은 끼어들 틈이 없다. 이날 워크숍의 큰 주제인 주거권운동이 쉽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거권운동이 단순히 집의 소유를 넘어 보편적 권리로서의 주거문제를 풀어내야 하지만 쉽지 않다.
이는 기존 주거운동의 영역에서도 쉽게 보여진다. 당장 현실에서 철거민 투쟁이 존재한다. 그러나 철거민 투쟁이 당사자들의 생존투쟁을 넘어 주거권 혹은 주거권운동의 확장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유의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70,80년대의 철거민 투쟁은 그 자체로 주거의 권리를 인정하는 투쟁이었다"고 과거 철거민 투쟁의 의미를 짚은 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철거민 투쟁이 과연 사람들의 보편적인 주거의 권리를 확장시켰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철거민 투쟁이 가지고 있었던 전술에서의 급진성이 내용에서의 급진성과 동일했는가"라고 물으며 "철거민 투쟁과 주거대책에 대한 요구는 괴리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철거민 투쟁이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진행되고 있고 그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그 철거민 투쟁의 성과가 한국사회에서의 보편적인 주거권 향상으로까지 이어졌는지는 여전히 물음표라는 얘기다.
홈리스? 홈잇수?
이 같은 기존의 철거민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편적 주거의 권리 실현을 위해 주거권운동은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까?
워크샵 참석자들은 새로운 주거담론 구축을 위한 '홈리스' 개념 확장에 주목했다. 단순히 거리가 아닌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해서 홈리스가 아닐까?
'쪽방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 '개발사업으로 임대주택 입주권을 받았지만, 당장 이주할 곳이 없는 세입자', '독립하고 싶지만, 경제적 능력이 없어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35세 비혼여성'. 이들을 '홈리스'라고 부를 수 있을까?
기존의 시각에서는 당연히도 이들은 '홈리스'가 아니다. '거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이 있는데, 어찌 이들이 홈리스냐'며 펄쩍 뛸 노릇이다.
그러나 워크숍에 참여한 한 30대 비혼여성의 주장은 달랐다. 그녀는 '부모님과 함께 살지만, 돈이 없어 독립할 수 없는 35세 비혼여성' 사례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털어 놓으며 "부모님의 집에서 살고 있다고 하지만, 밥을 같이 먹어야 할지, 따로 먹어야 할지. 누가 집에 오기라도 하면 방문을 열고 나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집이지만 그 공간은 이미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살고는 있지만,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뛰쳐나오고 싶은 공간에서 거주하는 사람은 홈리스다"라고 단호하게 주장했다.
그녀의 주장대로라면, 주거의 문제를 포착하는 사회운동 그리고 주거권운동의 시야는 보다 확장되어야 한다. 정부에서 하고 있듯 단순히 일 년에 아파트를 얼마나 공급하고, '내집 마련'을 위한 청약제도를 어떻게 운영하냐의 문제를 넘어서야 한다.
'홈리스' 개념의 확장은 주거권운동의 시야와 영역을 보다 넓힐 수 있다. 단순히 개발사업으로 쫓겨나는 철거민, 집을 소유하지 못한 세입자의 문제가 아닌 보편적 사회의제로서의 확장을 가능케 한다.
우려도 있었다. "주거권운동의 확장을 위해 홈리스 개념이 확장되는 것은 맞는데, 주택을 소유하지 않은 무주택자 일반을 홈리스로 규정하는 것은 좀 많이 나간 것 아니냐"는 견해였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대체로 '홈리스' 개념의 확장처럼 기존의 틀을 넘어서는 주거담론의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주거권운동, '내집 마련' 아니라 '살만한 집'에 대한 열망 모아내야
이날 워크숍이 주거권운동의 초벌적 전망과 방향을 함께 고민해 보는 자리였던 만큼, 어떤 가시적 결론을 도출하지는 못했다. "주거권과 사회공공성 투쟁 등은 어떤 단위에서도 자기 과제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한 참가자의 평가처럼, 주거권운동이 가야할 길은 멀다.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은 사실 그 어떤 사회보다 '집'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물론 그 열망은 상품으로서의 집의 소유 이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그 열망을 실현키란 점점 더 요원해지고 있다. 평생을 일해도 '내집 마련'이 요원하다는 현실아래 민중들의 어깨는 쳐져만 간다. 주거권운동이 한국사회에서 분출하는 '내집 마련'의 열망을 '살만한 집'에 대한 열망으로 바꿔내고, 주거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말'을 제출하는 운동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