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체들의 수식어는 화려하기 짝이 없고, 정부의 산업지상주의와 맞물린 언론의 띄우기는 찬란하기 그지없다.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매번 비슷한 상품 소개, 빌어먹을 팔아먹기 전략’이라고.
분명 반복되고 지겨운 소비 촉진 과정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IPTV는 이전의 몇몇 제품들과 달리 적당히 팔리면 끝날 이벤트로 취급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존재한다. 자체로도 문화, 미디어 소비 패턴을 변경할 여지가 있을 뿐 아니라 대중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만한 자본화 과정으로 전이, 확산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IPTV에 대한 분석을 통해 미디어 융합 상황을 조망하는 작업은 향후 변화하는 미디어 및 생활문화 지형을 파악하는 데 유의미하리라 본다.
IPTV가 뭐지?
[출처: 미디액트 http://www.mediact.org] |
하지만 역시 핵심 개념은 인터넷에서 데이터를 주고 받는 IP(Internet Protocol)라는 정보전달 방식이다. IP방식은 매우 단순하기에 강력하고, 인터넷의 쌍방향성을 구현하는 주요한 개념이다.
따라서 IPTV 역시 인터넷과 동일하게 영상, 음성, 텍스트를 통한 방송은 물론 메일, 메신저, 전화, 카페, 온라인 게임, 파일 관리, 검색, UCC 등 다양한 인터넷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
IPTV 도입 단계인 현재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컨텐츠를 볼 수 있는’ VOD(Video on Demand) 서비스가 주를 이루고 있다. VOD서비스를 이용하면 기존 TV와 달리 마치 웹사이트처럼 채널을 메뉴에서 선택하고, 편성 시간을 기다릴 필요 없이 원하는 시간에 마음대로 볼 수 있다. 1편부터 종편까지 쌓여있는 온갖 드라마와 시리즈물들은 벌써부터 잠 잘 때를 놓치고 빠져드는 ‘IPTV 폐인’ 양산에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IPTV의 주요 특징
IPTV의 가장 큰 특징은 TV와 달리 채널 개념이 없다는 점이다. 기존 지상파와 케이블TV는 사용하는 주파수 대역과 케이블 선의 분배에 따라 채널 개수에 제한을 갖고 있다. 이러한 제한 조건은 때론 케이블TV의 채널 획득을 위한 방송채널사용사업자(Program Provider)들 간 치열한 경쟁과 비리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곤 한다.
그러나 IPTV는 멀티캐스트라는 방식을 사용하여 논리적으로 무제한의 채널을 제공할 수 있다. 실제 IPTV의 화면은 흡사 인터넷 포털의 메뉴 화면과 동일한 기능을 하며, 채널 제한으로 인한 자원의 효율적 분배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따라서 향후에는 블로그나 온라인 카페같이 이용자가 운영하는 개인 매체 채널(Personal Media Channel) 서비스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주요한 특징은 TV와 달리 인터넷에 가까운 쌍방향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월 22일 다음커뮤니케이션이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셀런과 함께 ‘오픈 IPTV’ 서비스 개시를 위한 기자회견을 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시연된 오픈 IPTV 테스트 버전에 의하면, 컨텐츠 레코드 기능은 물론 드라마 시청 시 관련 검색을 통한 인물정보, 쇼핑, 뉴스, 관련 카페 등을 볼 수 있다. 또한 하나의 스포츠 경기를 다양한 위치에서 촬영하면서 이용자가 원하는 위치를 선택하여 시청하는 기능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기능이 드라마에도 적용된다면 드라마에 다양한 결말을 설정하고 이용자가 선택하도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향후 상상 가능한 서비스들을 고려해볼 때 대중이 IPTV에 중독되어 갈수록 인터넷으로부터 비롯된 각종 컨텐츠와 서비스가 오히려 IPTV로 수렴될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다.
[출처: 다음goTV(2006버전) - 메뉴화면(http://www.daum.net)] |
한편 IPTV가 채택한 데이터전송방식으로 인해 서비스 가능 범위가 파괴된다. 예를 들어 IPTV는 휴대용 무선 IPTV 장비 뿐 아니라 핸드폰이라든가 PMP 등 단말기에 제한이 없다. IP방식만 맞춰준다면 세계 모든 종류의 컨텐츠가 서로 교통하고 융합 가능한 것이다.
IPTV로 본 미디어융합 환경
그간 통신시장의 망 중심 네트워크 사업은 더 이상 물리적 확장 공간도 증가할 가입자도 없는 상황이다. 설상가상 케이블TV는 방송 뿐 아니라 인터넷망 서비스로 사업을 확장해왔다. 수세에 몰리던 통신업계에게 IPTV는 새로운 시장 구축과 컨텐츠 사업으로의 확장을 동시에 도모할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이 되었다. 물론 사업 진행과정과 주체의 이해관계로 인해 IPTV가 철저히 산업 기조로 체계화되어가는 건 두말할 필요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28일 통과한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일명 IPTV법)만 보더라도 실시간 방송에 대한 규정만 존재할 뿐 핵심인 VOD 서비스에 대한 규제나 공공성 내용은 모두 빠져 있는 상태이다. 예를 들어 장애인을 위한 수화 내지는 자막방송 등의 비율 적용 규정도 없고 대중의 미디어 참여 권리를 위한 퍼블릭엑세스 규정도 전무하다.
게다가 모든 컨텐츠의 배치와 메뉴 구성 권한이 올곧이 사업자에게 주어지므로 엄청난 미디어 권력이 집중된 셈이다. 현재로서는 공공 컨텐츠 의무 전송이나 배치 규정도 없으므로 그 권력은 더욱 상업적으로 활용되고 거대해질 것이다.
자본화 과정은 비단 IPTV로 한정되지 않는다.
이제 소통을 위한 네트워킹 기술은 인간과 인간의 소통을 넘어 인간과 사물의 소통으로 확장되어 간다. 통신업계는 향후 냉장고나 가스렌지와 대화하게 될 홈네트워크 시대를 대비하여, 가정 내 유무선 소통망과 이용 컨텐츠를 선점한 셈이다. 선점한 서비스 이용이 생활 습관화되면 미래의 예측 가능한 수익마저 독점하는 효과를 누리게 된다.
[출처: myLGTV - 메뉴화면(http://www.mylgtv.com)] |
미디어 융합 상황이 가져오는 놀라운 현상 중 하나는 매체가 언론, 방송의 개념과 분리되는 것이다. 보통 ‘한겨레’라는 언론에는 ‘신문’이라는 매체가, ‘KBS'라는 방송에는 ’지상파 TV'라는 매체가 짝을 이루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제 매체라는 그릇은 언론과 방송이라는 내용물과 관계없이 성장하고 있다. 이미 케이블TV에서부터 진척된 이 개념은 IPTV에 이르러 방송 뿐 아니라 기존 인터넷 상의 각종 개인 또는 협업 컨텐츠로 확대 적용된다.
과정 속에서 소규모 미디어나 대안미디어 운동집단은 대중과의 접점이 현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동안 종이나 인터넷이 비교적 저렴한 매체의 역할을 해주었다면 IPTV를 위시한 융합미디어들은 진입조차 넘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안미디어들이 매체에 대한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 및 공공성 보장을 외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 볼 수 있다.
한편 IPTV는 개방성의 상징인 인터넷 정보전달방식을 이용하여 가입자 중심 서비스를 제공하는 폐쇄형 네트워크를 구현함으로써 ‘지불한 자만이 진입’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있다. ‘지불’로 형성되는 네트워크는 지불능력에 따라 이용자의 정보 격차를 가중시킬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비상업적이었던 인터넷을 자본화시킨다. 그리고 신뢰도 높은 가입자의 개인 정보는 각종 세트상품과 컨텐츠 제작자와의 계약 등을 통해 어느 범위까지 유통될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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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희 기자는 민중언론참세상 웹마스터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