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은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100일을 맞아 일제히 논평을 내고 '위기 진단'과‘쇄신책’을 언급했다. 그동안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옹호하는 등 친정부 논조를 펴온 맥락에서 보면 상당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사설에는 이미 자존심 차원을 넘어 위기의식이 잔뜩 배어 있다.
중앙일보, 쇠고기 안전하지만 내각은 책임져야
중앙일보는 ‘실패한 100일 인정하고 새 출발 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최근의 대규모 시위사태가 정권의 위기를 넘어 국가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정권이 동력을 잃으면 남은 4년9개월은 어찌될 지, 또다시 5년 정권의 실패를 봐야 하는 건지, 걱정이 마음을 짓누른다고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중앙일보는 이명박 대통령의 5일 국정쇄신책 발표와 이어 가질 국민과의 대화에서 “여론수렴은 겸허하고 진지해야 하고, 국정쇄신은 근본적이고 과감해야 하며, 대화는 솔직하고 겸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앙일보는 “사태의 근인(近因)은 쇠고기지만 원인(遠因)은 정권의 신뢰 상실”이라며,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과학적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지만 국민이 정권을 신뢰하지 않아 이같은 사태가 발생했다는 분석이다. 이어 이명박 대통령과 내각과 대통령실 전체에 대한 국민의 불신인만큼 내각 전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단지 몇 명의 장관 또는 수석의 교체로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며 부분적인 인적 쇄신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않는 모습이다.
중앙일보는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지만 국민이 불안해 하므로 “30개월 이상 소를 꼭 수입해야 하는지도 원점에서 검토”하고 “30개월 이상은 당분간 유예할 수는 없는지도 따져 보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면 어떤 이득이 있는지, 광우병 불안에 대해 국민이 무엇을 잘못 알고 있는지, 설명이 필요한 것은 당당하게 설명해야 한다”며 광우변 쇠고기 수입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동아일보, 쇠고기 수입 문제 다른 해법은 없나
동아일보는 ‘李 대통령, 지지율 22% 앞에서 고뇌해야’ 한다는 사설을 내놓았다. 동아일보는 22.9%가 국정 운영을 잘 하고 있다는 코리아리서치센터와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를 들어 “취임 100일의 성적표치곤 참담하다”고 언급하면서도 “전망에 대해 ‘지금보다 잘할 것’(46.1%)이라는 낙관론이 ‘지금보다 더 못할 것’이라는 비관론(11.8%)의 4배 가량 된다”는 데서 위안을 삼았다.
동아일보는 “도처에서 백가쟁명(百家爭鳴) 식의 진단이 나오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이 대통령 본인과 측근 참모들의 생각”이라며 당 정 청이 모두 진지한 반성문을 써봐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동아일보는 어제(2일) 정부가 한나라당의 요청을 받아들여 관보 게재를 연기한 것은 잘한 일이라며 “미국과의 신뢰 문제를 고려한다면 쉬운 결정이 아니었겠지만 지금으로선 국민의 신뢰 회복보다 더 시급한 것은 없다”며 위기 모면에 대한 심경을 피력했다. 여기서 더 나가 “쇠고기 수입 문제도 정녕 다른 해법은 없는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해 사태에 대한 동아일보의 인식도 만만치 않음이 엿보인다.
조선일보, 정권 빼고는 모든 것 던질 각오 해야
조선일보도 ‘대통령은 엄중한 상황인식 아래 비상한 결단 내려야’ 한다는 사설을 올렸다. 촛불시위대에 “청년.학생.노동자.반미(反美)운동가만이 아니라 어린 아이들의 손을 잡은 주부, 중·고교 학생과 노인네들까지 합류”해 있고, 시위대의 구호가 ‘쇠고기 수입반대’가 뒷전으로 물러나고 반(反)정부 정권 퇴진 운동이 돼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국민들이 정권을 바라보는 눈길이 싸늘하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취임 100일 만에 지지세력들에게선 따돌림을 받은 채 반대세력에게 쫓기는 고립된 정권이 되고 말았다”고 진단했다. 완연한 정권 말기 모습이고, 사상(史上) 유례없는 조로(早老) 정권의 증세라고 덧붙였다.
조선일보는 “국정 전환의 담대(膽大)한 결단”을 내리되 “결단의 범위와 대상에 어떤 한계와 제한을 미리 설정해서도 안 된다”며 “정부와 정권을 다시 세우기 위해 정부와 정권 자체를 제외한 모든 것을 던질 비장한 각오”가 필요하다고 종용했다.
이같은 사태에 이르도록 “이 정권을 만든 사람과 참여한 사람 어느 누구도 자신의 보신(保身)을 정부와 정권의 안보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며, 결단의 강도와 내용, 시간의 촉박함을 들어 상황의 엄중함을 환기했다.
100일 사설을 통해 드러난 조중동의 위기 진단은 냉정하다. 어떤 방식으로든 현 국면을 피해갈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보통 수준의 쇄신이 아니라 지배질서 전반의 대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다.
조중동의 위기 진단과 고언에 따라 이명박 대통령이 5일 국정쇄신책 발표와 이어질 국민과의 대화에서 어떤 카드를 던지며 위기 돌파에 나설지 이목이 집중된다.