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들의 선택은 실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은 자신들의 생존조건을 참혹하게 파괴한 신자유주의의 대변자들을 심판하면서 회복과 보상을 기대하고 있는데, 그들의 선택은 또 다른 신자유주의, 이번에는 신보수파의 신자유주의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몰락의 근원인 신자유주의에서 회복의 희망을 기대하고 있으니 이는 분명 아이러니이고 잘못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모순적 선택이 가능했던 것도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이데올로기 효과 덕분이다. 현실사회주의 실패를 배경으로 시장주의와 상업주의를 지상의 정책으로 선전하는 신자유주의 10년의 지배 하에서 대중들의 의식은 더욱 자본주의화 되었고, 자본주의 우월론과 생존경쟁은 대중들을 파편화하고 정치지형을 극히 보수화했던 것이다.
한국의 진보진영은 자유주의 정파로부터 보수주의 정파로의 신자유주의의 강화라는 권력변화의 성격을 올바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 백미는 노무현 정권의 탄핵정세에서 노정권에 대한 비판적 지지로 나타났는데, 노정권에 대한 탄핵과 한나라당 정권의 등장이 공화국의 폐지와 파시즘으로 선회하는 반동이라는 선전 하에 진보진영은 신자유주의 정권의 유지에 협력했던 것이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구 민중연대, 그리고 이른바 맑스주의 정치학자 3인까지 이 역사적 오류에 책임이 있다. 노정권의 신자유주의를 심판하는 대선에서 민주노동당도 심판받는 치욕과 무력감은 비판적 지지에 대한 혹독한 대가라 할 수밖에 없다.
탄핵정세에서는 한나라당=파시즘론이 비판적 지지의 간교한 술책이었지만, 이제는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의 등장을 파시즘으로 모는 것은 정신나간 주장이 아닐 수 없다. 파시즘과 신자유주의의 결합을 원리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탄핵국면 당시에도, 현재의 새 정권 출범 시점에도 권력변화의 핵심은 파시즘으로의 반동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강화라는 반동일 뿐이다. 새 정부는 의심할 바 없이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를 확고하게 계승할 뿐 아니라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당선자의 경제공약은 이른바 ‘747’비전에 압축된 성장주의 정책이다. 연평균 경제성장율 7% 달성과 임기 중 300만 개 일자리 창출, 10년내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와 제7대 경제대국으로의 진입이라는 비전은 강력한 성장주의 정책을 예고한다. 그러나 이 정책을 신성장주의나 또는 신개발주의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개발시대 현대건설 맨으로서의 이명박 당선자의 이미지와도 자연스럽게 결합되는 신성장주의나 신개발주의라는 딱지는 정책내용을 들여다보면 개발시대의 성장주의와는 커다란 차이를 갖는다.
왜냐하면 이명박 정권은 이러한 고도성장을 박정희 정권의 개발시대처럼 정부의 확대, 강화와 정부주도의 개입주의 정책을 통해 달성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새 정권은 오히려 정부개입과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시장경제와 경쟁의 원리를 촉진하고 대외개방과 세계화를 강력 추진함으로써 고도성장을 달성하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7대 경제정책에는 이러한 원칙 위에서 규제최소화, 세율최소화, 금융국제화, 노사관계의 법적 지배를 통해 기업활동을 하기 위한 최고의 조건을 조성하겠다고 하는 바, 이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계승이자 일층의 강화가 아닐 수 없다.
▲ 이명박 당선자의 한반도 대운하 |
커다란 논란이 되었던 이른바 한반도 대운하 공약조차도 개발주의 정책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될 계획이다. 이 공약을 실로 추진할 것인가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이 대규모 토목사업도 정부 재정이 아니라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하도록 계획되어있다. 총 16조 원에 이르는 경부운하 건설비용 중 8조 원은 골재 판매수익금으로 충당하고 나머지 8조 원은 민간자본을 끌어들인다는 계획이다. 정부 재정지출은 전혀 없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새 정권의 경제정책에 신자유주의와 신개발주의의 결합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도 부정확한 규정이 아닐 수 없다.
새 정권은 노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계승하면서도 이를 강력하게 추진할 것으로 보여 동일한 신자유주의라 해도 여러 점에서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법인세율 감소와 기업활동에 관한 각종 규제완화, 논란이 되고 있는 출자총액한도제도 폐지, 금융규제의 대폭 완화, 금산분리원칙의 폐지, 노사관계에 대한 법률적 지배의 확립, 공공부문의 민영화와 상업적 원리의 강화, 부동산입법의 재개정, 대학입시제도의 자유화 등 기업과 재벌 그리고 부유계층에게는 유리하고 대중들의 생존은 더욱 압박할 법과 제도 변화가 예고되어 있다. 물론 경쟁탈락자들과 소외계층에 대한 국가의 보호와 배려를 말하고 있지만, 이는 노정권에서나 이명박 정권에서나 부차적인 수사일 뿐이다.
기업규제를 대폭 풀고 이윤조건을 크게 개선하여 민간투자를 활성화함으로써 고도성장과 고용창출을 이룩하겠다는 이명박 정권의 경제정책에 과연 미래가 있을까? 기업의 이윤조건을 높여야만 투자를 활성화하고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게 노동자계급의 비극이고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이긴 하지만, 신자유주의 시대 이후에는 기업의 이윤조건이 개선됨에도 불구하고 확대투자와 고도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새로운 현상이 세계적으로 지배적이다. 이른바 ‘고용없는 성장’은 그 대표적 현상이다. 노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재벌의 이윤조건은 크게 개선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는 제한되었고 성장은 둔화되었다. 10대 재벌들의 현금보유액만도 140조 원(2005년)을 넘어 한국도 이윤증대=투자증대라는 공식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을 기업규제와 투자환경의 악화 때문이라고 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의 가속화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것이며, 번영을 가져오기는커녕 위기와 갈등을 심화시킬 뿐이다. 다시 말해 노정권의 과거 속에서 우리는 이미 새 정권의 미래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세계경제적으로도 목하 2001-2003년에 시작한 경기순환의 마지막 국면이 전개되는 상황이어서 새 정권 임기 중에 새로운 공황은 불가피하다. 여기에 한미FTA의 인준 등 한국경제의 대내외적 환경은 더욱 불안정해질 것으로 보여 새 정권의 경제공약의 실현은 난망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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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구 님은 한신대 연구자로, 본 지 편집위원장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