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을 공세적으로 돌파하여 현 정세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리비아의 타협적 태도나 후세인의 수세적 태도와는 달리 전쟁을 불사한 공세적이고 주동적인 조치로 정권 전복을 목표로 한 부시정권의 대북 압살정책을 파탄냈다. 대북 적대정책에서 수세에 빠진 미국은 핵 없는 북과의 공존을 선택하고 평화체제 수립을 수용하는 한편, 이 과정에서 자국의 패권 관철을 위한 대반전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유영재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미군문제팀장의 정세인식이다.
이에 대해 임필수 사회진보연대 집행위원장은 한반도 핵 문제를 북한과 미국의 대결 구도로 보고, 이중 특정 당사자의 승패 구도로만 접근하는 것은 다소 일면적이라고 비판했다. 북 핵 보유 문제를 지적하는 문제이다. 북이 핵 개발을 통해 자위력을 높였고, 평화협정을 이끌어냈다는 인식은 세계 군부가 주장하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주장과 맞물려 있다는 지적이다. 임필수 집행위원장은 또한 “이러한 인식은 평화운동, 민중운동의 개입 여지를 극히 제약하고, 평화가 특정 국가를 과두 지배하는 군사,정치 엘리트 집단의 정치적 책략에 의해 달성된다는 환상을 유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남북정상회담과 미군없는 평화체제'를 주제로 한 사회운동포럼 전략과제 워크샵은 1일 오후 7시 30분부터 유영재 팀장의 발제와 함께 시작됐다. 주제는 크게 정상회담의 평화 의제에 대한 분석과 제언, 6자회담과 한반도/동북아 평화체제에 대한 전망과 제언, 주한미군 문제의 해결 방안 등 세 가지. 유영재 팀장이 주발제를 하고 김동원 민주노동당 자주통일위원장, 배성인 한신대 교수, 최찬욱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정책위원장, 임필수 사회진보연대 집행위원장 등 네 명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유영재 팀장은 남북정상회담 등 향후 정세가 유동적이고 엄중하다고 환기하고, 평화체제 정세의 도래가 북이 배수진을 친 되치기로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이 좌절하면서 형성되었다고 보았다. 수세에 빠진 미국은 주한미군 및 한미동맹의 성격 전환을 통한 장기적 유지를 고리로 북에 대한 관리와 중국 견제.포위를 노리고 있으며, 노무현 정부는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남북관계에 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영재 팀장은 평화협정에 대해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을 유지하는 평화협정인가,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을 폐기하는 평화협정인가를 둘러싸고 자주.평화.통일 세력과 한미동맹 세력이 치열한 각축을 벌이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은 주한미군 없는 평화협정을, 미국은 주한미군 주둔을 유지하는 평화협정을 주장하며 치열한 각축을 벌일 것으로 보고 평화협정 체결 과정에서의 중심 전선을 주한미군과 한미동맹 문제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과 관련 유영재 팀장은 “특히 평화 의제의 경우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을 선도하고 일정하게 규정하는 의미를 가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통일문제에 대해서도 “남북정상회담과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킬 경우 통일의 시기도 가시권 안에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며 긍정적으로 보았다.
김동원 자주통일위원장은 한반도 평화체제와 관련 민주노동당의 공식 당론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임을 전제하고, 한반도 평화협정에 담아야 할 내용으로 한국전쟁의 공식 종결, 유엔사 해체, 동맹 해체의 절차와 내용 명시, 한반도 비핵지대화 지향, 영토문제 등 전후의 다양한 문제 청산, 평화통일 추진 별도 조항 마련, 동북아시아다자안보협력체제, 평화협정이행기구 구성과 운영 등 여덟 가지를 들었다.
김동원 자주통일위원장은 발제문의 평화협정 체결의 주체 문제와 관련 "평화협정 문제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데, (유영재 팀장 발제문의) 사업과제에서 시민운동 영역을 강조한 것이 의미는 있겠지만 실제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여론화하고 관철시키는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라며 평화협정과 주한미군철수에 대한 시민운동의 개입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음을 지적했다.
배성인 교수는 학계에서는 평화협정과 주한미군 철수를 연동해서 보는 견해도 있고 아닌 견해도 있다고 소개하고, 남북정상회담은 변수가 많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이 무엇을 어떻게 선택하고, 중국이 또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정상회담의 의제나 성과도 정리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일각에서 향후 북이 일본보다 더 친미적인 국가가 될 수도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배성인 교수는 또한 한반도 평화협정은 평화가 시작되는 것에 불과하며 지금 정세에서 군비와 군축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한 평화협정 자체만으로는 이율배반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최찬욱 정책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진보진영이 보다 공세적인 의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통미봉남으로, 북은 남쪽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북이 남을 미국의 식민지로 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최찬욱 활동가는 평화체제 문제와 관련해서는 통미봉남이 맞는 요소가 있다고 말하고 비핵이든 평화체제든 남이 선택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가령 한반도 비핵화를 다루더라도 한국이 남에 와있는 핵, 핵우산 폐기 공약을 할 수 있겠는가 라는 지적이다.
임필수 집행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의 경협 의제와 관련, 점차 일방적인 지원의 성격을 버리고 비즈니스 논리가 관철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득세하고 있다고 보고, 기술.기계의 이전이 단지 생산수단이 아니라 생산관계의 이식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북에 대한 경협, 개발 지원이 신자유주의 경제개혁과 맞물려 제안되고 있어 신자유주의가 제3세계 국가의 민중적 발전의 길을 차단하고 자유경제의 미명 아래 실질적인 지원과 교환을 봉쇄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