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디에서도 ‘삶의 포기’를 암시하는 단서는 찾을 수가 없다.
이야기 한 번 나누어본 적 없는 그가 ‘누가 이렇게 어질러 놨어?’하며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만 같았다.
천막 안 구석에서 김치찌개가 담긴 냄비를 발견했다. 두부를 썰어 넣고 끓인 김치찌개는 몇 숟가락 떠먹지도 않은 것 같았다. 찌개 위에 뿌려진 재는 마치 고명 같다. 금방이라도 조합원들이 숟가락 하나씩 들고 냄비 주변에 빙 둘러앉아 찰진 밥 한 덩이와 함께 찌개를 푹푹 떠먹는다면, 아무 일도 없을 것만 같다.
천막농성 314일차.
불타버린 천막 안에서도 시계 바늘은 잘도 돈다.
지금 이 순간, 시간이 멈추어 버린다면...
그래서 모든 고통도 정지될 때, 저 시계 바늘이 거꾸로 한 바퀴 반만 돌 수 있다면...
그래서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해고노동자 농성장의 밤을 보내고, 이들이 여느 때와 다름없는 기상과 출근투쟁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면...
그러나 무심한 시계는 2007년 12월 12일, 오후 4시.
▲ 불에 탄 콜트악기 해고노동자들의 농성장 |
▲ 불에 탄 농성장에 있던 김치찌개 |
“투쟁은 살기위해 하는 것입니다. 콜트악기 사측의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선 투쟁과정에서 분신을 시도한 금속노조 콜트악기지회 이동호 조합원의 쾌유를 빕니다.”
▲ 이동호 조합원이 분신한 장소와 규탄집회 장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