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눈을 잊을 수 없었고, 교사이기 전에 같은 여성으로서 학생들에게 성추행을 알리고 싶었다는 탄금중분회 소속 김영희(가명)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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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선생님은 지금도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지난 8개월간의 학교생활은 악몽이었으며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단순히 지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 보단 탄금중에서 일어난 일들을 소상히 밝히고 피해자들의 그 마음을 한번이라도 더 헤아려 이야길 하고 싶다 했다. 아직도 가슴이 떨린다고 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오늘 처음으로 지난 이야기들을 꺼내보겠다고 했다.
충북 교육청, 가해자와 피해자를 한 공간에
“아이들을 위해서 버틸 수 있었다”
“가해자와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두렵고 무서웠어요. 여러 차례 교육감에게 격리 조치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아세요?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학교 안에서 얼마든지 마주칠 수 있다는 그 두려움?”
“성희롱 피해자들에 대한 생각들이 달라졌으면 좋겠어요. 충주장학사들은 ‘이게 성폭행이냐, 교장선생님이 격려차원으로 한 거다’, ‘교장선생님은 이제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잘 보내드리자’ 이런 이야기들을 피해자에게 서슴없이 말하더라고요.” 선생님의 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 선생님은 조심스레 지난 8개월의 시간을 조금씩 끄집어냈다.
“솔직히 저도, 성희롱 이런 거 공개하고 싶진 않았어요.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날 바라보는 눈이 너무 무서웠어요, 제가 작년에 여학생반 담임이었는데 우리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성희롱을 당해도 묵묵히 참을까봐. 그래서 공개한 거였어요. 애들한테 보여주고 싶은 거였죠. ‘아, 교장 선생님이 우리 선생님에게 못된 짓 하더니 결국은 쫓겨나는 구나’ 이런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단 하루만이라도. 그런데 그걸 못했네요. 도교육청 징계위원회에서 가해자인 교장을 정직 1개월 징계한 뒤 인사 조처했거든요. 그것도 방학식 하는 날. 그러니 아무것도 못 보여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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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문만 넘으면 인권을 포기해야했던 탄금중학교
“작년 3월에 교장이 부임하면서 학생들에게 폭언과 폭력을 휘두르는데 아이들의 기분은 어땠을런지. 좀 더 빨리 바로 잡았어야 하는데. 교장은 남녀 가리지 않고 아이들의 가방과 두발을 검사하고 체벌까지 했어요. 자습시간에 돌아다니지 말라고 교실 문마다 잠금장치를 세 개씩이나 해 놓고, 교직원 화장실에 들어갔던 여자 아이는 머리채를 잡혀서 교무실로 끌려오고요. 선생님들요? 반 아이들이 교장 손에 잡혀 오면 아이들이랑 똑같이 당했어요. ‘너’, ‘싸가지 없다’, ‘상식 없는 넌 가정교육 다시 받고 와라’ 등 심지어 차량 요일제를 안 지켰다고 고소고발 행정조치 시키고, 교사의 실내화가 교장 맘에 안 들면 ‘가정교육 받고 사유서를 써오라’는 둥 교무수첩 검사까지. 정말이지 책상 위 교장실 직통전화가 울리면 교무실 선생님들이 다들 경직 됐어요.”
탄금중학교는 작년 6월 14일 교장의 독단적인 학교운영에 대해 전교조 소속 교사 25명이 성명서를 내면서 시작됐다. 당시 전교조 충북지부와 충북의 시민단체들로 이루어진 탄금중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충북공동대책위원회는 “교장이 정규시간 시작 30분 전인 8시30분까지 등교하지 않는 학생은 무단지각, 학교 시설물 훼손은 교사·학생 변상 조처, 교사·학생에 수시로 인격 모독적인 언어폭력을 하는 등 상식 이하의 방법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며 “한 여교사를 성희롱 한 의혹도 있는 만큼 바로 사퇴하라”고 촉구했었다. 당시 선생님을 힘들게 했던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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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중의 문제는 교권탄압, 사람들은 왜 성희롱 문제만 부각 시킬까요?”
“작년에 전교조에서 탄금중 학내인권 탄압에 대해 14, 15일 성명서를 발표했어요. 지역의 많은 분들이 동참해주고. 그런 모습에서 힘을 얻었어요. 함께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마음을 다잡은 거죠. 그래서 3번째 성명서를 발표할 때 성희롱 문제를 폭로한 거고. 근데 이상하더라고요. 난 피해자고 가해자는 교장인데, 왜 내 이야기가 공론화 되는 건지. 큰 테두리에서 탄금중 문제는 인권과 교권을 탄압한 건데, 언론과 사람들은 성희롱만 부각했어요. 이래서 다른 피해자들이 이야기하길 꺼리는 거죠. 저는 진술할 때 전교조와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줬지만 주변에 도움의 손길이 없는 사람들은 어떨까요? 제가 그들에게 ‘당하지만 말고 말하세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나 힘든데.”
선생님은 긴 한숨을 내쉬면서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실제 언론에서는 2007년 6월 14일부터 20일 까지는 ‘탄금중학교 교권탄압의 실상’을 보도 했지만 6월 말부터는 ‘탄금중 내 성희롱 사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렇게 선생님은 지난 8개월을 싸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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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도 최초로 열린 성희롱고충심의위원회, 징계위원회
그리고 전국 최초 공무상 요양 승인
작년 7월 9일에는 충북 교육청 성희롱고충심의위원회에서 “교장이 여교사의 손을 잡는 등의 신체 접촉, 여교사가 이메일로 재발방지를 부탁했지만 들어지지 않아 심한 불쾌감을 갖는 등 네 가지 부분이 성희롱에 해당된다”고 결정되었다. 이어 징계위원회가 소집, 前탄금중 교장에게 정직 1개월 처분을 내렸다.
그리고 올해 1월 7일, 가해자인 전 교장과 충북 교육감을 상대로 치료비 102만여 원, 위자료 3천만 원 등 각각 3천 100여만 원의 손해 배상 청구소송을 청주지법 충주지원에 냈다. 탄금중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충북공동대책위원회는 “‘성희롱 직접 가해자인 전(前) 탄금중 학교장과 관리 감독의 책임자이인 교육감이 성희롱 가해자와 피해자를 격리조치하지 않아 2차 가해를 당하게끔 하는 등 피해를 키웠다”고 밝혔다.
“충북지역에서 성희롱으로 고충심의위원회가 열린 것도 처음이고 징계도 처음이었어요. 분명히 수많은 선생님들이 이런 경우를 당했을 텐데 처음이라니, 다들 이야기하기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이번 사건을 공무원연금공단에 공무상 요양으로 신청했지만, 개인의 심리에 따른 정신적 취약성 등을 이유로 질병 불인정 판단을 받았어요. 그렇지만 행정자치부를 통해 재심의 신청을 했고 올해 1월 31일자로 승인을 받았어요. 그동안 두 세 건의 신청은 있었지만, 승인은 제가 전국 최초예요.”
힘든 이야기였을 텐데도 선생님은 “나와 같이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우리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떳떳한 선생님으로 남고 싶다”며 이야기를 마쳤다.(천윤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