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들을 잠들지 못하게 하는가. 무엇이 이들을 잠들지 못하게 하는가. 홍콩의 길바닥, 텅 비어 허기진 창자, 가물거리는 정신, 불어 튼 발바닥, 요란스런 차 소리. 아니다.
배가 고프다. 70년 전태일도 그랬다. 병원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어머니 이소선에게 배가 고프다고 했다. 목에서 피가 넘치며 “내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해달라”는 당부와 함께 배고프다는 말을 하며 숨을 거뒀다.
전태일의 배고픔은 근로기준법을 화형시키고 자신의 몸에 불을 질러야 했던 최소한의 권리마저 무시되었던 사회에 대한 배고픔이다. 뉴코아 이랜드 노동자의 배고픔은 비정규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길바닥으로 내몬 비정규직법이 강요한 배고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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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다. 증권거래소 앞에 피어났던 촛불도 꺼졌다. 침낭 속에 몸을 묻었지만 춥다. |
김애수 조합원은 자정이 넘었지만 국제금융센터 주변을 계속 맴돌고 있다. 물끄러미 찻길을 내려다보고 불 꺼진 빌딩을 바라본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맥도날드를 바라보기도 한다. 그리고 잠든 동료의 얼굴을 안쓰러운 얼굴로 내려다본다. 잠을 자는 경기본부 권미정 씨의 흐트러진 담요를 여며준다.
이선아 민주노동당 당원은 몸살기운이 있다며 온몸을 담요로 칭칭 감고 드러누웠다. 물론 잠들지 못했다. 누런 불빛 아래에서 책을 읽고 있다.
한영희 조합원도 잠들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왜 자지 못하냐고 묻자, 내가 잠자는 모습을 찍을까 무서워 그런다고 웃는다. 지하철에서 조각잠 자는 모습을 찍어 기사로 올린 것을 보았나 보다. 얄밉다며 카메라만 들이 되면 손사래를 친다. 새벽 2시 침낭 속으로 들어간다. 얼굴을 가리고 누웠다. 물론 잠든 모습을 찍었다. 가린 천 사이로 드러난 얼굴을 찍었다.
일찍 잠이 들었던 서강본 부본부장은 새벽 1시께 눈을 떴다. 배가 고파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숙소에 있는 컵라면이 떠오르고 돼지고기를 숭숭 썰어 끓인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어 잠을 잘 수 없다고 한다.
서비스연맹 박동식 국장은 “다 들 잠들면 몰래 편의점에 가서 뭘 좀 먹을까 했는데, 잠들지 않는 카메라가 무서워 가지 못한다”고 너스레를 떤다. 원정투쟁단의 살림을 맡은 터라 혹 아픈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 노심초사다.
김석원 조합원은 홍콩노총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다. 단식을 해도 에너지가 넘쳐난다. 물론 침낭에 몸을 숨기자마자 그는 요란한 오케스트라를 연주했다. 열정은 잠이 들어도 코골이로 이어진다.
교민인 장대업 씨는 한숨도 자지 않고 꼬박 밤을 새운다. 혹시 잠자는 동안 원정투쟁단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싶어 지키고 있다고 한다. 공책을 꺼내 무언가를 계속 적는다. 일기를 쓰는 걸까 분노를 쓰는 걸까.
다이아나를 비롯한 홍콩 활동가들도 잠들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제는 연대를 넘어 원정투쟁단과 오랜 벗처럼 가까워졌다. 홍콩 활동가와 나눈 연대의 정은 따로 꼭지를 만들어 기사를 쓸 예정이다.
7일 새벽 4시 반.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조를 나누어 세수를 하고, 농성장에 깔린 잠자리를 정리했다. 출근 시간. 손에는 유인물을 들고 국제금융센터를 누빈다. 홍콩시민들에게 한 장이라도 더 건네고 싶어 안달하는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의 모습이 눈에 읽힌다.
홍콩시민들에게 원정투쟁단의 노숙단식은 방송과 신문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원정투쟁단의 성과는 이미 반은 이루어졌다. 냉담하던 금융가의 사람들도 또 다른 눈길로 원정투쟁단에게 말을 건다.
박동식 국장은 “무얼 얻어 갈 수 있을까 두려워했는데, 홍콩에 도착한 순간 달라졌다. 상장을 물리적으로 저지하려는 목적이 아니었기에 원정투쟁단의 활동은 최소한 이상의 성과를 올린 거 아니냐”며 평가를 한다.
한영희 조합원은 “국내에서 보지 못한 언론의 뜨거운 관심에 놀랐다. 더 많은 조합원이 와서 함께 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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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국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
7일, 이랜드차이나의 일반 공모 마지막 날이다. 16일이 상장이지만 오늘까지 공모 결과가 중요하다. 열 명의 원정투쟁단은 상장을 물리적으로 저지하려고 온 것은 아니다. 이랜드의 부도덕성을 알려 선량한 투자자의 피해를 막는 것이 큰 목적이다. 노동자를 탄압하는 기업은 어느 나라에서도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는 게 목적이다.
출국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홍콩 활동가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았다. 다시 한 번 홍콩에 원정투쟁단이 온 이유와 그간의 활동, 그리고 성과에 대해 설명을 했다. 언론에서 이랜드 뉴코아 노동자의 목소리를 중요하게 다뤄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말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함께 한 홍콩 활동가와의 이별 장면은 도저히 글로 표현하지 못하겠다. 노동자는 하나다. 이 말로도 부족하다. 함께 불렀던 ‘님을 위한 행진곡’은 비행기에 오르고 홍콩 땅을 날아 오른 뒤에도 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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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까지 함께 한 홍콩 활동가와의 이별 장면은 도저히 글로 표현하지 못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