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후보 12명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한다. 첫 날 정동영 후보는 한반도 평화를 상징하는 도라산역에서, 이명박 후보는 대운하를 표현하듯 서울에서 영남까지, 권영길 후보는 비정규직 투쟁을 강조하며 홈에버 상암지점에서 출정식을 갖는다. 이밖에 문국현 후보는 구로디지털단지에서, 이회창 후보는 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선거 행보에 나선다.
이번 대선 국면을 놓고 유난히 정책 실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책과 정치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소 이율배반적인 지적이긴 하지만, 한 나라의 미래와 사회구성원의 삶을 책임지기 위한 정책 논의보다 여론과 이미지, 선동을 앞세우는 경향이 과거 대선에 비해 커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또 하나, 앞으로 선거운동을 살펴보긴 해야겠지만, 지금까지 흐름으로 미루어 유권자와의 소통을 고려한 선거운동은 찾아보기 힘들듯 하다. 후보에 대한 줄서기 규모가 곧 여론이요 실력으로 인정되고, 상대 후보에 대한 흠집내기나 비난의 강도가 해당 후보의 선명성을 가늠하는 분위기가 팽배한 실정이다.
후보는 유권자를 향해 일방적으로 떠든다. 반면 유권자가 후보를 향해 발언할 기회는 사실상 찾아볼 수 없다. 말하자면 민중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는 지지후보의 캠프 활동을 통해서만 가능할 뿐, 온오프 어느 공간에서도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이다. 이번 대선 국면에서 12명의 후보를 지지하거나 쳐다보는 것 외에는 어떤 정치도 배제되며, 12명의 후보와 떨어진 자유로운 어떠한 정치적 상상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 배경과 관련해서는 오늘날 호소력있는 대안으로서의 민중정치의 부재와도 무관하지 않겠지만, 주되게는 쌍방향 소통 대신 일방향 선동을 통해 권력을 재생산하려는 자본과 국가의 의도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대선 국면에서 유권자의 정치적 표현은 사실상 사라졌다. 정보통신망법과 공직선거법이 적용되면서 선거 180일 전부터는 특정 정치적 표현이 제약되고, 포탈 등 주요 싸이트에서는 실명제가 시행되며, 선거 시기 실명제와 맞물려 인터넷언론에서도 덧글 하나 맘 놓고 쓰지 못하게 되었다. 이처럼 인터넷 공간에 대한 가공할 감시통제 시스템의 작동은 2004년 선거법 개정 이후 정보통신망법,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시행 과정에서 익히 예고된 것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독과점에 대한 규제 동기가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포탈규제 논란은 언론 규제로 제한되었다. 언론으로서의 포탈에 대한 규제는 뾰족한 방책이 없으며, 독과점에 대한 규제가 없는 한 포탈의 부정적인 역기능은 지속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보통신망법 상의 포탈 등에 대한 실명제 적용이나 국가보안법 관련 게시물 삭제와 같은 조치는 국가와 자본의 이해에 따라 얼마든지 감시통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더군다나 p2p나 웹하드에까지 실명제 적용이 거론되는 것은 특허권과 저작권에 대한 강력한 물리적 통제와 맞물려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한미FTA나 한EU FTA 협상에서 확인되듯이 탈국가적인 자본의 착취수단으로서 특허권과 지재권의 강화 흐름과 무관하지 않으며, 오늘날 인터넷 공간에 대한 감시통제가 국가의 정치적 수준의 개입을 넘어 자본의 이윤추구의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단 정치적 표현의 자유의 침해를 넘어 인터넷에서의 생산과 소비 전과정에 대한 자본의 이윤을 위한 확대재생산이 감시통제의 근인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국가는 한편으로는 정책결정 수단을 민간자율기구에 이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탈국가적인 영역에 대한 지역적 규제자 역할을 감당한다. 다음카페의 이랜드노조 카페와 코레노민주노조추진위 카페에 대한 다음의 임시조치 사례는 포탈의 자발적인 검열행위의 대표적 사례이다. 또한 선거 실명제 시행에 있어 행자부가 배포하는 실명인증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민간인증도 인정하고 있어, 민간의 자발적인 조치에 대해 얼마든지 열어놓고 있다는 점도 그러하다.
오늘부터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그리고 동시에 공직선거법 82조 6의 선거 시기 실명제가 적용된다. 워낙 패러디나 UCC 제작 등에 제약을 받아온 네티즌들이 오늘부터는 인터넷언론에서도 덧글이나 게시물을 남기되 실명으로 해야 한다. 대선 후보들의 일방향 선동이 강도를 더하는 동안, 네티즌들은 자신의 모든 표현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검열에 시달려야 한다. 숨죽인 채, 재갈 물린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