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은 2008년 세계사회포럼, 1.26세계행동의 날 행사와 관련한 국내외 소식과 기고 글들을 집중이슈로 묶었다. 지난 8일 한국에서도 '2008년 세계사회포럼(WSF) 1.26 세계행동의 날'을 준비할 (한국) 조직위원회가 공식 출범했고, 22일 부터 26일 간 진행 될 행사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민중언론 참세상'은 1.26 조직위원회와 공동 기획을 통해 세계행동의 날을 함께 준비한다. -[편집자 주]
2007년에는 무엇보다 기후변화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기후변화가 인간 활동의 결과라는 점을 강조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의 4차 보고서가 발표되었고, IPCC와 미국의 전 부대통령인 엘 고어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는 이유로 노벨 평화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한편 유난히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는 우리는 북극의 빙하가 녹아 북극해 항로가 열린다는 소식과 북극곰이 멸종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
경제신문에는 기후변화 수혜주와 기후변화펀드에 투자하라는 조언이 심심치 않게 실린다. 우리에게도 무언가 큰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이러한 사태의 진원지는 어딘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이 글은 지난 12월 발리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13차 당사국총회'를 간략하게 평가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단초로 대안세계화 운동과 기후 운동의 만남을 소개하고자 한다.
발리 회의, 절반의 성공?
지난 12월 3일부터 14일까지 인도네시아의 휴양지 발리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 13차 당사국총회가 열렸다. 192개국이 참가한 이번 회의는 2012년에 끝나는 교토의정서를 대신할 포스트 교토 체제를 마련하기 위한 주춧돌을 놓는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했다. 첫날인 12월 3일에 호주의 신생 노동당 정부가 교토의정서 비준을 발표해서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된 회의는 우여곡절 끝에 협상기한을 하루 넘긴 15일에 발리 로드맵을 채택하면서 끝났다.
발리 로드맵에는 포스트 교토 체제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밑그림과 향후 2년 간의 협상을 통해 2009년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15차 당사국총회에서 합의를 도출하자는 시간표가 담겨 있다. 이번 회의의 첫 번째 성과로 꼽히는 것은 유엔의 틀을 벗어나려고 하던 미국이 다시 참가한 일이다. 부시 정부는 최근에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국내외적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발리 회의 개시에 맞춰 미 상원에서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50% 감축하자는 워너-리버만 법안에 대한 심의를 시작했고, 기업들조차도 장기적인 감축 목표를 설정하라는 로비를 벌였다.
국제적으로는 교토의정서를 거부하던 마지막 동지(호주)를 잃고 국제사회의 압박에 부딪혔다. 발리 로드맵 초안 채택을 거부한 미국 대표에게 파푸아뉴기니 대표가 “회의에 참가할 뜻이 없다면 우리에게 맡겨두고 나가라”고 일갈하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 에피소드는 미국의 고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두 번째로 개도국이 온실가스 감축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는 중국, 인도, 브라질 등이 적극적으로 회담을 주도했고, 개도국도 측정·보고·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기로 합의했다. 따라서 2012년 후에는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가 적용받는 온실가스 감축안이 도출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반면 구체적인 감축목표와 감축방안을 정하지 못했다는 점이 이번 회의의 주요 한계로 지적된다. 미국은 구체적인 목표 수치를 확정하는 것을 끝까지 반대했다. IPCC는 4차 보고서에서 2050년까지 2000년의 50~85% 수준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고 권고했는데, 발리 로드맵에는 '상당한 감축'(deep cut)이라는 모호한 표현만 있다. 현재 각국 정치인과 기업은 온실가스 감축을 계산하는 방법을 변경하거나, 기준 년도를 조정하는 식으로 속임수를 사용하여 마치 대단한 변화를 결심한 마냥 으스대고 있다.
'GDP당 온실가스 방출량'을 감축하겠다는 부시의 제안이나, 2020년까지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을 경우와 비교해서!) 캘리포니아 온실가스의 25%를 줄이겠다는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주지사의 약속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런 상황에서 구체적인 감축 수치를 합의하지 못한 것은 향후 2년 간 협상의 난항을 예고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민중적 대안들
그런데 협상에 대한 이런 평가를 듣고 있자면 각국 대표들과 자본의 이해에 좌우되는 한판 소동에 우리의 미래를 맡기는 것 같아 답답함과 무력감을 느낀다. 그렇다고 에너지 절약을 위해 한 등 끄기 같은 개인적 실천을 하자는 제안도 충분한 것 같지 않다. 이런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모의가 발리에 모인 운동들 사이에 진행되었다.
바로 기후정의 연합, ‘지금 기후정의를!’(Climate Justice Now!)이 결성된 것이다. 여기에는 환경 운동(지구의 벗 국제지부 등), 급진적 기후·에너지 운동(탄소거래 감시, 기후정의를 위한 더번 그룹, 석유감시 등), 대안세계화 운동(초국적 연구소, 남반구에 초점을, 제3 세계 네트워크 등), 토착민·지역민 운동과 비아 캄페시아 등이 참가했다. 북반부와 남반부, 대안세계화 운동과 기후 운동, 정책연구소와 토착주민운동 등, 각 방면의 대표적 운동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민중적 대안을 만들기 위해 모인 것이다. 그리고 그 슬로건으로 즉각적인 기후정의를 내세웠다.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http://www.focusweb.org/whats-missing-from-the-climate-talks-justice.html?Itemid=94)
“우리들은 회의장 안과 밖에서 사회·생태·젠더의 정의를 위해 싸웠다. 환경과 우리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 근본적으로 다른 대안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회담장 주변에서 각국 정부, 국제 금융기구와 초민족 기업이 추동하는 탄소거래·무역 자유화·사유화 등 기후변화에 대한 그릇된 해법을 비판하는 여러 행사가 열렸다. 토착민과 여성, 농민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 역사적 책임과 생태부채가 있는 선진국이 막대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화석연료 대신 지역에 기반한 효율적이고 안전하고 깨끗한 재생가능 에너지를 요구하고, 에너지·숲·토지·물에 대한 민중의 주권과 식량주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발리의 진짜 성공은 다양한 운동이 만나 기후정의를 향한 첫 발을 뗐다는데 있다. 우리는 우리의 투쟁을 회담장 안뿐만 아니라 대지와 거리에서 전개할 것이다. 지금 기후 정의를!”
한편 2007년 10월 23일부터 25일까지에 방콕에서 열린 자연 자원에 대한 민중주권 회의의 참가자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민중 의정서’(People`s Protocol on Climate Change)를 논의하고 초고를 작성하였다.(http://www.petitiononline.com/ppcc/petition.html) 이들은 올해에 유엔기후변화협약 14차 당사국 총회가 열리는 폴란드에서 민중 의정서를 비준하는 민중 의회를 열 계획이다. 이 의정서는 기후변화에 맞서기 위한 원칙으로 기후변화가 단순한 환경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발생시킨 문제라는 점을 인식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또 민중의 참여와 사회운동으로 민중의 권력과 주권이 보장될 때 기후변화에 대응할 힘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민중 의정서는 대안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시장 메커니즘과 기술 의존적 해결책을 거부할 것을 강조한다. 대신 자연자원에 대한 민중의 주권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세계적 규모의 강력한 운동 네트워크를 만들 것을 약속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북반부의 역사적 책임을 묻기 위한 방법으로 공정한 기구를 통해 남반부에 자금과 기술을 충분히 지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후정의 연합과 민중 의정서는 협상장과 개인적 실천을 가로지르는 운동의 비전을 제공한다. 비전은 불평등한 사회에서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기후변화 문제의 원인(자본주의 경제와 화석연료)을 확인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원칙(기후정의와 민중의 주권)을 분명히 한데 있었다.
2008년, 우리도 행동에 돌입하자
기후변화에 맞서는 운동은 급진적 상상력을 요구한다. 기후변화 문제가 끊임없이 이윤을 추구하고 더 많은 소비를 추동하는 자본주의 경제의 고유한 특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를 일국적 틀로 해결할 수 없기에 새로운 국제주의가 필요하고, 북반구의 역사적 책임을 묻자니 자본주의의 뿌리부터 신자유주의적 (무)질서까지를 비판적으로 돌아보아야 한다. 또 이 운동은 모든 인류의 공유재인 대기에 대한 보편적 권리를 주권과 정의의 이름으로 당당히 제기할 힘이 있다.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화석연료를 과감히 버리고, 생활양식을 변화시킬 문화적 혁명에 대한 상도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신자유주의가 노골화된 1990년대에 유엔기후변화협약과 교토의정서가 형성되면서 급진적인 운동의 가능성은 시장과 힘의 논리에, 정부 간 협상의 틀에 굴복하는 듯 했다. 교토 메커니즘으로 도입된 배출권 거래와 청정개발체제는 온실가스 감축보다 새로운 시장창출과 이윤추구의 도구로 이용되었다. 유엔기후변화협약은 수년째 실질적 진전을 이끌어내지 못함으로써 무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기업과 자본은 이윤을 방어하는 수준에서, 또는 새로운 이윤추구의 기회를 포착하는 수준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적 해결책으로 모색된 교토 의정서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킨다는 의심이 높아지고 있다. 바로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대안세계화 운동과 기후 운동이 만나서 기후정의와 민중주권의 관점에서 운동을 다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다. 1997년에 채택된 교토 의정서가 15년 간의 기후변화 담론과 운동을 제약하듯이, 2009년에 합의될 새로운 틀도 그러한 힘을 가질 것이다. 이제 2년이 채 남지 않은 기간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 정부는 기후변화에 보수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그 사정이 운동 진영이라고 해서 다른 것 같지 않다. 우리도 대안세계화 운동과 기후 운동의 만남을 서둘러야 한다. 적임자가 없다고 투덜거리기 전에 변화를 통해 스스로를 대안적 운동으로 내세우면 더 좋지 않을까?
올해 7월 7일부터 9일까지 일본 홋카이도에서 G8 정상회담이 개최된다. 이번 회담의 주요 의제는 기후변화이다. 각국은 포스트 교토 체제 논의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물밑 접촉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은 작년에 아베 이니셔티브라고 부르는 '시원한 지구 50'(Cool Earth 50)을 제안한 바 있다.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50% 절감한다는 안인데, 그 방안으로 기술효율성 향상과 시장 활용을 내세우고 있다. 총리가 바뀌어서 원활한 구상에 차질이 있겠지만, 일본은 중국, 인도 등 주요 개도국을 초청하여 자국에서 개최되는 회의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할 심산이다. 그 외에도 미국, 러시아 등 기후변화협약의 성과를 왜곡시킨 주인공들이 자국의 치밀한 손익계산서를 가지고 회담에 참가할 것이다.
한국의 기후 운동과 대안세계화 운동이 홋카이도 G8 정상회담에 맞서는 운동을 함께 기획해보는 것은 어떨까? 문제는 심각한데 시간은 촉박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수뇌들에게 기후변화 문제를 맡길 수 없다면, 민중의 이니셔티브를 위한 행동에 돌입해야 한다.
-기후변화 문제와 협상에 관한 유용한 자료
- 윤순진(2002), 「기후변화와 기후변화정책에 내재된 환경불평등」, 『ECO 3호』, 도요새.
환경정의의 관점에서 유엔 기후변화협약의 기본 개념들과 역사를 살피고 있다.
- 아힘 브루넨그레버(2007), 「교토의정서의 정치경제학」, 『자연과 타협하기』, 필맥.
교토 메커니즘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기후문제를 포괄적인 사회생태 위기의 일부로 볼 것을 제안한다.
- "Climate and Capitalism" http://climateandcapitalism.com/
캐나다의 생태사회주의자 Ian Angus가 운영하는 블로그로 기후변화를 비롯한 생태·환경문제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Rising Tide North America" http://www.risingtidenorthamerica.org/
급진적 기후운동단체인 Rising Tide의 북아메리카 지부로 링크와 자료가 유용하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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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슴산 사회진보연대 편집위원회(준) 편집위원님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