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로 뒤범벅된 정권이 탄생한다. 출구조사 결과 유권자 절반이 이명박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막판 이명박 동영상 효과는 미비했다. 이명박 후보는 투표 하루 전날 TV연설에서조차 동영상과 관련한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자신 뿐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잃어버린 10년의 한풀이라도 하듯 17대 대통령 당선을 눈앞에 두고 있다. 검찰 발표가 사실이라면 이명박 당선자는 사기꾼에 놀아난 경제대통령이 되고, 동영상이 사실이라면 자신이 설립한 회사를 아니라고 부인한 거짓 경제대통령이 된다. 이명박 당선자는 특검을 수용했지만, 당선자와 인수위의 판짜기와 특검 과정이 어떤 함수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특검 결과도 좌지우지 될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 기소가 이루어질지, 정치논란과 함께 세찬 탄핵 바람으로 이어질지 현재로서는 모두가 미지수다.
분명한 것은 총선을 앞두고 의회권력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정치세력 간 대결이 과거 어느 때보다 치열한 양상을 띨 것이라는 점이다. 이즈음 의회에서 보다 많은 지분을 차지하기 위한 정당간 경쟁이 커지는 가운데, 정치세력의 생성.분화와 양립으로 양당구조로의 수렴 대신 다당구조로의 확산이 예고된다. 여기에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압도적 지지는 행정권력 우위의 당정관계 구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한편 대선 막바지 국면에서 일각에서는 BBK 수사 발표와 관련한 노명박 빅딜설이 솔솔찮게 흘러나왔다. 이회창 후보측은 선거 중립 및 BBK 수사 문제와 퇴임후 보장을 두고 노명박 커넥션을 기정사실화하는 태도를 보였다.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삼성 비자금과 BBK 수사를 두고 현 정권과 차기 정권 간에 정치적 타협이 이루어질 만한 정황은 충분히 있어보인다. 참여정부가 지금까지 삼성과 유지해온 밀월관계 측면에서도 그러하며,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와 특검 추진 과정에서 보인 태도로 미루어 퇴임 후 정치적 운신의 보장은 다급히 해결해야할 문제였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한미동맹 강화, 파병, 한미FTA, 비정규법, 자본시장통합법 추진 등 참여정부의 친자본 정책의 맥락에서 볼 때 행정권력의 이양은 이명박 당선자와 차기정부의 정치적 색체와 관계없이 그 연속성이 보장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행정권력이 자본이 요구해온 입법과 정책과제의 생산.집행 강화 맥락과 무관하지 않으며, 이명박 당선자가 공언해온 공약과 정책으로 미루어 의심의 여지가 없어보인다.
참여정부 말기 의회와 행정부는 삼성특검과 BBK특검을 통과시켰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한 임채진 검찰총장에 대해 김용철 변호사는 뇌물검사로 낙인 찍었고, BBK 특검 수사대상에는 BBK 수사팀 검사가 포함되었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취임하자마자 두 개의 특검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처다보는 신세가 되었다. 두 특검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임채진 검찰총장이 소환되는 상황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 삼권 분립의 측면에서 볼 때 사법권력은 법이 정하는 정치적 심판의 막후 기능을 담지한다. 그러나 행정권력에의 종속성이 심화될수록 사법권력의 권위와 기능 역시 추락할 수밖에 없게 된다. 지금 두 특검의 성립은 사법권력이 우리 사회 중대한 정치적 사건에 대해 독립적으로 수사를 담보할 능력이 없거나 취약한 수준을 보여준다. 이번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로 미루어 보더라도 사법권력에 대한 자본의 영향력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유추된다.
이처럼 삼성 비자금 문제와 BBK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삼부 권력간 정치적 긴장관계는 자본권력과 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참여정부'의 '실용정부'로의 전환은 친자본 권력으로서의 행정권력의 평화적 이양을 의미한다. 따라서 실용정부의 수장으로서의 이명박 당선자의 도덕성과 거짓 여부는 정치적으로 치명적인 약점일 수 있지만, 동시에 권력의 재생산 측면에서 얼마든지 수렴, 희석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하기 어렵다.
현대 사회에서 인민은 자신의 생존과 사회경제적 삶을 보장받기 위해 선거를 통해 국가권력에 통치를 위임한다. 위임받은 행정권력은 공공영역에 대한 민주주의 정치기제를 가동함으로써 사회경제적 정책과 사회통합을 위한 지배질서를 구축한다. 주지하듯이 유권자 두 명 중 한 명은 이명박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이는 오늘 이 땅에 살고 있는 사회구성원의 사회경제적 욕구의 표출이자 심화된 양극화의 고통에서 탈출하기 위한 차선의 선택으로 풀이된다. 이명박 당선자 개인의 도덕성과 관계없이, 진보와 보수의 이념과 관계없이, 경제가 살아나면 불편부당한 삶의 여건도 바뀔 수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감이 참여정부의 실정에 대한 반발과 함께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당선자와 곧 구성될 실용정부가 자본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외환위기 이후 자본은 공공영역에 도발적인 침투를 계속해왔고, 한미FTA는 공공영역 전체를 대상으로 시장화한다는 성격을 띠고 있다. 이는 87년 이후 노동자 민중이 피땀으로 일궈온 민주주의적 공간의 해체와 동시병행으로 진행되고 있다. 참여정부는 자본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고, 이명박 당선자 역시 교육, 의료, 에너지, 문화, 미디어 등 모든 정책에 있어 공공성의 무시.배제와 효율과 경쟁의 시장화를 골자로 한다는 점에서, 이후 실용정부는 참여정부의 시장화 정책을 확대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사회지배구조와 사회구성원의 사회경제적 요구에 대한 자본통치력 강화의 필연성을 예고하는데, 여기서 실용정부가 부패와 거짓의 반복 노출과 양극화 심화에 대한 경제적 대안을 내놓지 못할 경우 정권의 정치적 불안정성은 참여정부 때보다 더욱 첨예한 위기 상황을 거듭하게 될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와 실용정부의 성패 여부는 사회통합능력에 따라 좌지우지될 것이고, 사회통합능력의 물적 기반은 자본 내지 자본권력으로부터 나오게 되는데, 따라서 자본의 위기관리 능력이 곧 행정권력의 사회통합능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이는 역으로 자본과 정권의 사회통합에 반발하는 사회구성원의 저항이 어떻게 표출되는가에 따라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도 제고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수 과잉의 이번 대선 결과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시사점으로, 보수-개혁-진보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정치세력 간 차별이나 이합집산의 일차적 준거로 작용하지 않거나 약화될 수 있다는 점도 심사숙고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