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지만 이를 텔레비전을 통해서만 접하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너 누구랑 얘기하니?”라는 말이 돌아오기 십상이다. 한마디로 특정 대상으로 한정된 표현이라는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따져보자면 위 문장은 세 가지 이유에서 대상을 잃었다. 여성이 반, ‘자매’를 잃었고, 분노만 남은 군사식 표현은 80%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가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집시법이라는 합법 울타리 속에서 청와대로의 활로를 잃은 지 이미 오래인 까닭에 진격투쟁이라는 말만으로 대중 동원력을 얻기 쉽지 않다.
소통 연대 변혁을 위한 다섯개의 음표, ‘민주주의, 페미니즘, 집회, 언어, 교육’
▲ 워크샵이 진행되는 강의실 바깥 풍경. 벽 오선지에 걸린 다섯 개의 열쇠말 음표가 발길을 잡는다. |
위기논쟁을 차치하고, 운동의 위기가 내부에서부터 기인한다는 주장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운동 내 정파성을 위기의 근거로 대는 이도 있지만 여전히 많은 활동가들은 운동의 활동양식을 위기의 원인으로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사회운동포럼 이틀째인 31일 첫 번째 ‘열쇠말’에서는 소통과 연대, 변혁을 위한 다섯가지 열쇠말들이 제시되었다. 뒤집어 말하자면 사회운동 내 소통과 연대, 변혁을 가로막는 문제들이 열거된 것. 강의실을 가득 메운 사회운동 활동가와 학생 등 100여 명의 참석자들 사이에서 뼈아픈 주제들이 오고간 셈이다.
이들은 조직의 수직적 위계구조는 여전히 견고하고 성별분리이데올로기는 고착단계에 진입한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전문용어로 점철된 고립 언어, 운동사회의 외톨이 언어는 대중으로부터 고립의 위기를 맞고 있을뿐더러 내부의 소통조차 가로막는 원인의 하나로 지적된다. 비정규직의 70%, 노동운동의 반여성성은 페미니즘과의 연대를 가로막고 있으며 동시에 변혁의 계기도 좀처럼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워크샵을 기획한 ‘새로운활동양식기획단’은 소통과 연대, 변혁의 노래를 위한 다섯 가지 음표로 민주주의, 페미니즘, 집회, 언어, 교육 등을 꼽았다. 이화숙 대항지구화행동 활동가는 “심장을 잃은 말에다 감동을 잃은 집회”라며 관성화된 집회에 쓴소리를 냈다. 거기다 변혁의 도구로 중요성만 강조될 뿐 ‘교육’은 재미가 없고 일방적이라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류주형 사회진보연대 활동가는 “군사주의적 모델 모방, 능력주의, 전문가주의, 학벌풍조 등 조직 내의 위계구조에서 운동사회가 주체화를 간과한 것은 아닌지 문제의식을 확장해야 한다”며 기존의 패러다임을 답습한 형태를 비판하고 “기존의 사회운동이 수직적 운동 고수하면서 새로운 운동에 배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며 운동 사회 내 비민주성을 지적했다.
김정은 사회진보연대 활동가는 사회운동 활동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을 바탕으로 “여성이 과소대표 되고 여성활동가들이 운동공간에서 활동가라는 상징성 갖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는 “대중활동가들은 대중을 그 언어로 만나는 것이 자신있는가”라며 사회운동 내부의 성찰을 주문하고 “대중들이 사용하지 않는 단어와 문장, 고립된 언어를 사용하며 대중 친화력을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운동포럼을 소통과 연대의 공간으로 활용
워크샵이 종반으로 넘어가면서 교육인프라 공유 및 교육활동가들의 네트워킹이나 최근 기륭전자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제기한 여성노동자들의 공동행동 등이 소통과 연대를 위한 새로운 활동양식으로 제안되었다. 특히 첫 개최를 계기로 사회운동포럼 혹은 이 같은 형태가 대안공간의 힌트, 새로운 활동양식이 될 수 있다는 기대들도 나온다.
류주형 활동가는 “사회운동포럼과 같은 공간이 운동의 공간이자 교육과정의 실천의 공간이 될 수 있다”며 사회운동포럼의 수평적 소통방식과 교육과정에서 민주주의와 교육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는 기대를 비쳤다.
김정은 활동가는 “페미니즘이 수단은 아니며 페미니즘은 여성해방을 위한 운동이자 이념이라고 생각한다”며 여성운동이 부문운동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다음날 사회운동포럼에서 진행될 ‘여성대회’를 새로운 여성주의 운동으로 제시했다.
교육 등 각 부문에서의 제안도 나왔다. 김랑희 민주노동자연대 활동가는 “재미있는 교육 되어야 한다”며 “교육인프라가 구축된 곳에서 소스를 제공하는 한편 교육담당자들의 워크샵과 정보공유 등 함께 힘을 키웠으면 좋겠다”고 교육담당자들의 네트워킹을 제안했다.
박진 활동가는 “위력을 통해 정세를 돌파할 지점만 있는 것은 아니고 다양한 소수의 전술전략이 중요하다”며 블로거 등 개인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진 살살페스티벌을 대안적 ‘집회’의 사례로 들었다.
이미 실험되고 있는 활동양식 왜 사회운동 전반으로 확대안될까?
한편 아쉬움은 남는다. 워크샵 자체의 자유롭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사회운동포럼의 가능성, 사회운동 내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열쇠말의 가능성은 확인했지만, 이미 실행되고 있는 대안적 활동양식들이 사회운동 전반으로 확대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진단이 미흡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설희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는 "기존의 활동양식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왜 맞지 않는지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며 "현재를 진단할 공통의 원인을 따져보지 않으면 시도를 해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올 것 같다"고 지적했다.
대안의 막연함에 대한 비판 또한 없지 않을 터. 그런 의미에서 워크샵에 참가한 한 활동가의 “답답했다”는 소회도 스쳐 듣기엔 적잖은 여운을 남긴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집회, 언어, 교육. 다섯 개의 음표가 어떤 오선지에 걸리게 될지는 이후 사회운동포럼이 사회운동 내 어떻게 자리매김 하게 될지 그 향방을 통해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